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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

       오늘 아카데미는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생소한 모습이었다.

         

       “수험번호 100235번부터 101460번까진 알브렘 2관에서 실기를 보시면 됩니다!”

       “저, 이 건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마킹 사인펜 팝니다! 하나에 동화 다섯 닢!”

         

       입시생으로 북적거리는 교정은 일 년에 오직 한 번만 볼 수 있는 진귀한 광경이었으니.

         

       작년까지만 해도 이 광경을 둘러보았을 때 남의 얘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젠 내가 이 인파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에 심장이 떨려왔다.

         

       나는 숨을 고르며 루브테르 교양관으로 향했다.

         

       향하려고 했다.

         

       “야! 너 되게 특이하게 생겼다!”

         

       뭔가 높고 말랑말랑한 목소리가 뒤통수를 후렸다.

         

       뒤를 돌아보니 웬 꼬맹이 하나가 나를 꼬나보고 있었다. 사이즈에 맞지 않는 로브를 두른 것도 모자라 뒤로 고꾸라질 만큼 큰 가방을 메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주변에 사람이 워낙 많아서 다른 이를 부른 거겠거니, 하고 길이나 마저 가려던 찰나.

         

       “너 지금 사람 무시해?”

         

       꼬맹이가 도도도 뛰어와 내 앞에 착, 하고 착지했다.

         

       나도 이 몸이 된 뒤로는 뭘 제대로 먹어 본 적이 많이 없어서 성장이 더딘 편에 속했는데, 그런 나보다도 머리 하나 작은 여자아이가 눈앞에서 다짜고짜 반말을 시전했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했다.

         

       “너 눈 색깔이 왜 그래?”

         

       좌우간 싹수가 없는 아이였다. 나는 곧바로 말을 받아쳤다.

         

       “넌 키가 왜 그래?”

       “드워프 처음 보냐!”

       “키만 보고 꼬맹이라고 생각하지 누가 드워프인 줄 알아? 그리고 드워프는 오래전에 멸종되었다고 들었는데.”

       “아닌데? 이렇게 잘만 살아 있는데?”

       “꼬맹아, 길을 잃어버렸니? 저쪽에 안내하시는 분 있으니까 저분에게 부탁해서 부모님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면 돼. 우리 꼬맹이는 씩씩하니까 할 수 있겠지?”

       “야 인마! 너 그거 종족 차별 발언이야─!!”

         

       누가 봐도 어린애인 것 같은데. 어려운 용어를 쓸 줄 아는 걸 보면 나처럼 액면가랑 실제 나이가 다른 경우일지도 모르겠다.

         

       드워프가 장수종이었나…?

         

       잘 모르겠다. 대륙사를 공부했을 땐 절멸했다고만 나와 있었지, 책에 수명 같은 건 적혀 있지 않았으니까.

         

       결국 난 이 아이가 드워프를 동경하는 키 작은 꼬맹이라고 내심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이래 보여도 난 수험생이야. 이번에 붙어서 내 키 가지고 농담 따먹은 고향 녀석들한테 본때를 보여주겠어.”

       “그래, 열심히 해.”

         

       안 그래도 최상의 컨디션으로 입실해야 하는데 지금부터 진을 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땅꼬마의 비위를 맞춰주며 잰걸음으로 교양관까지 도망쳐왔다.

         

       근데 얘 왜 따라오냐.

         

       “아까 질문에는 마저 답해야지! 나 노란색 눈은 처음 봐. 너 어디서 왔어?”

       “대한민국.”

       “나라 이름이야?”

       “응.”

       “뭔 나라 이름이 그래? 너 나한테 거짓말하는 거지!”

         

       하는 짓을 보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꿀밤을 쥐어박고 싶었지만 친하지 않은 상대에게 손을 대는 건 내 인생 철칙에 어긋난다. 애초에 어린애한테 손찌검하는 취미도 없고.

         

       말괄량이 하나가 잠깐 들러붙었다고 생각하자. 별 이상한 꼬맹이한테 심력을 소모해주기엔 오늘은 내 인생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날이었으니.

         

       “그러고 보니 우리 같은 고사장이네? 어, 넌 저쪽으로 가야 한다고 했지? 고사실은 다른가 보다. 아무튼 필기 잘 보라구!”

         

       나와 정체불명의 꼬맹이는 중간에서 갈라진 뒤 각자의 고사실로 들어갔다.

         

       설마 진짜 수험생이었을 줄은 몰랐는데.

         

       힙색에서 수험표를 꺼냈다. 수험표에는 수험번호뿐만 아니라 입학시험이 어떤 절차로 진행되는지에 대한 정보도 있다.

         

       입학시험은 우선 필기부터. 실기는 그 다음이다.

         

       틸레트 아카데미의 필기고사는 악명이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 악명이 허구는 아니었는지, 헤를라인 교수가 가져온 기출문제집을 처음 봤을 땐 이걸 제한시간 내 전부 풀 수 있는 건가 싶기도 했다.

         

       과장 좀 보태서 수능이 애들 장난으로 보일 정도. 오히려 그 점에 위기감을 느낀 것이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어쨌든 전 세계에서 수재들이 모여드는 명문 학교다. 웬만한 난이도로 출제되지 않는다면 변별력을 가르는데 실패하겠지.

         

       이럴 때 우황청심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긴장돼서 미쳐 돌아가시겠네.

         

       떨리는 손으로 수험번호와 책상 번호를 대조시키며 앉아야 할 자리를 찾았다.

         

       고사실에는 나보다 먼저 들어온 수험생이 몇 명 있었다. 대부분 삼삼오오 모인 채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두 명이었다.

         

       남학생 한 명과, 여학생 한 명.

         

       남학생은 귀가 길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오’ 하고 탄성이 터져 나왔다.

         

       진짜? 진짜 엘프야?

         

       아, 눈 마주쳤네.

         

       내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엘프 남학생도 이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뭔가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 게 전날 무리한 모양이다.

         

       지금 컨디션을 고려한다면 나도 쟤랑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겠지. 역시 벼락치기는 몸에 안 좋다.

         

       잠깐 눈싸움을 하고 있자니 남학생 쪽에서 먼저 시선을 틀었다. 이윽고 내 시선은 건너편 여자애에게로 옮겨졌다.

         

       이렇다 할 특이사항은 없는 양갓집 규수였다. 그나마 특징점을 잡는다면 적색 단발에 홍색 눈을 가진 게 전부. 딱 그것뿐이었지만 어디선가 많이 본 느낌이 들어 자연스럽게 시선이 향했다.

         

       그녀가 날 마주치더니 싱긋 미소를 지었다.

         

       “로테 님,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저리 예쁘면 주변에 친구가 많을 법도 하지.

         

       경쟁상대를 둘러보는 건 이쯤하고 내 할 일을 준비했다.

         

       필기구를 꺼내놓고 요약집을 읽던 중 학생 몇 명이 날 흘끔흘끔 쳐다보며 쑥덕거렸다. 단순한 수군거림이라면 모르겠는데, 그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는 게 문제였다.

         

       “쟤는 누구야? 나 노란색 눈동자는 처음 봐.”

       “금안족인가 봐요.”

       “하이엘프나 흡혈귀보다도 만나보기 어렵다는 그 종족? 진짜로?”

         

       그렇지. 처음 보면 그런 반응이 나올 수도 있어.

         

       “금안족에 대한 설화 들어봤어? 한 번 공부한 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대. 필기 정도는 씹어먹을 것 같은데?”

       “어디까지나 설화잖아. 그리고 금안족은 마법 못 써. 여기서 만점 받는다고 해도 실기에서 죽 쑤고 돌아갈걸?”

       “마도구 없인 마법도 못 쓰는 거야? 불쌍하다….”

       “그러면 실기에서 과락 먹는 건 확정이잖아. 어차피 떨어질 텐데 왜 지원한 거지?”

         

       제발. 초면인데 견제는 넣지 말자 우리.

         

       뜬금없는 멘탈공격에 잠시 머리가 멍해졌었지만 지난날 하스펠트 교수에게서 들은 독설에 비교하면 이 정도는 어린애 투정 수준이라고 생각하니 한결 나아졌다.

         

       “로테 님, 이번에 기초마도이론에서 뭐가 나올 것 같나요?”

       “글쎄. 기출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을 것 같아.”

       “여전히 어렵단 소리잖아요….”

       “전 로테 님이 부러워요. 적어도 화염계열 마도에서 나오는 고난도 문제는 전부 맞히실 거잖아요. 전 적성이 물이라서 그쪽은 아무리 해도 못 하겠던데…….”

       “여태까지 노력했잖아. 힘내, 붙을 수 있어.”

         

       수험생들이 떠드는 사이에도 시간은 흐른다. 감독관이 들어옴과 동시에 좌중은 조용해졌다.

         

       날 보며 뒷담 아닌 뒷담을 한 여학생들도 하나둘씩 자리에 앉았고, 예의 엘프 남학생과 적발홍안의 여학생도 각각 내 양쪽 옆자리에 착석했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날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버리는 엘프 남학생이 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여유가 넘치는 듯한 표정으로 펜을 놀리고 있는 여학생이 있었고.

         

       비주얼만 봐선 양옆의 두 사람 다 붙을 것 같은 느낌이다. 관상을 믿는 건 아닌데, 딱 봤을 때 ‘얘 범생이처럼 생겼다’ 싶은 애들이 있긴 하잖아.

       

       이런 애들이 고사실마다 몇 명씩은 있겠지. 아니, 세계 최고의 아카데미니까 수험생 전원이 이런 애들일지도.

         

       수십 트럭에 달하는 수재들을 제치고 수백 등 내에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부담이 심해진다. 심지어 내 자리는 딱 정중앙이라서 공간적으로도 불안정한 장소였다.

         

       어떻게 된 게 좌석 배치까지 내 편이 아니었다.

         

       **

         

       틸레트 아카데미의 필기고사는 총 네 과목으로 이루어진다.

         

       공용어, 수리학, 대륙사, 그리고 기초마도이론.

         

       수능으로 치면 국어, 수학, 한국사, 과학탐구의 조합이었다.

         

       각 배점은 100점 만점으로, 합쳐서 400점이다. 실기가 100점 만점이었으니 헤를라인 교수의 말대로 틸레트는 필기에 가중치를 두는 학교라고 말할 수 있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실기를 너무 조지지만 않으면 필기에서 커버칠 수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장학금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이쪽은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맨날 자길 부려먹는 불법에게 얻어터지느냐 아니냐가 걸린 문제였고, 황실에 팔려나가 황금 핏줄의 전속 탕녀가 될지 말지가 걸린 문제였다. 그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야 뭔 짓거리를 못 할까.

         

       그래. 어떻게든 합격만 시켜준다면 교정까지 앞구르기하면서 등교한다.

         

       “사전에 공지한대로 시험은 4시간 동안 진행됩니다. 응급상황이 아닌 한 중도 퇴실은 불가하니 요의가 있으신 분은 미리 화장실에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공인영어시험 같은 걸 볼 때 감독관이 이런 말을 하면 곧바로 수험자들이 우르르 빠져나가는 국룰이 있다. 사람 사는 덴 여기나 저기나 똑같았다.

         

       “그럼 지금부터 수험번호 확인이 있겠습니다.”

         

       감독관 한 명과 보조 감독관 두 명이 고사장을 돌아다니며 신분을 확인했다. 모든 수험표 확인이 완료되자 앞에서 답안지와 함께 두꺼운 시험지 다발이 넘어왔다.

         

       묵직한 걸 하나 받아들고 남은 걸 뒤로 넘겼다.

         

       “문제지 파본을 확인하시고, 확인이 완료되시면 이상이 없다는 뜻으로 무릎에 손을 올려놓은 채 정면의 감독관을 응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시험 중에는 파본 이의신청을 받지 않사오니 인쇄 불량이 있다면 사전에 감독관에게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고사실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학생들의 시선이 어딜 향하는지는 주변을 둘러보질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째깍, 째깍, 째깍.

         

       8시 정각. 초침과 분침이 불쾌한 모닝키스를 했을 때.

         

       “그럼 지금부터 제1024회 틸레트 입학 필기고사를 진행하겠습니다.”

       “시험지 넘기셔도 좋아요!”

         

       촤라락!

         

       수십 장의 종이가 마찰하는 소리가 고사실의 가라앉았던 공기를 깨부쉈다.

         

       나는 답안지 작성용 마커 뚜껑을 딴 뒤 국어 영역부터 손을 댔다.

         

       제한시간은 240분, 그 안에 네 과목을 합쳐 200문제를 주파해야 한다.

         

       그야말로 타임어택, 시간 안배를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고득점은 요원할 것이다.

         

       연구에 탁월한 성과를 보이는 사람이라고 해서 시험까지 잘 본다는 보장은 없다. 어떤 문제를 그냥 풀어내는 것과, 제한시간 내에 풀어내는 것에는 미묘하면서도 크나큰 차이가 존재했다.

         

       시험을 잘 보려면 훈련과 요령이 병행되어야 한다. 타이머를 재고 푸는 연습, 채점이 끝난 뒤 이걸 왜 제한시간 내 해결하지 못했는지 피드백하는 과정. 자기교정은 나름 특기였다.

         

       팔락─.

         

       국어를 마무리하고 나니 머릿속이 한결 평온해졌다. 수학은 건너뛰고 역사부터 풀어야지.

         

       국어에 함정 선택지가 많았던 것에 비하면 대륙사는 쉽게 출제되었다. 적어도 보자마자 답을 찍을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이러나저러나 평소 암기만 잘 해두었다면 거저 주는 문제가 많았다. 잠을 줄여가며 재미도 없는 역사책을 읽어댔던 게 보상받는 느낌이라서 기분 좋았다.

         

       수학까지 끝냈을 땐 여기저기서 자그마한 한숨이 들려왔다. 마킹 실수라도 했는지 지금 와서 답안지 교체를 희망하는 학생도 있었다.

         

       남은 시간은 1시간 반 남짓. 이제 남은 과목은 기초마도이론 뿐이었다.

         

       마도이론이라고는 해도 집중적으로 물어보는 건 원소마도의 기초 정도다.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사대정령 중 하나의 축복을 받기 때문에 스크롤이라는 수단을 경유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원소마법은 딱 한 종류뿐이었다.

         

       그 사람이 붉은 눈이면 불, 푸른 눈이면 물…. 뭐 이런 식으로.

         

       그럼에도 네 속성의 마법을 발동하는 기본적인 구조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기초마도이론이 그래서 ‘기초’마도이론이다. 네 속성 모두에 공통되는 부분을 주로 출제하고, 특정 속성을 콕 집어서 물어보는 문제가 있다면 그건 다른 속성 학생들도 풀 수 있는 회로 문제일 것이다.

         

       [11. 다음 회로의 3번 지점에 들어갔을 때 가장 높은 출력을 낼 수 있는 소자를 선택하시오. (0.8점)]

         

       대충 이런 식으로.

         

       실험 데이터를 알고 있어서 근삿값이 뭔지는 안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5번.

         

       “10분 남았습니다.”

         

       오래전부터 실험하고 연구하면서 얻은 경험 덕택에 시간은 절약됐다. 그래도 살짝 촉박했다.

         

       마킹 실수를 하지 않았는지 점검한 뒤 마지막 장으로 넘어갔다.

         

       모든 시험지의 마지막 장엔 킬러 문제가 출제되는 것이 규칙이었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풀어도 되고, 실제로는 풀지 못해도 합격에는 별 지장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난 실기에서 얼마나 조질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문제에 손을 대봐야만 했다. 마침 더 풀 문제도 없겠다, 읽어 볼 시간만큼은 충분했다.

         

       내 눈이 빠르게 문제 지문을 훑었다.

         

       [50. 다음은 <트랜지스터>라고 불리는 최상급 마석이다. 이 마석의 특징이 다음 보기와 같다고 하자. 아래의 중급 화계마도 회로에서 개화부 출력을 50시버트에서 70시버트 사이로 증폭 조정하려면 트랜지스터를 어느 곳에 장치해야 하는가? 옳은 것을 모두 고르시오. (4점)]

         

       순간 뇌정지가 왔다. 그 뇌정지가 언제 풀렸느냐가 중요하지.

         

       “5분 남았습니다.”

         

       클라이스 이 썅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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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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