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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

       ​

        “이 정도면 보수는 짭짤하겠군.”

        ​

        “헤헤, 보수만 받으면 저희도 금위환향 할 수 있는 겁니까?”

        ​

        “무사히 살아 돌아갈 수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금의환향이다.”

        ​

        “앗, 그렇군요!”

        ​

        ‘무식하군.’

        ​

        그는 출항 준비를 서두르는 부하들을 배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

        ‘요구한 대로 해남검문에 꽤나 큰 피해도 입혔으니, 추가 보수도 받을 수 있겠군.’

        ​

        그는 시선을 천천히 돌려 약탈한 물건을 싣는 왜구들을 바라보았다. 왜구들은 마치 축제를 기대하는 사람들처럼 해맑은 얼굴이었다.

        ​

        몇시간 전까지 사람들을 도륙하던 살인마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모습.

        ​

        “…”

        ​

        그는 말없이 왜구들을 바라보다가, 검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

        ‘슬슬 이놈들도 쓸모가 다했군.’

        ​

        얼마 전 그들의 두목을 단칼에 베어내고 왜구의 우두머리가 된 그는 보수를 나눌 생각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

        독식하면 그 많은 보수를 전부 챙길 수 있는데 굳이 나눌 필요가 뭐란 말인가? 실력 있는 검객이라 해도 그 또한 약탈자.

        ​

        약탈자가 자신의 몫을 나누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

        ​

        ‘보수를 받으면 전부 베어버리고 중원인으로 위장해서 적당히 자리를 잡아야겠군.’

        ​

        마음 같아서는 고향인 동영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는 돌아갈 수 없는 몸이었다. 

        ​

        그는 도망자 신세였으므로.

        ​

        살인을 즐기는 살인귀는 전쟁이 밥 먹듯이 일어나는 고향에서조차 배척받았다.

        ​

        ‘아니면…서장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사람을 벨 수 있다면 어디든 나쁘지 않다.’

        ​

        서역인의 살을 베는 감촉은 어떨까. 살인귀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

        ​

        그렇게 미래 설계를 차근차근 세우고 있던 도중이었다.

        ​

        그의 몸이 기울어졌다.

        ​

        아니, 정확히는 그가 발을 디디고 있던 배가 기울어졌다. 

        ​

        갑작스러운 이변에 그는 가까스로 균형을 잡고 고개를 돌렸다.

        ​

        “이게 무슨 일-”

        ​

        “두목님!”

        ​

        “배가 가라앉고 있습니다!”

        ​

        “뭐?”

        ​

        “약탈한 재물이 아랫 창고에 있는데 어떡할깝쇼?!”

        ​

        왜구들은 다급한 얼굴로 두목에게 물었다. 두목은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 짜증을 담아 소리쳤다.

        ​

        “그걸 말을 해야 아나! 최대한 빨리 빼내라! 가라앉기 전에 최대한 많이 빼내란 말이다!”

        ​

        “예이! 애들아! 빨리빨리 움직여라! 재물을 빼내!”

        ​

        ‘배는 바꾸면 돼!’

        ​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만 몇 대인가.

        ​

        그 배들 중 몇 대를 골라타면 그만이었다.

        ​

        ‘거친 풍랑에도 멀쩡했던 배에 구멍이라니, 어째서 이런 일이?’

        ​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

        당장 이번 일을 시작하기 전에 보수까지 했던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큰 파손이 있었다고? 납득할 수 없었던 그는 배에서 뛰어내려 이미 반쯤 기울어져 회생 불가 상태의 배를 관찰했다.

        ​

        선체의 삼분지 일이 물에 잠겼기에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예 알아낼 수 있는 게 없지는 않을 터.

        ​

        그는 관찰 끝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

        “부자연스럽군.”

        ​

        “예?”

        ​

        “부자연스럽게 가라앉는다는 이야기다. 작은 파손으로 가라앉는 게 아니야. 이 정도로 빠르게 가라앉으려면 바닥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는 거다.”

        ​

        “그, 그럼…”

        ​

        “주변을 경계해라! 해남검문은 수공에도 능하다고 알려졌으니 배에 수작질을 부린 게 틀림없다!”

        ​

        “재, 재물은…”

        ​

        “물고기밥이 되고 싶나?”

        ​

        계획이 완전히 어그러졌다.

        ​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약탈한 재물을 싣고 해남도를 떠나야 했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타고 온 배가 가라앉은 바람에 모든 계획이 산산이 조각났다.

        ​

        그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인원을 나누어 타야 할뿐더러, 그렇게 되면 남은 재물을 나눠서 실어야 했다. 그리고 나눠서 실은 재물을 보고…눈이 돌아간 부하들이 합류할 생각을 할까?

        ​

        갑옷을 입은 무사, 야스오는 이를 갈며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

        ‘수공을 펼쳤다면 아직 일부는 바닷속에 있을 터…’

        ​

        그는 차츰차츰 무기를 들고 주변을 경계하는 부하들을 훑어보곤 검을 뽑아 들었다. 

        ​

        스릉, 하고 날카로운 검명이 혼란이 찾아온 항구에 울려 퍼졌다.

        ​

        “같잖은 수작을 부리다니…”

        ​

        ‘이대로 바로 배를 타고 도망치려 해도 놈들이 수공으로 방해할 터. 놈들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이곳을 떠야 한다.’

        ​

        계산을 마친 그가 검을 들고 소리쳤다.

        ​

        “근처에 해남검문의 쥐새끼들이 숨어있으니 경계를 철저히 해라!”

        ​

        그의 외침에 왜구들의 얼굴에 긴장이 달렸다. 그들의 수장은 어쨌든, 그들은 대부분 삼류 언저리인 왜구에 불과했다. 해남검문의 무인과 마주치면 무조건 죽는다는 뜻.

        ​

        직전의 승리도 상인으로 위장한 마교의 세작을 통해 기습에 적절한 지형을 선점한 채 화살로 멀리서 공격했기에 망정이지, 그런 기습적인 작전이 없다면 이길 가능성은…

        ​

        “으악!”

        ​

        항구에 처절한 단말마가 울려 퍼졌다. 자연스럽게 왜구들의 신경이 곤두섰다. 

        ​

        어디야?

        ​

        도대체 어디냐고?

        ​

        “미, 미노루가 죽었습니다!”

        ​

        살해당한 왜구의 근처에 있던 왜구가 덜덜 떨며 소리쳤다. 그의 얼굴은 완전히 공포에 질려서, 당장이라도 무기를 내던지고 바다로 뛰어들 기세였다. 

        ​

        “적은? 적은 발견하지 못했나!”

        ​

        “네…네! 못 했습니다-”

        ​

        “아악!”

        ​

        두 번째 희생자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반대쪽. 목을 꿰뚫린 왜구가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렸다.

       

       흙으로 된 바닥이 시체의 피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왜구들 사이에 전염병처럼 공포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크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

        공포에 질린 비명이 새끼를 까듯 숫자를 늘려가기 시작했다.

        ​

        기이하게도 왜구들의 비명은 줄어들기는커녕 더 커지기만 했다.

        ​

        당연한 일이었다.

        ​

        그들의 몸에 남은 것은 검상이 아닌, 온몸이 천천히 뒤틀리는 듯한 고통이었으니까.

        ​

        분근착골(分筋錯骨).

        ​

        포로를 고문할 때 쓰는 수법이 전장에 등장했다.

        ​

        “귀, 귀신이다! 귀신이야!”

        ​

        “죽여줘! 차라리 죽여줘어어어어어어!”

        ​

        “전부 닥쳐! 닥치란 말이다!”

        ​

        ‘젠장! 비명소리 때문에 위치를 파악할 수가 없어!’

        ​

        근골이 천천히 뒤틀리는 고통을 어떻게 참을 수 있단 말인가. 

        ​

        야스오의 외침이 무색하게, 해남검문의 무인들이 펼치는 기습에 바닥을 뒹구는 왜구들의 목소리가 항구를 쩌렁쩌렁 울렸다.

        ​

        “난, 난 더 못해!”

        ​

        “마사오!”

        ​

        겁에 질린 왜구 중 하나가 무기를 내던지고 바다를 향해 달려갔다.

       

       물속이라면 안전하겠지 하는 안일한 사고의 발로였다. 

        ​

        허나 그것을 두고 볼 야스오가 아니었다. 검광이 번뜩이고, 비명과 함께 마사오의 몸이 바닥에 엎어졌다.

       

       야스오의 검에서 뜨거운 피가 뚝뚝 떨어졌다.

        ​

       야스오는 부하들을 노려보며 외쳤다.

        ​

        “도망치면 내 손에 죽는다! 맞서 싸워!”

        ​

        분위기를 수습하려 내공까지 담아 소리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공포에 질린 부하들의 귀에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므로.

        ​

        ‘일이 이렇게 꼬이다니…’

        ​

        작은 배를 타면 충분히 탈출할 수 있을 터.

        ​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한다.

        ​

        그렇게 생각한 그가 몸을 돌렸다.

        ​

        그리고, 그는 검을 지팡이 삼아 기대어 서 있는 남성의 존재를 발견했다. 바다를 등지고 선 남자. 달빛에 그의 금발이 반짝였다.

        ​

        “이야, 중원에서 사무라이를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

        “…색목인?”

        ​

        “역시 여기선 서양인이 너무 눈에 띄나.”

        ​

        윌리엄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빙빙 돌리며 몸을 풀었다. 슬슬 몸을 쓸 시간이 다가오니 그 전에 근육을 유연하게 풀어두려는 준비. 야스오는 긴장한 얼굴로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

        “넌 누구냐?”

        ​

        “내가 누구인지가 중요한가?”

        ​

        “…어떻게 동영의 말을? 도대체 넌 누구냐!”

        ​

        “내가 말한다고 네가 알 것 같지는 않은데. 서역에서 찾아온 기사라고 말하면 알아듣나?”

        ​

        ‘기사?’

        ​

        당연하게도 야스오는 알아듣지 못했다. 평생 동영과 중원을 떠돌아다닌 그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대륙의 존재를 알 리가 없었으니까. 

        ​

        “네 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

        “이쯤 되면 전부 눈치챌 때 되지 않았나? 생각보다 멍청하네? 선발대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땐 꽤 교활한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

        윌리엄은 일부러 야스오의 속을 박박 긁으며 눈을 돌려 전황을 체크했다.

        ​

        ‘왜구들은 거의 다 처리됐군.’

        ​

        늦은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검기로 배 밑바닥에 구멍을 내고, 뭍으로 돌아와 복잡하게 얽힌 항구의 지형을 활용해 왜구의 수를 조금씩 줄인다는 작전.

        ​

        그 심플한 작전 위에 윌리엄은 한 가지 수를 더 얹었다.

        ​

        공포.

        ​

        소수가 다수를 가장 쉽게 이길 수 있는 방법.

        ​

        윌리엄은 해남검문의 무인들에게 최대한 고통스럽게 왜구들을 죽이도록 주문했다. 가능하면 분근착골을 동원해서. 

        ​

        평소라면 고통스럽게 죽이라는 말에 꺼림칙함을 느꼈겠지만, 복수심에 눈이 돌아간 해남검문의 제자들은 거리낌 없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

        해남검문의 무인들은 그의 주문을 착실하게 수행했다.

        ​

        분근착골이 익숙하지 않은 탓에 사소한 실수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곤 했지만, 분근착골이 성공할 때까지 시도하면 그만.

        ​

        그렇게 항구는 비명으로 가득 찬 지옥으로 변했다.

        ​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다니…”

        ​

        “재뿌려지기 싫었으면 이 일에 참가하지 말았어야지. 마교의 똥개야.”

        ​

        “너, 그걸 어떻-”

        ​

        ‘이런!’

        ​

        평정심을 잃은 그는 간단한 유도신문에 당했다는 사실을 눈치채자마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하지만 이미 자기 입으로 마교로부터 의뢰받았음을 실토하고 만 상황.

        ​

        야스오는 낭패한 표정으로 윌리엄을 노려보았다.

        ​

        윌리엄은 그런 그의 표정을 보며 천천히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

        “자, 나를 이기면 보내주지.”

        ​

        “…정말인가?”

        ​

        “너한테 선택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

        그는 경공을 배우지 않아 작정하고 도망친다면 따라잡지 못하겠지만, 야스오가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다.

        ​

        야스오는 사방에서 느껴지는 증오에 물든 눈동자를 애써 무시하며 검을 고쳐 쥐었다.

        ​

        그가 살아나갈 길은 그뿐이었으므로.

        ​

        그는 거칠게 뛰는 심장을 애써 가라앉히고, 차가운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

        “나카무라 야스오. 결투를 신청하겠다!”

        ​

        수많은 피를 머금은 그의 검이 눈앞의 색목인을 향해 겨누어졌다.

        ​

        “윌리엄 마셜. 결투를 받아주지.”

        ​

        윌리엄의 검 손잡이가 머리 옆까지 올라갔다. 동시에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고 검 끝을 야스오를 향해 겨눈다. 

       

       적을 향해 뿔을 겨눈 황소 같은 모습.

        ​

        옥스 가드(Ox guard).

        ​

        공방일체의 자세가 달밤에 모습을 드러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소수가 다수를 상대할 땐 모랄빵을 유도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전술이죠.

    기사들이 즐겨쓰는 전술이기도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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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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