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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

       * * *

       

       

       

       예카테린부르크 임시 정부 청사

       

       

       레닌이 예카테린부르크의 패배가 충격적인지 한동안 볼셰비키는 공격해 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1차 세계대전의 전황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도 한창 패망을 앞두고 얼굴 구기고 있을 독일에서 보낸 특사에게.

       

       

       “뭐지, 이거? 1차 세계대전이 이렇게 허망하게 끝난다고?”

       

       

       물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니 대표적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이제는 그냥 오스트리아제국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원 역사보다 사정이 낫다.

       

       이탈리아에 남티롤과 세르비아에 보스니아를 뜯기고 헝가리는 독립해 버렸지만, 체코의 산업지대는 유지되었고, 군주 정도 그대로 유지되었다고.

       

       이게 어떻게 이렇게 되지?

       

       원 역사에서도 열강들은 차르 일가의 소식을 좀 늦게나마 알게 되긴 하지만 설마 좀 빨리 알게 되었다고 이렇게 되나?

       

       

       “저희 독일의 카이저께서 열심히 싸우라며 루이제 황녀께서 입으시던 군복을 전해주었습니다.”

       

       

       내 앞에서 유럽 소식을 전해준 독일 특사가 가지런히 접은 독일 황녀의 군복을 주었다.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온다.

       

       눈앞에 가지런히 접혀 있는 독일 황녀의 군복을 바라본다.

       

       이거 지금 느낌을 보니까. 빌헬름 2세가 뭔가 중간에서 수작질을 한 거 아닌가.

       

       나는 마땅히 군복도 없긴 했다. 그냥 대충 러시아 제국군복을 열심히 접어가면서 입고 있었지.

       

       

       “유럽의 전쟁은 어떻게 된 겁니까? 쉽게 끝날 전쟁이 아니었을 텐데.”

       “아국의 카이저께서 볼셰비키의 위협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일이라며 영국과 강화를 하여 일단 황녀님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그 말씀은.”

       “카이저께서는 꼭 당부하셨습니다. 반드시, 볼셰비키를 무찔러달라고.”

       

       

       옳거니. 이제 알겠군.

       

       유럽 열강에 알려진 볼셰비키의 악명은 원 역사보다 처참했다.

       

       온갖 대의명분은 다 갖다 붙였지만, 차르 일가를 잔혹하게 처형하다못해 황후와 황녀를 능욕까지 한 야만인이며 사탄들이라고.

       

       군주를 끌어내리고 자기들만의 나라를 만들고 싶은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말은 많았지만. 소련의 장대한 계획이 알려지면서 공산주의자가 더욱 세력을 키웠을 터.

       

       패전국의 황제가 될 경우를 빌헬름 2세는 뒤늦게 생각한 것이다.

       

       자기 고명딸 루이제도 어쩌면 그런 꼴을 당할지 모른다고.

       

       그래. 아무리 외교 병신이라고 해도 자국 내에서는 나름 내치는 잘했다고 하던데. 그런 소식을 들으면 눈이 뒤집힐 만하지.

       

       그것도 바로 친척인 니콜라이 2세가 죽었다.

       

       설마 이게 스노우볼이 된 건가.

       

       그 혐성국이라면 독일에 족쇄는 채웠을 테고. 아마 식민지도 토해내야 했겠지.

       

       애초에 전쟁도 말아먹었는데, 식민지를 다스릴 여력도 없을 테고.

       

       

       “그럼 독일이 저희를 지원해주시는 겁니까?”

       “예. 이미 다른 열강들과도 이야기된 것이니 필요한 도움이 있다면 무엇이든 말씀해주십시오. 타진해 보겠습니다.”

       

       

       독일이 총대를 메고 우리를 지원하겠다고 쇼부를 본 건가.

       

       좋아. 그렇다면야 원하는 대로 해주지.

       

       

       “일단 우리 러시아 사정이 열악해서 현지 무기 생산에 문제가 있습니다. 또한, 예카테린부르크를 중심으로 새로운 철도망 짤 예정입니다.”

       

       

       무기 생산도 중요하지만 철도망도 중요하다.

       

       드넓은 러시아 영토는 보급을 위해서는 철도망이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로 독소전 때도 철도망이 있어 동쪽의 병력과 물자를 끌어와 독일과 싸울 수 있었다.

       

       독일군에게 갈리면 신병들을 열차에 태우고 또 태우고.

       

       독일군도 그런 소련군에게 혀를 내둘렀지.

       

       그만큼 드넓은 러시아에서 철도망은 중요한 위치다.

       

       

       “예. 그 점에 관련해서 본국에 연락하여 긍정적으로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지 생산이 가능하도록 카이저께서 지원하실 겁니다. 철도 역시 알아보겠습니다.”

       

       

       그래. 그건 그런데.

       

       그러다 문득 궁금해진 것이 있다.

       

       

       “그리고 전차도 되겠습니까?”

       

       

       독일이 전쟁에서 밀리기 시작한 것은 전차의 유무도 컸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일단 딜을 넣어 봤다.

       

       독일 특사는 눈이 한순간 동요하듯 떨렸다.

       

       이 새끼들. 역시 전차에 대해서 뭔가 생각하고 있었다.

       

       프랑스 이러다가 독일로부터 한 대 얻어맞는 거 아닌가.

       

       

       “전차 관련해서는 잘 모르겠군요. 하지만 그 역시 본국에 보고해 보긴 하겠습니다.”

       

       

       아마 원 역사대로라면 100일 전투와 곧 자폭하라는 수병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독일제국 패망이 앞당겨진다.

       

       그리고 11월 혁명으로 제국은 무너지지.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니었다.

       

       항복이 아닌 ‘강화’로 타결되면서 군주정이 버티게 된 모양이지.

       

       게다가 돈 공화국까지 예카테린부르크에 합류를 결정했다.

       

       돈 공화국의 뒤에 독일이 있는 것을 감안 하면 아마 독일과도 이야기된 것으로 보는 게 맞겠지.

       

       안톤 데니킨도 여전히 남러시아에 있지만, 이쪽으로 소식을 보내 왔다.

       

       언제든 연계하겠다고 말이다.

       

       소련은 지금 사정이 원 역사보다 열악하다.

       

       이제 상대해야 할 대상이 거대한 벽으로 들이닥치는데 제 놈들이 어쩔 건가.

       

       그야말로 바퀴벌레. 사탄 같은 취급받고 유럽 열강이 전부 이쪽으로 전쟁에서 남은 것들을 싹 다 보내오고 있다.

       

       흑해 쪽에서는 구식 군함도 양도받아 함대도 재건될 정도라고.

       

       뭐 적군과 싸울 거라면 함대는 필요 없지만.

       

       제국 함대의 재건을 위해서는 필요하겠지.

       

       

       “영국과 프랑스에서 전차를 보내 왔습니다.”

       

       

       독일 특사가 나가고 콜차크, 체코군단의 가이다가 들어와 보고했다.

       

       영국의 MK 시리즈, 여기에 르노 FT.

       

       독일제 전차도 있긴 하지만 생긴 것이 진짜 둔탁하게 생겼다.

       

       

       “어지간히도 다급한 모양이군.”

       

       

       전차에 거기다 전차병 훈련을 위한 자국 장교들까지.

       

       참 어지간히도 본격적이다.

       

       잘나신 대영제국의 국왕 폐하를 지키고 싶다. 뭐 그거겠지. 

       

       확실히 전차를 이쪽이 가질 수 있다면, 적백내전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도 있다.

       

       다만, 이건 내전 후를 또 걱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프랑스며 영국이 이렇게 무상으로 다 지원할 리가 없다.

       

       아마 내전 후에 뭔가 콩고물이라도 내놓으라 하든가. 그러지 않을까.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지금 열강들도 다들 탈진 상태일 거다.

       

       설령 우리에게 뭔가 뜯어내려 해도 압박할 수단은 없겠지.

       

       미국이야 원래 돈 많은 졸부 국가니 공산주의를 막겠다 그런 목표 하나 우리를 지원할 수도 있고.

       

       너무 가능성의 영역이지만.

       

       암만 봐도 프랑스나 영국이 그냥 무상지원 같지는 않다는 말이지.

       

       일단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 역사와 달리 적백내전에서 나는 외국군의 지원을 받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물자만 지원받았지.

       

       물론 ‘의용군’은 있지만. 욕먹을 정도는 아니다.

       

       원래 독일과 단독 밀약으로 매국노라며 원성을 받던 소련이었으나 외국군의 지원을 받는 백군을 보고는 민심이 소련에게 유리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백군도 나쁘지 않다는 점. 이게 중요하다.

       

       어쨌든 이 정도면 나는 지금 내 할 일을 최대한 열심히 하고 있다는 뜻.

       

       

       “황녀님. 그럼 언제까지 방어하실 생각이십니까?”

       “슬슬 저 볼셰비키를 공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들이 숫자가 많다 하나 오합지졸입니다. 충분히 제압 가능합니다.”

       

       

       체코군단의 가이다 장군과 콜차크는 아무래도 좀이 쑤시는 모양이다.

       

       그렇게 원 역사에서 털리지 않았나.

       

       지금은 체코 군단이 완전히 내 편이라는 게 중요하긴 하지만.

       

       지금 당장에 승기를 잡은 것처럼 보여도 아직은 허우대만 멀쩡해 보이는 것이다.

       

       

       원 역사의 백군은 결국 군벌 연합체로 무너졌다.

       

       내전을 질질 끈다는 선택지는 어지간하면 나도 좀 말리고 싶지만.

       

       

       “저는 이 내전을 조금 더 끌 생각입니다.”

       “이 전쟁을 말입니까?”

       “지금 급하게 움직인다고 승리를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설령 승리한다고 해도 볼셰비키의 아래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아직 황실에 대한 불신이 남을 터. 무엇보다 이 내전을 빨리 끝내면 저 유럽 열강들이 우리에게 뭘 뜯어가려 할지 모릅니다.”

       

       

       

       

       여러 변수가 남아 있다.

       

       하여 뭔가를 노리기엔 어렵다.

       

       열강들은 탈진 상태라 우리에게 뭔가 요구하기도 어렵다 하더라도. 소련을 지금 힘으로 몰아낼 수 없다.

       

       

       “그렇다면.”

       “물론 그렇다고 완전 고착화할 생각은 없습니다. 극동의 일본도 있고. 최소한 남러시아는 완전히 확보해야 합니다.”

       

       

       나는 벽에 걸린 지도를 물끄러미 봤다.

       

       예카테린부르크를 중심으로 짜인 새로운 러시아의 지도.

       

       그 지도에서 한 지명을 응시했다.

       

       

       “그럼, 안톤 데니킨. 표트르 브란겔과 합류해야 하겠군요.”

       “네. 군대 재정비를 마치면, 차리친을 탈환해야 합니다.”

       

       

       지금 소련은 원 역사보다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극단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체제경쟁에 패해지기 전에 최소한 전쟁, 내전에서 우리를 상대로 이기기 위해 곳곳에서 징집을 했다.

       

       원역사보다 독하게 하는 모양이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다는 거 같다.

       

       이대로만 둬도 알아서 소련은 개새끼란 이미지라고 굳혀질 것이고.

       

       예카테린부르크를 중심으로 개혁을 시행하고 새로운 러시아를 준비하는 우리에 대한 희망을 보겠지.

       

       지금, 이길 수도 없거니와 힘으로 짓밟는다고 붉은 역병이 끝난다고 볼 수 없다.

       

       붉은 역병이 내가 만든 새로운 러시아라는 백신에 무너지게 해야지.

       

       

       “머리가 두 개인 말은 결코 앞으로 가지 못 하는 법. 저금 이곳에 합류한 백군 장군들을 필두로 군을 단일화해야 합니다. 저는 이 백군을 새로운 러시아의 정규군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곳.”

       

       

       나는 손가락으로 지도의 한 곳을 가리켰다.

       

       차리친.

       

       원 역사에서는 스탈린이 멱살 잡고 백군의 공격을 방어해내고 남러시아와 시베리아 백군의 연계를 끊어냈다.

       

       이후 차리친은 스탈린그라드라고 불리고 독소전에서도 활약하는 도시다.

       

       

       “군이 준비 되는대로 남러시아의 안톤 데니킨과 함께 차리친을 공략해야 합니다. 그때까지 볼셰비키의 준동을 막아야 해요.”

       “알겠습니다.”

       

       

       앞으로 가 문제다.

       

       이건 결국 시간 싸움이니까.

       

       다급해진 볼셰비키의 아이돌 레닌은 결국 극단적인 수단을 쓸 수밖에 없다.

       

       붉은 깃발아래에 모인 적군들을 이쪽에 꼬라박겠지.

       

       그전에 이쪽도 어느 정도 세력권은 확보해야 한다.

       

       당장에 모인 백군의 숫자는 아직 숫자를 제대로 집계하지 않았지만, 수십만 정도로 보고 있다.

       

       대전쟁에 참전한 러시아제국군의 머릿수를 생각하면 한참 떨어지는 숫자다.

       

       그만큼 내전으로 군대가 갈라져 있다는 소리겠지.

       

       하여 병력수를 늘리기 위해서 차리친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제가 직접 앞장서겠습니다.”

       “이번에도 말입니까? 방어와 공격은 입장이 다릅니다. 재고해주십시오.”

       

       

       가이다는 내가 직접 참호에 나설 때도 반대했다.

       

       하지만 나는 참호에 짱박혀서 볼셰비키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당장 방어만 해도 그러할진대, 직접 공격에 나선다.

       

       포탄에 내 몸이 찢기지는 않을까. 그 점이 염려된 것이겠지.

       

       멱살 잡고 백군을 적군보다 우위에 세우려면 내가 나서야 한다.

       

       이건 어쩔 수 없다.

       

       그나마 내가 평화 세대가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가.

       

       

       “지금은 형편이 좀 나아졌다고 하나 여전히 저는 로마노프입니다. 신민들을 탄압한 차르의 딸입니다. 한동안은 민심을 위해서, 멱살 잡고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나설 생각입니다.”

       “그럼, 너무 위험하면 뒤로 빠지셔야 합니다. 지금 백군의 희망은 오로지 황녀님 뿐인 만큼 몸을 보전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나라고 죽고 싶은 건 아니다.

       

       언제까지 이 몸이 무적인지는 모르지만, 이왕 물러날 때는 물러나더라도 유종의 미는 거두어야지.

       

       백군의 승리를 위해서 내가 선두에 나서야지.

       

       때마침 차리친은 돈공화국의 크라스노프가 지금 포위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차리친을 방어하는 적군 수장은.

       

       그 유명한 조지아의 인간 백정 스탈린이다.

       

       이참에 스탈린의 멱을 따면 레닌의 후계 구도는 어떻게 될지 궁금한걸.

       

       아니면, 다른 방법도 있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참은 오늘로 끝입니다.

    남은 집필분량도 좀 부족해서 1일 1회연재가 될듯합니다.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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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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