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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

    <11 – 합격의 비밀>

     

    다음날.

    평소와 마찬가지로 메뉴판을 펼쳤던 미하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여관 안을 슥 훑는 시선.

     

    나야, 나!

    그거 내가 썼음!!

     

    두 눈으로 열심히 신호를 보내고 있으니, 마침내 미하엘과 처음으로 시선이 마주쳤다.

    알았지?

    나 말고 다른 녀석이 쓴 메뉴라고 착각하고 엉뚱한 녀석한테 가면 안 된다?

    눈에 힘을 주어 단단히 의사표명을 했다.

    뜻이 전해지기는 한 건지.

    미하엘의 입꼬리가 자그맣게 올라갔다.

     

    이놈 봐라?

     

    그런 감정이 실린 반응.

    원숭이수인이 그랬던 것처럼 미하엘의 흥미를 이끌어내는 데에 성공했음을 나타내는 증거였다.

     

     

    * *

     

     

    “식사권으로 받은 레어요리는 이게 마지막입니다.”

    “고마워요, 지젤 아저씨.”

    “메뉴판에 손을 대고 5일동안 수련이랑 레어요리밖에 하지 않았네만. 정말 이래도 괜찮은 겁니까?”

    “당연히 괜찮죠! 오늘 결판이 날 거에요.”

     

    레어요리도 다 먹었으니까.

    해가 저무는 느지막한 시간.

    주홍빛으로 물든 뒷마당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고 있자니, 상급시험관 미하엘이 마당 입구에 귀한 얼굴을 비쳤다.

    귀공자 미하엘이라는 게임 내 이명처럼 주홍색으로 물든 머리카락도 퍽 아름답게 비췄다.

    남자만 아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유감이다.

     

    “야간특선메뉴, 오크노디와의 검술대결. 잘도 이런 발칙한 메뉴를 올려두었군.”

     

    낮에는 다른 숙박객들의 눈에 띌까봐 구태여 밤으로 시간을 못박아둔 디테일함이 뿌듯했다.

     

    “그것도 야간특선메뉴라는 한정조건을 달고 매일 밤이면 수련을 끝마치고 초저녁부터 취침을 하러 가다니. 아주 괘씸해.”

    “어린애는 일찍 자야 키가 크거든요.”

    “오일이나 기다리게 만든 메뉴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만큼이나 뜸을 들인 이상, 쉽게는 통과할 수 없다. 날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탈락은 각오해야 할 거다.”

     

    기간 또한 이 히든공략의 핵심요소다.

    재료가 도착하기까지의 ‘기간’으로 난이도를 암시하였던 미하엘.

    그의 규칙에 따르면 5일째에 접어든 야간특선메뉴는 난이도 5단계, 신정산의 제 5 계층에 해당하는 난이도를 지녔다.

    원숭이수인.

    그가 도전했던 제 4 계층의 임무보다도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이다.

     

    “털 많은 수인 녀석도 4계층의 도전에 그쳤다. 5일째를 맞이했던 것은 오만했다고 생각하지 않나?”

     

    미하엘도 그 부분을 지적했다.

    나도 안다.

    나처럼 힘 센 작은 꼬맹이가 다른 사람들 눈에는 어떻게 비출지.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유리대포 같겠지.’

     

    그래서 더욱 각별히 조심했다.

    체력이 방전되어서 병약한 모습이 나타나지 않도록 몸관리에 신경 썼다.

    덕분에 컨디션은 만전.

    오늘은 유독 몸도 가볍다.

    마치 금속으로 된 갑옷을 벗어던지고 자유의 몸이 된 장기징역수의 기분!

     

    “실력은 검을 맞대보면 알지 않겠어요?”

     

    당돌한 도발에 미하엘이 훗 하고 웃었다.

    후회해도 늦었다.

    그 한 마디와 함께 검이 번뜩였다.

     

     

    * *

     

     

    상급시험관 미하엘.

    그는 오크노디와 집사 조나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들에게 흥미를 느꼈다.

     

    ‘실력이 좋군.’

     

    아가씨 쪽도, 집사 쪽도 보통이 아니다.

    특히 집사의 강함은 상급시험관인 그도 간과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했다.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는 발걸음.

    옷깃이 스치는 소리마저도 제어하는 움직임.

    마치 전문암살자를 목도한 것만 같다.

     

    ‘암살명가의 금지옥엽이라도 되나?’

     

    집사와 달리 아가씨 쪽은 전문 암살기술을 연마한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기이했다.

    귀족영애나 대부호의 딸이 아니라면 저만한 실력자를 고용할 수도 없을 텐데, 막상 바로잡힌 자세나 기세는 그런 평범한 여식이 아니다.

    모험가 복장.

    여자에게는 우습게 보이는 그 복장이 농담처럼 느껴지지 않는 기세가 있다.

     

    ‘뭐가 됐든 재능은 있군.’

     

    이 나이에 이만한 성취라니.

    첫 합을 맞대자마자 알았다.

    아무리 목검을 들었기로서니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는 건 아무나 보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엄청난 힘과 뛰어난 기교.

    거기에 티켓시험의 원리를 이해하는 분석력과 이를 응용하는 창의력까지.

    이것만으로도 적어도 3 계층 초입까지는 도전할 수 있다.

     

    ‘기본기는 모두 갖추었구나.’

     

    틈이 없는 검술을 보고는 평가가 올랐다.

    4 계층 초입도 가능하다.

    판가름이 난 시점에서 진검을 강하게 떨쳐냈다.

     

    “합격이다.”

    “벌써요?”

     

    오크노디가 짐작했듯이 미하엘과 여관주인이 나누던 대화에서 요리재료의 도착에 필요한 일수는 ‘도전난이도’를 암시했다.

    그것을 자의적으로 5일이나 시간을 끌었던 오크노디는 자연스럽게 5계층급 난이도에 도전한 것!

     

    “아직 충분한 실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는데요.”

     

    완드마법까지 꺼내서 5계층 급 역량을 보여주려던 오크노디의 계획이 무색하게 귀공자 미하엘은 4계층 급 역량을 보여준 시점에서 합격을 선언했다.

     

    “힘과 기교, 분석력과 창의력, 검술. 다섯 부문에서 합격점을 주었다. 기교와 분석력, 검술은 이번 대결에서. 창의력은 메뉴판으로 알았지.”

    “힘은요?”

    “팔씨름. 괴력소녀에 대한 소문이 돌더군.”

    “아하.”

    “보상이다. 이 티켓을 도전자에게 주게 되리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했는데.”

     

    백금색의 플래티넘 티켓.

    보통의 도전자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티켓이었다.

    스윽.

    티켓을 잡으려는 오크노디의 손을 피해 팔을 높이 드는 미하엘.

    뚱한 시선이 참 재밌다고 생각하며 그가 말했다.

     

    “티켓을 받기 전에 기회를 주지. 플래티넘 티켓은 입학시험에서 큰 메리트를 얻을 수 있는 티켓이다. 대신, 이 티켓을 포기하면 골드티켓을 열 장 주지.”

    “!!”

    “정확한 차이는 말해줄 수 없지만 골드티켓도 나름 이점이 있는 티켓이다. 남는 9장은 마음대로 처분해도 상관없다. 자, 어쩔 테냐.”

     

    그것은 미하엘의 변덕으로 치르는 일종의 추가시험이었다.

    플래티넘 티켓의 가치는 엄청나다.

    골드티켓 열장을 합한 것보다도 더욱 대단하다.

    그래도 유혹을 견디기는 힘들 것이다.

    시중에 매매되는 티켓은 대부분 브론즈티켓.

    혹은 그마저도 안 되는 아이언티켓도 섞여있다.

    아이언티켓은 심사관이 뿌리는 가짜티켓.

    자격미달의 애송이들이다.

    뒤늦게라도 깨닫고 제출 전에 다른 티켓을 확보한다면 입학시험을 치를 수도 있겠지만, 그걸 알아낼 재목이면 애초에 제 힘으로도 티켓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이 아가씨야 그럴 실력은 차고도 넘치지. 중요한 건 욕망이다.’

     

    금화 10매. 브론즈 티켓의 평균 매매가다.

    금화 100매. 실버 티켓의 평균 매매가다.

    브론즈 티켓은 입학시험장에 모인 정원에 따라 본시험 전에 즉석시험을 치르거나 일정비율로 현장에서 즉시 탈락을 시키기도 한다.

    실버는 그런 즉시탈락으로부터 해방되는 ‘안정권’에 속하는 티켓.

    골드는 그보다도 더한 ‘이점’이 있는 티켓이다.

    당연히 가치를 아는 자는 열 배의 돈을 주고서라도 살만한 티켓이다.

    기프트 아카데미에 자녀나 후계자를 입학시켰다는 평판을 얻으려는 권력자들은 천금을 주고서라도 골드티켓을 사려고 한다.

    그러나 플래티넘 티켓만큼은 누구도 돈을 주고 살 수 없다.

    그 티켓을 얻을 자격이 있는 자들은 고작 물욕 따위에 자신의 기회를 팔아넘기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한 장짜리죠.”

    “왜지? 티켓은 돈이 될 텐데.”

    “제가 돈이 부족해 보이나요?”

    “그렇지는 않지. 그 집사의 고용비만 해도 백금화는 가볍게 넘어갔을 테니.”

     

    반대로 심사관들은 무급봉사다.

    돈도 안 되는 이런 귀찮은 일은 아카데미에 빚을 지거나 괴짜인 사람이 아니면 보통은 맡지 않는다.

    미하엘은 명백한 괴짜.

    남을 시험하기를 좋아하는 취미를 지녔다.

    시험당하는 이들은 대부분 그의 농간에 놀아나며 이를 갈기 마련이지만, 때로는 그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는 이들도 있기 마련.

     

    ‘그리고 시험을 통과한 자에게는 반대급부인 보상이 존재하지.’

     

    조금이라도 망설이거나 고민했다면 지금 손에 쥔 티켓을 건네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아이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니 시험은 합격.

    손에 든 플래티넘티켓 대신 상의 안주머니에서 꺼낸 또 다른 플래티넘티켓을 건넸다.

     

    “같은 티켓에도 차이가 있나요?”

    “방금 건 143번. 지금 건 15번이다.”

    “!”

    “모든 티켓에는 번호가 배정되어 있다. 트리플 넘버보다는 더블 넘버가, 더블 넘버보다는 싱글 넘버가 더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지.”

    “엄청 좋은 티켓이라는 말이죠?”

    “훗. 그렇다고 보면 된다. 입학시험의 일시와 장소는 티켓에 적혀있다.”

    “고마워요. 재밌는 시험이었어요.”

    “잠깐. 너, 이름은?”

    “오크노디. 시험관님은요?”

    “미하엘.”

     

    당돌한 소녀는 방으로 올라갔다.

    남은 건 집사뿐.

     

    “‘아가씨’를 모시러 가지 않아도 되나?”

    “묻고 싶은 게 있다.”

    “아가씨를 봐서라도 한 번은 대답해주지.”

    “마지막에 낸 추가시험. 더블넘버 최상위 티켓의 시험치고는 너무 쉬웠다. 아가씨에게 그 티켓을 주려고 한 이유가 뭐지?”

    “훗. 눈치 챘나?”

    “그뿐만이 아니다. 고작 팔씨름 따위로 생긴 소문 하나로 5계층에 통용될 수준의 근력을 지녔다고 평가하기엔 부족할 텐데.”

    “아가씨보다는 눈치가 좋군.”

    “만일 불순한 목적이 있다면…….”

    “딱히 그런 건 없다.”

     

    집사가 진심으로 살의를 품는 순간, 산을 가득 메우던 풀벌레 우는 소리가 멎었다.

    새들이 하늘을 날고, 여관에서 들리던 음악소리가 뚝 끊겼다.

    마치 조금이라도 포식자의 눈에 띄지 않으려는 피식자들의 필사적인 마음이 엿보이는 정적.

     

    “여성할당제를 사용했을 뿐이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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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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