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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

       이틀이 지났다.

       

        나는 출동한 ‘트라우마 팀’에 인계되어 병원으로 호송, 송수아는 한유리의 손에 이끌려 정밀 검사를 받은 후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단다.

       

        그리고 지금.

       

        “머리가 지끈거려. 정말 퇴원해도 되는지 모르겠네. 나도 모르는 병이 있는 거 아냐?”

        “히어로 아카데미 의료진의 수준은 세계 제일이에요. 그건 제가 보증할 수 있어요. 그들이 괜찮다면, 분명 아무 문제 없을 거에요.”

        “아쉽네. 조금 더 병캉스를 즐겨볼까 싶었는데.”

        “하아…… 당신, 이 상황에 잘도 농담을 하네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한유리.

       

        그녀의 모습에 괜스레 픽 웃음이 나왔다.

       

        대단하신 아카데미의 여왕님이 나를 찾은 건 바로 한 시간 전의 일이다.

       

        그녀가 내게 한 말은 간단했다. 

       

        의식을 차린 내 노고를 치하하고, 자신의 친구인 송수아를 구해준 것에 대해 진심을 다해 고개숙여 감사를 표현 것이다.

       

        “그래서, 송수아는?”

       

        궁금하던 걸 물었다.

       

        평소엔 한유리의 껌딱지처럼 붙어있다던 송수아, 녀석이 내 면회를 안 올 줄은 몰랐으니까.

       

        뭐, 내게 구원받은 그녀가 면회를 오지 않았다는 게 서운하다는 뜻은 아니다.

       

        ……진짜로.

       

        “그게…… 문제가 생겼어요.”

        “문제?”

       

        슬쩍 몸을 일으킨 나는 한유리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문제가 생겼다고?

       

        나는 크리스마스의 밤, 연옥에서 돌아온 송수아가 울음을 터뜨리는 걸 직접 본 사람이다.

       

        그런 그녀에게 문제가 생기다니. 도대체 그게 무슨 영문모를 소리인가.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말아요. 당신이 걱정하는 그런 문제는 아니니까.”

        “……?”

       

        다시 들어도 이해하지 못할 말이다.

       

        그러니까 그게 도대체 무슨 문제냐고.

       

        “하아!”

       

        내 시선의 의미를 알고 있던 건지, 한유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아이도 당신을 만나고 싶어해요.”

        “…….”

        “당신이 아직 눈을 뜨기 전. 이 병실을 지키던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송수아, 그 아이니까.”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한유리가 몸을 돌렸다.

       

        바쁘신 학생회장은 이제 돌아갈 생각인 모양이다.

       

        “마음의 준비가 안 된거에요. 아직…… 당신을 만날 자신이 없대요. 그래서 당신을 피하는 거에요.”

       

        그리 말한 한유리는 병실 문을 열었다.

       

        VIP 병동의 개인실은 일말의 경첩소리도 내지 않고 스윽 열렸고.

       

        “일상으로의 복귀를 축하해요. 임혜성.”

       

        그 말만 남겨둔 한유리가 병실을 빠져나갔다.

       

        자연히 병실에 홀로 남은 나는 황당한 얼굴로 눈을 껌뻑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러니까 그 문제가 뭐냐고. 

       

        만날 자신이 없다는 말이 내 궁금증을 해결해주지 않는단 말이다.

       

        선문답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할 말만 남겨두고 떠난 한유리가 괜스레 원망스러웠다.

       

       

        그 뒤로.

       

        퇴원 수속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미 병원비도 모두 수납처리된 상태. 세탁된 옷가지를 챙긴 나는 병원을 나섰다.

       

        고작 이틀 쉬었을 뿐인데 몸이 가볍다. 

       

        과연 세계 최고의 의료진이 모인 아카데미 병원이라고 해야 하려나.

       

        [ 읽지 않은 문자 메세지 : 5 개 ]

       

        “…….”

       

        무심히 핸드폰을 꺼내니 문자가 도착해있다.

       

        며칠간 학교에 연락도 없이 잠수탔는데, 부재중 전화가 없다니. 이건 이거대로 제법 슬픈데?

       

        꾹.

       

        손가락을 들어 문자 메세지를 켜 보았다.

       

        그러자.

       

        [ 고마워. ]

       

        송수아에게서 도착한 문자가 곧장 눈에 밟혔다.

       

        싱거운 녀석.

       

        이 세 글자를 보내기 위해서 머리를 감싸쥔 그녀가 얼마나 큰 고뇌를 했을지가 눈에 선해, 괜히 웃음이 나왔다.

       

        [ 다행이다. ]

       

        터덜터덜 걸으며 녀석에게 답장을 보냈다.

       

        뭐, 딱히 길게 할 말이 없었으니 내 나름대로 인사 아닌 인사를 한 거다.

       

        그런데.

       

        문자를 보내자마자, 미수신을 의미하는 숫자 ‘1’이 사라진다.

       

        “뭐야. 핸드폰 보고 있었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아는 송수아, 그 녀석은 기계와 그다지 안 친했던 것 같은데. 꼭 그런건 아니었나.

       

        띠링!

       

        [ 낵아더! ]

        [ 오, 오타야. ]

        [ (이모티콘) ]

       

        곧장 답장이 도착했다.

       

        나름대로 황급히 쓴 답변인지, 고작 짧은 3글자에 오타가 있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이래야 송수아답지.

       

        [ 어디 아픈데는 없지? ]

       

        꾹꾹 손가락을 눌러 답장을 보냈다.

       

        그런데.

       

        띠링!

       

        “……?”

       

        문자 수신 알림음이 들려온다. 

       

        이곳은 병원 정문의 작은 정원.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기에, 누군가 핸드폰을 흘린게 아니라면 알림이 들릴 수가 없었다.

       

        “……송수아?”

        “읏!”

       

        그러던 중, 고개를 돌린 나는 볼 수 있었다.

       

        평소처럼 히어로 아카데미의 학생복을 입은 송수아.

       

        그녀가…… 무슨 잠입 첩보물을 찍는 것처럼, 나무 뒤에 숨어있었다.

       

        “거기서 뭐해?”

        “……그, 그냥! 우연히 병원 앞을 지나다!”

       

        홱!

       

        소리가 날 정도로 몸을 휙 돌린 송수아가 당황스러운 비명을 내지른다.

       

        뭔가, 예상에 없던 만남이어서 당황한 걸까?

       

        “그, 그럼 이만! 안녀엉!”

       

        짧은 인사를 남긴 송수아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다.

       

        병원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다른 친구가 병원에 입원한 건가?

       

        .

        .

        .

       

        그날 이후로.

       

        “어, 엄청난 우연이네? 여기서 만나네!”

        “…….”

       

        D등급의 학교 정원에서도.

       

        “……아, 안녕?”

        “…….”

       

        내가 사는 기숙사 건물 앞에서도.

       

        “오, 오! 뭐야? ‘우연히’ 마주친 혜성이다!”

        “……아니, 여기 남자 화장실인데?”

       

        ‘병가’ 처리를 위해 방문한 관청 화장실에서도.

       

        송수아와의 만남은 계속되었다.

       

        허나 문제는 그 만남이 매우 부자연스럽다는 것이며, 또 이상할 정도로 나와 마주친 송수아가 대화를 꺼려한다는 것이다.

       

        이게 우연인 듯 운명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모략일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 * *

       

        “유리몬.”

        “네? 말씀하세요.”

        “나, 궁금한게 생겼어.”

       

        언뜻 한가한 분위기의 학생회.

       

        연말을 맞이해 오늘도 어김없이 바쁘게 하루를 보내는 한유리에게, 대뜸 송수아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궁금한 것? 뭔데요?”

       

        한유리는 소파에 축 늘어진 송수아를 바라보았다.

       

        송수아는 ‘크리스마스’의 사건 이후…… 변했다. 죽음의 문턱을 밟았다 돌아온 덕분인지, 성격이 조금 감정적으로 변한 느낌이었다.

       

        “그게…….”

       

        송수아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평소의, 아니. 과거의 송수아라면 절대 볼 수 없었던 장면이었다.

       

        ‘그때의 충격이 아직……?’

       

        한유리는 끈기있게 기다렸다. 

       

        지금 상황에서 그녀를 채근하는 것은 역효과만 날 뿐, 딱히 원하던 말을 들을 수도 없을 것이다.

       

        후르륵!

       

        대신 한유리는 책상에 놓인 머그컵을 들었다.

       

        송수아를 재촉하기 보다는 아직 따듯한 기운이 남은 차로 입을 적시는 걸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랑, 사랑이 뭘까?”

        “푸후우우웁! 콜록! 콜록!”

       

        입 안에 머금은 차가 시원하게 뿜어져나갔다.

       

        “사, 사랑?”

       

        슥슥. 손수건을 들어 입을 닦던 한유리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한유리는 똑똑하다. 

       

        당장 이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이라는 직함은 그저 운 좋게 강력한 능력을 각성하고, ‘일성’의 금지옥엽인 배경이 따준 것이 아니다.

       

        자연히 눈치도 아주 빠르다. 그런…… 아니, 그렇기에 한유리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응. 인터넷에 찾아봤는데. 명확한 답이 안 나와.”

        “……!”

        “아! 내, 내 얘기는 아니고. 그냥 아는 사람 얘기야. 친구가 상담을 부탁해서.”

       

        한유리는 듣는 즉시 알았다. 이건 깜찍한 거짓말이다.

       

        ‘그냥 아는 사람 얘기? 당신 친구 없잖아요!’

       

        한유리가 충격에 빠진 얼굴로 송수아를 바라보았다.

       

        송수아, 그녀는 21세기 문명의 시스템을 잘 이용할 줄 모른다.

       

        핸드폰은 커녕, 도어락을 누르는 것도 어려워하는 그녀가 ‘인터넷’이라는 걸 이용했다고?

       

        ‘심지어…… 그 인터넷으로 한 게 ‘사랑’에 대해서 찾았던 거고?’

       

        한유리의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떨렸다.

       

        마치 장성한 딸을 보는 심정이다. 약간은 착잡한 기분. 생각이 생각으로 꼬리를 물었다.

       

        ‘서, 설마?’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

       

        바로 며칠 전, 크리스마스의 히어로 타워 전망대에서 있었던 일련의 소동들. 

       

        ……한창 때의 소녀가, 자신을 희생하여 생명을 구원한 은인에게 끌리는 것. 그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으아아아아!”

        “……?”

       

        한유리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자신의 친구이자 가족이며, 동생이자 언니인 송수아가 먼저 어른의 계단에 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행동이었다.

       

        “유리몬. 장난치지 말고 들어줘! 나는 내 친구를 돕고 싶단 말이야.”

       

        금새 시무룩한 표정의 송수아가 말했다.

       

        그 모습에 한유리는 큼큼, 목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그래요. 사랑, 사랑이라. 송수아.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은 뭔가요? 먼저 당신 생각을 말해주세요. 아니면 그 ‘친구’의 경험을 말해주던가.”

       

        완벽한 연막 작전이다.

       

        ‘나도 모른다고요!’

       

        살면서 연애경험이 단 한번도 없는 건 한유리도 마찬가지. 그런 그녀에게 사랑에 대해서 묻다니!

       

        “나는 잘 모르겠어. 내 경험은 아니고…… 친구가 얼마 전 겪었다는 일이야. 비웃지 말고 들어줘.”

        “좋아요!”

       

        송수아는 크리스마스 전후, 며칠간 ‘친구가’ 겪었다는 일들을 한유리에게 털어놓았다.

       

        “우연히 고개를 돌릴 때. 눈이 마주치면 시선을 피하게 돼…… 아, 아니! 그렇게 된데.”

        “……?”

        “그리고 며칠 동안 계속, 계에속 꿈에 나타난데.”

        “……와우.”

       

        얌전히 송수아의 말을 듣는 한유리는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자신도 모르게 생긋 미소지은, 순수한 송수아의 얼굴을 본 것이 얼마나 오랜만인가.

       

        자신 외엔 친구가 없는 주제에 친구의 경험이라는 서투른 거짓말도 그렇고.

       

        이건 완벽한 자백이다. 

       

        범인이, 자신의 범죄를 경찰에게 이실직고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란 것이다!

       

        “약속 시간이 다가오면… 항상 문자가 와. ‘준비됐어?’라고. 웃긴 건 그렇게 핸드폰 알림이 울리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데.”

        “그, 그렇구나……?”

        “언제나 무뚝뚝한 말투, 짓궂은 표정. 그래도 좋아, 아, 아니. 좋다던데?”

        “…….”

       

        한유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유리몬. 이건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걸까? 친구에게 뭐라고 해주지?”

       

        기가 찼다. 

       

        ‘그게 사랑이 아니면 뭐야?’

       

        지나가던 초등부 아이를 붙들고 물어봐도 한유리와 같은 소리를 할 것이다.

       

        “화, 확실히. 뻔한 상황이군요.”

       

        어떤 답을 줄지 고민하던 한유리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제가 보기엔…… 맞는 것 같은데요?”

       

        여기서 거짓말을 늘어놓으면 왜인지 모르게 죄책감이 들 것만 같다. 그렇기에 한 솔직한 대답이었다.

       

        “저…… 정말? 저, 정말로? 진짜?”

       

        그 소리를 들은 송수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신이 무언가 말실수를 했나, 순간 움찔했던 한유리.

       

        “그, 그러면. 막 그 사람을 보고싶은데, 그 앞에 서는게 부끄러워서 피하게 되는 경우는? 그건 뭐야?”

        “피하게 된다고요?”

       

        이제 숨길 생각조차 없는 건가,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본심이 튀어나온 걸까.

       

        “응! 막 입에 풀이 칠해진 것처럼… 입이 안 떨어져. 같은 공간에 있으면 그것만큼 행복한 것이 없는데도, 가슴이 옥죄여. 숨이 틀어막혀. 그래서 말을 할 수가 없어. 가만히 있으면 위험할 것처럼. 그래서 자리를 피하게 돼.”

       

        한유리는 입을 쩍 벌리고 자신의 친구를 바라보았다.

       

        역시 그녀의 예상대로다. 

       

        임혜성. 그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던 이틀…… 병실을 수호하던 송수아가 어째서 의식을 되찾은 그를 피하던 건지.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추측한 한유리다.

       

        물론…… 그 이유가 워낙에 낯뜨거운 이야기라 말을 꺼내는 걸 피해왔을 뿐이지.

       

        멍한 눈빛, 거친 호흡과 잔뜩 붉어진 얼굴.

       

        “진짜…… 중증인데요?”

        “중증?”

       

        송수아가 곧장 고개를 갸웃거린다.

       

        한유리가 보기에는… 송수아가 겪는 건 평범한 사랑이 아니었다.

       

        짝사랑이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투베론 > 님 소중한 후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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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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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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