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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

       미궁은 살아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어떤 힘을 얼마나 얻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다만 성장의 경향성 정도는 밝혀졌다. …라는 설정이다.

       

       우선 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 성장할 확률이 높다. 힘이 약하거나, 힘쓰는 일이 많은 사람은 근력이 강해지는 식으로 말이다.

       

       뜬금없이 감각이 예민해진다거나, 마법사가 오러를 얻거나, 수명이 길어지는 등. 특이한 케이스가 있긴 하지만…이는 극히 드문 예외니 논외로 쳐도 되겠지.

       

       다음은 얼마나 성장하는가. 이 또한 간단하다.

       

       미궁에서의 활동량. 그리고 위업에 따라 성장의 정도가 결정되는 거니까.

       

       예를 들면 조용히 숨만 쉬고 온 사람보다 몬스터를 몰살시키고 온 사람이 더 크게 성장하고.

       

       설령 몬스터를 하나도 잡지 못했더라도, 해당 층에 유의미한 변화를 새기면 그 또한 성장치에 반영된다.

       

       쉽게 말해 로그인 보너스, 전투 경험치, 업적 달성 경험치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 이미지로 떠올리며 짠 설정이기도 하고.

       

       여기까지는 미궁의 힘이 직접 몸뚱이에 스며드는 것이다.

       

       조금 멋있게 말하면 미궁에 잠든 신화의 파편이 모험가의 격을 끌어 올리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 가장 보편적인 성장법이다.

       

       하지만 미궁에는 이런 건실한 성장 외에도 일발 역전의 찬스가 있었으니.

       

       신의 유해에 남아있는 신성력과 권능. 그리고 멸신전쟁 당시의 물건이 그러하다.

       

       신성력과 이를 연료로 삼는 권능. 전부 신에게 하사받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날로 먹는 힘이라는 뜻은 아니다.

       

       신앙이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을 대가로 지불해야만 힘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이 사제라는 족속이니까.

       

       하지만 그 신이 진작에 죽었다면? 대가를 더는 지불할 필요가 없어진다.

       

       즉, 미궁에서 얻는 죽은 신의 권능은 아무런 대가 없이 발휘할 수 있는 기적의 편린이요, 책임없는 쾌락이라는 소리다.

       

       대신 죽은 신의 힘이기에 더 성장할 여지는 없겠지만 말이다.

       

       다음은 멸신전쟁 때의 물건인데…이건 말해 뭐하겠는가.

       

       이미 한번 멸망했다 재건한 인류에게 고대 기술이란 로스트 테크놀로지이자, 오버 테크놀로지 아닌가.

       

       무기의 성능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인 거야 당연한 일. 평범한 가구는 귀족들에게, 책은 역사학자에게 비싸게 팔리며…연구 자료라도 발견하는 날엔 국가가 직접 나서는 일도 빈번하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도 반역자만 아니라면 사면받을 수 있으며, 평민이라면 계승할 수 있는 작위를, 귀족이라면 승작과 더불어 각종 혜택을 제시한다더라.

       

       …사실 여기까지 자세하게 생각해 두진 않았다. 그저 가끔 발견되는 고대 문명의 흔적이 귀하게 거래된다 정도만 설정했지.

       

       근데 여기 사람들이 알아서 그럴듯한 살을 붙여주더라고.

       

       아무튼 이처럼 미궁은 기회의 땅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번 미궁 탐사에서 무엇을 얻었는가.

       

       “분명 운이 좋아졌을 거야!”

       

       근거는 없다. 애초에 1층에서 겨우 고블린 좀 잡은 것 가지고 성장해 봐야 얼마나 성장하겠는가.

       

       다만, 그렇게 믿고 싶었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단챠를 돌릴 거니까…!

       

       헤실대며 지갑과 마석을 꺼냈다. 고블린의 부산물을 길드에 팔아 번 돈은 60쿠퍼 남짓.

       

       1층의 몬스터. 그것도 가장 약한 녀석이니 가격이 저렴한 건 이해한다. 오히려 매입해 주는 걸 고마워해야겠지.

       

       기존에 갖고 있던 돈과, 엘리에게 낸 방값을 종합하면 무려 72쿠퍼가 수중에 남아있는 것이다!

       

       여기에 고블린의 마석은 개당 3쿠퍼로 쳐주니, 11개를 전부 팔았다면 1실버 4쿠퍼라는 돈을 얻을 수 있었겠지만…이번 마석은 팔지 않고 그대로 가져왔다.

       

       별다른 이유는 아니고, 뽑기 시스템에 마석도 상응하는 금액만큼 돈처럼 쓸 수 있다는 말이 있길래 시험해 보려는 것뿐.

       

       “가챠가챠.”

       

       대충 되는대로 중얼거리며 시스템을 떠올리자 귓가에 울리는 방울 소리.

       

       띠링!

       

       

       

       [통상 뽑기]

       

       -현금 혹은 그에 상응하는 마석을 소모해 1~5성 사이의 아이템과 스킬을 랜덤하게 얻습니다.

       

       [1회 뽑기] [10+1회 뽑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10쿠퍼짜리 대동화 7개와 마석 10개를 손에 쥐고, 1회뽑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뜨는 질문.

       

       

       

       -[1회 뽑기]를 진행하시겠습니까?

       

       

       

       “오….”

       

       일단 마석과 섞어도 뽑기를 돌릴 수 있다는 건 확실하네. 다음은 환율을 알아볼 차례다.

       

       고블린의 마석을 길드에서 개당 3쿠퍼에 매입 중이라는 건 알지만, 시스템도 같은 가격으로 계산하는 건지 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길드에 파는 것보다 더 비싸게 받아준다면…다른 전리품은 몰라도 팔지 말고 뽑기에 쓰는 게 이득일 테니까.

       

       우선 마석 하나를 빼보았다.

       

       

       

       -재화가 부족합니다.

       

       

       

       “쓰으읍. 역시 안 되나.”

       

       이번에는 거기에 더해 1쿠퍼짜리 소동화 1개를 추가로 올렸다.

       

       

       

       -재화가 부족합니다.

       

       

       

       “이, 이거라도 되면…!”

       

       마지막으로 소동화를 하나 더 손에 쥐고 시스템을 바라보았지만.

       

       

       

       -재화가 부족합니다.

       

       

       

       “감다뒤네 이 자식.”

       

       이번에도 통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가챠 시스템에 적힌 ‘상응하는 가치의 마석’이란 길드의 매입가가 기준인 모양.

       

       물론 이 매입가라는 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이런저런 사정에 따라 마석의 물가가 변동하기도 하니까.

       

       뭐…고블린 마석 같은 수량이 엄청난 최하급 마석의 시세는 잘 흔들리지 않으니, 나중에 확인해 봐야겠지만.

       

       가챠에 거스름돈 기능이 있다는 거나, 비용 이상의 금액을 들고 있어도 필요한 비용만 소모되는 등. 마석 없이 할 수 있는 실험은 전부 해봤으니 이제 더 실험할 것도 없다.

       

       “단챠로 5성 가즈아!!”

       

       단챠를 돌리고 나면 전 재산이 4쿠퍼밖에 안 남겠지만! 10실버 모아서 연챠 돌리면 한번을 추가로 더 돌릴 수 있지만! 그런 거야 아무래도 상관없다! 난 지금 당장 가챠가 돌리고 싶으니까…!

       

       …괜히 전생에 유명하던 마시멜로 실험이 생각나네.

       

       분명 나는 참지 못하고 마시멜로를 당장 먹어 치우는 쪽의 아이였으리라. 다만 나중에 실험 자체가 오류투성이라는 이야기가 돌았으니, 분명 지금 당장 단챠를 돌리고 싶다는 마음도 잘못된 것이 아니리라.

       

       첫 미궁 탐사로 번 돈을 의미 있는데 쓰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잖나. 그래. 전부 미궁이 나빴다. 난 나쁘지 않아.

       

       “후우….”

       

       깊게 호흡을 내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단 한 번뿐인 기회니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봐야지.

       

       오른손에 마석과 동전을 든 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가챠 운을 높여주는 춤…!”

       

       넓게 벌린 팔은 미역처럼 꿈틀거렸으며, 엉덩이는 좌우로 리드미컬하게 흔들리는 기묘한 움직임.

       

       멀리서 보면 지렁이가 꾸물거리는 모습으로 보일 댄스를 1분 정도 열정적으로 췄다.

       

       이 정도면 효과가 있겠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가챠를 돌렸다.

       

       데구르르르….

       

       어디선가 들려오는 주사위 소리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마석과 동화. 동시에 내 심장 또한 미친 듯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가빠진 호흡. 다채롭게 빛나는 시야. 전신이 붕 뜬 것 같은 감각에 절로 흘러나오는 웃음.

       

       언제든 환호성을 지를 준비를 마친 채, 기다리고 있었으나…응당 나타났어야 할 허공의 균열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갑작스레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지.

       

       “큭…!”

       

       심하게 아픈 건 아니다. 기껏해야 앉았다 일어나며 모서리에 머리를 박은 것과 비슷한 수준의 고통?

       

       다만 이보다 훨씬 더 아팠더라도 나는 분명 웃었으리라. 이 고통은 내가 처음 소매치기를 뽑았을 때…그러니까 잡템이 아닌 스킬을 뽑았을 때 느낀 고통이니까!

       

       머리를 부여잡은 채로 히죽이고 있자니, 아니나 다를까 물건 대신 떠오르는 반투명한 알림창.

       

       띠링!

       

       [1성: 마법-미약한 불꽃]

       

       “오…!”

       

       역시 스킬이었다! 1성이라는 점은 조금 아쉽지만, 스킬을 단챠로 뽑은 거라면 무조건 이득이지.

       

       잡기에 속하는 소매치기도 막상 써보면 굉장히 쓸만한 스킬이었는데, 이번 건 마법계 아닌가. 등급은 낮지만 실전성은 더 뛰어날 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방금 막 머리에 새겨진 지식을 끄집어냈다. 그와 동시에 심장에서 일어나는 따뜻한 기운.

       

       눈곱만한 마나를 손끝으로 옮기며 시동어를 내뱉었다.

       

       “미약한 불꽃.”

       

       화르륵.

       

       검지에서 조금 떨어진 허공이 작은 불길로 타올랐다. …그게 끝이었다.

       

       손에 붙은 불을 요리조리 살펴보고, 흔들어도 보았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그냥 작고 귀여운 불꽃일 뿐.

       

       “라이터냐고….”

       

       심지어 오래 버티지도 못하고 금방 꺼졌다. 연료로 쓸 마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고생 없이 마나를 얻었다는 점은 개꿀이 맞지만, 그 양이 미약한 불꽃을 딱 한 번 시전할 수 있을 정도라는 게 문제다.

       

       대체 이걸 어디다 써…?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피어오르는 황망함. 그에 더해 심장이 살짝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전력 질주한 직후와 비슷한 정도의 뻐근함. 이거 설마 마력 고갈 현상인가? 쥐꼬리만 한 마나지만 전부 소모되면 고갈 증상이 오나 보다.

       

       “내 메테오를 돌려다오….

       

       이제 보니 스킬이라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네. 중요한 것은 등급. 오직 별의 개수만이 나 김요나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다.

       

       울적해진 기분으로 손에 남은 4쿠퍼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난 대체 무얼 위해 1실버나 쓴 거지?

       

       1실버가 있으면 고기 가득한 한 끼를 배불리 먹을 수 있고, 그럭저럭 괜찮은 옷 한 벌을 맞출 수 있으며, 대충 부러뜨려 억지로 끼운 나무 화살이 아닌 제대로 된 석궁용 볼트를 살 수 있었으리라.

       

       헌데 그걸 라이터에 날려 먹고 말았다. 그것도 한번 쓰고 나면 몇 시간은 기다려야 다시 쓸 수 있는 결함 덩어리 라이터에.

       

       폭사…라고 하기엔 기껏해야 단챠 하나지만, 어쨌든 망했을 때 특유의 허망함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들끓던 도파민은 다 뒤졌는지 한없이 우울해지는 감각. 하지만 그 밑바닥에 닿는 순간. 발상이 뒤집혔다.

       

       “어?”

       

       라이터 수준이라면 그냥 라이터로 쓰면 되는 거 아냐? 왜 전투에 쓰려고 한 거지?

       

       드르륵.

       

       책상 서랍을 열어 잘 말린 마력초 몇 줄기를 꺼내 입안에 욱여넣었다. 쓰고, 시고, 텁텁한 맛이 가득하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다.

       

       마력초가 왜 마력초겠는가. 미량이나마 마력을 품고 있어서 그런 거지.

       

       정제 없이 생으로 먹으면 효율이 쓰레기지만, 애초에 내 마나통도 쥐꼬리만 하니 상관없는 일이다.

       

       “좋아. 가볼까.”

       

       라이터 하면 담배. 담배 하면 엘리 아닌가.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번뜩

    설연휴에는 제가 연재를 할 수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안 올라온다면 오리너구리가 전 부치다 오리너구리 전이 된 겁니다…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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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남녀역전 세계의 가챠 중독자
Score 8.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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