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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

       “메이드, 나 배고파. 그러니까 오늘도 요리해줘.”

         

        ‘시발.’

         

         

        주방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게 된 에단의 면상, 그리고 뻔뻔하게 나를 식모 취급하며 지껄이는 주둥아리를 보자마자 내 머릿속에서는 저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애초에 이 새끼는 대체 왜 오늘도 여깄는 거야.

         

        가장 유력한 이유는 뻔하긴 하지. 돼지 새끼가 배가 고파서 기어들어 왔겠지 다른 이유가 있겠어.

         

        아니면 원작에서처럼 릴리스라는 캐릭터의 외모가 마음에 들어서 관심을 끌려고 나타난 것일 수도 있고.

         

         

        ‘만약 그런 이유라면 이런 번거로운 방식을 사용하는 대신 일과 중에 나를 불러냈겠지만.’

         

         

        에단이 다룰 수 있는 권력을 생각하면 하급 메이드 한두 명의 보직을 옮기는 건 코 풀기 수준으로 쉬웠다.

         

        당장 이 애새끼가 나를 전속 메이드로 삼고 싶다고 말하기라도 하면 해럴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에단의 전속 메이드로 박아버리겠지.

         

        그렇게 되는 순간 좆 같은 전속 메이드의 길로 반쯤 발을 담그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어제 이 애새끼와 마주친 대화에서도 귀찮은 것처럼 대했고, 배고프니까 달라고 했던 식사도 가능한 한 성의 없이 만들었었는데.

         

        역시 마지막에 꿀을 타지 말았어야 했다. 그냥 순무나 대충 썰어서 처먹으라고 줄걸.

         

        너무 성의 없이 내놓으면 다른 의미로 위험해질까 봐 조금이나마 요리처럼 보이게 만들었었는데, 괜히 어느 정도 먹을 만하게 만들어 놓으니 오늘 다시 면상을 드러내잖아.

         

         

        ‘진짜 그냥 죽여버리고 싶네.’

         

         

        순간적으로 내 안에 떠오른 사악한 자아를 가까스로 억눌렀다.

         

        지금 이 혐단의 몸에 조금 큰 상처라도 내는 순간 릴리스의 목숨은 파리 목숨보다도 훨씬 가벼워질 테니.

         

        이전에도 말했듯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수준의 처벌을 받을지도 몰랐다.

         

        최악의 경우에는 사지 절단이라도 당해 전방 병사들의 성욕 처리용 노예로 보내진다거나, 전문 고문 업자 같은 위험한 녀석들에게 죽지도 못하고 고문을 당하겠지.

         

         

        게다가 저번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잘못하면 연좌제라는 명목으로 이사벨에게까지 불똥이 튈 가능성이 있었다.

         

        내가 에단을 죽일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말리지 않았다는 등의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덧붙여서.

         

         

        ‘릴리스, 우리 앞으로 친구처럼 지내는 거지? 손가락 걸고 약속이야~.’

         

         

        나 하나에만 한정된 문제였다면 죽이고 탈출이라는 도박수를 감행했을 수도 있겠으나, 자기 아들을 잃는 순간 해럴드는 높은 확률로 이성을 잃어버릴 테니.

         

        나와 같은 시기에 들어왔던 동기 이사벨은 물론이고, 최근 나하고 엮였던 인물 대부분이 징벌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컸다.

         

        오늘 내게 이 일거리를 짬 때린 선임 메이드들을 포함해서.

         

        …생각해 보니 그건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선임 메이드들이야 몰라도 이사벨에게만큼은 가능한 한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 착한 애한테 대체 무슨 잘못이 있겠어.

         

        그저 입사 동기가 릴리스라는 이유로 그녀에게 기구한 운명을 겪게 한다는 건…너무나도 불쌍한 이야기였다.

         

        차라리 여차할 때 좆 되더라도 나 혼자 좆 되는 게 낫지.

         

         

        사실, 미래에 에단과 엮이고 말고의 가능성을 전부 생략한 채 이 상황 자체를 모면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그냥 어제 만든 메뉴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메뉴를 먹인 뒤 다시 침실로 올려보내면 그만이었으니.

         

        그래도 아직은 직면하지 않은 미래의 일을 지금부터 고민할 필요는 없었기에 일단은 현실과 타협했다.

         

        지금은 그래도 눈앞에 있는 에단의 비위를 맞춰주기로.

         

         

        “오늘도 배가 고프셔서 잠에서 깨어나신 거군요, 도련님.”

         

        “응!”

         

        “알겠습니다. 그럼 어제와 같은 메뉴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식당에서 기다려주시면….”

         

        “어제 먹었던 건 싫어! 다른 거로 만들어!”

         

        “이 씨…간에 다른 요리를 만들기에는 여건이 안 될 것 같습니다만….”

         

         

        순간적으로 이 씨발 새끼가 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무마한 나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이것도 어찌 보면 위기를 탈출하기 위한 생존 본능인가.

         

        좆 같은 애새끼한테 욕이라도 한마디 내뱉는 이 저택에서 순간 살아남기 힘들다는 걸 감지한 머리는 자연스레 내가 내뱉은 말실수를 가까스로 얼버무렸고.

         

        아직 어린 애새끼는 다행히 내가 꺼내려던 말이 욕설이었다는 걸 알아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여전히 열 뻗치게 만드는 말만 골라 쳐 내뱉는 걸 보면 말이지.

         

         

        “만들라면 만들어! 나 배고프다고!”

         

        “…….”

         

         

        옛말에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지.

         

        이미 스택 두 개가 찍힌 채로 깝죽거리는 애새끼 앞에서 내 이성은 겨우겨우 그 충동을 억제했고.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대답을 꺼내는 것까지도 성공했다.

         

         

        “…알겠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토마토 순무 샐러드가 아닌 다른 요리를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앗싸!”

         

        “하지만 저번과 마찬가지로 요리의 맛은 보장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토마토 순무 샐러드보다 마음에 안 드실 수도 있고요.”

         

        “응!”

         

        “지금부터 요리를 시작할 테니 잠시만 식당에서 기다려주십시오, 도련님.”

         

         

        참자. 참자.

         

        이 애새끼한테 대충 아무거나 먹이고 빨리 작업부터 시작해야….

         

         

        “메이드가 만드는 거 구경할래!”

         

        “…얌전히 식당에 앉아 기다려주십시오.”

         

        “싫어! 메이드가 요리하는 거 구경할 거야!”

         

        “…주방은 위험한 곳이니, 에단 도련님께서는 부디 식당에서 얌전히 기다려주시기를….”

         

        “싫다고!”

         

         

        …3스택.

         

        더는 이성으로 억누르는 게 불가능해진 내 몸뚱이가 반사적으로 에단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바닥에 몸을 누이며 내게 목이 졸리고 쓰러지는 애새끼.

         

        겨우 열세 살밖에 안 된 데다가 관리까지 전혀 한 된 꼬맹이의 몸은 농가에서 자란 성인 여성의 힘을 감당할 수 없었고.

         

        뒤룩뒤룩 살찐 혐단의 몸을 힘으로 주방 바닥에 처박은 채, 그대로 놈의 목을 양손으로 졸라 녀석의 숨통을 끊어버리는…….

         

         

        ……그저 잠시, 그런 상상을 했다.

         

         

        “…….”

         

        “메이드?”

         

        “…마지막으로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 요리가 다 될 때까지 식당에서 얌전히 기다려주십시오.”

         

        ‘제발 내 이성이 아직 남아있을 때 말이지.’

         

         

        아무리 눈치 없는 애새끼라도 이쯤 되면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파악한 건지 그래도 내 마지막 말만큼은 주의 깊게 듣는 모습이었고.

         

        어떻게 녀석의 머릿속에서도 나처럼 생존 본능이 움직였던 듯, 마지막만큼은 내 말을 알아듣는 모습이었다.

         

         

        “아, 알았어…. 식당에서 기다릴게….”

         

        “…금방 준비해서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어, 응….”

         

         

        애새끼가 주방 밖으로 빠져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찾아온 평화.

         

        그렇게 에단이 문밖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온갖 격한 감정을 겨우 내뱉을 수 있었다.

         

         

        “씨발. 안 그래도 짬 처리하는 꼴이라 좆 같은데, 혐단 저 새끼까지 이틀 연속으로 지랄이야 지랄은….”

         

         

        진짜 저 새끼가 이 집안의 도련님만 아니었어도 내 이성은 버텨낼 수 없었을 터였다.

         

        만약 같은 짓을 내 선임 메이드들 중 한 사람이 했다? 그럼 그냥 너 죽고 나 죽자지.

         

        그러나 상대는 선임 메이드와 후임 메이드 수준이 아니라 평민과 공작가 외동아들이라는 말도 안 되는 신분 격차가 있는 존재였으니.

         

        전생에서 『루미노르 아카데미』만 2000시간 넘게 플레이한 나는 게임에서의 사망 이벤트를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었고.

         

        적어도 에단의 몸에 상처를 냈다가는 그 후가 곱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여러모로 확신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무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주인공이라면 모를까, 일개 메이드의 무력으로 해럴드와 일기토를 벌였다가는 그 결과가 뻔했으니까.

         

        비록 내가 전생과는 다른 몸에 빙의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내 목숨 소중한 것 하나만큼은 안다.

         

         

        “하아, 오늘은 또 무슨 창작 요리를 만들라는 건데….”

         

         

        기껏 전생의 최애 게임 속에 들어와서 하는 것이라고는 선임들 짬 처리에, 애새끼 뒤치다꺼리라니.

         

        다시금 나를 릴리스로 빙의시킨 놈에게 욕지거리를 내뱉고 싶어진 순간이었다.

         

         

         

       ⁎ ⁎ ⁎

         

         

         

        그리고, 약 10분 후.

         

         

        “…이건 뭐야?”

         

        “무쌈…이 아니라, 라디쉬 롤입니다.”

         

        “라디쉬 롤…?”

         

         

        그게 대체 뭐냐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에단.

         

        누가 봐도 설명을 요구하는 듯한 눈빛이었기에 나는 친히 내가 만든 창작 요리에 관해 대답해주었다.

         

         

        “얇게 썬 라디쉬에 채를 썬 당근과 양파, 토마토, 그리고 순무를 넣고 둥글게 만 요리입니다.”

         

        “그런 요리가 있어…? 그리고 또 순무….”

         

        “입맛에 맞지 않으시다면 치우도록 하겠습니다.”

         

        “아, 아니야! 먹을게!”

         

         

        …그래도 배가 고프긴 고픈가 보네. 딱 봐도 식욕 떨어지는 저런 걸 먹겠다고 하는 걸 보면.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별로 먹고 싶지 않은 요리였다. 고기도 연어도 안 들어간 무쌈을 무슨 맛으로 먹어.

         

        심지어 소스라고 할만한 것도 기껏해야 소금과 올리브오일이 전부였다.

         

        저런 걸 먹을 바에야 그냥 토마토를 생으로 씹어먹는 게 낫지.

         

         

        아마 지금쯤 차라리 토마토 순무 샐러드가 낫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걸 싫다고 거부했던 건 애초에 저 녀석이었으니.

         

        네가 선택한 창작 요리다. 악으로 깡으로 처먹든가 말든가.

         

         

        -우적, 우적.

         

        “하급, 하급.”

         

        “…….”

         

         

        …내가 먹으라고 주기는 했지만, 진짜 더럽게도 처먹네.

         

        일부러 사람 신경 긁으려고 저따위로 처먹는 건지 진지하게 의심이 든 순간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열세 살이나 처먹은 귀족 애새끼가 저따위로 못 배워먹지는 않았을 테니.

         

        아무리 해럴드 그놈이 아들 바보에 오냐아빠라고는 하지만, 저건 아무리 봐도 너무 방임주의인 것 같은데.

         

         

        뭐, 그딴 건 내가 알 바 아니지.

         

        딱히 저 혐단 새끼가 올바르게 자라든 말든 그건 대 관심사가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건 그저 저놈이 내 인생에 최대한 엮이지 않기를 바랄 뿐.

         

        …이틀 연속으로 주방에서 마주하게 된 순간 이미 늦어버린 것 같지만.

         

         

        ‘아예 첫날부터 못 처먹을 정도로 맛대가리 없는 걸 먹였어야 했는데.’

         

         

        그러나 이미 번복하기에는 너무 많은 길을 와버렸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어제 했던 미련한 짓을 욕하는 것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에단은 어느새 접시의 내용물을 말끔하게 비워냈고.

         

        땡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빈 접시 위로 에단이 쥐고 있던 포크가 떨어졌다.

         

         

        “다 드셨습니까?”

         

        “응!”

         

        “입맛에는 맞으셨습니까?”

         

        “아니!”

         

        ‘그럴 줄 알았다.’

         

         

        애초에 기대도 안 했다.

         

        어제 처먹은 토마토 순무 샐러드도 별로라고 했던 놈이 오늘 먹은 걸 맛있다고 할 리가 없지.

         

        돌아오는 꼬맹이의 대답에 딱히 실망하지도 않으며 나는 에단에게 침실로 돌아올 것을 권고했다.

         

         

        “밤이 늦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들키기 전에 침실로 돌아가시지요.”

         

        “응!”

         

         

        그래도 먹여 놓으면 얌전히 돌아간다는 점에서 다루기는 좀 편하네.

         

        에단의 뒤뚱거리는 몸뚱이가 저택 복도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나는 녀석이 먹은 접시와 자리를 클린 마법으로 정리했다.

         

         

        …설마, 내일도 또 주방에 나타나는 건 아니겠지.

         

        그때는 내 이성이 참아낼 수 있을지 없을지를 확신할 수 없었기에, 제발 나타나지 않기만을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지금 릴리스의 몸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는 기껏해야 겨우 그 정도였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순간적으로 새어나온 릴리스의 망상은 프롤로그의 그 장면이 아닙니다.

    프롤로그의 장면은 두 사람의 갈등이 조금 더 심화된 이후 나올 예정이니 조금 더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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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망나니 공자의 메이드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transmigrated into a character from my favorite game in my previous life. Moreover, as the character I despise second most in the game. (Not a wasteman) The cover was designed by Deep Dark Wolf, and the typography was done by 유일유화 (Yu Ilyu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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