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1

   

    야음을 틈타 거리로 나온 서준은 조용히 주변을 살폈다.

   

    집에서 조금 멀어지자 은은한 붉은빛이 끈적하게 거리를 밝힌다. 홍루의 홍등이다. 

   

    건물 안에서, 골목 사이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여인의 교성과 추잡한 살소리. 창가에서 달을 올려다보는 싸구려 기생의 눈이 텅 비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잠시 기생을 바라보던 서준이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오래 걷지 않아 뒷골목 치고 꽤나 멋들어진 커다란 건물 하나가 보인다. 흑호문이다. 잠시 그 담벼락을 올려다보던 서준이 혀를 찼다.

   

    쓰레기도 치우고, 동생 병 고칠 약도 구하고, 겸사겸사 주머니도 채우고. 

   

    일타이피도 아니고 일타삼피면 한 번쯤 해볼 만한 일이다.

   

    “후우….”

   

    떨리는 손을 꾹 쥐었다 펴자 떨림이 멎었다. 마침 오늘은 달빛이 옅어 어두운 밤. 하늘마저 자신의 편이다.

   

    황룡도하를 펼쳐 훌쩍 담벼락 위에 올라선 서준이 주변을 살폈다.

   

    경계가 삼엄한 편은 아니다. 그러면 어디로 향해야 할까.

   

    유독 화려한 건물 하나를 발견한 서준의 눈이 빛났다.

   

    황룡이 노을을 건너듯 유려한 걸음이 펼쳐진다. 횃불을 든 사내들을 피해 건물의 벽에 바짝 붙은 서준이 주변을 살폈다.

   

    아주 모자란 놈들은 아닌 듯 몰래 들어갈 만한 곳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면으로.

   

    파팟-!

   

    날아간 지탄이 정문을 지키던 놈들의 미간에 꽂혔다. 놈들이 소리 없이 쓰러진다. 아직 들키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 문제.

   

    재빨리 문을 열고 들어선 서준의 시야에 기다란 복도가 보였다.

   

    “이 시간에 뭐…, 누구냐!”

   

    여기까진가. 은밀함을 포기한 서준이 검을 뽑아들었다.

   

    “네? 춘봉이 오빠요.”

   

    서억-, 사내의 목이 떨어짐과 동시에 발소리가 여럿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직 밤은 길다.

   

   

    *

   

   

    흑호문의 문주는 뒷골목에서 그야말로 제왕과도 같았다. 일류라는 경지는 그런 것이다. 고수라고 불리기 시작하는 출발선. 

   

    물론 까마득한 고수의 눈에는 턱도 없겠지만, 범인들이 보기에는 까마득한 고수와도 같은, 그런 묘한 위치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할 일 없는 고수가 이런 뒷골목 방구석에서 배나 긁고 있을 리는 없으니, 문주에게 뒷골목이란 곧 제 세상과도 같은 곳이었다.

   

    “아앙~ 가가. 응큼해요.”

    “어허, 이리 와 보래도.”

    “아잉. 그러지 말고 이거 한 번 잡숴보세요.”

    “흐흐, 나는 고기 말고 네년을 잡수시고 싶은데?”

    “꺄악!”

   

    우당탕-!

   

    양손에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시던 문주는 때아닌 소란에 눈가를 찌푸렸다.

   

    “이것들이 또 무슨 헛짓거리를 하고 있는 게야?”

    “가가, 그냥 두세요. 조금 소란스러운 것도 안줏거리로 나쁘지 않잖아요?”

    “그것도 그렇….”

   

    콰앙-!

   

    문이 거칠게 열리며 문도 하나가 뛰쳐들어왔다. 그 무례에 문주가 인상을 찌푸렸으나, 문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외쳤다.

   

    “무, 문주님…! 큰일 났습니다!”

    “큰일은 무슨 큰일. 무림맹주라도 쳐들어왔다더냐.”

   

    끌끌 웃어대는 문주에게 문도가 희게 질린 낯으로 소리쳤다. 

   

    “살귀입니다! 살귀가 쳐들…! 컥!”

   

    문도의 목에서 검이 비죽 솟았다. 

   

    “꺄아악…!”

   

    여인들이 놀라 소리치며 질질 기어 구석으로 몸을 숨긴다. 문주가 기가 차 헛웃음을 내뱉었다.

    

    “미친놈. 여기가 어디라고 혼자 쳐들어와?”

   

    문도의 시체가 쓰러지며 살귀의 모습이 드러났다. 전신에 피칠갑을 한 소년이다. 상처라고는 생채기 몇 개뿐. 나머지는 전부 타인의 피다.

   

    어리다 어리다 말은 들었는데 저런 꼬마였나? 문주가 혀를 찼다. 그런 그를 보며 서준이 고개를 기울였다.

   

    “아재요. 영약 좀 있나?”

    “영약? 있더라도 네놈에게 줄 게 있겠나?”

    “흐음.”

   

    살귀가 손을 내민다. 문주는 무시했다. 주의해야 할 건 기껏해야 비수 정도. 그 정도는 반응할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놈이 허공에 딱밤을 때렸을 때, 그 손가락 끝에 맺힌 기가 빛살처럼 날아오는 걸 눈치챘을 때, 기겁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절정!?”

   

    급하게 몸을 날렸지만 반응이 조금 늦었다. 왼쪽 팔이 꿰뚫려 축 늘어졌다.

   

    문주가 고통에 식은땀을 흘리며 살귀를 노려봤다.

   

    “절정의 고수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흑호문을 노린단 말이오!”

    “…….”

   

    살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가만히 노려보고 있을 뿐.

   

    문주는 곁눈질로 애병의 위치를 파악하고, 천천히 몸을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제아무리 절정경의 고수라 할지라도 나와 내 수하들을 전부 상대할 수는 없을 거요. 지금이라면 쫓지 않을…, 제길!”

   

    살귀의 손이 움직인다. 곧장 반응한 문주가 팔을 뻗어 여인의 멱살을 잡아 내던졌다.

   

    “꺄아아악…!”

   

    서준은 별다른 반응 없이 쏘려던 지탄을 마저 쏘았다.

   

    따악-!

   

    날아오던 여인이 지탄에 맞고 한 바퀴 회전해 고꾸라졌다. 쓰러진 여인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잔인한 놈! 아무 상관 없는 여인을 그리 쉽게 죽여!”

    

    죽이진 않았다. 기절했을 뿐. 심지어 자기가 던지지 않았는가?

   

    코웃음친 서준이 곧장 황룡도하를 펼치며 달려나갔다. 문주가 급히 화려한 박도를 손에 쥐고 휘둘렀다.

   

    촤하악-!

   

    탁한 푸른빛 궤적이 허공에 새겨진다. 서준의 눈이 빛났다. 저게 검기인가. 

   

    “이대로 당해주진 않는다!”

   

    문주가 땅을 박찼다. 향하는 곳은 서준의 뒤편, 문이 있는 곳.

   

    눈살을 찌푸린 서준이 지탄을 연달아 날렸다.

   

    티팅-!

   

    도를 휘둘러 튕겨낸 문주가 복도로 나왔다. 기다란 복도를 따라 시체들이 늘어져있다. 그 참혹한 광경에 문주가 이를 악물었다.

   

    ‘진정 살귀로다…!’

   

    서준이 연신 쏘아내는 지탄을 막아내며 수하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던 문주는 돌연 이상함을 느꼈다.

   

    왜 지탄만 날려대는 거지? 아무리 절정의 고수라도 자신이 수하들과 합세하면 골치가 아플 텐데?

   

    또한 지탄의 위력 역시 이상했다. 상위의 고수가 날리는 지탄은 막아내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 자신을 보라. 그리 어렵지 않게 막아내고 있지 않은가.

   

    ‘나를 가지고 놀아?’

   

    분노를 삼키고 급히 달려오는 수하들과 합세한 문주가 사납게 이를 드러냈다.

   

    “자, 이제 어쩔 거냐!”

   

    삼류에서 이류쯤 되는 수하들이 십여 명. 그리고 일류인 자신까지. 결코 쉽게 당해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애매하네.”

   

    서준은 그들을 보며 손 위로 기를 굴렸다. 문주가 자신을 절정이라 착각하는 이유는 별거 아니었다. 기를 이렇게 쉽게 내쏠 수 있는 놈들 경지가 대충 절정쯤 되니까.

   

    아니지? 그런 경지를 절정이라 한다면 나도 곧 절정이 아닐까?

   

    찰박-

   

    흙바닥에 피로 된 발자국을 새긴 서준이 검을 치켜세웠다.

   

    조급함이 가라앉고 흥분이 빈자리를 채운다. 무림에 떨어진 이후 줄곧 이랬다. 싸움이 즐겁다.

   

    이 기氣라는 것의 끝을 보고 싶다. 단지 즐거우니까.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 참을 수가 없다.

   

    “후우….”

   

    숨을 내쉬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손이 자연스레 검을 틀어잡는다. 

   

    “안 되지.”

   

    이곳에 온 것은 싸움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춘봉이를 살리기 위함이다. 되새긴 것만으로 기분이 축 가라앉았다.

   

    타닥-

   

    일 년간 익혀온 황룡도하가 자연스럽게 펼쳐지고, 용이 허공을 가르듯 쏘아진 신형이 흑도 놈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부웅-!

   

    병장기들이 달려든다. 서준의 눈에 희미한 광망이 어렸다. 보이는 빈틈으로 몸을 욱여넣으며 검을 넓게 휘둘렀다.

   

    촤악-

   

    피가 흩날린다. 익숙한 삼재검법이 숨 쉬듯 펼쳐지며 피를 탐한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는 아직 황운신검보다 삼재검법이 편했다. 

   

    “노옴!”

   

    분노한 문주가 달려든다. 그의 도에 어린 희미한 빛이 서준을 쫓는다. 

   

    서준은 그를 피해 수하들만을 노렸다. 술래잡기라도 하듯 어지럽게 날뛰는 발걸음이 멈춰 섰을 때, 문주도 비로소 깨달았다.

   

    “네놈…! 절정경이 아니구나!”

   

    절정경이 아닐까? 서준은 의문을 품은 채 검을 앞으로 겨눴다.

   

    검기는 충분히 봤다. 문주의 내공이 검까지 이어져 흘러나오는 형태다.

   

    문득 의아함을 느낀 서준이 검이 아닌 제 손에 내공을 집중했다. 탄지공의 감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쏘아내지 않고 내공을 손에 머무르게끔 했다.

   

    “아….”

   

    희미한 금빛 아지랑이가 손에 맺혔다. 서준은 스스로의 아둔함에 한탄했다.

   

    ‘검기를 못 쓴 건 검에 대한 깨달음이 부족해서였구나.’

   

    병장기는 자신의 몸이 아니다. 그렇기에 병장기에 내공을 담으려면 그것을 자신의 몸처럼 여길 수 있을 정도의 깨달음이 필요하다.

   

    신검합일身劍合一이니 뭐니 하는 것이 그런 종류의 깨달음이다. 

   

    하지만 손은 다르다. 손은 당연히 제 몸이다. 하고자 하는 생각만으로 자연스레 손에 수기手氣가 일렁였다.

   

    원래대로라면 수기는 검기보다 난이도가 높다. 기가 외부로 표출될 정도로 밀도가 높아지면 손이 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준의 기에 대한 재능이 그를 무시했다. 잠시 수기를 다룬 것만으로 본질을 깨달은 서준이 헛웃음을 흘렸다.

   

    “별거 아니었네.”

   

    깨달음이 고스란히 이어져 검에 담긴다. 검에 대한 깨달음? 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대체했다.

   

    되새겼다. 나의 재능은 기. 그것만으로 하지 못할 것이 없다.

   

    찬란한 금빛으로 빛나는 검신에 서준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닿았다. 일류.”

    

    무공 뭐, 별거 아니네. 

   

    

   

    

    

   

   

   

   

   

   

   

   

   

   

   

   

   

   

   

   

   

   

   

   

   

다음화 보기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