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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0

    <110 – 선배와의 거래>

     

    일동은 두려움에 빠졌다.

    도대체 무슨 경험을 하면 저리 얄밉게 구는지 모를 2학년과 비교해도 급이 달랐다.

    눈앞의 3학년 선배는 도심 속 연쇄살인마나 숲속의 대량학살자와 마주친 것처럼 근본적인 공포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1학년.”

     

    거칠게 갈라진 목소리로 선배가 입을 열었다.

     

    “상급반.”

     

    지젤이 그의 옷깃의 표식을 보고 학년을 알아차렸듯, 선배 또한 이사벨과 지젤의 옷깃의 표식을 보고 학년을 간파했다.

     

    “세 구.”

     

    이사벨과 지젤, 손오천의 어깨에 짊어진 빨간이빨버섯 세 마리를 눈으로 헤아리고 내뱉는 말에 오크노디를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이 초긴장을 했다.

     

    “줄었으면, 다시 채워야지.”

     

    3학년의 비밀시설에 발을 들인 겁 없는 1학년들이 칸막이 안에 갇히는 잔혹한 상상의 나래가 세 사람의 머릿속에 펼쳐졌다.

    단검부터 뽑아들려는 이사벨의 손을 오크노디가 덥썩 붙잡았다.

     

    “크기는 작아도 되나요?”

    “그 정도는 봐주지.”

    “오크노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사벨은 3학년 선배의 불길한 분위기보다도 오크노디의 발언에 심장이 철령 내려앉았다.

     

    “네가 저길 왜 들어가!!”

    “네?? 제가 저길 왜 들어가요?”

    “우리 중에 한 사람을 대신해서 칸막이에 들어가려고 했잖아!!”

     

    3학년 선배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누굴 잡스러운 사령술사 취급하는 거냐.”

    “저희보고 들어가라는 거 아니었어요…?”

    “빨간이빨버섯.”

    “아…”

     

    가져간 만큼 다시 채워 넣으라는 뜻이구나.

    선배가 고개를 끄덕이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진짜 납치감금살해라도 당하는 줄 알았다.

     

    “언제까지 드리면 되나요?”

    “내 인내심이 허락하는 마지막 날까지.”

     

    지젤도 겨우 안도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너그러운 선배님이시군요. 관대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멋대로 시설에 침입해서 버섯을 훔쳐가려던 점은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우하하! 선배, 너무 무섭게 다니는 거 아니요? 사람도 제물로 바치는 사교도인줄 알았네.”

     

    손오천이 지젤의 말을 거들었다.

    그러나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는 법이다.

     

    “기한이 넘어가면… 너희가 들어간다.”

    “하하. 농담도 섬뜩하시군요.”

     

    선배는 무척이나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농담을 한 적이 없다.”

    “…….”

     

    우리는 굉장히 싸해진 분위기 속에서 조용히 계단을 걸어 나왔다.

     

    “오크노디이이. 그러게 말했잖아. 왜 이런 불길한 곳에 우릴 데려왔냐고오오.”

    “으베에에에. 볼 아파효오오.”

    “아프라고 당기는 거야.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아직도 심장이 쿵쿵 뛴다고.”

     

    나도 좀 놀랐다.

    하필이면 이게 현장에서 들킬 줄이야!

     

    <등가교환 이벤트>

    3학년 선배의 비밀사육장에 침입해서 빨간이빨버섯 시체 세 구를 나르다가 현장에서 발각된 당신들!

    관대한 선배님은 살아있는 빨간이빨버섯 세 기를 가져오면 용서해주겠다고 하셨지만, 그의 인내심이 허락하는 마지막 날이 지나거든 당신들이 그 빈자리에 대신 들어갈지도 모릅니다.

    이 무시무시한 사건의 전말을 학생회에 알리는 것이 나을까요, 교수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나을까요, 아니면 약속을 지키는 것이 나을까요?

     

    돌발이벤트 치고는 참 살벌한 이벤트가 열렸다.

    애초에 미술관부터가 1학년이 자주 들를만한 곳은 아니기에 조금 난이도 있는 이벤트가 뜨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보통이라면 이 장소에 들르는 것은 관련강의를 듣지 않는 이상에는 2학년이 된 이후부터이기 때문이다.

     

    “고맙습니다, 오크노디. 경위야 어찌되었건 덕분에 죽지 않고 무사히 그 사육장에서 살아나왔습니다.”

    “헤헤. 그렇게 칭찬하니 부끄럽네요.”

    “너무 좋아하시니 조금 화가 나지만 아무튼 고맙다는 마음은 진짜입니다. 그런데 아까는 꽤 능숙하게 교섭을 하시더군요. 이런 교섭에 익숙하십니까?”

    “익숙한 것까지는 아니고 그냥 업계 국룰이죠. 안 들키면 조용히 털어도 됐지만 들켰으니 싸울 작정이 아니고서야 재산에 피해를 입힌 만큼은 도로 채워 넣어 줘야죠.”

     

    말하고 보니 문득 생각이 났다.

     

    “혹시 싸우고 싶었던 건가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우리 꼬마숙녀분처럼 저희는 담력이 그리 좋지 못하답니다.”

    “치. 뭐래요. 꼭 사람 이상한 사람 취급하고. 아까는 저도 무서웠거든요?”

     

    지젤이 움찔했다.

    그의 눈에 얼핏 죄책감이 비쳤다.

     

    “죄송합니다. 제가 우리 꼬마숙녀에게 너무 무신경한 말을 했군요.”

    “알면 됐어요. 두 배로 물어주라고 하는 사람도 있어서 긴장했는데 그래도 정가대로만 계산하는 분이니 다행이지 뭐예요. 비닐 값까지 포인트로 물어달라고 하면 진짜 소름 돋을 뻔했는데.”

    “…방금 했던 사과는 취소합니다. 가끔은 무신경해져도 될 것 같습니다.”

    “지젤아저씨 너무해!”

     

    손오천과 이사벨이 편을 들어주길 바랬지만 니가 더 너무하다는 시선에는 정말로 상처받았다.

     

     

    * *

     

     

    “그런 일이 있었는데 말이야. 정말 너무하지 않아?”

    “그러네. 사람들이 암살자 감수성이 없어.”

     

    즈앙과의 사이가 얼마나 친한 사이인지는 가늠이 안 되어서 솔직히 조금 조심스러운 투정이었는데, 예상 외로 투정을 잘 받아주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가 같이 뭘 했더라?

    월요일 수요일 5교시마다 같이 <모험가의 야간행동> 강의를 듣고, 새벽에 <양면띠지의 방>에 놀러가고, <비밀훈련장>에서 만나고 그랬었지.

     

    ‘이 정도면 친해질 만하네!’

     

    친해지기 제일 어려운 캐릭터 1순위에 손꼽히는 동방검객 싱조차도 즈앙만큼 같이 시간을 보내면 호감도가 오를 수밖에 없겠지 싶다.

     

    “그래서 즈앙은 어떻게 연습할거야?”

    “아이린이랑 손잡았어.”

    “북부대공녀 아이린??”

    “걔랑은 아카디아 공녀랑 한 팀으로 조별과제를 했었으니까. 능력이 편리하거든.”

     

    하긴 파티플레이는 주인공이 NPC를 잡아다가 너 내 동료가 되어라! 할 때만 맺어지는 것이 아니다.

    얘들도 사람인데 혼자서 못할 거 같으면 여럿이서 같이 다니기도 하고 그러겠지!

     

    “접착주문으로 내가 버섯을 묶어두면 아이린이 얼리고 그 틈에 내가 해체하는 거야. 포자낭만 잘 피해서 도축하면 요리에 쓸 부위를 확보하긴 쉽거든.”

    “헤에. 꽤 좋은 콤비네!”

    “너야말로 어떻게 할 거야? 빨간이빨버섯을 선배한테 공급하기로 한 거.”

    “지금 하러 갈 건데. 볼래?”

    “정말로?”

     

    즈앙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클래스라면 몰라도 같은 암살자 클래스인걸. 지근거리에서 눈으로 보면 기술을 읽어낼 수도 있는데. 정말 보여줘도 괜찮겠어?”

    “딱히 상관없어!”

     

    즈앙과 아이린의 연계기처럼 그렇게 막 대단한 기술도 아닌걸.

     

    “우선 1단계. 빨간이빨버섯이 있을만한 다른 창고를 찾아다닌다!”

     

    즈앙과 아이린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는지 창고를 찾아다니는 걸로 딱히 놀라지는 않았다.

     

    “앗, 밀수품 저장고네.”

    “포션보관소? 으엣퉤퉤. 포션이 아니라 포션 병에 보관한 밀주잖아.”

    “킁킁. 이불이 많이 깔려있고 이상한 냄새가 나는데, 버섯은 없는 것 같아!”

     

    [선배들의 밀수품 저장고를 찾았습니다.]

    [탐색 경험치+3]

     

    [선배들의 밀주보관소를 찾았습니다.]

    [탐색 경험치+3]

     

    [선배들의 은밀한 핫플레이스를 찾았습니다.]

    [탐색 경험치+3]

     

    잠자코 따라다니던 즈앙이 재밌어했다.

     

    “뭘 그리 자꾸 찾아대?”

    “2학년 선배들이 숨기는 주문이나 장소가 다 거기서 거기인걸!”

    “기가 막혀 정말. 그래서 빨간이빨버섯은 어느 세월에 찾으려고?”

    “응? 이미 찾은 거나 다름없잖아.”

    “뭐?”

     

    밀수품 저장고와 밀주보관소에서 가져온 밀수품과 밀주를 들고 지나가던 2학년 선배를 불렀다.

     

    “선배님!”

    “응? 이 목소리는… 으엑. 오크노디.”

     

    안목키우기 강의에서 매번 얼굴을 보는 빅스톤, 리즈나, 모스 선배 중 가장 멍청하고 만만한 선배인 빅스톤과 마주쳤다.

     

    “기출문제집을 달라고 해봤자 소용없어. 너처럼 똑똑한 애한테 안목키우기 강의 기출문제를 줬다간 학점경쟁에서 질 테니까 절대로 안 팔아.”

    “기출문제집 말고 빨간이빨버섯을 모아둔 창고가 알고 싶은데, 정보교환 하지 않으실래요?”

    “하. 어린놈이 발랑 까져가지고는. 벌써부터 마나양식에 눈독 들였냐? 그거 학생회에 걸리면 벌점폭탄으로 맞고 학생회 강제의뢰에 끌려 다닌다.”

     

    즈앙은 강제의뢰에 대해 듣고 싶은 눈치였지만 이미 다 아는 내용을 정보료 받아가면서 듣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나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봐요. 거래물자도 가져왔어요!”

    “이건… <연금술을 배워보자> 강의에서 도난당한 2000ml 비커에 1000ml 증류 플라스크랑 여과기잖아. 비커에 든 그건 또 밀주라고?”

    “넹!”

    “오크노디. 솔직히 말해.”

     

    빅스톤 선배가 주변을 슬쩍 둘러보더니 고개를 바짝 가져다대며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 브론즈 교수처럼 밖에서 도적 짓 하다가 왔지?”

    ”아니거든요!“

     

    이게 누굴 사람 도둑 취급 해!

     

    “사기 싫으면 말로 하세요.”

    “아니, 누가 싫댔냐? 고맙다는 거지. 안 그래도 양식장 차리는 놈들 아니꼽지만 학생회에 꼰지르면 내 신변이 들킬까봐 사린 곳이 하나 있는데. 거기랑 교환할래?”

    “…오크노디. 거기서 또 들키면 그때 가서 또 거래하고 다니려고? 그냥 빨간이빨버섯 세 마리만 구해달라고 하지.”

     

    지난번에야 다 같이 다니느라 들킨 거지, 혼자였으면 <숨기>로 얼마든지 완전범죄를 저지를 자신 있다.

     

    “그렇다네요.”

     

    그래도 친구가 걱정하는데 무리할 순 없지!

     

    “오냐. 세 마리쯤이야 바로 구해주마.”

    “대신 밀수품창고랑 밀주보관소 중에 한 곳만 알려드릴 거예요.”

    “그럼 밀주로.”

    “빅스톤 선배님은 저번에 연금술 강의 듣다가 거짓말을 못하는 부작용에 걸리지 않으셨어요? 교수님한테 도난품 갖다주면 좋아하실 것 같은데.”

    “연금술 교수님은 말 잘못 걸었다가 랩실 들어갈까봐 무서워. 3학년 선배들은 정신각성포션 마셔가면서 잠도 못자고 일하는데 가끔 눈 마주치면 진짜 소름끼친다니깐?”

    “그럴 수도 있죠!”

    “니가 뭘 몰라서 그래. 사람이 폐인이 되어가지고 눈깔도 이상하게 번들거리고, 어두운 곳에서도 눈이 막 형광색으로 번쩍거리고 그런다니깐?”

    “앗. 눈 반짝거리는 그거 저 나중에 살 건데.”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힌 빅스톤.

    그틈에 즈앙도 한소리 했다.

     

    “선배는 심약하시네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원래 하루에 한 시간만 자고도 활동하는데.”

    “너희 같은 사람이 뭐하는 사람인데…?”

     

    즈앙이 소매에서 단검 하나를 꺼내 빙그르르 돌리다가 슈슉 하고 던졌다.

    팔랑거리며 지나가던 나방이 벽에 꽂혀 죽는 모습에 빅스톤 선배의 혈색이 부쩍 안좋아졌다.

     

    “이런 사람?”

     

    빅스톤의 말수가 급격히 줄었다.

    어디서 지 같은 걸 하나 더 데려왔다고 말없이 눈으로 욕한다.

     

    “즈앙이 뭐 어때서요!”

     

    암살자 출신에 암살을 잘하고 소리 없이 등 뒤에서 튀어나오는 버릇을 지녔지만, 나름 마음씨도 착하고 언데드도 무서워하는 귀여운 친구인데.

    왜 저런 눈으로 쳐다본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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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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