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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

       비행선이 날아다니는 시대지만, 저렴하면서도 대규모의 물류를 운반하는 데는 아직 배만 한 수단이 없었다.

         

       증기선의 발달 덕분에 바람을 타기 어려운 내륙 지방까지도 대규모 화물이 강을 타고 오고 갔고, 포구나 나루터를 중심으로 장터들이 성행했다.

         

       이 시대의 장터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었다.

         

       악사들이 노래를 부르고, 광대들이 재주를 넘고, 배우들이 연극을 공연했다.

       오늘은 또 어떤 볼거리가 있을까 기대하며 장터를 찾는 것이 이 시대의 일상이었다.

         

       드라고뉴 강에 자리 잡은 작은 나루터, 악스빌.

         

       주변엔 가난한 영지와 작은 마을들뿐이라, 다른 장터에 비해 물건 가짓수도 적었고, 볼거리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제법 흥미로운 소식이 악스빌 인근으로 퍼져나갔다.

         

       괴물서커스단.

         

       이름만 들어도 으스스한 서커스단이 악스빌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이야, 재밌겠는데!

       -웃기지 마. 재밌는 서커스단이 악스빌에 왜 오냐?

       -아냐. 이번엔 좀 다를 수도 있어. 괴물서커스단이라잖아. 재수 없다고 다른 곳에서는 안 받아줬을 수도 있지.

       -그래? 한 번 가볼까?

       -어떤 끔찍한 괴물들이 있는지 한번 가보자고.

         

       괴물서커스단에 대한 기대감 덕분에 이번 주말의 악스빌은 평소보다 붐볐다.

         

       농한기라 심심한 주민들.

       나들이를 나온 연인들.

       훔쳐볼 요량으로 기웃거리는 동네 꼬마들.

       새로운 자극 거리를 찾아온 귀족들 등.

         

       놀이마당 앞은 괴물서커스단에 대한 기대를 품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땡땡 땡.

         

       1시 정각을 알리는 장터의 종소리가 울렸다.

         

       정확히 그에 맞춰 입구의 가림막이 걷혔다.

         

       두 사람이 천막 안쪽에서 걸어 나왔다.

         

       한 명은 마치 코트처럼 길게 내린 붉은색 연미복에 검은 스커트를 착용한 예쁜 소녀였고, 다른 한 명은 마스크와 두건으로 머리를 가린 광대였다.

         

       그들의 면모를 살핀 사람들 사이에서 실망의 목소리가 오고 갔다.

         

       -평범한데?

       -괴물서커스단이라길래, 다들 특이한 괴물들인 줄 알았는데.

       -안에 들어가봤자 별거 없는 거 아냐?

         

       사람들의 불만 섞인 웅성거림을 마주하면서 소녀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방긋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는 여유까지 보였다.

         

       겉모습만 어릴 뿐, 그 노련한 대처는 경험 많은 흥행사 같았다.

         

       소녀는 소란이 가라앉길 기다렸다.

       이윽고 장내가 어느 정도 잠잠해지자…….

         

       크흠.

       작은 헛기침이었지만, 순간 사람들의 이목이 소녀에게 집중되었다.

         

       그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모자를 벗으며 팔과 다리를 쭉 뻗고 허리를 숙여 손님들을 향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괴물서커스단의 조련사인 엘라라고 합니다!”

         

       큰 목소리는 아니지만, 발랄하게 사람들의 귓가로 뛰어드는 목소리.

         

       수백 명 앞에서도 그녀의 목소리는 떨림 하나 없었다.

       

       저런 꼬마가 무슨 괴물 조련사냐고 빈정거리는 사람들조차, 애가 참 나이에 안 맞게 당당하네 하고 생각했다.

         

       “저희 서커스단은 세계 각지에서 잡아 온 정말 위험한 괴물들을 데리고 있습니다! 안에서는 부디 저희의 안내에 따라 움직여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괴물들에게 잡아먹힐지도 몰라요! 그 점을 각오한 분만 들어와 주세요!”

         

       말의 내용은 무시무시했지만, 귀여운 소녀의 목소리와는 도저히 매치가 되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은 그녀의 경고가 같잖다는 듯 코웃음 쳤다.

         

       “뭐 그리 대단한 괴물들이 있다고.”

       “괴물이 있긴 있나?”

       “옳소! 돈 내고 들어갔는데 별거 없으면 어쩔 거야!”

       “괴물을 보여 봐라!”

         

       사람들의 아우성에도 엘라는 그저 뒷짐 진 채 빙글빙글 웃기만 했다.

       그녀는 옆에 서 있는 키 큰 광대를 돌아보며 말했다.

       

       “한 번 보여달라는데요, 스벤?”

       “낄낄, 그렇다면 보여줘야지.”

         

       스벤이라 불린 마스크를 쓴 광대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관객 중에 제일 건들거리고 불만이 많아 보이는 사람을 찾아냈다.

       복장으로 보아 나루터에서 일하는 일꾼 같았다.

         

       “어이, 거기 힘 좀 쓸 것 같은 양반!”

       “날 불렀나?”

         

       남자는 결투 신청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팔뚝을 부풀리며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광대는 그 모습을 보고 낄낄댔다.

         

       “아니, 나는 옆에 있는 수염 난 당신 마누라를 가리킨 건데. 당신은 영 부실해 보이는걸.”

       “뭐야!”

         

       장내에 폭소가 터져 나왔다.

       당연히 남자 옆엔 마누라 따위는 없었다. 수염이 숭숭 난 그의 동료가 있을 뿐이었다.

         

       남자는 물론이고 마누라로 지목당한 털보 역시 얼굴을 붉혔다.

         

       “화났나? 화났어? 화난 거야? 응? 때릴 건가? 때릴 거야? 때리게? 응? 때려봐? 때려봐? 때려봐?”

         

       광대는 두 팔을 늘어뜨린 채 폴짝폴짝 뛰며 남자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그 가벼운 몸놀림은 숙련된 곡예사의 것이었다.

         

       사람들은 함성과 함께 손뼉을 쳤다.

       뭐가 뭔진 몰라도 놀이가 시작된 것이다.

         

       부두일꾼도 이게 서커스단의 장난이라는 걸 알았는지 금방 화를 가라앉히고 입술을 씰룩거렸다. 부둣가 노역으로 단련된 그의 등과 팔이 불끈거렸다.

         

       “좀 아플 거다!”

         

       그는 자기 바로 앞에서 얼쩡거리는 광대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나 광대의 움직임은 재빨랐다.

       그는 가슴을 비틀어 남자의 주먹을 피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질러대서 마누라가 만족하나?”

         

       다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이, 이이…….”

         

       남자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더 힘차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이어지는 제2타, 제3타의 결과 또한 같았다.

       남자가 주먹을 날릴 때마다 광대는 목을 꺾고, 허리를 비틀고, 다리를 구부리며 남자의 공격을 모두 피해냈다.

         

       그 움직임이 익살맞아서 한 번 피해낼 때마다 웃음이 이어졌다.

         

       하지만 같은 것도 계속 반복하면 질리는 법.

         

       관객들도 주먹을 휘두르는 남자도 조금 지쳐갈 때.

         

       이변이 발생했다.

         

       쾅.

         

       남자의 주먹이 광대의 얼굴에 정면으로 꽂힌 것이다.

         

       광대는 충격이 큰 듯 몸을 비틀거렸다.

         

       “저래도 되는 건가?”

       “깝죽거리다가 한 방 맞았네.”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 조련사 소녀가 안타까운 듯 발을 굴렸다.

         

       “스벤, 괜찮아요?”

       “어이구, 이거 좀 센데……. 어떡할까, 부단장? 너무 아파. 머리가…… 머리가…… 떨어질 것 같네!”

         

       툭.

         

       “꺄아아악!”

       “으아아아악!”

       “귀신이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 주저앉은 사람, 도망치는 사람 등이 뒤섞이며 놀이마당 앞 광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광대의 머리통이 진짜로 떨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제일 놀란 사람은 주먹을 휘두른 일꾼 본인이었다. 그는 자신 앞에 떨어져 구르는 머리통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물러났다.

         

       “으어어, 아니, 괴물이…….”

         

       덩치에 맞지 않게 겁에 질려 벌벌 떠는 남자.

       자신감 넘치던 모습은 이미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그를 더 경악시킬 일이 발생했다.

         

       “이봐, 내 머리 좀 주워주겠나?”

         

       떨어진 머리가 말을 했다!

       일꾼은 졸도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지켜보던 군중들도 기겁해서 펄쩍 뛰었다.

       분명 떨어진 머리통이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럴 경황이 안 되는 것 같으니, 내가 주워야겠군. 핫핫핫!”

         

       그러자 머리가 떨어져 나간 몸이 저 혼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꼭두각시 조종술?

         

       아니다. 누군가 조종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팔과 다리의 움직임 모두 자연스러웠다.

       설사 꼭두각시라 해도 머리가 혼자 말하는 건 설명이 안 됐다.

         

       “어이, 몸통아! 여기야 여기! 빨리 주워다오!”

         

       몸통은 바닥을 더듬으며 떨어트린 머리의 행방을 찾았다.

       눈이 안 보이기 때문인지 그러다 기둥에 쾅 박기도 했다.

         

       그 행동은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웠지만,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건 웃기기보다……무서움?

         

       아니……‘기괴’했다.

         

       “핫핫핫, 제법 주먹이 매운데? 머리가 떨어져 나가다니!”

         

       광대가 유쾌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장내에 감도는 분위기는 싸늘하기만 했다.

       이 기상천외한 마술의 정체가 무엇인지 짐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광대의 몸이 머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광대의 행동에 사람들은 괴물서커스단이 얼마나 짓궂은 자들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누가 들어도 일부러 실수한 척하는 어설픔.

         

       머리통이 마스크와 두건 사이로 쑥 빠져나왔다.

         

       머리와 목의 잘린 단면을 예상했던 사람들은 질색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 안에는 예상했던 피와 살은 없었다.

       오직……

         

       “와핫핫! 이거 화장도 안 한 얼굴을 보이게 돼서 죄송하네요!”

         

       근육도, 눈알도 없는 텅 빈 해골이 달그락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

         

       폭풍이 한순간 장내를 휩쓸었다.

       경악, 공포, 호기심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렇게 잠시의 소요가 있고, 열광의 시간이 도래했다.

         

       “어이! 거기 왜 사람 앞에 끼어들어!”

       “난 원래 이쪽으로 줄을 서 있었소!”

       “좀 비켜봐요!”

       “어허! 예의를 지킵시다!”

         

       사람들은 서로 먼저 들어가려고 밀치며 아우성을 쳤다.

         

       살아 움직이는 해골을 본 뒤로 그들은 괴물서커스단에 대한 의심을 모두 거두었다.

         

       지금도 서커스단의 입구에서는 해골 광대가 자신의 머리로 저글링을 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타핫핫! 저는 말이죠! 안에 있는 무서운~ 괴물님들에겐 상대가 안 돼요! 툭 치면 와르르! 무너져 버린단 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밖에서! 손님들을 상대하고 있죠!”

         

       스벤의 너스레에 사람들은 더 흥분했다.

         

       살아 움직이는 해골보다 더 기괴한 것이 있다고?

       과연 어떤 괴물들일까?

         

       “인간들! 이쪽으로! 줄! 선다!”

       “한 명씩! 입장! 한다!”

         

       천막 안쪽에서 랫맨들이 나와 현장을 정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가장 큰 녀석이 엘라의 허리춤에 올까?

       찍찍거리는 이 쥐 수인들은 서커스단의 일꾼으로 고용되어 있었다.

         

       이 세계에서 가장 밑바닥 계층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은 힘들고 지저분한 일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찾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1차 관람객들이 모두 줄을 맞춰 섰고.

         

       “그럼 이동하겠습니다!”

         

       자신을 괴물 조련사라고 소개했던 소녀가 앞장서서 관객들을 이끌었다.

         

       아까처럼 그녀가 어리다고 깔보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스벤의 쇼가 단단히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그렇게 입구를 넘어가기 전.

       또 한 번 서커스단 측에서 미리 준비한 ‘쇼’가 발동되었다.

         

       쿵!

       마치 바위가 떨어져 내린 것 같은 충격음이 대지를 흔들었다.

         

       -뭐, 뭐야?

       -대, 대포라도 날아왔나?

         

       사람들이 깜짝 놀라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을 때, 가림막 안쪽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크오오오오오오!”

         

       성난 야수의 것과 같은, 아니 그보다 더 낮고 거친 울음소리였다.

         

       공기가 떨리면서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지고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몇몇은 다리를 후들거리며 바닥에 주저앉기도 했다.

         

       조련사 소녀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관객들을 향해 작게 속삭였다.

         

       “저희 서커스단의 최고 악질인 ‘적혈귀’가 사람 냄새를 맡고 흥분한 모양이네요. 이거 평소보다 꽤 위험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들어가시겠어요?”

         

       적혈귀.

         

       이름만 들어도 온갖 끔찍한 형태가 상상됐다.

         

       다들 얼어붙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데, 안에서 얼른 대답하라는 것처럼 쿵쿵 울리는 소리가 몇 번 더 들렸다.

         

       “벼, 별일 있겠어?”

       “그, 그, 그래! 다, 다, 여, 연출이야, 여, 연출…….”

       “훈련됐겠지. 됐을 거야.”

       “쉽게 말하지 마. 사자 입에 머리를 들이밀다가 죽은 곡예사 얘기는 흔하다고.”

       “나, 난 갈 거다! 젠장! 남자가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사람들이 다시 줄을 맞춰 섰다.

       그들은 아까보다는 다소 주춤한 자세로 엘라의 뒤를 따랐다.

         

       그런 사람들을 돌아보며 엘라는 작게 주먹을 꽉 쥐었다.

         

       ‘효과 만점! 잘했어, 우몬.’

         

       막의 안쪽.

       여러 개의 부스가 원을 그리며 마당을 둘러싸고 있었다.

         

       부스에는 모두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가장 큰 부스에서는 예의 그 울음소리가 그르렁거렸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멀찍이 떨어지려고 애썼다.

       커튼을 찢고 철장 사이로 털투성이 손이라도 튀어나와 그들을 채가지 않을까 걱정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림에도 불구하고 엘라는 모르는 척했다.

         

       우몬은 서커스단 최고의 흥행 카드!

       당연히 지금 공개할 생각이 없었다. 에이스는 맨 마지막에 나서는 법이다.

         

       그녀는 가장 왼쪽에 있는 부스 앞에 섰다.

         

       “자, 이쪽을 주목해주십시오! 첫 번째로 소개할 괴물은 서커스단에서 위험도만으로는 제일이라 할 수 있는 녀석입니다. 심지어 저기 갇혀 있는 적혈귀 녀석보다 말이죠.”

         

       철장 쪽에서 쇠사슬이 끌리는 소리와 함께 적혈귀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마치 어떻게 자기보다 위험한 놈이 있을 수 있냐고 따지는 것 같았다.

         

       -저 괴물보다 위험하다고?

       -지, 지금이라도 나가면 안 될까?

         

       사람들은 과연 들어오기로 한 것이 잘한 결정이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병을 몸에 지닌 사람! 이름하여……”

         

       엘라가 신호를 주자, 랫맨들이 커튼을 내렸다.

         

       “붕대 감은 남자!”

         

       사방이 유리로 된 직육면체 형태의 방.

         

       그 안에는 온몸을 붕대를 칭칭 감은 남자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이, 이건 뭐야?”

       “글씨…… 같은데?”

         

       유리 벽면에는 피인지 물감인지 알 수 없는 붉은색 글자들이 잔뜩 쓰여 있었다.

       학식이 깊은 사람들은 그것이 고대 제국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마귀처럼 퍼져가는……병자들을 구원하소서……성스럽고 깨끗한 물로…….

         

       소리와 뜻을 입안에 굴려 본 사람들은 깜짝 놀란 얼굴로 외쳤다.

         

       “성경이야! 성경 구절이다!”

       “성 빅터의 비서다!”

         

       유리에 쓰여 있는 글은 모두 성 빅터의 비서에 나오는 구절들이었다.

         

       성 빅터는 흑사병 퇴치로 유명한 사제였다.

       뛰어난 약과 의료에 대한 지식으로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한 것은 물론, 일신의 무력도 대단해 역병 군주라는 악마를 물리치기도 했다.

         

       돌림병이 퍼지면 빅터의 글귀가 적힌 부적을 집안 곳곳에 붙여두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그런 글귀로 둘러싸인 곳에 괴물이 갇혀 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저 붕대 감은 남자는 무시무시한 병에 걸린 사람임이라는 것이다.

         

       엘라는 중요한 비밀이라도 털어놓듯 입가에 손을 모아 속삭였다.

         

       “저기 네바다의 작은 도시 하나를 전멸시킨 역병입니다. 거기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죠.”

         

       솟구치는 호기심과는 별개로 사람들의 발걸음은 뒤로 향했다.

       아무리 성경의 봉인이 있다고는 하나, 역병의 존재는 꺼림칙했다.

         

       소녀는 그런 관객들을 약 올리듯 슬쩍 웃고는 거리낌 없이 유리벽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주먹으로 벽을 탕탕 두드렸다.

         

       “어이, 붕대 감은 남자! 일어나! 밥값을 해야지!”

         

       엘라의 명령에 남자가 무릎 사이에 파묻은 얼굴을 들어 올렸다.

         

       성긴 붕대가 스르르 흘러내렸다.

       그 속에 감춰져 있던 남자의 피부가 드러났다.

         

       “꺄아악!”

       “으, 젠장! 오늘 밥 다 먹었군!”

       “징그럽다! 저게 사람 꼴이야?”

         

       화상을 입은 것처럼 피부는 쭈글쭈글했고, 검은색 진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눈꺼풀은 이미 녹아내려 눈알이 동그랗게 다 드러났다.

       머리 가죽은 가뭄의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고, 듬성듬성 남은 머리털은 황무지의 잡초를 연상케 했다.

         

       거무죽죽한 잇몸과 닳아빠진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는 꼴에 사람들의 모골이 송연해졌다.

         

       “정말 꿈에나 나올까 무서운 모습이군.”

       “저게 병이야? 저건 저주야! 저주!”

         

       사람들의 악담에 남자는 귀를 기울이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그곳엔 귀가 없었다. 일그러진 구멍만 뻥 뚫려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지네가 한 마리 슥 기어 나왔다.

         

       “으아악! 못 보겠다! 제발 가려줘!”

       “됐어! 다음! 다음!”

       “이런! 개 같은 괴물 새끼들!”

         

       커튼이 닫혔다.

         

       식은땀에 범벅이 되어 숨을 씩씩 몰아쉬는 관객들.

       그들은 서로 방금 본 게 무언지 자기들끼리 의견을 교환했다.

         

       엘라는 그들에게 잠시 숨돌릴 틈을 줬다.

         

       그리고 차례로 다음 괴물 단원들을 소개해나갔다.

         

       거미 여인, 머리 3개 달린 세쌍둥이, 저주받은 페어리, 그리고 이 서커스단 최악의 괴물이라는 적혈귀까지!

         

       고작 20분에 불과했지만, 관객들은 아찔한 기분에 잔뜩 취해 천막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렇게 십여 차례 더 관객들을 들여보내고 나서야 그날의 일정이 종료되었다.

         

       뒤늦게 와서 들여보내 달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도 많았다.

         

       흥행은 대성공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크로노 님! 후원 감사합니다!!

    재밌게 읽어주셨다니.. 더욱 열심히 쓰겠습니다!

    괴서단은 공연 배틀물(?)의 요소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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