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1

       

       “주서연, 너 오디션 결과 언제 나와?”

       

       유치원에 가자마자 이지연이 내 팔을 흔들며 물었다.

       참고로 이 질문은 오디션이 끝난 다음날부터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이 무슨 집념.

       다른 건 몰라도 이지연의 이 집념만큼은 인정해주지 않을 수 없다.

       

       ‘근데 슬슬 나오긴 했지.’

       

       분명 듣기로 일주일 내에 알려준다고 했었다.

       하지만 엄마에게도 연락이 온 건 없었고, 메일이나 우편함에도 어떤 답변도 돌아오지 않았다.

       

       ‘혹시 떨어지면, 아무것도 안 오나?’

       

       생각해보면 나는 오디션에서 떨어져 본 경험이 없었다.

       만약 떨어져서 아무것도 오지 않는 것이라면 내심 충격을 받을지도 몰랐다.

       

       “이지연.”

       “왜.”

       “혹시 떨어지면 아무런 연락이 안 와?”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는데?”

       

       눈을 가늘 게 뜨며 묻는 지연의 말에 나는 시선을 피했다.

       차마 자주 떨어졌을 것 같아서. 라는 말을 덧붙이지 못했다.

       

       물론 자주 떨어지는 것과 별개로 이지연이 훗날 좋은 배우가 되리라는 건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서연아!”

       

       그때, 꽃님반 선생님이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찾았다.

       나를 향해 손짓하며 부르는 그 모습은 무척 급해보여, 긴장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어, 무슨 일이라도 터졌나?’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아이를 저리 다급하게 부를 일은 그다지 없었으니까.

       무슨 사고? 아니면 뭔가 위험한 일이라도 터진건가?

       

       “어휴, 현영 선생님, 그렇게 부르시면 서연이가 놀라잖아요.”

       “앗, 아! 죄, 죄송해요. 너무 놀라서요.”

       

       뒤이어 나타난, 햇님반 선생님의 말에 현영은 그제야 ‘아’ 하는 얼굴로 내게 사과했다.

       

       “미안해, 서연아. 선생님 때문이 많이 놀랐지?”

       “아뇨. 괜찮아요.”

       

       놀라긴 했지만 그보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꽃님반 선생님인 현영은 평소 무척 차분한 성격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나 상기된 얼굴로 나를 부르는 건, 무척 드문 일이었다.

       

       “이리오렴. 다른 선생님들도 지금 다 보고 있어.”

       “네?”

       

       보고 있다니?

       무슨 말인가 싶어 나는 그런 현영의 뒤를 얌전히 쫓아갔다.

       그리고, 상황을 지켜보던 이지연도 슬쩍 내 뒤에 합류했다.

       

       잠시 현영의 등을 바라본 지연은, 내 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혹시 그 오디션이랑 관련 있는 거 아냐?”

       “설마.”

       

       얘는 뭘 생각하든 그런 쪽으로만 연결 짓는 건가.

       

       ‘애초에 오디션과 관련이 있으면 집으로 연락이 갔지, 유치원으로 연락이 올리가.’

       

       설령 좋은 소식이라고 해도, 아빠인 영빈이나, 엄마인 수아는 그런 일로 유치원을 찾아오는 성격이 아니었다.

       혹여나 유치원 선생님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서연아. 저길 봐.”

       

       그리고, 그런 현영의 뒤를 쫓아간 장소에는 작은 TV가 있었다.

       그 TV의 화면을 선생님들이 옹기종기 모여 보고 있었다.

       아니, 선생님만이 아니라 아이들 몇 명도 그 곁에 앉아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특집!! KMB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태숨달의 메이킹 필름! 그 첫 번째!」

       

       화면의 우측 상단에는 그런 글자가 박혀있었다.

       나는 그 글자를 몇 번이고 눈을 깜박이며 확인했다.

       

       “와, 서연이가 연기를 저렇게 잘했군요…….”

       

       어떤 선생님이 그런 말을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에 나는 화면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익숙한 광경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바로, 얼마 전 있었던 어린 윤서일과, 어린 이혜월의 배역을 결정하는 오디션.

       

       많은 아역과, 심사위원의 앞에서 연기를 펼치는 내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물론 드라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기에 자세한 내용은 잘려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서서 돌아보는 연기.

       그리고 원작에 없는 애드립은 그대로 흘러나왔다.

       

       그런 내 대사에 눈물짓는 아역의 모습이 클로즈업 됐다.

       동시에 진지한 얼굴이 된 조서희와, 차분한 내 얼굴이 번갈아 가며 교차됐다.

       

       “와, 장난 아니네요. 애들 연기라고 얕볼 게 아니네.”

       “한 선생님은 누가 되실 것 같으세요? 역시 우리 꽃님반 서연이?”

       “근데 실력만 놓고 보면 아까 그 조서희라는 아이도 보통은 아니더라고요…….”

       “저 그 아이 본 적이 있는데, 일일 드라마에서도 칭찬이 자자해요.”

       

       3명의 유치원 선생님들이 저마다 방금 본 연기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누가 이혜월의 배역이 되었을지 토론했다. 

       솔직히 토론의 대상인 나로선 얼굴이 뜨거워졌지만 내심 궁금한 부분도 있었다.

       

       ‘이거 설마, 오디션 발표를 메이킹 필름을 통해 하려는 건가?’

       

       상당히 신빙성있는 추측이었다.

       그렇다면 여태 오디션 결과를 알려주지 않은 이유도 설명 되었으니까.

       

       그렇게,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이혜월의 배역이 누구인지 기다리던 순간!

       

       「과연 연화공주 이혜월의 배역은 누구?! 메이킹 필름 2탄을 기대해주세요!」

       

       쾅! 소리를 내며 그런 문구가 화면에 박혔다.

       순간.

       그것을 보던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

       “아!!! 방송 참 거지같이 하네. 애초에 메이킹 필름이 드라마 예고 아닙니까?”

       “그러니까요, 뭔 예고에서 예고를 해요!”

       “제가 방송사 홈페이지에 글 남기고 올게요.”

       

       끝나기 무섭게 선생님들의 아우성이 들렸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나를 데려온 현영 선생님은 내 귓가에 속삭였다.

       

       “서연아, 그래서 이혜월 역은 누가 맡게 됐니?”

       “…….”

       

       선생님.

       오히려 그건 제가 알고 싶어요.

       

       ***

       

       보통, 드라마 메이킹 필름은 굳이 방송에 편성하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가볍게 선공개를 하는 게 대부분.

       하지만 이번 태숨달에 관련된 메이킹 필름은, 최근 방송사의 소식을 전하는 ‘연예생중계’에서 이례적으로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마치, 예능의 한 코너처럼.

       심지어 단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3편으로 나뉘어 공개하는 거라 이번 태숨달에 KMB가 칼을 갈았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연예생중계의 순간 시청률이 무려 10프로가 넘었어요!”

       

       당연히 KMB 방송사 피디들은 물론 임원진도 기쁨의 함박 미소를 지었다.

       큰 액수가 투자된 드라마인 만큼 절대 망해서는 안 되는 드라마다.

       

       그런데 메이킹 필름부터 벌써 효과를 이렇게 볼 줄이야.

       

       “기존 연예생중계 시청률이 4~5프로였죠? 거의 두 배가 됐네요?”

       

       KMB 소속 예능 PD인 김정훈은 이 훌륭한 성과에 말을 잃었다.

       이번 아역 오디션이 워낙 쟁쟁하기도 했고, 그림이 좋았던 탓이었다.

       

       ‘박정우를 비롯해, 어린 이혜월의 두 아역.’

       

       조서희와 주서연.

       거기에 커리어를 비교하면 주서연은 감히 조서희에게 비빌 급이 못된다.

       

       하지만, 이번 연기만 놓고 보자면 박정우나, 조서희보다 주서연이 못했나?

       

       ‘절대 아니지.’

       

       거기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약자를 응원하게 된다.

       주서연은 약자였다.

       처음에는 낙하산처럼 보이는 비호감의 위치였으나, 그 뛰어난 연기력을 증명하며 여론을 뒤집었다.

       현재 서연은 그 대단한 연기실력을 지녔음에도, 마땅한 소속사가 없어 커리어를 쌓지 못한 불쌍한 아역쯤 된다.

       

       ‘조방우 감독의 입지도 덩달아 올라가게 됐네.’

       

       서연을 발굴한 조방우 감독의 이름도 언급됐다.

       물론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방송국에 있는 이들 중 그 사실을 모르는 자는 없었다.

       

       “아역이니까 이렇게 인기있을 때 한번 예능에 출연시켜야 하는데.”

       “그쵸. 아역은 이렇게 화제여도 금방 묻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KMB 예능국의 입장에선 화제가 됐을 때 이 흐름을 잘 잡아타고 싶었다.

       시간이 흐르다 아역이 성장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상황이 달라진다.

       

       요구하는 연기의 수준도 높아지고, 역변의 가능성도 있었다.

       아무리 지금 예쁘더라도 컸을 때도 그 외모가 멀쩡하리라는 법은 없었으니까.

       

       ‘나중에 어떻게 한 번, 말을 해봐야겠어.’

       

       그러니 지금 빨리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김정훈은 그런 확신이 있었다.

       

       ***

       

       주서연 아직은 6살.

       7살이 얼마남지 않은 이 시기에, 내게 큰 시련이 닥쳐왔다.

       

       “서연아, 그래서 누가 이혜월의 배역이 된거야?”

       “서연이가 이겼어?”

       “조서희 걔, 촬영장에선 어땠니? 괴롭히지는 않고?”

       

       나는 공중파 드라마에 대한 파급력을 우습게 봤는지도 모른다.

       이제 겨우 메이킹 필름에서 화제를 모은 내가 이 정도인데, 조서희와 같은 애들은 어떻게 사는지 도무지 짐작되지 않았다.

       

       “잘 모르겠어요.”

       “에이, 거짓말…….”

       “어휴, 태용이 엄마. 못 들으셨어요? 보통 이런 건 말 하면 안 돼요. 계약서로 다 쓴다니까요?”

       “아, 그렇구나. 아이고, 미안하다, 서연아.”

       

       몇몇 아주머니들이 내게 사과하고, 인사하고, 묻고 아주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내가 그나마 무던한 성격이어 망정이지, 평범한 아이였다면 스트레스를 보통 받는 게 아니었을 거다.

       

       “그래도 이제 오늘 나머지 영상이 공개되잖니.”

       

       엄마는 최대한 침착한 어조로 말했지만,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

       오늘이 메이킹 필름 2탄이 공개되는 날이다 보니 긴장되는 게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2탄이면, 내가 박정우와 한 연기가 나오겠구나.’

       

       이미 첫 번째 연기가 진행된 시점에서 ‘어린 윤서일’역은 박정우로 반쯤 낙점되었다.

       물론, 그곳에서 그렇다 발표한 건 아니었으나 누구나 그렇게 짐작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후의 오디션에서 나와 조서희는 박정우를 대상으로 연기를 펼치게 된다.

       아마 이건 분명, 전생에는 없었던 일이겠지.

       

       ‘확실히……, 좀 달랐어.’

       

       대배우의 아들이라는 이름값처럼, 박정우는 다른 아역들과 느낌부터 달랐다.

       나조차 순간, 이게 아이의 연기가 맞나 하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서연아, 어, 어서 이리와, 엄마랑 같이 보자! 아, 어떡해. 엄마 너무 떨려.”

       

       만약 이 자리에 아빠가 함께였다면, 본방을 사수했겠지만, 하필 아직 직장에서 퇴근을 못한 터라 자리를 지키는 건 나와 엄마 뿐이었다.

       

       「특집!! KMB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태숨달의 메이킹 필름! 그 두 번째!」

       

       연예생중계에 새롭게 마련된 코너.

       모두가 기대하던 ‘어린 이혜월’의 배역이 누구인가.

       

       그것이 공개되는 자리.

       이때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어린 윤서일을 대상으로 나와 조서희가 연기를 펼치던 순간.

       그때 일시적으로 연예생중계의 시청률이 무려 15프로에 달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서연아.”

       

       모든 연기가 끝났을 때.

       연화공주 이혜월의 배역이 공개되었다.

       

       아마 이변이었을 것이다.

       엄마인 수아조차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을 정도니까.

       

       일일 연속극의 공주, 조서희를 꺾어내며.

       주연의 자격을 손에 쥔 소녀.

       

       그래.

       바로 나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후원해주신

    ‘숭어머리’ 독자님과
    ‘구운만두조아’ 독자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더욱 좋은 글로 보답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I Want to Be a VTuber

I Want to Be a VTuber

Status: Ongoing Author:
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