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1

       

       “분명 여기 어디 쯤일텐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커다란 나무들에 가려진 하늘은, 어느새 조금씩 주홍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옅게 일렁이는 노을 아래에서 길을 배회하고 있었다.

       

       

       깊은 시간의 숲에 들어온지도 벌써 3시간이 지났다.

       

       처음에는 지도가 알려주는 방향으로만 걸으면 금방 도착할줄 알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우거진 수풀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안개가 숲 전체를 뒤덮고 있는 탓에, 넓은 시야 확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거기에 더해, 성역이 뿜어내는 자체적인 힘이 마나 자체에 대한 사용을 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도구나 스크롤의 힘을 빌릴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아직 유적의 입구를 찾기 위해 쌩 노가다를 뛰는 중이었다.

       

       

       ‘분명 어떤 나무 아래에 통로가 있었다고 했는데…’

       

       

       문제는 그 어떤 나무가 대체 무슨 나무인지를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여기도 나무, 저기도 나무인데 그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시스템이 보여주는 지도는 큼지막한 지형들 외에는 다른 것들이 표기되어 있지 않아서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저 애매하게 그 부근으로 가라고 표시만 되어있을 뿐이었다.

       

       덕분에 나는 한참 동안이나 주변의 나무들을 전부 확인해야만 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하늘이 어둑어둑해진 후에서야, 나는 뿌리 부근에 작은 문양이 존재하는 나무를 찾을 수 있었다.

       

       

       “……드디어 찾았다.”

       

       

       복잡한 마음들이 담긴 한숨이 길게 흘러나왔다.

       

       힘들다. 침대에 눕고 싶다……

       

       

       ‘분명, 소설 속에서는 앨런이 나뭇가지 하나를 비틀자, 나무 아래에 구멍이 생기면서 통로가 드러났지.’

       

       

       나도 똑같이 하면 되겠지?

       

       나는 나무 주위를 한 바퀴 빙돌며 가지란 가지는 죄다 돌려봤다.

       

       그렇게 스물 일곱 번째 가지를 돌리고 있던 때.

       

       

       -쿠궁…

       

       얕은 울림과 함께 손끝으로 묘한 진동이 전해져왔다.

       

       오케이. 찾았다.

       

       고개를 돌려 반대쪽 바닥을 바라보니, 사람 한 명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뚫려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발을 내딛어 그 안으로 들어갔다.

       

       

       -터벅……

       

       흙냄새가 물씬 풍겨오는 구멍 안.

       

       나는 미리 준비해뒀던 성냥을 켜, 동굴 안을 밝혔다.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한 번도 사람의 발길이 닿은 적 없는 것인지.

       

       유적으로 향하는 통로는 나무 뿌리와 작은 동식물들로 가득했다.

       

       

       “후… 그럼, 가볼까?”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됐기에 빠르게 움직여야만 했다.

       

       10시 이후로는 기숙사 출입이 제한되니까.

       

       늦으면 곤란하다.

       

       

       나는 가벼운 뜀박질을 밟으며 어두운 지하 속을 내달렸다.

       

       함정이나 기믹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알기에 굳이 주변을 경계할 필요도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였던 길이 세갈래로 나뉘는 구간에 도착했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며 그 갈림길들 앞에 섰다.

       

       동시에 귓가에 익숙한 기계음이 울렸다.

       

       

       -띠링!

       

       [서브 퀘스트]

       

       제목:당신의 선택

       

       내용:원하는 길을 선택하십시오.

       

       당신의 앞에 있는 세 가지 갈림길은 각각 기쁨의 여신, 슬픔의 여신, 분노의 여신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는 방을 향해 이어집니다.

       

       세 가지 중 하나를 택해, 관련된 신의 유물을 얻으십시오.

       

       [※주의※]

       

       한 번 길을 택하고 나면, 다른 두 길에는 출입할 수 없습니다.

       

       유물의 획득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밖으로 향하는 텔레포트가 작동합니다.

       

       

       “음……”

       

       

       역시 유물 관련 퀘스트였구나.

       

       나는 턱을 쓸며 갈림길들을 차례대로 바라봤다.

       

       원작에서 앨런은 오른쪽 길, 그러니까 세 번째에 해당하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쁨의 신의 유물, 성검 ‘여명’을 얻었다.

       

       

       ‘일단 오른쪽 길은 제외.’

       

       

       앨런의 많은 기연들 중에서 다른 건 다 뺏어도 성검만큼은 뺏으면 안된다.

       

       나중에 앨런이 저 검의 힘으로 마왕을 부활시키려는 마족의 최종보스를 죽이니까.

       

       저 검을 빼돌리면 몇 년 뒤에 몰아치는 마족들을 막을 수가 없다.

       

       이번 생의 내 미래를 위해서라도, 저건 거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나머지 두 길을 바라봤다.

       

       원작에서는 앨런이 유물을 얻은 이후로 다시 방문한 적이 없었기에.

       

       이 나머지 두 길에는 어떤 유물이 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슬픔의 신과 분노의 신.

       

       

       “……”

       

       

       난 개인적으로 분노의 신이 더 나을 것 같다.

       

       슬픔의 신의 유물이라니, 뭔가 들고 있으면 피폐해질 것 같잖아.

       

       뭔가 좋은 게 나올 것 같지도 않고.

       

       

       “역시 분노의 신이 좋겠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분노의 신이 좋다고 해서 찾아갈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분노의 신이 왼쪽에 있는지 가운데에 있는지 어떻게 알아.

       

       원작의 앨런마저도 몰랐을텐데.

       

       

       “흐음……”

       

       

       나는 눈을 굴리며, 갈림길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무언가 단서가 될 만한게 없을까 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기를 또 몇 분.

       

       

       “음…?”

       

       

       나는 갈림길들의 바닥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문양…?”

       

       

       바닥에 수북히 쌓인 먼지 아래로, 희미하게 보이는 문양들이 있었다.

       

       왼쪽 길에는 붉은색 검으로 된 문양이.

       

       중앙 쪽 길에는 파란 물방울로 된 문양이.

       

       오른쪽 길에는 노란 태양으로 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세 여신을 나타내는 문양일까…?’

       

       

       오른쪽의 노란 태양은 당연히 기쁨의 여신을 의미하는 문양일테고.

       

       그렇다면 정황상 왼쪽의 붉은색 검이 분노의 신.

       

       중앙 쪽의 파란 물방울이 슬픔의 신을 의미하는 것이겠지.

       

       나는 간단한 추론과 함께 상태창을 불렀다.

       

       

       “상태창, 메인 퀘스트 선택. 왼쪽 길로 갈게.”

       

       

       -띠링!

       

       [첫 번째 길 선택.]

       

       [확인 완료!]

       

       [5초 후에, 당신이 선택한 곳으로 텔레포트합니다]

       

       

       “후우… 된건가?”

       

       

       그럼, 이제 분노의 신 유물이나 구경하러 가볼…

       

       

       -띠링!

       

       [첫 번째 길은 선택이 불가능합니다.]

       

       [이미 사용자가 존재하는 유물에는 개입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뭐…?”

       

       

       선택이 불가능하다고?

       

       아니, 거기다가 이미 사용자가 존재하는 유물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띠링!

       

       [자동으로 다음 순서의 길이 선택됩니다.]

       

       [두 번째 길. 슬픔의 여신, 로티아의 유물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텔레포트 됩니다.]

       

       

       “뭐?! 야 잠깐…!”

       

       

       -파삭

       

       당황에 젖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작은 소리가 울리며 시야가 점멸했다.

       

       

       .

        .

        .

       

       

       -철푸덕!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몸이 바닥에 쳐박혔다.

       

       동시에 점멸했던 시야가 돌아오며 깜깜했던 눈앞이 밝아졌다.

       

       나는 배가 쓸리는 통증에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텔레포트 하기 전에는 똑바로 서있는 상태였는데, 왜 자빠져있는 거지…?

       

       

       나는 옷을 툭툭 털어내며 일어섰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음산한 분위기가 흐르는 공간이었다.

       

       여름이라는 날씨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싸늘한 공기.

       

       거대한 동굴 형태의 내부로는 새하얀 서리들이 곳곳에 끼어있었다.

       

       정중앙에는 계단 형태로 이루어진 재단이 존재했고.

       

       재단 가장 위쪽에는 검푸른색의 검 한 자루가 돌에 박혀있었다.

       

       

       ‘소설에서 나왔던 묘사랑 얼추 비슷하네.’

       

       

       앨런이 봤던 재단은 서리나 고드름이 아닌 찬란한 빛으로 가득 차있기는 했지만.

       

       그런 부분만 제외한다면 거의 동일한 듯 보였다.

       

       나는 계단 형태의 길을 오르며 재단을 향해 나아갔다.

       

       

       

       “저 검이 슬픔의 여신의 유물이라는 거겠지…”

       

       

       ……근데 이거 아무리 생각해봐도 억까잖아.

       

       이미 분노의 신 유물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고?

       

       원작에서도 언급이 없던 내용인데?

       

       거기다가 마음대로 두 번째 길로 보내버리는게 어딨냐고.

       

       이러면 선택지는 대체 왜 준거야.

       

       

       나는 속에서 피어르오르는 의미없는 짜증들을 내리눌렀다.

       

       그래, 이미 일어난 일인데.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받아들여야겠지.

       

       

       “……”

       

       

       자살 마렵네.

       

       어느새 재단 꼭대기에 도달한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래. 아직 유물의 성능은 확인해보지 않았으니까.

       

       기분은 잡쳤지만, 아직 실망하기엔 이르지.

       

       

       “자 그럼, 어디 한 번 확인을……”

       

       

       -키이이이익!!!

       

       나의 손끝이 검자루 부분에 닿는 순간, 검푸른 빛의 도신이 기이한 비명을 내질렀다.

       

       고막을 찢는 듯한 굉음에 절로 미간이 굽혀졌다.

       

       

       “……깜짝이야.”

       

       

       되게 사납네.

       

       손 한 번 닿았다고 이 지랄이라니.

       

       유물들이 주인을 가린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렇게도 내가 마음에 안들었나.

       

       

       “……그래도 별 수 있겠냐. 조금만 참아라, 3년 정도만 사용하고 풀어줄테니까.”

       

       

       나는 다시금 손을 뻗어, 이번에는 검자루를 완전히 움켜쥐었다.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발악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상 외로 유물은 순순히 자리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몸을 나에게 맡겼다.

       

       

       -띠링!

       

       [슬픔의 여신의 유물, ‘비탄’을 획득했습니다.]

       

       

       비탄이라.

       

       뭔가 이름부터 상당히 불길한 검이었다.

       

       나는 검을 쥔 상태로 자세를 잡으며, 가볍게 허공을 갈라보았다.

       

       중세 배경에 맞는 양날검 형태의 검.

       

       검도에 익숙한 나로서는 그립감이나 리치 같은 것들이 조금씩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런 내 생각을 읽은 것인지, 다시 한번 상태창에서 알람이 울렸다.

       

       

       -띠링!

       

       [비탄이 사용자에게 익숙한 형태로 변형됩니다.]

       

       

       그 문구가 떠오름과 동시에, 비탄의 검이 꿈틀거리며 제 몸을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양방향으로 서있던 날은 한 쪽으로 기울어졌고.

       

       길었던 크로스 가드는 적당한 길이로 변해갔다.

       

       폼멜과 자루, 마지막으로 검집까지 형태에 맞게 변화되고 나서야 꿈틀거림은 멈추었다.

       

       양날검의 형태를 띄고 있던 비탄의 검은, 어느새 일날검으로 변해있었다.

       

       

       “오……”

       

       

       나는 신기한 마음에 그것을 이리저리 훑어봤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차가운 한기와 손에 딱 알맞게 잡히는 그립감.

       

       적당한 형태의 크로스 가드와 폼멜.

       

       날카롭게 광채를 뿜어내고 있는 칼날까지.

       

       

       빙의 이후로는 처음 잡아보는 검이라서 그런가?

       

       뭔가 고향에 돌아온 듯한 느낌이었다.

       

       절대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고향으로.

       

       ……어쩔 수 없지.

       

        싫어도 할 건 해야 되니까.

       

       

       “그건 그렇고.”

       

       

       이거 도신에서 빛이 나는 효과는 못끄는 건가?

       

       너무 밝아서 눈 아픈데.

       

       나는 눈쌀을 찌푸리며 검집에 검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내 주위로 몰아치던 푸른빛의 오로라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았다.

       

       뿐만 아니라 검이 내뿜던 위압감 또한 일말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로 지워졌다.

       

       

       “검집에 넣어놓으면 조용해지는구나.”

       

       

       이건 꽤 좋은 기능인 것 같다.

       

       감정의 세 여신들이 남긴 무구는 최상위 등급의 유물로서 취급받으니까.

       

       내가 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숨기는 편이 나을거다.

       

       그래야 유물 사냥꾼들이나 마족들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테니.

       

       

       “상태창.”

       

       

       그럼 그 문제는 됐고.

       

       이번엔 실제 능력치를 확인해봐야겠지.

       

       

       “비탄에 대한 정보 띄워줘.”

       

       

       일단 육안으로 보기에는 앨런의 ‘여명’에 준할만큼 좋은 무구 같아보였다.

       

       원작에서도 이렇게 화려한 이펙트를 뿜어내는 무기는 많이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실제 능력치는 어떨까?

       

       

       -띠링!

       

       [비탄]

       

       분류:도검

        등급:모순

        특이 사항:로티아의 축복

       

       특수 스킬 : -자세히 보기-

       

       

       “역시 모순 등급이구나.”

       

       

       모순.

       

       말 그대로 패러독스를 의미한다.

       

       본래의 무구 등급은 일반, 희귀, 영웅, 설화, 전설, 신화로 이루어진 6등급제이다.

       

       허나, 이러한 등급의 틀을 깨고 나오는 무기들이 가끔씩 발생하는데.

       

       그것에 이름을 붙여 ‘존재할 수 없는 등급, 모순’이라는 등급명이 붙게 된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감정의 세 여신들이 내린 검들.

       

       그리고 1000년 전 태초의 용사 애쉬 레이놀즈와 함께 사라져버린 신검, ‘개화’가 존재한다.

       

       

       “뭐… 규격외의 무구인만큼 사용 조건도 까다롭지만 말이야.”

       

       

       아마 지금의 나로서는 비탄이 가진 힘의 3% 정도 밖에 사용을 못하지 않을까.

       

       그래도 괜찮다.

       

       모순 등급의 진가는 고성능의 특수 스킬에 있으니까.

       

       

       “제발… 도움되는 스킬이어라…”

       

       

       특수 스킬.

       

       신화 등급 이상의 무기에는 ‘특수 스킬’이라는 무기 고유의 기술이 생긴다.

       

       앨런의 ‘여명’ 같은 경우에는 ‘새벽’이라는 기술이 있었다.

       

       하늘에서 거대한 빛의 기둥들을 소환해내는 스킬이었는데.

       

       아무런 제한 없이 빛에 닿은 모든 마족들을 소멸시켜버리고는 했다.

       

       물론 능력이 사기인만큼 쿨타임이 1년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아무튼 요점은 특수 스킬은 항상 사기적인 성능을 자랑한다는 것이다.

       

       나는 기대 반, 걱정 반인 마음으로 특수스킬 옆에 떠있는 ‘자세히 보기’ 버튼을 클릭했다.

       

       

       -띠링!

       

       그러자 떠오르는 상태창.

       

       그리고……

       

       

       “……”

       

       

       특수 스킬을 확인한 나는, 잠시 굳어질 수 밖에 없었다.

       

       

       .

        .

        .

       

       

       “도련님! 일어나세요! 수업 가셔야죠!”

       

       “레이첼… 5분만…”

       

       “안돼요! 지금 안 일어나시면 지각이에요!”

       

       

       레이첼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깨어난 아침.

       

       식탁에 놓여진 아침 식사를 대충 우물거리고는 교복을 차려입기 시작했다.

       

       와이셔츠와 조끼, 자켓을 차례대로 입고.

       

       이제 넥타이를 매려는데……

       

       

       “음.”

       

       

       이게 참 쉽지가 않았다.

       

       전생에 넥타이를 매본 적이 있어야지.

       

       맨날 훈련만 하느라 정장 같은 건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단 말이야.

       

       내가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넥타이와 씨름을 하고 있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레이첼이 킥킥 웃으며 다가왔다.

       

       

       “그거 그렇게 묶는 거 아니에요. 이리 주세요. 제가 해드릴게요.”

       

       

       그녀는 나의 손에서 넥타이를 받아가더니, 이내 능숙한 손길로 넥타이를 매어주기 시작했다.

       

       

       “되게 잘한다?”

       

       “후후, 도련님의 전속 하녀인데. 이 정도는 기본이죠.”

       

       

       그녀가 입가를 가리고 웃을 때마다 단정하게 묶은 양갈래 머리가 찰랑거렸다.

       

       그녀는 넥타이의 매듭을 마무리 짓고는 내 어께를 탁탁쳤다

       

       

       “자, 끝이에요!”

       

       “오오…”

       

       

       깔끔하게 매어진 넥타이.

       

       내가 매었던 엉성한 매듭과는 차원이 달랐다.

       

       감탄이 담겨있는 나의 반응에, 레이첼은 어깨를 으쓱이며 뿌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제가 좀 능력이 좋아요.”

       

       “그런 것 같네.”

       

       “알려드릴까요? 넥타이 제대로 매는 법.”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됐어.”

       

       “에? 왜요?”

       

       “그냥, 너가 매일 해줘.”

       

       

       이거 매는 거 귀찮단 말이야.

       

       그냥 남이 해주는게 편해.

       

       레이첼은 나의 말에 순간 몸을 흠칫 떨더니.

       

       

       “제, 제가 매달라고요…?”

       

       “응.”

       

       “매, 매일이요…?”

       

       “응, 매일.”

       

       “으읏……”

       

       

       이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수그렸다.

       

       우와 토마토다. 토마토.

       

       그녀는 어딘가 불편한 것인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중얼거렸다.

       

       

       “도, 도련님만 괜찮으시다면……”

       

       “나야 완전 좋지.”

       

       

       이 망할 넥타이를 내가 직접 안 매도 되는 거잖아.

       

       레이첼은 두 손으로 빨개진 얼굴을 가리며 웅얼거렸다.

       

       

       “열심히 할게요… 넥타이 매기.”

       

       “그래, 기대할게.”

       

       

       나는 짧은 대답과 함께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내가 현관 앞에 서며 크로스 백을 고쳐매자, 레이첼도 내 뒤를 따라 쪼르르 달려왔다.

       

       그녀는 내가 가방을 매고 있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 부담스러운 시선에,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그래?”

       

       “그냥요~ 도련님이 너무 좋아서요~”

       

       “뭐야 그게.”

       

       

       나와 그녀는 작은 웃음과 함께 서로를 바라봤다.

       

       

       “그럼, 다녀올게.”

       

       “네! 오늘 하루도 힘내세요 도련님!!”

       

       

       레이첼의 응원을 받으며 나선 기숙사.

       

       파란 하늘에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게, 날씨 한 번 거하게 좋았다.

       

       나는 그 아래를 걸으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들을 강의가 ‘전투의 실전’이었나?

       

       대련장에서 하는 강의였던 것 같은데.

       

       나는 챙겨온 교재들을 다시 확인해보고는 걸음을 옮겼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024.2.16
    리메이크 완료
    다음화 보기


           


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s a Bastard Aristocrat

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s a Bastard Aristocrat

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d by a Bastard Aristocrat DKPBA 망나니 귀족에 빙의한 우울증 검도 선수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Mom.

This time I will be truly happy.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