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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

11화. 당신이 더 무서워!
     
     
     
     
     
     
     
     
   [이름]: 한강호
   […]: ……….
   [특성]:우레폭풍(thunderstorm.雷雨) / 광역 특화.
   [등급]: Lv. 4
   [강화]: 20%
   [속성]: 플라즈마. 전자기장.
   [전문 기술]: 기체방전. 제어 열 핵융합.
   [기본효과]: 오염저항(독 내성)
   [보조 기술]: 매뉴얼-전용 서고(자체 진화). 위협.
   [칭호]: 리더(A).
   […]: ……….
     
   다른 항목 변화는 대동소이했다.
   ‘기본효과’라는 항목이 새로 생겼지만, 리사와 같이 일종의 패시브 효과로 이해됐다.
   신경이 쓰이는 건 바로 저에게만 새로 생긴 ‘칭호’ 항목이었다.
     
   ‘칭호라…. 어떤 의미일까? 뭔가 기능이 있을까?’
     
   게다가 그 내용이 너무 생뚱맞았다.
   ‘리더’라니.
   평생 맨 앞에 서는 삶을 살기는 했지만, 그게 칭호라고 할만한 것인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좀처럼 표정 변화가 없는 그였지만, 그 부분에서는 절로 미간에 주름이 졌다.
   그리고 그 미세한 변화를 리사가 알아챘다.
     
   “왜요? 우리 얘기 중에 신경 쓰이는 내용이 있었나요?”
     
   그녀는 강호의 표정 변화가 현재 상황에서 어떤 문제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알기에 강호는 곧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나만 볼 수 있다는 게 이럴 땐 불편하군.’
     
   강호는 작게 고개를 젓고는 리사의 질문 의도에 맞는 대답을 했다.
     
   “두 사람 대화 때문이 아니라, 재난 매뉴얼 내용에 없는 현상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그 말에 레이나가 곧장 반응했다.
     
   “재난 매뉴얼 내용을 숙지하고 있나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그녀에게, 강호가 아닌 리사가 대답했다.
     
   “네. 그 방대한 걸 다 외웠어요. 믿지 않으시겠지만 사실이에요.”
     
   어째서인지, 그녀의 말투에서 어떤 자부심 같은 게 느껴졌다.
   마치 제 자랑인 것처럼 괜히 어깨가 으쓱했다.
     
   그런 리사의 모습에 강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데.’
     
   남들은 잘 모르지만, 의외로 허당미가 있는 그녀였다.
   하지만 어떤 문제에 직면하면 천재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아마 평소였다면 자신이 언급한 ‘현상’이 무엇인지 물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처음에 느꼈던 지적인 모습과는 달리 동물원에서 봤던 카피바라가 떠올랐다.
     
   확실히 조금은 상기된 느낌이었다.
   그것이 생존 후의 안도 때문인 건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레이나의 영향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마침 그때, 강호 일행에게 처음 이름을 밝힌 이후로 한마디도 없던 헨리 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그들이 온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으나, 대피소 안의 모두가 그를 돌아봤다.
   이윽고 그는 계속 뭔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 그런거라고, 내가 말했잖아. 다시는… 시간도… 당신들이….”
     
   겁에 질린 눈동자는 쉼 없이 사방으로 움직였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계속 얼굴을 쓸어내렸다.
     
   “헨리 박사님이라고 하셨죠? 이제야 기억나네요. 생화학 연구소 수석연구원, 맞죠?”
     
   레이나가 아는 체했지만, 헨리는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쭈그리고 있는 몸을 더욱 구석으로 밀착시키며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강호는 처음 그를 봤을 때, 1차 사이렌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이름]: 헨리 시거.
   [소속]: 생화학 연구소.
   [직급]: 수석연구원
   [종]: 휴먼 / 퓨어
   [특성]: 각성 실패.
   [등급]: 비각성
   [전공]: 생물학. 유전자 공학.
     
   세계 종 보관소가 평화롭던 때 흔히 보던 정보창이었다.
   다만 한 가지, 특성 항목에 ‘각성 실패’라는 내용이 거슬렸다.
     
   ‘뭔가 시도했으나 되지 않았다는 것 아닐까.’
     
   예를 들어, 자신처럼 어떤 주사를 맞았는데 반응이 없었다거나.
     
   그것 말고도 정확히 이유를 들 수는 없지만 미심쩍은, 본능적인 느낌이 그를 달리 보게 했다.
   애초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는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입을 열고 한 말이 ‘그들이 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강호는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레이나, 한 가지만 확인하겠다.”
     
   단호하고 다부진 그의 말에 레이나는 흠칫했다.
   목소리가 큰 것도 아니고 다그친 것도 아닌데, 그의 말에는 위엄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갑작스러운 명령조에도 거부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총무부의 시스템 운영팀이면, 지금 1차 사이렌이 의미하는 바는 알 거고.”
   “네. 연구소에 문제가 생긴…”
     
   강호는 그녀의 말을 마저 듣지 않았다.
     
   “9층에는 생화학 연구소와 시신 보관소가 있다. 지금 문제가 생긴 곳, 어느 쪽이지?”
     
   레이나는 강호가 재난 매뉴얼을 다 외우고 있다던 리사의 말을 떠올렸다.
     
   ‘지금의 문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보아하니 저 남자도 나처럼 이능을 가진 것 같고.’
     
   그런 판단과 함께 그들 일행이 10층에서 생존해 올라왔다는 말을 자연히 믿게 됐다.
     
   “말한 대로 시체 보관소는 생화학 연구소와 연결된 여섯 개의 쉘터 중 하나에요. 문제가 생겼다면 자동으로 차단됐을 거고요.”
   “그럼 1차 사이렌이 울렸다는 건 생화학 연구소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군.”
     
   레이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자가 복구 시스템이 이번에도 작동하지 않았다는 건데.’
     
   문제가 생긴 쉘터는 자동 폐쇄되고, 그 상태로 스스로 문제를 찾아 진단하고 복구하는 AI 복구 시스템이다.
   종 보관소 전체 층, 모든 쉘터에 적용된 첨단 기술로, 2027년 시설 완공 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문제가 없었던 핵심 이유였다.
   그런데, 바로 하루 전에 지하 10층에서 그 신화가 깨졌다.
     
   “지하 9층도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없어. 혹시 모르니 2차 사이렌이 울리기 전에 서쪽 승강장으로 가야…”
     
   강호가 빠르게 다음 행동 요령을 설명하던 중에, 날카로운 소음이 그의 입을 막았다.
     
   끼기기기기익.
     
   “윽!”
   “아아!”
     
   저마다 인상을 찌푸리며 귀를 막았다.
   쇠꼬챙이로 철판을 긁어대는 소음이 계속된 탓이었다.
     
   끼기기기긱!
     
   헨리가 발작을 일으킨 것도 그때였다.
     
   “아아악! 와, 왔어! 왔다고! 우린 다 죽을 거야!”
     
   그는 두 발을 버둥거리며 뒤로 기다시피 움직였다.
   하지만 이내 등이 후면 문에 닿으며 더 갈 곳이 없었다.
     
   “하아, 으으으!”
     
   ‘대체 그가 알고 있는 게 뭘까?’
     
   강호 일행도 10층에서 볼 것 못 볼 것 다 봤다.
   하지만 누구도 헨리 같지는 않았다.
     
   좀비나 누더기 골렘보다 더 한 존재가 있을까?
     
   “이런, 젠장!”
     
   갑작스러운 레이나의 욕지거리가 강호의 상념을 깨웠다.
   리사도 덩달아 놀라며 물었다.
     
   “왜요? 무슨 일인데요?”
     
   레이나는 자신이 쓰고 있던 스카우터 고글을 벗어 바닥에 팽개쳤다.
     
   퍽.
     
   “재난 매뉴얼을 볼 수 없어요. 데이터 수신도 안 돼 모든 정보의 접근이 차단됐어요.”
   “그게 무슨 소리죠? 9층엔 중앙 정보 시스템이 멀쩡히 살아있는데 어째서?”
     
   지하 10층은 발전소가 파괴되면서 모든 전력이 차단됐다.
   그 때문에 중앙 정보 시스템도 멈췄었다.
     
   하지만 지금 9층은 생화학 연구소에 문제가 있는 거지, 전력 공급 시설과 정보 시스템은 정상인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스카우터 고글을 사용할 수 있었다.
     
   “시스템이 정보 접근 요청을 전부 거부하고 있어요. 이유는 저도 몰라요.”
     
   리사와 레이나의 대화를 들으며, 한강호는 직감했다.
     
   ‘이대로라면, 9층도 폐쇄 조치 될 거다.’
     
   상황이 10층과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2차 사이렌과 상관없이 승강장으로 이동하려던 계획을 실천해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재난 매뉴얼, 어떤 내용이 필요하지?”
     
   강호의 말에 리사와 레이나가 동시에 탄성을 뱉었다.
     
   “아.”
   “맞아!”
     
   그러고는 곧장 물었다.
     
   “방화 셔터가 찢어지는 경우, 어떤 게 있나요?”
   “음. 우연의 일치는 아닌 것 같군.”
   “네?”
     
   레이나의 질문에 강호가 짧게 한숨을 내쉬고 한 말이었다.
     
   “조금 전에 내가 재난 매뉴얼과 다른 현상을 말했었는데, 그게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다.”
     
   누구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심각성은 느낄 수 있었기에 가만히 강호의 다음 설명을 기다렸다.
     
   “원래는 한 가지였다. 플라즈마 절단기. 그런데 최근에 업데이트된 내용을 보면.”
     
   꿀꺽.
     
   말을 하는 강호도 어쩔 수 없이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변이 생명체의 발톱, 혹은 부리, 라는 군.”
     
   리사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10층에서 겪었던 일이 있기에 의문은 갖지 않았다.
   지금 이곳에선 불가능한 일이란 건 없다.
   그렇기에, 그녀의 표정에 드리운 건 그저 걱정과 두려움이었다.
     
   반면 레이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두 여자의 상반된 모습을 보며, 강호는 레이나가 뭔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뭔지를 알면 대응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막 물으려 할 때였다.
     
   “저, 이분, 어떻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갑작스러운 사토시의 목소리에 모두가 뒤를 돌아봤다.
     
   “어머!”
   “헨리!”
     
   리사와 레이나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피범벅이 된 채로 웃다 괴로워하기를 반복하는 헨리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의 두 뺨, 팔뚝과 허벅지, 가슴 등에 긁고 쥐어뜯은 흔적이 또렷했다.
     
   그나마 습격을 당한 것이 아니라 자해했다는 걸 사토시가 뒤늦게 발견하고 그의 팔과 다리를 제압하고 있었다.
     
   “흐히히. 크흐흑. 이히히. 우, 우리, 다 죽어. 죽, 죽는다고. 으흑.”
     
   헨리의 사지를 붙잡고 누르느라 붙어있던 사토시가 흠칫했다.
   자신의 귓가에 흘리는 그 기괴한 소리에 사토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젠장, 닥쳐! 당신이 더 무서워!”
     
   그러는 사이, 또다시 대피소 밖에서 신경을 괴롭히는 소음이 시작됐다.
     
   끼기기기기!
     
   “아우!”
   “꺅!”
     
   정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지만 한가지, 외부에서 누군가 대피소의 문에 위력을 가하는 게 분명했다.
     
   ‘일반적인 좀비는 아니다. 저런 위력은 없어. 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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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당신이 더 무서워!

[이름]: 한강호

[…]: ……….

[특성]:우레폭풍(thunderstorm.雷雨) / 광역 특화.

[등급]: Lv. 4

[강화]: 20%

[속성]: 플라즈마. 전자기장.

[전문 기술]: 기체방전. 제어 열 핵융합.

[기본효과]: 오염저항(독 내성)

[보조 기술]: 매뉴얼-전용 서고(자체 진화). 위협.

[칭호]: 리더(A).

[…]: ……….

다른 항목 변화는 대동소이했다.

‘기본효과’라는 항목이 새로 생겼지만, 리사와 같이 일종의 패시브 효과로 이해됐다.

신경이 쓰이는 건 바로 저에게만 새로 생긴 ‘칭호’ 항목이었다.

‘칭호라…. 어떤 의미일까? 뭔가 기능이 있을까?’

게다가 그 내용이 너무 생뚱맞았다.

‘리더’라니.

평생 맨 앞에 서는 삶을 살기는 했지만, 그게 칭호라고 할만한 것인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좀처럼 표정 변화가 없는 그였지만, 그 부분에서는 절로 미간에 주름이 졌다.

그리고 그 미세한 변화를 리사가 알아챘다.

“왜요? 우리 얘기 중에 신경 쓰이는 내용이 있었나요?”

그녀는 강호의 표정 변화가 현재 상황에서 어떤 문제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알기에 강호는 곧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나만 볼 수 있다는 게 이럴 땐 불편하군.’

강호는 작게 고개를 젓고는 리사의 질문 의도에 맞는 대답을 했다.

“두 사람 대화 때문이 아니라, 재난 매뉴얼 내용에 없는 현상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그 말에 레이나가 곧장 반응했다.

“재난 매뉴얼 내용을 숙지하고 있나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그녀에게, 강호가 아닌 리사가 대답했다.

“네. 그 방대한 걸 다 외웠어요. 믿지 않으시겠지만 사실이에요.”

어째서인지, 그녀의 말투에서 어떤 자부심 같은 게 느껴졌다.

마치 제 자랑인 것처럼 괜히 어깨가 으쓱했다.

그런 리사의 모습에 강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데.’

남들은 잘 모르지만, 의외로 허당미가 있는 그녀였다.

하지만 어떤 문제에 직면하면 천재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아마 평소였다면 자신이 언급한 ‘현상’이 무엇인지 물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처음에 느꼈던 지적인 모습과는 달리 동물원에서 봤던 카피바라가 떠올랐다.

확실히 조금은 상기된 느낌이었다.

그것이 생존 후의 안도 때문인 건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레이나의 영향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마침 그때, 강호 일행에게 처음 이름을 밝힌 이후로 한마디도 없던 헨리 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그들이 온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으나, 대피소 안의 모두가 그를 돌아봤다.

이윽고 그는 계속 뭔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 그런거라고, 내가 말했잖아. 다시는… 시간도… 당신들이….”

겁에 질린 눈동자는 쉼 없이 사방으로 움직였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계속 얼굴을 쓸어내렸다.

“헨리 박사님이라고 하셨죠? 이제야 기억나네요. 생화학 연구소 수석연구원, 맞죠?”

레이나가 아는 체했지만, 헨리는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쭈그리고 있는 몸을 더욱 구석으로 밀착시키며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강호는 처음 그를 봤을 때, 1차 사이렌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이름]: 헨리 시거.

[소속]: 생화학 연구소.

[직급]: 수석연구원

[종]: 휴먼 / 퓨어

[특성]: 각성 실패.

[등급]: 비각성

[전공]: 생물학. 유전자 공학.

세계 종 보관소가 평화롭던 때 흔히 보던 정보창이었다.

다만 한 가지, 특성 항목에 ‘각성 실패’라는 내용이 거슬렸다.

‘뭔가 시도했으나 되지 않았다는 것 아닐까.’

예를 들어, 자신처럼 어떤 주사를 맞았는데 반응이 없었다거나.

그것 말고도 정확히 이유를 들 수는 없지만 미심쩍은, 본능적인 느낌이 그를 달리 보게 했다.

애초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는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입을 열고 한 말이 ‘그들이 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강호는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레이나, 한 가지만 확인하겠다.”

단호하고 다부진 그의 말에 레이나는 흠칫했다.

목소리가 큰 것도 아니고 다그친 것도 아닌데, 그의 말에는 위엄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갑작스러운 명령조에도 거부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총무부의 시스템 운영팀이면, 지금 1차 사이렌이 의미하는 바는 알 거고.”

“네. 연구소에 문제가 생긴…”

강호는 그녀의 말을 마저 듣지 않았다.

“9층에는 생화학 연구소와 시신 보관소가 있다. 지금 문제가 생긴 곳, 어느 쪽이지?”

레이나는 강호가 재난 매뉴얼을 다 외우고 있다던 리사의 말을 떠올렸다.

‘지금의 문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보아하니 저 남자도 나처럼 이능을 가진 것 같고.’

그런 판단과 함께 그들 일행이 10층에서 생존해 올라왔다는 말을 자연히 믿게 됐다.

“말한 대로 시체 보관소는 생화학 연구소와 연결된 여섯 개의 쉘터 중 하나에요. 문제가 생겼다면 자동으로 차단됐을 거고요.”

“그럼 1차 사이렌이 울렸다는 건 생화학 연구소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군.”

레이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자가 복구 시스템이 이번에도 작동하지 않았다는 건데.’

문제가 생긴 쉘터는 자동 폐쇄되고, 그 상태로 스스로 문제를 찾아 진단하고 복구하는 AI 복구 시스템이다.

종 보관소 전체 층, 모든 쉘터에 적용된 첨단 기술로, 2027년 시설 완공 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문제가 없었던 핵심 이유였다.

그런데, 바로 하루 전에 지하 10층에서 그 신화가 깨졌다.

“지하 9층도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없어. 혹시 모르니 2차 사이렌이 울리기 전에 서쪽 승강장으로 가야…”

강호가 빠르게 다음 행동 요령을 설명하던 중에, 날카로운 소음이 그의 입을 막았다.

끼기기기기익.

“윽!”

“아아!”

저마다 인상을 찌푸리며 귀를 막았다.

쇠꼬챙이로 철판을 긁어대는 소음이 계속된 탓이었다.

끼기기기긱!

헨리가 발작을 일으킨 것도 그때였다.

“아아악! 와, 왔어! 왔다고! 우린 다 죽을 거야!”

그는 두 발을 버둥거리며 뒤로 기다시피 움직였다.

하지만 이내 등이 후면 문에 닿으며 더 갈 곳이 없었다.

“하아, 으으으!”

‘대체 그가 알고 있는 게 뭘까?’

강호 일행도 10층에서 볼 것 못 볼 것 다 봤다.

하지만 누구도 헨리 같지는 않았다.

좀비나 누더기 골렘보다 더 한 존재가 있을까?

“이런, 젠장!”

갑작스러운 레이나의 욕지거리가 강호의 상념을 깨웠다.

리사도 덩달아 놀라며 물었다.

“왜요? 무슨 일인데요?”

레이나는 자신이 쓰고 있던 스카우터 고글을 벗어 바닥에 팽개쳤다.

퍽.

“재난 매뉴얼을 볼 수 없어요. 데이터 수신도 안 돼 모든 정보의 접근이 차단됐어요.”

“그게 무슨 소리죠? 9층엔 중앙 정보 시스템이 멀쩡히 살아있는데 어째서?”

지하 10층은 발전소가 파괴되면서 모든 전력이 차단됐다.

그 때문에 중앙 정보 시스템도 멈췄었다.

하지만 지금 9층은 생화학 연구소에 문제가 있는 거지, 전력 공급 시설과 정보 시스템은 정상인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스카우터 고글을 사용할 수 있었다.

“시스템이 정보 접근 요청을 전부 거부하고 있어요. 이유는 저도 몰라요.”

리사와 레이나의 대화를 들으며, 한강호는 직감했다.

‘이대로라면, 9층도 폐쇄 조치 될 거다.’

상황이 10층과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2차 사이렌과 상관없이 승강장으로 이동하려던 계획을 실천해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재난 매뉴얼, 어떤 내용이 필요하지?”

강호의 말에 리사와 레이나가 동시에 탄성을 뱉었다.

“아.”

“맞아!”

그러고는 곧장 물었다.

“방화 셔터가 찢어지는 경우, 어떤 게 있나요?”

“음. 우연의 일치는 아닌 것 같군.”

“네?”

레이나의 질문에 강호가 짧게 한숨을 내쉬고 한 말이었다.

“조금 전에 내가 재난 매뉴얼과 다른 현상을 말했었는데, 그게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다.”

누구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심각성은 느낄 수 있었기에 가만히 강호의 다음 설명을 기다렸다.

“원래는 한 가지였다. 플라즈마 절단기. 그런데 최근에 업데이트된 내용을 보면.”

꿀꺽.

말을 하는 강호도 어쩔 수 없이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변이 생명체의 발톱, 혹은 부리, 라는 군.”

리사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10층에서 겪었던 일이 있기에 의문은 갖지 않았다.

지금 이곳에선 불가능한 일이란 건 없다.

그렇기에, 그녀의 표정에 드리운 건 그저 걱정과 두려움이었다.

반면 레이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두 여자의 상반된 모습을 보며, 강호는 레이나가 뭔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뭔지를 알면 대응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막 물으려 할 때였다.

“저, 이분, 어떻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갑작스러운 사토시의 목소리에 모두가 뒤를 돌아봤다.

“어머!”

“헨리!”

리사와 레이나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피범벅이 된 채로 웃다 괴로워하기를 반복하는 헨리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의 두 뺨, 팔뚝과 허벅지, 가슴 등에 긁고 쥐어뜯은 흔적이 또렷했다.

그나마 습격을 당한 것이 아니라 자해했다는 걸 사토시가 뒤늦게 발견하고 그의 팔과 다리를 제압하고 있었다.

“흐히히. 크흐흑. 이히히. 우, 우리, 다 죽어. 죽, 죽는다고. 으흑.”

헨리의 사지를 붙잡고 누르느라 붙어있던 사토시가 흠칫했다.

자신의 귓가에 흘리는 그 기괴한 소리에 사토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젠장, 닥쳐! 당신이 더 무서워!”

그러는 사이, 또다시 대피소 밖에서 신경을 괴롭히는 소음이 시작됐다.

끼기기기기!

“아우!”

“꺅!”

정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지만 한가지, 외부에서 누군가 대피소의 문에 위력을 가하는 게 분명했다.

‘일반적인 좀비는 아니다. 저런 위력은 없어. 그렇다면…?!’


           


I Memorized the Disaster Manual

I Memorized the Disaster Manual

Status: Ongoing
When a disaster strikes, I know what to do. Only I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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