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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0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정오, 황금빛 햇살이 내리쬐는 연구소 안뜰에는 양천구 호수를 작게 만들어서 옮겨놓은 것 같은 작은 수영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황금 사신이들이 잔뜩 모여서 놀고 있는 그 작은 수영장은 조용하면서도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황금 사신이는 소리를 내지 않으니까 조용했지만, 즐거운 얼굴과 표정만 봐도 들리지 않는 활기차고 소란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서아는 서류를 정리하다가 한숨 돌리고 싶어질 때면, 부소장실을 나가서 안뜰을 구경할 수 있는 유리 통로를 거닐며 그 모습을 구경하곤 했다.

    황금 사신이가 첨벙거리는 물소리와 미니 히드라가 하늘 위로 물을 뿜어내는 소리.

    수영장에서 물을 튀기며 노는 황금 사신이의 모습과 히드라가 뿜어낸 물줄기를 타고 하늘 높이 떠오르는 모습.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마음이 충족되는 광경이었다.

    “와, 귀여워.”

    “회색 사신은 없는 건가? 보고 싶었는데.”

    방문자 허가증을 목에 걸고 있는 방문자들이 황금 사신이의 모습을 보면서 감탄했다.

    이 유리 통로는 연구소 견학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마련된 통로였는데, 한산하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견학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양천구 호수 사건 이후로 연구소 견학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얼마나 늘었느냐 하면, 몇몇 돈 많은 연구소나 대기업 산하 연구소만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정부 보조금으로부터의 독립이 가능할 정도였다.

    흑자가 엄청나게 늘어서 그런지, 이세희 연구소장은 요즘 언제나 싱글벙글했다.

    탁탁.

    유리에 뭔가가 달라붙는 소리가 통로 내부를 울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황금 사신 몇몇이 유리 통로의 벽에 달라붙어 있었다.

    내부가 보이지 않는 매직미러가 신기한지, 황금 사신이들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유리 벽에 밀착하고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안을 보려고 하는 황금 사신이.

    밀착된 뺨은 유리에 눌려서 약간 재미있는 표정이 되어있었다.

    귀엽고 호기심 가득한 얼굴과 밝은 햇살이 어우러진 이 모습은 안뜰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카메라를 꺼내서 사진을 찍게 만드는 매력을 뿜어냈다.

    찰칵.

    서아도 실험복 주머니에 대충 넣어둔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사진으로 봐도 귀여운 볼이 찐빵처럼 보이는 사진이었다.

    서류 작업으로 지친 마음이 상쾌해진 서아는 부소장실을 향해서 조금은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온갖 첨단 기기와 모니터, 첨단 기구들이 가득한 관측실에서 제임스와 오브젝트 협회의 사람들이 하늘 위로 날아가는 카메라가 보내주는 데이터에 집중하고 있었다.

    미국 오브젝트 협회에서는 최근 들어 갑자기 관측되기 시작한 ‘작은 달들’을 조사하기 위해서 카메라를 하늘로 쏘아 보내기로 했다.

    이 ‘미니 달 관측 계획’의 시작은 우주 정거장에서는 ‘붉은 달’이 관측되지 않는다는 정보를 얻은 뒤부터였다.

    화면과 깜빡이는 콘솔이 즐비한 가운데 천문학자와 오브젝트 전문가로 구성된 팀이 모여 카메라에서 전송되는 실시간 데이터에 집중하고 있었다.

    팀원 중 한 명이 감정이 절제된 목소리로 담담히 말했다.

    “해발 약 100km 지점을 돌파. 현재 붉은 달, 푸른 달 모두 관측되지 않습니다.”

    로켓이 쏘아진 뒤, 집중으로 인해 침묵만이 가득했던 관측실에 파문이 일었다.

    조용한 대화가 이어지고 더 면밀한 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전 지구 규모의 홀로그램? 허상? 질량을 가진 실체가 갑자기 나타난 것보다는 현실적이지만 여전히 오브젝트가 벌이는 일은 터무니없군.”

    제임스는 허탈한 심정을 말로 내뱉으며 관측실을 조용히 나섰다.

    그런 제임스의 뒤를 따라붙듯이 나선 남자가 관측실 앞 복도에서 제임스를 붙잡았다.

    “제임스, 잠깐.”

    “갑자기 무슨 일이지?”

    비전문가인 제임스 자신은 슬슬 빠져야 할 때라고 생각해서 나온 것인데, 갑자기 따라붙다니? 

    제임스는 의아한 표정으로 남자를 돌아봤다. 

    “한국을 또 방문할 생각이라면서? 이번에도 0호 유물을 가지고 나간다고 신고했던데, 그런 위험한 국가는 되도록 피하는 편이 좋지 않겠나?”

    “위험하지. 엄청 위험하긴 해. 그래도 갈 수밖에 없어.”

    제임스는 가방에서 꺼낸 얄팍한 보고서를 흔들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보고서의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The Predestined End.>

    “너도 이 보고서는 봤을 거 아니야.”

    제임스가 언급한 보고서는 <예정된 종말.>이라는 제목에 걸맞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인류가 언제 멸망하게 될지, 여러 가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예측한 보고서였다.

    그리고 이 보고서의 예측은 지금까지 틀린 적이 없었다.

    인류는 천천히 멸망해 가고 있었다.

    제임스는 보고서를 다시 가방 속에 집어넣더니, 말을 이었다.

    “인류 멸망이라는 결말을 피하기 위해선 해볼 수 있는 일은 다 해봐야지. 특히 회색 사신이야말로 ‘예정된 종말’을 막을 유일한 길이야. 확실해.”

    “…. 그래도 조심해. 제임스.”

    “그래, 무사히 돌아올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고.”

    제임스는 손을 대충 흔들어 주면서 길을 떠났다.

    ***

    안락한 격리실에서 늘 함께하는 TV 광고 소리가 울려 퍼지자, 그 소리는 약간 거슬리기는 하지만 활기찬 에너지로 공간을 가득 채웠다.

    “사신아, 아 해봐.”

    부드럽고 포근한 이불 속에 누워있으면, 예린이가 귤을 뜯어서 입에 넣어줬다.

    잠이 올 것 같은 따뜻하고 폭신폭신한 이불, 약간 소란스러운 TV 소리.

    그 두 가지의 부드러운 대조가 정말 만족스러웠다.

    거기에 선명한 주황색을 띠는 귤은 차분한 분위기의 공간에 자극을 더해줬다.

    새콤한 과즙이 가득한 귤은 감각을 일깨워 주는 기분 좋은 간식이었다.

    아 역시, 집이 최고야.

    양천구 호수에서 있었던 ‘푸른 달 대모험’도 꽤 재미있었지만, 모험은 역시 재미와 피로를 엮어서 만든 양면 동전 같은 녀석이니까 말이다.

    멋진 풍경과 히드라 워터 파크 같은 어트랙션은 재미있는 앞면.

    푸른 달을 없애려고 골머리를 앓는 것은 피곤한 뒷면.

    역시 앞뒤가 없는 안락한 격리실이 좋아.

    물론 이러다가도 금세 나가서 놀고 싶어지는 점이 신기하긴 했다.

    “아, 맞다.”

    예린이가 뭔가 깜빡했다는 듯이 가방을 뒤적이더니, 잘 포장된 서류를 꺼내 들었다.

    <오브젝트 임시 대여/이관 신청서.>라고 적혀 있는 서류였다.

    “트리니티 연구소에서 사신이를 일주일 정도만 빌려달라는 신청이 왔었어. 당연히 안 갈 거지?”

    별로 가고 싶지 않네. 

    중앙 연구소보다 재미없어 보여.

    나는 관심 없다는 의견 표시로 보고서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돌렸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사신이는 세희 연구소에서 계속 같이 있자!”

    예린은 내 볼에 자기 볼을 맞대면서 꾹 껴안았다.

    그러자, 예린의 몸에서 매우 미약한 악취가 느껴졌다.

    사막에서도, 호수에서도 느꼈던 그 사악한 냄새.

    예린이가 들고 있던 서류를 낚아채자. 

    더욱 확실히 느껴지는 악취.

    설마 트리니티가 그것들의 원흉인가?

    “사신아? 거기 갈려고?”

    예린이가 약간 우울해 보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세희 언니한테 사신이가 관심을 보인다고 말해둘게.”

    굉장히 슬픈 얼굴로 주섬주섬 서류를 챙겨 넣는 예린이.

    하지만, 인류에 해로워 보이는 녀석들을 발견하고도 내버려 둘 수는 없지.

    ***

    도심과 외곽의 특징이 조화를 이루는 관악구 변두리에 트리니티 제3 연구소의 웅장한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국 최고의 연구소라는 명성에 걸맞게 위풍당당한 건축물은 주변 풍경에 녹아들지 않고, 그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그 트리니티 연구소 내부, 정밀한 공조 장치의 미묘한 윙윙거리는 소리와 희미하게 풍기는 석유 냄새가 가득한 방에서 제3 연구소장이 차분한 표정으로 보고를 듣고 있었다.

    “세희 연구소 측에서 대여 요청을 수락했습니다. 일주일 뒤, 이관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그래, 다행이군. 거부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연구소장은 실험복을 입은 여성이 넘겨준 자료를 천천히 넘기며 읽어보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는 정말 완벽하군. 완벽해.”

    흡족한 표정으로 종이를 넘기던 소장은 보고서 마지막 페이지를 보면서 질문을 던졌다.

    “여기 적혀 있는 예측이 꽤 타당해 보이는군. 어떻게 생각하나?”

    “100%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시도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던 소장은 결론을 내렸다.

    “좋아. 자네 말대로 하지. 진행하도록 해.”

    소장은 보고서를 책상 위에 두고는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책상 위에 놓인 보고서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회색 사신의 약점 분석.>

    <인간에 상당히 우호적인 오브젝트이니만큼 주변에 인간을 배치할 경우 행동에 제약받을 것으로 예상됨.>

    <회색 사신 제거 작전 일에 일반 대중을 연구소 내부로 불러들이는 방법이 유효할 것으로 예상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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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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