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1

       “루카스, 너는 실비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네?”

        

       갑작스러운 질문에 루카스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실비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니?

        

       하지만, 황제의 말에 어떤 의미도 담기지 않았을 리는 없었다. 적어도 저 말이 정말로 그냥 어떻게 생각하냐는 의견을 묻는 것은 아니리라. 루카스가 실비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한다고 대답하건, 그 뒤에는 분명 황제의 다른 지시사항이 떨어질 것이다.

        

       만약 여기서 실비아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티를 낸다면, 루카스는 황제에게 ‘쓸모없는 인간’으로 분류될지도 모른다.

        

       뭐, 눈치를 밥 말아먹은 제이든도 그 정도 취급은 받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너무 나간 판단일지도 모르지만.

        

       “…….”

        

       그렇기에, 루카스는 실비아에 대해서 고민해보았다.

        

       무표정에, 언제나 예의 바른 존댓말을 하고, 루카스가 몸에 손이라도 대려 한다면 그때그때 바로 쳐낸다. 얼핏 보면 성격이 나빠 보였지만, 실제로는 여린 면도 있었다. 특히 실비아는 앨리스에게 무뎠다.

        

       단순히 동갑이라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나이에 비해 이상하게 어른스러운 면이 있는 실비아는 마치 자기가 앨리스의 자리를 빼앗기라도 했다는 양 행동할 때가 많았다. 뭔가 배려할 일이 있다면 배려했고, 양보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양보했다.

        

       심지어 이 ‘빼앗은’ 주체를 자기 혼자뿐만이 아니라 ‘황제의 아이’ 모두에게 확대해서 적용하는지, 루카스나 제이든 등 다른 형제자매들의 차례라고 하더라도 만약 앨리스의 차례가 겹치면 실비아 자신이 방패처럼 막고 서서 앨리스가 먼저 이득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황녀인 앨리스는 실비아의 그런 마음은 전혀 몰라주는 모양이었지만.

        

       조금 전에도 그랬다. 원래 실비아 다음으로 황제와 독대할 차례는 루카스였다. 루카스 자신은 별달리 할 이야기가 없었지만, 황제가 긴히 나눌 이야기가 있다고 한 참이었으니까.

        

       하지만 실비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앨리스를 먼저 들여보내 주었다.

        

       ……만약, 실비아가 들여보내 준 것이 아니라 앨리스가 독단적으로 밀고 들어온 것이라면 그 자리에서 황제에게 꾸지람을 들었겠지만, 황제도 실비아가 들여보내 주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앨리스를 탓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앨리스도 사실은 은연중에 그걸 알아차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실비아에게 더 짜증을 내는 거고.

        

       만약 실비아가 정말로 감정 없는 기계처럼 행동하는 존재였다면 루카스는 그 행동을 ‘마음이 여리다’고는 해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는 황제의 유일한 진짜 혈육을 보호하기 위한 기계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실비아는 감정이 없는 태엽 인형 같은 존재는 아니었다. 루카스나 제이든이 귀찮게 하면 짜증을 내기도 하고, 자기 오빠들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 다니기도 했다. 물론 그 과정이 그냥 ‘어린아이’가 하는 숨바꼭질 아니라 전문적인 첩자가 자신을 은폐하고 잠복하는 수준에 근접하긴 하지만.

        

       이번에 임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도 그랬다.

        

       실비아는 뭔가 기분이 좋지 않은 표정이었다. 얼핏 보면 옆에 루카스가 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비아의 손에는 백작이 살해당했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나온 신문이 들려있었다.

        

       이미 실비아가 사람 하나를 죽이는 것을 보긴 했지만…… 이번 살인은 우발적인 범행이 아니다. 실비아 스스로 생각해서 철저하게 계획하여 실행한 암살이었으니까.

        

       “마음이 좀…… 여리다?”

        

       “호오.”

        

       루카스의 평가에, 황제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었다.

        

       “뭔가 잘못됐슴까?”

        

       그 웃음이 묘하게 기분 나빠서 루카스는 조금 껄렁한 태도로 물었다. 물론 루카스는 언제나 누구 앞에서나 껄렁한 태도이긴 했지만.

        

       “아니, 그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내 생각과 일치한다.”

        

       하지만 생각이 완벽히 일치했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같은 말은 붙이지 않았을 거다.

        

       “폐하가 실비아에게 무른 이유도 그것 때문이 아니심까? 실비아의 성격을 알아서……”

        

       황제는 열두 살짜리 어린애에게 백작을 암살하라는 명령을 내릴 정도로 냉혈한이기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이들에게 보이는 애정 자체는 진심인 사람이었다. 적어도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함께 지낸 루카스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애초에 실비아가 실패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황제는 실비아에게 그런 임무를 맡기진 않았으리라.

        

       “그럴지도 모르지.”

        

       황제는 다시 한번 아리송한 대답을 했다.

        

       그런 황제를 멀거니 올려다보는 루카스에게, 황제는 다시 물었다.

        

       “루카스. 너는 네가 실비아를 베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느냐?”

        

       “그건—”

        

       당연하다, 고 말하려다가, 루카스는 말을 멈췄다.

        

       “…….”

        

       그리고 곧 진지하게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실비아를 벨 수 있을까?

        

       아니, 감정적인 평가가 아니라, 단순히 실력만으로 평가했을 때의 이야기다.

        

       만약 실비아가 무기를 들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루카스가 실비아에게 검을 휘두를 때마다 실비아는 최선을 다해서 그 검을 피했으니까. 신체 능력만으로 따져볼 때는 루카스가 몇 수는 위에 있었다. 실비아는 이제 열두 살이니 당연한 이야기이긴 했지만.

        

       하지만…… 실비아가 총을 들지 않고 있는 순간을, 루카스는 상상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 실비아를 처음으로 이곳에 데리고 왔을 때 이후로 실비아는 언제나 총을 들고 있었다.

        

       아니, 무장하지 않고 있는 순간도 있기는 했다. 중요한 행사에 참여하거나, 도저히 총을 숨길 수 없는 딱 달라붙는 옷을 입어야 하거나. 적어도 편하게 쉬고 있을 때는 실비아도 무장하지 않는 것 같았고.

        

       하지만, 그런데도—

        

       이상하게, 루카스는 실비아가 누군가와 싸울 때 맨몸으로 있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손으로 싸우는 실비아를 보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실비아라면 루카스가 실비아를 베려 할 때는 ‘언제나’ ‘확실하게’ 무장을 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막상 베려고 들어갔는데 실비아는 없고 폭탄만 잔뜩 설치되어 있을 수도 있고, 실비아가 그곳에 있다는 것은 그저 함정이고 정작 진짜 실비아는 저 멀리서 루카스의 머리에 에르겐센 소총을 겨누고 있을 것 같다는, 그런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왜냐하면, 실비아는 지금까지 쭉 그래왔으니까.

        

       절대로 보지 못한다고 생각한 곳에 매복하고 있다가 달려들어도 반걸음 차이로 피한다.

        

       제국 근위 기사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기척을 숨기고 다가가더라도 실비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루카스가 있는 위치를 알아차렸다.

        

       마치, 미래라도 읽는 것처럼.

        

       “그래, 나도 그렇다.”

        

       루카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잘 알고 있다는 듯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짓을 해도, 심지어 수만의 군대를 동원해서 죽이려는 상상을 해봐도, 나는 실비아를 죽일 수 없었다. 도대체 어째서인지, ‘준비되지 않은 실비아’를 상상할 수가 없었지.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계획을 짠다면 분명 실비아는 절대로 그곳에 있지 않을 것이다. 나의 머릿속의 실비아는 그렇다.”

        

       황제는 루카스를 향해 몸을 살짝 내밀고 말했다.

        

       “자, 다시 묻겠다. 실비아가 그저 마음이 여릴 뿐이라고 생각하나?”

        

       “…….”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실제로는 그 어린 몸을 이끌고 이 황궁에 있는 모두를 도륙해버리고 유유히 빠져나갈 수 있는데도 그러지 않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불쌍해서’ 참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실비아가, ‘그’ 실비아가 ‘정말로’ 그렇게 행동하고 있을까?”

        

       “……어…….”

        

       루카스는 대답을 망설였다.

        

       “내가 이번에 백작을 죽이라고 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실비아에게 백작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넘기지 않았지. 그저 ‘죽이라’고만 했다. 어떻게 죽일지, 어째서 죽일지도 말하지 않고. 그리고 너에게 감시 임무를 맡겼지. 내가 백작을 선택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크로우필드 백작은 실비아가 극도로 혐오할법한 인간이었기에 일부러 고른 것이다.”

        

       확실히, 실비아는 이전에 그런 고아들을 ‘판매’하는 공급원에 속해 있었다. 만약 그때도 실비아가 지금의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곳이 그저 고아원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그 고아원을 그렇게 불태워버리는 일도 없었을 거고.

        

       “만약 실비아가 감정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분명 내 명령대로 백작만 제거하고 돌아왔겠지. 하지만 실비아는, 도대체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작 며칠 만에 백작이 그 고아원의 고객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게다가 뒤따라오는 모든 마차까지 전부 폭파했지. 이게 무슨 뜻인지 아느냐?”

        

       황제는 루카스를 향해 더욱 몸을 내밀고 말했다.

        

       “실비아는…… 내 대의를 생각하거나, 이 나라에 어떤 이득을 가져오기 위해서 내 곁에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저 지금 당장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여기에 있기에 ‘함께 있어 줄’ 뿐, 실제로는 아주 제멋대로에 본인이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성격이라는 말이다. 생각해봐라. 만약 백작이 그저 선한 인물이었다면, 영지민을 사랑하는 자였다면 실비아는 어떻게 움직였을까? 실비아가 내 명령을 어기고 백작을 빼돌렸다고 해도, 과연 막아낼 수 있었을까?”

        

       그건 알 수 없다.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번처럼 행동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실비아를…… 제거하실 생각이심까?”

        

       루카스의 질문에 황제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황제를 황망히 바라보고 있는 루카스에게 황제는 말했다.

        

       “이것 참, 미안하구나. 그건 오해다. 나는 오히려 그렇기에 실비아가 사랑스러운 아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우리가 실비아의 비위만 잘 맞춰주는 한 실비아는 계속 이곳에 있을 거다. 그리고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주겠지. 이것 참, 앞으로 아비로서 더 세심하게 신경을 써 줘야겠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작중 언급된 에르겐센 소총은 현실의 ‘크라그-에르겐센 소총’과 같은 총기입니다. 덴마크, 노르웨이, 미국에서 쓰였던 무기인데, 겉모습은 미국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정했으나, 미국형처럼 탄창 차단 장치는 달려있지 않습니다.

    굳이 이 소총을 선정한 이유는 볼트액션 소총 중 디자인이 가장 제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