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1

        

         

       “대모 캐피탈, 삼본 머니.”

         

       소위 사채(私債), 혹은 대부업(貸付業)으로 불리는 곳이었다.

         

       진성은 건물의 2, 3층을 뱀처럼 휘감고 있는 황금 연기를 보며 웃었다.

         

       “사채는 돈이 많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채는 돈이 많다.

       사람들의 인식으로는 깡패나 일수꾼이 허름하게 입고 다니며 수금하는 이미지 때문에 돈이 얼마나 많은지 잘 모르는데, 이 사채업자라는 족속들은 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교묘하게 노는 경우가 많으므로 비자금이니 금괴니 하는 것들을 비축해두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수틀리면 도망쳐야 하는 일이 많기에 부피가 작으면서도 비싼 물품들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았고.

         

       “하지만 사채는 돈이 없다.”

         

       하지만 모순이 있다.

       사채업자를 털어도 돈이 안 된다는 것.

       이 사채업자라는 족속들은 자신이 황금 고블린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꽤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는 능력자가 강도질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어디를 터는 게 가장 좋을까?

         

       가정집?

       털어봐야 의미가 없다.

       뒤져봐야 나오는 건 푼돈이랑 결혼 예물 수준이 끝이니까. 그나마도 예물은 처리가 힘들어서 암시장에 팔거나 묵혀둬야 하는데 그러면 손에 쥐는 건 얼마 남지도 않는다.

         

       부잣집?

       이곳 역시 수지가 맞지 않는다.

       부잣집에는 당연히 비자금이나 비상금 같은 것이 있고 그것을 만지면 짭짤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반드시 후환이 뒤따른다.

       부자라는 족속들은 자신의 손해나 체면이 손상되는 것을 싫어하다 못해 증오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말이다.

         

       은행?

       영화 같은 곳에서 자주 등장하는 돈이 많은 장소.

       마치 고정관념처럼 강도 = 은행이라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혀있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는 최악의 선택이다.

       강한 능력자들이 상주하고 있는 데다가 강도가 난리를 피우는 즉시 온갖 수단을 통해 경찰서에 바로 연락이 간다. 그리고 경찰은 순식간에 중무장하고 은행을 포위하고 특수부대를 투입해 강도들을 모조리 공격한다.

       거기에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만약 능력이 엄청나게 좋아서 돈을 털었다고 가정해보자. 그 돈을 펑펑 쓸 수 있을 것 같은가?

         

       돈을 빼앗긴 즉시 추적에 들어간다.

       마법과 과학, 주술….

       그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추적해 반드시 강도를 잡아낸다. 잡아내지 못한다면 단 한 푼도 쓰지 못하게 만든다.

       신용 화폐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광기에 다다른 수준.

       대부분은 이 광기를 감당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디가 가장 좋을까?

         

       가정집도, 부잣집도, 은행도 아닌 어디를 털어야 할까?

         

       털면 돈이 화수분처럼 나오고, 강한 능력자도 없으며, 털어도 뒤끝이 없는 데다가, 공권력을 이용한 추적을 못 하는 곳이 어디일까? 거기에 덤으로 털어서 욕을 먹기보다는 사람들의 환호까지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곳이 어디일까?

         

       ‘사채업자.’

         

       강한 능력자들이나 흉악 범죄자들의 관점에서 이 사채업자라는 족속들은 정말 우스운 놈들이었다.

         

       사람들은 사채업자의 이미지를 흉악 범죄자쯤으로 여기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 정도로 여기는 놈들은 사채업자 노릇을 하지 않는다. 진짜 흉악 범죄로 분류되는 살인, 납치, 마약, 폭력 조직 쪽으로 빠진다. 그것도 아니면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용병이나 경호원 쪽으로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래서 용병계에는 온갖 미친놈들이 가득했었지. 참으로 끔찍한 일이도다.’

         

       자신을 그나마 상식적인 사람이라 생각하는 진성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미친놈들이 가득했으니 그야말로 마경(魔境)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런 마경을 보아온 진성으로선 사채업자는 잔챙이 중의 잔챙이.

       다르게 표현하자면 양아치 집단 수준의 존재였다.

         

       자기들이 깡패니 건달이니 조직이니 해봤자 약한 사람 등쳐먹기나 하는 놈들 아닌가.

       당연히 피가 튀기고 시체가 널려있는 범죄계에서 살아가던 흉악 범죄자나 세력 싸움을 하는 능력자들 처지에서는 사채업자가 정말 우습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사채업자들도 자신이 그렇게 보인다는 것을 알기에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해왔다. 복어가 몸집을 불리듯이 사방을 위협하면서 자신을 무섭게 보이게 하려고 노력하던가, 돈으로 강한 능력자를 구매해서 수족처럼 이용하려고 한다거나….

       

        하지만 그래 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벌이 매섭게 난리를 친다고 해서 곰이 꿀통을 그냥 지나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무섭게 보이려고 해도 진짜 무서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고양이가 털을 바짝 세워봤자 맹수가 보기에는 재롱 수준으로 보이는 것과 같다. 진짜 범죄 조직의 입장에서는 웬 양아치 놈들이 땍땍거리는 것으로밖에 안 보였고, 강한 능력자로선 한주먹거리도 안되는 벌레들이 웬 지랄을 하냐는 감상밖에 들지 않았으니까.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능력자는 마찬가지로 돈을 노리는 능력자의 선에서 정리할 수 있었다. 세상에 돈의 망자는 많고, 진성과 같은 이유로 돈을 구하고 다니는 강한 능력자도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사채업자는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수많은 수단을 취했고, 그들이 선택한 것은 두 가지였다.

         

       자신을 지켜줄 뒷배.

       안전하고 튼튼한 금고.

         

       그리고 이 생존 수단은 꽤 효과를 보여서 사채업자들이 멀쩡히 현대까지 존속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니 이 양아치들을 싹 다 죽이고 물건을 털라는 것은 아닐 터….’

         

       점괘라는 것은 신묘하면서도 중의적이기 짝이 없어 그 뜻을 쉬이 짐작하기 힘들다.

         

       타로, 점성술, 거북이 등껍질, 트럼프 카드, 윷, 산가지….

       점을 볼 수 있는 도구는 수없이 많지만, 그들 모두 미래를 알려줄지언정 명확하게 알려주진 않는다. 그것은 미래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가변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으면서 수없이 많은 확률과 조건 속에 노출되어 결정되기 때문이다.

         

       진성이 만든 길잡이 주물(呪物) 역시 그의 물음에 답해 길을 인도하기는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 때문에 필요한 것은….

         

       ‘인내.’

         

       진성은 눈을 감고 몸을 수그렸다.

       허리를 굽히고, 손이 바닥에 닿을 듯 구부린다.

       등이 뒤로 툭 튀어나오도록.

       몸은 비정상적으로 앞으로 내민다.

       오금은 철근이 휘어지듯 서서히 구부려지고, 정돈된 머리는 헝클어뜨린다.

         

       “생명에 내려앉는 서리여.”

         

       뿌드득!

         

       그리고 그 형태가 마치 꼽추처럼 되었을 때, 그의 온몸에 회백색 곰팡이가 끼기 시작했다. 목부터 시작해 몸으로 뿌리를 넓히듯 퍼져나가는 그것은 어쩐지 코를 자극하는 짓이겨진 풀 내음을 풍겼다.

         

       곰팡이는 추운 날 서리가 내려앉듯이 그의 온몸을 뒤덮으며 그 세를 넓혀갔다.

       햇빛을 받지 못해 하얗던 그의 피부는 기분 나쁠 정도로 하얀, 마치 밀랍 인형이나 시체를 떠올리게 만드는 피부의 색으로 변해간다. 생기가 넘치던 그 빛깔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콘크리트 반죽을 퍼 올려 피부와 섞어버린 듯한 끔찍한 모습으로 변한다.

         

       뿌드득!

         

       그의 몸을 뒤덮은 곰팡이의 무기질적인 색처럼 그 성질 역시도 색을 따라간다.

       돌과 닮은 곰팡이의 그물은 마치 석고 틀처럼 이미 잡은 자세를 유지하도록 그의 몸을 그대로 구속했다.

       튀어나온 등은 그대로 튀어나오도록, 구부린 무릎은 그대로 구부러지도록.

         

       그렇게 진성은 순식간에 단신(短身)의 꼽추가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진성은 다시 입을 열었다.

         

       “닮은 것은 닮은 것을 낳으리라.”

         

       동종주술(同種呪術).

       비슷한 것은 비슷한 것을 낳으리라.

       닮은 것은 닮은 것에 가까워지리라.

       결과는 원인을 닮고, 원인은 결과가 되리라.

         

       “내려앉은 서리. 몸을 뒤덮은 색.”

         

       고대부터 인간은 자연을 모방해왔다.

         

       번데기를 모방해 침낭을 만들었다.

       새를 모방해 비행기를 만들었다.

       짐승의 송곳니를 모방해 칼을 만들었다.

       굴을 모방해 집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을 모방해 몸에 다른 색을 둘렀는가?

       돌과 같은 무언가는, 어찌 사람을 감았는가?

         

       “돌이 되어라.”

         

       몸을 감은 회백색은 돌을 닮았다.

       그리하여 돌이 되었다.

         

       “돌은 단단하다.”

         

       돌은 단단한 것을 닮았으니, 단단한 무언가로 탈바꿈할 수 있으리라.

       그리하여 회색은 검은색이 되었다.

         

       “단단한 것을 두른 것은 벌레와 같다.”

         

       단단한 것을 몸에 두르고 다니는 것은 벌레.

       장수풍뎅이, 지네, 바퀴벌레.

       외골격을 지니고 마음대로 세상을 누비는 존재들.

         

       그리하여 석상에는 이음새가 생기고, 틈이 생긴다.

         

       “벌레가 두른 것은 갑옷이니, 갑옷이 되어라.”

         

       인간은 외골격을 두르고 다니는 벌레를 모방해 갑옷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진성은 갑옷을 두른 인간이 되었다.

         

       닮은 것은 닮은 것을 닮는다.

       하얀 곰팡이를 두른 사람은 갑옷을 입은 인간이 되었다.

         

       벌레에 기생하는 곰팡이, 벌레를 모방한 인간.

         

       “크-흐.”

         

       진성은 웃었다.

       벌레를 닮은 검은 가면을 쓰고 웃었다.

         

         

         

        * * *

         

         

         

         

       “아잇 씨팔, 존나 재수 없는 날이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Q. 대부업체는 돈 빌리는 곳 아닌가요?
    A. ?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