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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

   안 그래도 내 말을 따라 줄 기사가 하나 필요하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였으나 뭣보다 에반스 던전에서 루엘의 시련을 몰래 찾아가기 위해 기사가 필요했다.

   

   생각해봐. 나는 이래 뵈도 백작 영애라고. 어찌저찌 던전에 들어간다 쳐도 과연 사람들이 나를 혼자 내버려 둘까?

   

   그럴 리가!

   

   항시 호위가 되어 줄 병사와 기사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겠지.

   

   내가 아무리 땡깡을 피운다 해도 혼자가 될 순 없을 거다.

   

   이건 안전과 관계된 문제니까.

   

   내 짜증을 받아내는 게 베네딕의 분노를 받아내는 것보단 나을 거 아냐.

   

   그냥 사람들 다 있는 데서 들어가 버린 후 우연이라고 우기면 되지 않냐고?

   

   무리야.

   

   루엘의 시련이 숨겨진 장소는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갈 이유가 없는 구석진 장소다.

   

   내가 억지를 부려서 거기에 갔다 치자.

   

   근데 그 상황에서 우연히 루엘의 시련에 들어가게 된다고?

   

   정신머리가 있으면 그걸 믿겠냐?

   

   거기서 칼이다.

   

   명망 높은 데다 사람들의 신뢰를 받는 이 녀석이 내 옆에 붙어있다면 어느 정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 거다.

   

   더욱이 루엘의 시련에 관해서도 이 허접 기사와 입만 맞추면 잘 설명할 수 있지 않겠나.

   

   “기사단장님. 죄송합니다만 잠시만 아가씨와 단 둘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굴러들어온 행운에 내가 마음속으로 환호하는 동안 칼이 포셀에게 말을 걸었다.

   

   “아주 잠시면 됩니다.”

   “…루시 아가씨가 허락한다면 사라져 주마.”

   “아가씨.”

   

   응? 갑자기 뭐야? 단 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좋아! 지금 나도 너한테 비밀스러운 부탁을 하려고 했으니까!

   

   ‘기사단장님. 잠시 나가 주시겠어요?’

   “바보 포셀. 나가 있어봐.”

   

   “알겠습니다. 아가씨. 그럼 전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포셀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나서 칼에게 물었다.

   

   ‘기사님. 하고 싶은 말이 뭔가요?’

   “허접 기사. 뭐 물어 보려고?”

   

   “혹시 아가씨께선 축복을 지니고 계십니까?”

   

   축복.

   

   소울 아카데미에서 NPC들이 스킬을 부르는 이름이다.

   

   우리야 게임의 시스템으로 스킬을 이해하고 있지만 게임 속 인물들은 다르다.

   

   그들은 스킬이란 개념을 알지 못하기에 그를 신이 내린 축복이라 여기는 것이다.

   

   “저는 알고 싶습니다. 어제 제가 아가씨를 해하려 했던 것이 단순히 제가 부족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힘이 작용한 것인지를.”

   

   칼의 목소리엔 긴장과 자괴감이 뒤섞여 있었다.

   

   당사자인 나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칼은 달랐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크나큰 죄악이라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닌 축복을 말해 달라 부탁하는 게 엄청난 결례임을 압니다. 아가씨를 시해하려 했던 짐승이 이런 부탁을 하는 게 얼마나 쓰레기 같은 짓인지도 압니다. 그렇지만 부디 한 번만. 한 번만 말씀해 주십시오. 어떤 대답을 하시더라도 믿을 터이니!”

   

   그렇기에 칼은 바라고 있었다.

   

   자신이 실수를 저지른 게 온전히 자신의 탓이 아니기를.

   

   어디 다른 곳에 핑계를 댈 구석이 있기를.

   

   자신의 잘못에 변명거리가 있기를.

   

   감옥의 돌바닥에 머리를 박는 칼을 보고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만일 자신이 저지른 일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듯한 칼의 기백에 짓눌린 것이다.

   

   “제발!”

   

   스킬에 대해 말해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게임 속 사람들이 어찌 생각하는 진 모르겠다만 내게 스킬은 그저 스킬에 불과했다.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라 실용에 따라 얻고 지우는 도구일 뿐이었다.

   

   그러니 다른 이들에게 알려주는 것에 거부감은 없었다.

   

   뭣보다 내가 여기서 아무 말 안 하고 가면 얘 진짜 자살할 것 같단 말이야.

   

   그러니 말을 해주긴 하겠지만 날 해칠 뻔 한 게 너무 괘씸해서 공짜로는 안 되겠어.

   

   확실히 뭔가를 받아내야지.

   

   이건 내가 유리한 거래다. 내가 갑이고 상대가 을이다.

   

   이럴 땐 먼저 상대한테 터무니없는 걸 내놓으라고 한 다음에 차츰차츰 줄여 나가는 거라고 했다.

   

   내가 바라는 건 에반스의 던전에서 헙력해주는 것 정도지만 그것보다 더 많은 걸 얻어서 나쁠 건 없잖아?

   

   그러니까 처음은… 그래.

   

   ‘좋아요. 칼. 대신 조건이 있어요.’

   “좋아. 칼. 말해줄게. 대신 조건이 있어.”

   

   “무엇입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하겠습니다.”

   

   ‘저의…’

   “내 충실한 기사가 되겠다고 맹약의 신에게 맹세해.”

   

   내 말을 들은 칼이 잠시 굳었다.

   

   설마 내가 이런 요구를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거겠지.

   

   소울 아카데미에서 맹약의 신에게 맹세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걸고서 맹세를 지키겠다는 선언이다.

   

   이 맹세를 어기게 되면 맹세를 할 때 몸에 새겨지는 맹약의 징표가 검게 물든다.

   

   이걸로 끝이다. 별 거 없다.

   

   게임 속 인물들이 언급하기로 영혼이 더럽혀 진다느니 무간지옥에 끌려간다느니 하긴 하는데 실제로 패널티가 가해지는 건 없다.

   

   기껏해야 평판이 떨어지는 정도?

   

   플레이어의 입장에선 이랬지만 실제로 이 세상에 사는 칼에겐 다를 것이다.

   

   

   왜냐하면 맹세를 어긴다는 건 무척이나 커다란 불명예로 여겨지거든.

   

   기사로서의 명예 때문에 밤새 번민하는 칼이 불명예를 견딜 수 있을까?

   

   아니겠지. 그러니까 칼에게 지금 내가 꺼낸 제안은 이렇게 들릴 것이다.

   

   평생 동안 내 충직한 노예로 살아라.

   

   정신머리가 있는 사람이면 이런 제안을 수락하진 않겠지.

   

   그래서 난 침묵을 지키는 칼에게서 거절의 제안이 나오기 만을 기다렸다. 다른 제안을 하기 위해서.

   

   “알겠습니다. 그러죠.”

   

   하지만 칼의 입에서 나온 건 내 기대완 다른 대답이었다.

   

   ‘네?’

   “뭐?”

   

   “맹약의 신에게 맹세하겠습니다.”

   

   아니. 어? 얘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이 세상에서 평생을 살아온 애가 맹세의 의미를 모를 리가 없는데?!

   

   바닥의 무릎을 꿇었던 칼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앞에 섰다. 그리고는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입술로 물어뜯더니 거기에서 나온 피로 자신의 손등에 진을 그렸다.

   

   ‘잠깐만요!’

   “야. 잠깐만! 허접 기사! 멈춰!”

   

   아니. 씹. 이거 철창 때문에 막으러 들어갈 수가 없잖아.

   

   ‘그냥 말해줄 게요! 그러니까 그만 둬요!’

   “말해줄게. 말해주면 되잖아! 그러니까 멈춰!”

   

   포셀을 불러와야 하나? 기사단장인 포셀이라면 이 감옥의 문을 열 수단을 가지고 있겠지.

   

   그래. 포셀을 부르러 가자. 내가 다급히 몸을 움직이려 할 때 칼의 입에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맹세를 관장하는 신 사이트라시여. 저는 한 사람의 기사로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평소의 부드럽던 칼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마력이 담긴 그의 목소리가 움직이려는 나를 붙잡는다.

   

   빌어먹을! 뭔 놈의 마력의 밀도가 이렇게 높은 거야?!

   

   움직일 수가 없잖아!

   

   “저는 기사가 되기 위해 걸어왔던 과거의 날은 이 진 안에 담겠습니다.

   기사로써 살아가는 지금을 이 진에 담겠습니다.

   꿈을 위해 살아갈 미래를 이 진에 담겠습니다.”

   

   마력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발악하던 나는 이내 탈출이 불가능하단 걸 깨닫고 칼이 맹세를 하는 풍경을 지켜봤다.

   

   자신의 삶을 저당 걸고 있는 그 모습을 눈에 새겼다.

   

   하. 제기랄. 그래. 마음대로 해라. 좆되는 건 너지 내가 아니거든?

   

   “위대한 사이트라시여. 지금 이 진 안에는 저란 한 사람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 여기에 대고 맹세하겠습니다. 저는 앞으로 루시 알른 영애의 충직한 기사로 살 것입니다.”

   

   모든 말을 끝마치고서 칼은 손등에 그려졌던 진을 자신의 손으로 훑었다. 그러자 그의 손등 위에서 빛이 나더니 맹약의 진이 새겨졌다.

   

   일련의 과정이 끝나고서 몸의 자유를 되찾는 나는 가만 칼의 손등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진심을 담아 소리쳤다.

   

   “칼. 아버님한테 얻어맞더니 돌아버린 거야?!”

   “아가씨께서 하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란다고 진짜 맹세를 하는 미친놈이 어디 있냐! 이 허접 쓰레기 병신아!”

   

   그래. 내가 시키긴 했지.

   

   근데 맹약의 신에게 맹세를 한다는 게 그리 가벼운 일이 아니잖아 이 정신 나간 인간아.

   

   태연하게 미친 짓을 저질러 놓고 왜 그러냐는 듯이 날 쳐다보는 이유가 뭐냐?

   

   어? 겁나 열 받네. 진짜.

   

   “아가씨의 자비로 살아난 몸이니 아가씨에게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원래부터 그리하려 했습니다. 그 위에 맹세가 더해졌을 뿐이죠.”

   

   너무도 태연히 말을 하기에 잠깐 내 지식이 잘못된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만 소울 아카데미에 있었던 여러 사이드 퀘스트를 떠올려 보았다.

   

   그 후에 나온 결론은 이랬다.

   

   나는 아무것도 잘못되지 않았다. 잘못된 것은 머리가 괴이한 쪽으로 뒤틀려 버린 이 인간뿐이었다.

   

   베네딕. 대체 어떤 식으로 때린 거야?!

   

   얼마나 강하게 때렸으면 사람이 병신이 되는 건데!

   

   “이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눈앞에서 맹세를 하는 꼴을 보고 나니 이 놈이 하는 말을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맞아요. 저는…’

   “맞아. 난 다른 사람을 도발하는 축복을 지녔어.”

   

   “그렇다면 제가 감정을 조절 못했던 것도.”

   

   ‘축복 때문이겠죠.’

   “축복 때문이겠지.”

   

   “그렇군요. 제 생각이 맞았군요.”

   

   안도했다는 것처럼 혼자서 중얼거리는 칼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아파졌다.

   

   겨우 그거 하나 때문에 맹세를 하는 게 맞니?

   

   내 머리로는 도저히 널 이해할 수가 없다. 야.

   

   빙의하기 전의 루시도 어마어마한 미친년이었지만 너도 그에 비견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미친놈인 거 같아.

   

   ‘만족하셨나요?’

   “허접기사. 네가 병신이 아니란 걸 알게 돼서 만족했어?”

   “예. 감사합니다. 아가씨.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칼을 보고 있자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결과만 따지고 보면 평생 내가 하는 말을 따르는 실력있는 기사가 생긴 건데 왜 이렇게 찝찝한 거지?

   

   하아. 나도 모르겠다.

   

   *

   

   그 날 내 충직한 기사가 되기로 맹세한 칼이지만 그렇다 해서 근신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칼은 원정을 떠나기 직전까지 감옥에 있어야 하는 상황.

   

   난 내 대련에 어울려 줄 다른 기사를 찾아야만 했다.

   

   결국 루엘의 시련은 혼자서 들어가야 하는 곳. 아무리 칼이 있다 한들 내가 준비를 게을리 하면 실패를 하게 될 터. 그러니 난 잠시라도 쉴 수 없었다.

   

   그래서 포셀에게 날 도와줄 사람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더니 포셀이 ‘그런 거라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답을 했다.

   

   기사단장이 직접 대련을 해주며 경험을 쌓아준다는 건 환영할만한 제안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난 그 제안이 껄끄럽게 느껴졌다.

   

   생각해 봐. 알른 가문의 기사인 칼이 왜 첫 날 나를 빡세게 굴렸을까. 당연히 자기도 그렇게 굴렀으니까 그런 거겠지.

   

   그렇다면 칼을 구르게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당연히 날 도와주겠다 외치는 이 기사단장님일게 분명했다.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스파르타 교육이 이어질 것이라 확신한 나는 포셀의 호의를 할 일도 많을 텐데 다른 사람을 붙여달라 말하며 사양했지만 포셀은 완고했다.

   

   ‘괜찮습니다! 아가씨를 위해서라면 이 한 몸! 얼마든지 갈아 넣을 수 있습니다!’

   

   딸바보라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베네딕이나 백작 영애라는 지위로 찍어 누를 수 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기사단장인 포셀은 내 의향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내 대련 상대라는 자리를 거머쥔 포셀은.

   

   “자 아가씨! 방금 방패로 막아선 후에 밀어내 빈틈을 만드는 거 무척 좋았습니다! 다시 한 번 해보죠!”

   

   정신이 나갈 것 같은 강행군을 만들어 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부하 1호는 허접 기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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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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