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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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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정말 안 받음?

        관리자 : 분탕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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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엘은 위치노트를 덮고 눈앞의 불청객들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주딱과 시답잖은 잡담이나 할 때가 아니었다.

       

        모습을 드러낸 마법사들은 하나같이 마장(魔仗)을 들지 않은 빈손이었다.

        로브나 모자에 달려있어야 할 학파의 상징도 모두 떼어버려 소속을 유추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마리엘은 그들이 홀크로프트를 배척하려는 마탑 내부의 세력이라는 것을 알았다.

        입 밖에 내진 않았지만 배후 역시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아직 비석에 손을 대지 않았더군. 훌륭한 판단이다.”

        “그게 당신들과 무슨 상관이죠?”

        “기어코 위를 향하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너를 죽이지 않아도 되니 상관이 있지. 오늘은 경고 차 찾아온 거다.”

       

        마법사의 손이 올라감과 동시에 마법이 발현됐다.

        빛줄기는 조금 전까지 마리엘이 서 있던 자리를 꿰뚫으며 나무에 작은 구멍을 만들었다.

        뒤쪽의 초목들이 쓰러지며 짙게 끼어 있던 안개가 약간이나마 걷힐 위력이었다.

        그러나 목표였던 어깻죽지에 같은 크기의 구멍은 뚫리지 않았다.

       

        “피했나. 반사신경으로 반응할 수 있는 속도는 아니었는데.”

        “한 번 맞았어요. 이후에 피했을 뿐.”

        “뭐?”

       

        마리엘은 앞섬에 가려진 자신의 가슴께로 슬쩍 시선을 옮겼다.

       

        되돌아왔다.

        몸 안에 깃든 파편이 두 번째 기회를 하사했음을, 조금 전 또렷한 기억으로 깨달았다.

       

        “저는 원칙을 지켰어요. 당신들을 보고 도망치지 않은 그 순간부터.”

        “…….”

        “따라서 기습에는 면역인 것이에요. 꺾이지 않는다면 절대 부러지지 않는 게 바로 홀크로프트니까.”

        “그렇군. 이래도 꺾이지 않는다는 뜻인가?”

        “네? 꺄악!?”

       

        이번에는 미증유의 힘이 위로부터 마리엘을 덮쳐왔다.

        절대 피할 수 없도록 공간 전체가 마법의 시전 범위 내에 들어왔기에 그대로 고꾸라질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 짓눌린 채 흙먼지를 뒤집어 쓰면서도 그녀는 마법사들의 정체를 유추하기 위해서만 온 신경을 쏟았다.

        어차피 이 자리에서 죽지 않을 거라는 건 스스로 잘 알았다.

        어느 학파를 불문하고 마탑 내에서 마법사가 수습생을 죽인다는 건 미치지 않고서야 벌일 수 없는 일이니까.

       

        동기들로부터 따돌림 당하는 것도 괜찮다.

        조별과제에서 홀로 남겨지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기숙사에서 가장 안 좋은 방을 배정받은 것도, 탑을 오르지 못하도록 방해받는 것도 상관 없었다.

       

        ‘그래도 이런 굴욕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에요……!’

       

        그때, 중력에 짓눌려 바닥을 기던 마리엘에게 바닥에 떨어진 위치노트가 눈에 들어왔다.

       

        ====

        관리자 : 진짜 갔나?

        관리자 : 똑똑

        관리자 : 똑똑똑

        관리자 : 탕

        관리자 : 수

        관리자 : 육

        관리자 : 탕!

        관리자 : 수

        관리자 : 육

        관리자 : 탕!

        .

        .

        .

        ====

       

        대답이 없으면 어련히 바쁜가보다 할 것이지 주딱은 이상한 게임을 만들어 혼자 즐기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 정도 굴욕쯤이야 그에게 당한 것에 비하면 참을만 하다는 생각이 드는 메시지였다.

       

        “괴롭겠지? 올라오면 더욱 괴로울 거다.”

        “……님, 슬슬 가셔야 합니다.”

        “벌써?”

        “예, 아무래도 밖에서…….”

        “잠깐, 지금 뭐하는 거지?”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최신으로 도착한 메시지를 두 눈으로 확인한 마리엘은.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도 기어이 상반신을 일으키고야 말았다.

        이곳에 없는 존재인 그가, 마치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

        .

        .

        .

        — 관리자 : 마리엘

        — 관리자 : 당신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저는 제 이름을 걸고 당신이 탑에 올라가는 것을 도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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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도 말해준 적 없는 그녀의 이름을 자연스레 부르며.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자신의 이름을 건 그가 도와줄 것이라는 약속을 들었을 때.

       

        홀린 것처럼 내뻗은 손가락이 승낙 버튼을 눌렀다.

       

        “피해! 뭔가 온다!!”

        “어? 이런 미친……!”

       

        그 순간, 하늘에서 날아온 한 자루의 창이 마리엘과 마법사들 사이로 떨어졌다.

       

       

       

        *

       

        콰아아아앙!!

       

        ‘설마 같이 맞진 않았겠지?’

       

        나는 폭음과 명멸하는 빛이 잦아드는 것을 보며 슬슬 걸음을 옮겼다.

        투창은 장기이지만, 이런 안개 낀 숲에서 척후의 유도도 후방의 지원도 없이 냅다 던진 것이었기에 약간 불안했다.

        일단 위치노트로 확인한 바로는 그녀를 습격한 마법사들은 창이 떨어지자 곧바로 도망친 듯했다.

        유일하게 움직이지 않는 건 마리엘의 노트 뿐이었다.

       

        “히꺅? 과, 관리인!?”

        “여기 계셨군요.”

       

        다행히 쓰러진 나무들 사이를 헤집고 창이 꽂힌 자리에 도착하자 새된 비명이 나를 반겨 주었다.

        나뭇가지에 걸린 옷이 여기저기 찢기고 머리칼은 산발이 되었지만 어쨌거나 무사해 보였다.

       

        “서, 설마 당신이……?”

        “이거요? 아뇨, 전 그냥 갤러리에 적힌 글을 보고 찾아온 것뿐입니다.”

        “개, 갤러리?”

        “네, 의뢰 게시판에서요. 어둠의 숲에 마리엘 님이 있으니 찾아달라는 게시글이 올라왔었거든요.”

       

        나는 주저앉은 마리엘을 지나쳐 지면에 꽂힌 채 고열을 내뿜는 창을 회수했다.

        그리고 멍한 표정으로 창과 나를 번갈아보던 그녀에게 위치노트를 펼쳐 갤러리에 적어놓은 글을 보여 주었다.

        후일 창을 던진 게 나라는 사실을 알아 차리더라도 그걸 곧바로 주딱의 정체와 연결짓기는 어렵겠지.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 영리한 자는 굴을 여러 개 파 놓는 법이었다.

       

        “어두워서 잘 안 보이는 것이에요. 다크모드를 끄고…….”

        “그럼 나중에 본인 걸로 직접 확인해보시고, 우선 빨리 나갑시다.”

       

        오는 동안 다크모드를 켜서 1층의 불을 모두 꺼버렸기에 원탁회의 지침에 따라 치안대가 수습생들을 대피시키는 중이었다.

        조금 있으면 소란이 일어난 이곳에도 관심이 쏠릴 테니 빠르게 벗어나는 편이 좋았다.

        그런데 마리엘은 좀 처럼 몸을 일으키지 못한 채 자신의 발목을 바라보며 입술만 깨물고 있었다.

       

        간악한 마법사 놈들.

        어떻게 사람이 걷지도 못할 정도로 끔찍한 부상을…….

       

        “그 창이 날아올 때 다친 것이어요.”

        “…….”

        “하는 수 없으니 관리인이 저를 업고 가는 것이에요.”

       

        얌전히 업었다. 

        거 봐, 이래서 무턱대고 던지면 안 된다니까.

       

        숲을 빠져나오는 동안 마리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한 손으로 줄곧 위치노트를 만지는 것으로 말미암아 벌써부터 파딱의 권력을 과시하기 시작한 듯했다.

        기껏 파놓은 아이디 두 개가 속절 없이 날아가겠군.

        아니면 아까 탕수육 게임을 하던 것에 대한 복수로 내게 엄청난 전술핵을 난사하고 있을 수도.

        벌써부터 메시지를 확인하기가 두려워졌다.

       

        “……그래도 관리인은 절 찾으러 와줬네요.”

       

        그러나 숲의 끝자락에 다다라 대광장으로 연결되는 포탈이 보였을 때.

        나는 그녀가 갤러리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 많은 게시물 중에, 하나를 보고.”

       

        죄책감을 한 스푼 끼얹은 부드러운 감촉이 등 뒤에서 느껴졌다.

        포탈을 통과하자 고요에 휩싸인 대광장과 그 중앙에 서 있는 전지의 비석이 보였다.

       

       

       

        *

       

        “여기서부터 기숙사까지는 혼자 가실 수 있죠? 메릴랜드 관은 동쪽 회랑만 쭉 따라가면 나옵니다.”

        “관리인은요?”

        “여기서 좀 더 기다려야죠. 연금술 강의를 들은 다른 생도들이 뒤늦게 나올지도 모르니까요.”

       

        거짓말이었다.

        어둠의 숲에 남은 수습생이 있다 한들 기숙사 사감이 그들을 데려올 의무는 없다.

        내 목적은 이 곳에 오직 혼자만 남는 것이었다.

        전지의 비석에 이름을 새기고, 탑에 오르고자 하는 비원을 말하기 위해서.

       

        “마리엘 님?”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듣는 것이에요.”

       

        그러나 마리엘은 부기가 빠지기 시작한 발로 걷는 대신 곧장 두 팔로 나를 밀쳐왔다.

       

        “일전에 제가 비석 앞에서 거짓을 고하면 어떻게 되는지 물은 적이 있었죠. 그건 제가 탑을 오르고자 하는 이유가 남들에겐 절대로 들려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어요.”

       

        돌이켜 보면 그녀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동기들을 먼저 보내고 1층에 머물러 있는 유일한 수습생이었다.

        지금처럼 대광장이 텅 비는 날은 앞으로 5년을 기다려도 오지 않을 터.

        어둠 속에서도 또렷한 금빛 눈동자에는 강한 열망과 일말의 회한이 담겨 있었다.

       

        “홀크로프트는 대대로 제국에 충성을 다해 왔어요. 명계의 왕이 이끄는 군세를 상대로 북부를 지켜내고 그들이 갖고 있던 신비의 파편까지 안전하게 봉인했어요.”

        “그렇습니까?”

        “당연하죠! 하지만 황실은 저희를 속였어요. 제 아버지가 논공행상에서 만난 4황자의 저택에 초대받았을 때, 약혼녀는 이미 죽은 상태였고 가문은 의문의 침입자들에 의해 쑥대밭이 된 상태였어요. 그러나 당시 근위대장이었던 한스 대령은 조사 위원회에서 거짓 증언을…….”

       

        나는 비석에 등을 기댄 채 어디로 손을 내려도 닿을 법한 마리엘의 가슴을 피해 조심스레 위치 노트를 꺼내었다.

        두 명이 동시에 갤 관리를 안 하고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안 됐으니까.

        다행히 갤러리는 평화로웠고, 정전 이야기만 가득했다.

        때마침 시엔에게서 도착한 한 발 늦은 관리자 권한 요청을 거부한 뒤, 다시 주머니에 노트를 집어넣었다.

       

        “제 말 듣고 있나요 관리인?”

        “아, 죄송합니다 중요한 연락이 와서. 뭐라고 하셨죠?”

        “당신을 죽일 것이에요.”

       

        못 들은 사이에 내용이 좀 많이 비약되지 않았어?

       

        “저는 저희 가문을 무너뜨리고 마탑에 들어온 4황자를 죽이기 위해 이곳에 찾아왔어요. 그게 누구도 들어서는 안 될 제 비원이자 목표여요.”

       

        당황한 나를 두고 마리엘은 비석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마력을 발현시켜 이름을 새기기 시작했다.

       

        “만일 그 사실을 당신이 누군가에게 말하려 한다면 저는 그 전에 당신 앞에 이렇게 서 있을 것이에요.”

        “어떻게 말입니까?”

        “제가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지금은 기습을 막는 게 고작이지만 이 탑을 올라가는 동안 점점 강해질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건 협박이어요.”

       

        ‘원칙의 시계탑’.

        그것을 마리엘은 조건부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라 설명했다.

        과연, 모든 시간 조작 마법은 금술로 취급받는 만큼 뛰어난 능력임이 분명했다.

        그녀의 응답을 받은 비석 역시 찬란한 빛줄기를 위로 뿜어내고 있었다.

       

        수십 갈래로 흩어져 올라가던 금빛의 섬광은 네 갈래로 뭉치더니, 이내 58번째 빗금을 끝으로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자신이 1층을 통과했음을 확인한 마리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끝이어요. 당신이 저를 원망하든 두려워하든, 제 선택에 따른 운명은 결정된 것이니까.”

        “……딱히 그렇진 않습니다.”

       

        일반적으론 황실 모독죄로 그녀를 신고했겠지만, 이방인인 내게 딱히 제국에의 충성심 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더욱 파딱에 어울리는 인재라 생각했을 뿐.

        기습을 당한 순간 과거로 회귀한다면, 전술핵을 미리 막을 수도 있다는 뜻 아닌가?

        갤러리의 자동방어 시스템을 구축할 날이 머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뭐,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4황자가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58층보다 위에 있진 않겠죠.”

        “진심인가요……?”

        “그보다 잠깐 비켜주실래요? 저도 이름은 새겨야 하니까.”

        “네? 아…….”

       

        나는 마리엘을 옆에 두고 비석에 손을 올렸다.

        이쪽도 언제 사람이 나타날 지 모르는 상황에 멍하니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다음 기회를 노릴 수도 있겠지만, 치안대가 언제까지 이런 소란에 사람들을 대피시켜 줄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그리고 나의 비원은 고작 그녀 한 사람이 듣는다고 포기할 만한 게 아니었다.

       

        “저는 이 마탑을 무너뜨릴 생각입니다.”

        “네……?”

       

        빛이 올라갔다.

        단 한 줄기만이.

        어둠 속에서도 더욱 칠흑같은 색으로 반짝이며 하늘을 향해 솟은 탑주의 석비를 반으로 쪼갤 듯이 승천했다.

       5년간의 기다림은 한 순간에 끝났다.

       

       “지, 지금 뭐라고…….”

        “오직 그걸 위해 여기에 왔어요.”

       

        불이 꺼진 탓에 그 끝은 보이지 않았지만, 겨우 그 사실이 중요하진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크리스마스라서…. 는 아니고 공들인 파트라 꼼꼼하게 확인하느라 늦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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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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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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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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