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1

사건은 그렇게 기사단장 이즈리의 등장으로 일단락되었다.

우두머리는 물론이고, 그 외 잔당들까지 완전 소탕. 알렉산더와 레이헴도 구출됐다고 한다.

‘대장 놈이 다른 거 제쳐두고 우리부터 쫓느라 겨우 목숨은 부지했다던가···정말로 다행이야.’

귀빈용 침대에 몸을 뉘며, 기쁜 마음으로 황제와의 알현일을 기다릴 수 있었다.

그들을 희생하고 우리만 공로자로서 대접받았더라면 영 뒤숭숭했으리라.

희생자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그런 것 하나하나를 다 신경 써야 할 만큼 이 세상은 상냥하지 않았다.

‘···일단 상황을 정리해 볼까.’

이번 황녀 일탈 사건으로 인해 많은 변화가 생겼다.

먼저, 이것.

[자신의 스킬에 데미지를 받았습니다.]

[패시브 스킬:‘아군 보정’을 습득하였습니다.]

[아군 보정:자신 및 아군으로부터 받는 데미지가 30% 감소한다.]

밸류 익스플로전에 휩쓸린 영향으로 새 패시브가 생겼다.

게임에서는 이 패시브가 아무도 모르게 100%로 켜져 있었다고 보면 되는 걸까.

‘이걸로 아군과의 자폭 연계도 고려해 볼 만하겠어.’

다음으로 황실에 내 정체가 드러났다. 기사단장이 목격했으니, 황제와 측근들에게는 당연히 보고가 들어갔을 터.

하지만 은혜를 입혔기도 하고, 토벌당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필리아 제국의 로브] (장착 가능 레벨:1)

[HP:+255]

[MP:+255]

[STR:+255]

[INT:+255](!)

[VIT:+255]

새 로브를 선물로 받았다.

발가벗겨져 있는 게 안쓰러웠던 건지, 마리아가 부탁한 건지. 기사단장이 손수 담요 덮듯 걸쳐주더라.

그냥 선의로 준 물건 수준 좀 보게. 누가 보면 황제 이미 만난 줄 알겠다.

“오빠도 과자 먹어. 아아.”

“사양할게. 보다시피 입이 없어서.”

마리아에게도 황제의 보상과는 별개로 황실 장인이 특제 인형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의뢰 도중 망가진 특수 개체 또한 고쳐준다고. 기회다 싶어서 은근슬쩍 다섯 개 다 맡겼다.

내가 부순 것도 엄연히 참새 토벌 ‘의뢰’ 중에 그런 거잖아? 협상 스킬을 배운 마리아가 눈을 반짝이더랬다.

“지푸라기에 넣으면 맛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마리아야. 맛을 느끼려면 미각 세포라는 게 필요하단다.”

평소 머리에 낫이랑 망치 꽂고 다녔는데. 나를 무슨 칼 핥으면서 낄낄대는 미치광이로 봤던 거니?

고환에 미각 수용체가 존재한다는 말은 들어봤지만서도. 어린이의 상상력은 과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오빠 몸 나무인데 아파하잖아.”

‘···그렇네?’

게임판타지 세계에서 내가 너무 과학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했다. 여기 성녀는 탈모도 고친다는데.

말이 없어진 걸 설득됐다고 판단했는지, 마리아는 진짜로 머리에다가 과자를 밀어 넣으려 들었다.

맛난 거 나누고픈 고운 마음씨는 십분 이해한다만 그건 참아다오.

“그래도 이제 나무는 아니거든?”

“맞아. 마리아 깜빡했어.”

그렇다. 나는 전투형 허수아비로 승급하면서 스탯이 오른 것에 더해, 손이 생겼고 몸도 철 재질로 변하였다.

이로써 나 홀로 허수아비, 사자(지푸라기가 갈기를 닮았다), 양철 나무꾼(밀이나 나무나 식물인 건 마찬가지다)의 역할을 모두 수행하게 됐으니. 마리아한테 마법 구두만 신기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는 무슨.’

헛웃음을 자아내며, 굴러다니던 아무 베개를 집어 마리아의 얼굴 위에 얹었다. 머리가 쬐만해서 뒤통수만 빼고 다 덮어진다.

“우웁. 모해애.”

결박을 풀어주자 어김없이 콩콩콩콩- HP가 1도 안 깎이는 소심한 복수가 이어졌다.

깡깡깡깡-

아니, 이제 쇠라서 소리가 달라지긴 했다.

“마리아. 우리 베개 싸움할까?”

“베개 싸움?”

“서로 베개 들고 투닥거리면서 노는 거야.”

“응. 마리아 할래.”

마리아가 살포시 베개 하나를 집어 들었다.

“자, 그럼 시···”

그리고 소파에 벽장까지 뒤져 찾아낸 11개의 베개를 마나 실로 띄워 올렸다.

“작···?”

퍽- 퍼벅-

퍼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벅-

열두 방향에서 동시에 베개가 날아들었다. 양손으로 하나씩 들어 막아봐도 열 곳이 뻥 뚫린 상황.

나는 물론이거니와 주변으로 지푸라기가 흩날려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다.

“마, 마리아. 이건 반칙이지! 정정당당하게 1대1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마리아는 분명 혼자야. 반칙 안 했어.”

“안녕! 다들 잘 있었어? 나 놀러 왔어!”

“료나. 노크도 없이 들어가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이게 무슨 일이죠···?”

반려 허수아비 폭행 현장은 황녀들의 행차로 다행히 무마되었다.

근처를 지나가던 메이드는 난데없이 바닥에 떨어진 지푸라기를 치워야만 했다.

* * *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필리아 제국의 1황녀, 릴리시스 페 도로리콘이라고 해요. 저희 동생을 지켜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려요.”

“황녀 전하를 뵙습니다.”

“뵙습니다.”

산만하기 그지없던 광경을 보고도. 릴리시스 황녀는 불편한 기색 없이 고고하게 인사를 건네 왔다.

금발에 금안. 생긴 건 딱 료나 황녀가 자란 모습이지만. 역시 황실의 교육과정과 온갖 인간군상을 지난 몸.

동생과는 달리 얌전하고 기품이 넘쳐흘렀다. 마리아도 저런 어른으로 성장했으면 싶다.

“하아···아카데미에서 우리 사랑스러운 료나가 가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얼마나 가슴이 철렁하던지···. 며칠이나 밥도 안 넘어가고 잠도 못 들었었죠···.”

“으윽. 언니, 떨어져어···나 숨 막혀!!”

“어쩜 이리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지···. 료나, 여기서 그만 자라면 안 되나요? 영원히 저만의 작은 료나로 남아주세요···!!”

“어딜 만지는 거야 언니?!! 다들 보고 있는데!!!”

“어머. 그 말은 아무도 안 보는 데서는 마음대로 만져도 된다는 뜻일까요? 이 언니는 기뻐요♥︎”

방금 한 말 취소. 순간 얘네가 누구 후손인지를 깜빡하고 있었네.

자고로 예의와 권력을 지닌 변태가 제일로 위험한 법이었다.

“아! 제 정신 좀 봐. 귀빈분들을 세워두고 제가 실례를 범했네요. 일단 앉도록 할까요?”

범한 건 실례가 아니라 댁 여동생 같은데. 이 말을 간신히 참아내고 테이블에 앉았다.

다과와 홍차를 세팅하는 메이드들 표정이 한 점 물결 없이 평온한 걸 봤을 때, 평소에도 저러는 모양.

명불허전 그 자체인 페 도로리콘 일가를 보자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다 놓였다. 권력투쟁 한다고 가족끼리 죽고 죽이는 것보다야 낫긴 하지.

“료나. 어른들끼리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런데, 잠시만 밖에서 친구랑 놀다 올래요?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알겠어 언니. 가자 마리아.”

“넹.”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마리아 너, 나한테 9살이라고 한 거 거짓말이더라??”

“헉.”

방을 나서는 소녀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뒤이어 메이드들까지 전부 밖으로 물러나고, 방에는 1황녀와 나 둘만이 남았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러는 거지?’

릴리시스 황녀의 분위기를 살피며 의중을 추측해 봤다. 유력 후보라면 허수아비, 엄연히 마수로 분류되는 나의 정체에 관한 것.

료나는 관련 문제를 신경도 안 쓰는 듯 보였지만. 동생을 끔찍이도 아끼는 그녀라면 얘기가 다르다.

심어진 가치관과 경험이라는 게 있는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겠지. 설령 은인이라 할지라도.

“아이 님.”

“네, 전하.”

“우리 료나가 이번 사건을 겪은 이후부터 인형으로 고문 놀이를 하던데, 혹시 왜 그러는지 짚이는 바가 있으실까요···?”

“···ㄴ, 네??”

순간 너무 당황해서 예의 불문하고 질문으로 답해버렸다.

이에 마음을 추스르고 입을 열려던 걸. 머리나 사지가 하나둘씩 뜯긴 인형을 보여줘서 재차 말문이 막혔다.

“다른 모험가님이나 레이헴한테 물어봐도 짐작 가는 바가 없다고들 하고···혹여 아픈 기억을 건드리는 건 아닐까, 본인한테도 직접 묻지 못했거든요···.”

“그렇···군요.”

나한테 물어보면야, 짐작 가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죽어라, 죽어!! 레이헴의 원수! 좀 더 고통에 울부짖으란 말야!!”

“···.”

-“아아···복수란 건, 남을 괴롭히는 건 이렇게나 즐거운 거구나···. 나를 지켜봐 줘 레이헴···!”

“······.”

짐작이라고 해야 할지. 애초에 이거밖에 원인이 없다.

여기서 내가 릴리시스 황녀에게 해야 할 말이라곤 하나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전혀 모르겠군요···.”

“그런가요···.”

어쩌긴 뭘 어째. 모른다고 잡아떼야지.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페 도로리콘 일가의 핏줄에 흐르는 건 본인만의 확고한 성향을 띠게 되는 고질적인 유전자. 내가 안 그랬어도 언젠가는 발현했을 본성이다.

애초에 지도 동생한테 자매애 이상의 감정을 품었으면서 누굴 걱정해.

‘···들킬 걱정은 안 해도 괜찮겠지. 보니까 당사자한테 물어볼 일은 없을 거 같고.’

“잘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저희 동생을 구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무덤까지 끌고 갈 비밀 하나와 함께 짧은 다과회는 막을 내렸다.

료나와 껴안은 마리아를 보고 릴리시스가 견제하는 작은 해프닝을 빼면, 그날 하루는 제법 조용히 지나갔다.

* * *

“마리아. 황녀님한테 잘 물어봤어?”

“응. 물어봤어.”

황제와의 알현을 앞둔 밤. 우리는 이불로 비밀기지를 만들어 은밀히 접선했다.

일찍이 마리아에게 부탁해 두었다. 료나와 만나면 황제는 어떤 인물인지를 물어봐달라고.

딸을 이용해 친아버지를 캐내는 격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어디 보통 친구 아빠를 만나러 가나. 이 정도 대비는 필수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신사적인 사람이랬어. 보육원이나 어린이 병원에 후원도 자주 하고.”

“그렇단 말이지···.”

100년 전 황제와 놀랍도록 일치하는 평가. 이에 확신했고, 결심했다.

“마리아. 황궁에 있는 동안, 오빠 곁에 잘 붙어있어야 돼?”

“응. 오빠 옆은 마리아 지정석.”

가급적 황제와 마리아를 떨어뜨려 놓기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글자 수가 딱 3,400자라 뭔가 약해 보였습니다만. 이거 고치자고 억지로 단어를 넣거나 빼는 건 짜쳐서 그대로 뒀습니다. 저 잘했죠?
다음화 보기


           


Became a Tutorial Scarecrow

Became a Tutorial Scarecrow

튜토리얼 허수아비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Due to lack of content, I died to a tutorial scarecrow. [Your character has died.] [Hidden Achievement Unlocked! ‘Lost to the Weakest Monster~♡︎’] And then, I possessed that thing...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