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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0

       

       

       

       다음날, 

       

       1939년 5월 5일, 금요일 아침. 

       

       “초 얼리버드 기상……!”

       

       나는 옆 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함원삼이 인력거일을 나가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하는 소리였다. 함서주가 덜 깬 목소리로 제 아버지를 배웅하는 소리도 들렸다.

       

       “다녀오셔요, 아부지……”

       

       평소같으면 그 소리를 듣고도 이삽십분 쯤 더 잤겠지만, 나는 졸음을 떨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함원삼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서였다.

       

       교복을 대충 걸치고 방문을 나서니, 마당에 서 있던 함원삼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막 인력거 체장을 잡으려다가 나를 보고, 

       

       “원, 이 새벽부터 학생 양반이 웬 일인감.”

       

       하고 인사를 한다. 나는 함원삼에게 말했다.

       

       “어르신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요. 음…… 혹시 오늘 밤 자정에, 학교로 태우러 와주실 수 있어요?”

       

       자정.

       

       양복자가 아이까와와 함께 고꾸리 상 의식을 했을 때 확실히 동전은 움직였다고 했지. 그 시간은 자정.

       

       여일찐 이시다 역시 청소하다가 인체모형이 움직이는 것을 봤다고 했지. 그 시간 역시 자정.

       

       사실, 양복자의 헛소리나 이시다의 증언은 그냥 잘못 본 것 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었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인체모형이 밤만 되면 움직인다라는 건,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21세기에서도 그저 소름끼치는 외향 때문에 있었던 괴담이었고,

       

       양복자가 인체모형을 대상으로 고꾸리 상 의식을 하다가 동전을 움직인 것은 무의식 때문이었으며, 일찐녀 이시다가 인체모형의 움직임을 보고 기절한 것은 포르말린에 의한 환각 때문 때문이었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제 아이까와와 옥상에서 대화하고나서 나는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나름 차분하고 얌전한 그녀마저도,

       

       「인체모형에 생력을 주입하면, 제가 했을 때에만 아무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아요.」

       

       「입학하기 전에는 실수가 많지 않았어요」

       

       「이게 다 인체모형 때문인 것 같아요.」

       

       이렇게 인체모형이 수상하다고 여기고 있었으니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 진짜로 뭔가가 있다면?

       

       아주 가능성이 없는 얘기는 아니었다. 물론, 양복자가 말했듯이 귀신들린 인체모형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혹시 여기에도, 교내 비밀집단의 개수작이 들어있는 것이 아닐까.’

       

       몇몇 교수들로 이루어진, 교내의 비밀집단. 신사 지하에 진공관 컴퓨터까지 만들어놓는 기술력도 있었고, 진공관 컴퓨터를 통해 학생들의 영혼을 수집하려 했으니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놈들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 학교에서 쓰는 인체모형은 단순한 구조이긴 하지만 일종의 기계였다. 21세기에서 심폐소생술 교육을 할 때 사용하는 인형인 ‘애니’를 상상하면 좋을까. 

       

       동력은 없지만 관절은 있고, 장기에 생력이 주입되면 꼬마전구에 빛이 들어오는 구조. 이토록 단순한 구조였지만, 어쨌든 기계라고 하자면 기계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수작을 부리자면 얼마든지 부릴 수 있었다. 인체모형을 통해 학생들을 감시한다든가, 희생시켜야 하거나 방해되는 학생이 있다면 인체모형을 통해 처리한다든가.

       

       ‘증거도 안 남고 말이지.’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요 며칠 평화로운 학교생활을 보낸다 싶더니만, 며칠을 참지 못하고 또 의심스러운 것이 튀어나와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나도 자정 즈음에 인체모형을 한 번 조사해볼 예정이었다. 어떤 후환이 될지 모르니, 미리 확인하고 위협이 된다 싶으면 아예 망가트리던가 불태워버리든가 해서 싹을 잘라버리는 것이 좋을 터.

       

       나는 허리 벨트에 교도 대용으로 찬, 렌까로부터 얻은 검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버튼을 누르면 잠깐이지만 불이 나오는 토치가 내장된 검.

       

       ‘인체모형 안에 무슨 기계장치가 숨겨져있든 어차피 본질은 고무와 셀룰로이드로 만들어진 인형이다.’

       

       그러니 칼로 베지 못할 것도 없었고, 어차피 불이 잘 붙는 셀룰로이드의 특성상 불태워버리면 그만이었다. 오래걸리지는 않을 터.

       

       하지만 증언에 의하면 인체모형이 작동하는 시간은 자정 즈음이고, 자정이 지난 시간은 늦은 시간인지라 택시를 잡기도 힘드니, 함원삼에게 픽업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내 부탁을 들은 함원삼이 되물었다.

       

       “자정? 한밤중에 열두 점 지나서 말이지?”

       “예. 그때까지 학교에 남아있을 일이 있어서요. 괜찮겠어요?”

       “흐흐, 학생 양반 부탁일랑 내가 안들어줄 성 싶은가! 이 인력거두 학생 양반이 해준거나 진배없는데…… 그래 열두시까지 가면은 되남?”

       “예.”

       

       그런 대화를 하고 있자니, 이번에는 함서주가 문턱으로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는 졸린 눈을 비비며 물었다.

       

       “손님, 오늘은 늦게 들어오셔요?”

       

       나는 함서주에게 대답했다.

       

       “어, 그렇게 됐다. 밤 늦게까지 학교에 있으려고.”

       “피! 학교에서 밤 열두시 칠때까지 무얼 그리 할게 있다구…… 저야 보통학교만 겨우 나온 부엌떼기니깐 모르겠지마는…… 또 옷에 분내나 듬뿍 뭍혀갖구선 올는지 몰라!……”

       

       그렇게 작게 궁시렁거리던 함서주는 문득 고개를 들며 묻는다.

       

       “참, 내일 열차표는 몇 시루 끊으면 좋겠어요? 이따 가서 끊을려구요.”

       

       그러고보니, 함서주한테 열차표 끊어놓으라고 부탁해뒀었지. 토요일인 내일 학교수업 마치자마자 고향으로 내려갈테니 미리 열차표를 예매해달라고.

       

       “어, 맞다. 그럼……”

       

       예정대로 토요일인 내일 저녁으로 열차표를 예매해달라고 부탁하려던 나는 말을 맘췄다.

       

       문득, 오늘 자정까지 학교에 남아있을 것을 생각하니, 토요일인 내일 또 등교해서 수업을 받고, 또 저녁에 바로 고향으로 내려가기가 끔찍히고 귀찮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저녁에 고향 내려갔다가, 다음날 일요일에 경성으로 복귀하면 주말이 그냥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으음.’

       

       잠시 고민하던 나는 결정을 내렸다. 뭐, 일주일동안 공부 열심히 했으니까 토요일 하루는 째도 되겠지. 

       

       그러면, 오늘 자정 지나고 바로 고향집으로 내려갔다 가 내일 아침에 돌아올까. 그리고 남은 토요일과 일요일을 온전히 쉬는 것이다.

       

       “오늘 야간으로 끊어줄래? 밤 12시, 아니, 내가 역까지 가는 시간도 있으니까, 새벽 한두 시 이후로 열차가 있으려나?” 

       “새벽 차는 있을걸요. 세신가 네신가……”

       

       새벽 네시에 차를 타면, 어디보자. 수원에 도착하면 토요일 아침이 될 것이다. 

       

       뭐, 굳이 자고 올 필요도 없이 잠깐 노인네한테 얼굴 비추고, 계춘희한테 몇 마디 당부만 하고 다시 올라올 셈이었으니 나쁘지 않았다.

       

       “음. 그거면 되겠다. 부탁할게.”

       “넴…… 그럼은요, 손님, 학교에서 일 끝나구 오늘 밤에 바로 내려갈 작정이시지요?”

       “응.”

       “그럼 열차표 끊어다가, 저녁에 저이 아부지한테 드릴게요. 아부지가 학생손님 태우러가서 전해드리면 되니깐. 하암……. 참, 손님. 오늘 무슨 날인지 아셔요?”

       

       함서주는 작게 하품을 하더니, 나에게 대뜸 물어왔다.

       

       “글쎄다. 금요일?”

       

       내가 무심히 대꾸하자, 함서주는 토라진 듯 투덜거리며 말했다.

       

       “……흥! 저랑 두 살밖엔 차이나지도 않으시면서 어른같이 구시더니, 이젠 것두 몰루나봐. 여기 벤또요!” 

       “고맙다.”

       “피! 몰라……. 다녀오셔요.”

       

       어쩐지 풀이 죽은 듯한 배웅 인사였다. 나는 대문을 나서며 생각했다.

       

       ‘후후…… 삐졌구만.’

       

       일부러 ‘금요일’이라고 무심하게 대답했지만, 실은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오늘은 1939년 5월 5일.

       

       소파 방정환 센세…… 아니, 방정환 선생님께서 조선에 도입한 어린이날이었다. 이미 십수년 전에 조선에 도입된 이후로, 이미 조선에도 연례행사처럼 뿌리내린 기념일이었다.

       

       함서주 얘는, 혹시나 내가 선물이라도 주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일까? 

       

       ‘만 15세면 아직 어린이지.’

       

       아무리 옛날같으면 시집갈 나이 운운하기는 해도, 그래도 애는 애였다. 아직 어린이날 선물을 기대할만한 나이였던 것이다.

       

       그런데 제 아버지 함원삼은 원채 그런 것을 챙겨줄 위인은 못 되고, 거기에 비해서 나는 돈깨나 있는데다가 함서주 앞에서는 어른 행세를 해왔으니, 얘도 혹시나 싶어 나를 찔러봤던 거겠지.

       

       ‘후후. 그런다고 내가 뭐라도 줄 줄 알았다면 잘 생각했다.’

       

       물론, 뭔가를 줄 셈이었다. 워낙 여동생처럼 느껴지는데다가 고생도 많이 해서 안쓰러운 녀석이었는데, 나라도 안 챙겨주면 누가 챙겨주나.

       

       “자네, 어제 왜 안 찾아갔나? 어제 자네가 부탁했던 걸세.”

       

       일찌감치 등교해 자리에 앉자, 앞 자리에 앉은 송병오 녀석이 턱하고 내 책상 위에 뭔가를 올려놓았다. 내가 어제 수리를 부탁했던, 헤드폰 모양의 구식 라디오였다.

       

       “오. 감사.”

       “다만…… 여기가 산중인데다 송신소와 거리가 먼 탓에 전파가 약한지 소리가 잘 들리지는 않더군! 학교에서는 그만두고 자네 하숙집에서라면 그럭저럭 잘 들릴 걸세.”

       “오키오키. 고맙다.”

       

       어차피 함서주에게 줄 물건이었으니, 하숙집에서만 잘 들리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송병오 녀석이 수리하는 김에 제대로 정비라도 한 것인지 깨끗이 닦여 있기까지 했다. 음. 

       

       ‘기대 이상이군. 서주도 좋아하겠는데.’

       

       실은, 함서주에게 어린이날 선물로 주려고 생각한 것이 이것이었다.

       

       물론 한번 고장나서 빠꾸먹었다가 고친 구식 라디오를 어린이날 선물이랍시고 주는 것은 조금 궁상맞은 느낌이긴 했지만……

       

       그래도 안 받는 것보단 나을 것이요, 또 내가 오늘 고향에 내려갔다가 토요일인 내일 돌아올 셈이었으니, 그때 어디 손잡고 동물원이라도 함께 놀러가주면 되는 일이다.

       

       ‘아차, 동물원은 저번주에 불탔지…….’

       

       뭐, 경성에 하나 있는 동물원인 창경원은 불타버렸으니 논외로 치더라도, 관광시설이 창경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경성 시내 가서 맛난 것 먹여주고 영화도 보여주고, 작은 인형이라도 하나 사 주면 충분하리라.

       

       

       

       ***

       

       

       

       

       

       오후수업이 끝나고도 한참이 지나 산 너머로 해가 내려앉고, 더욱 밤이 깊어, 손목시계를 확인해보니 마침내 밤 11시 30분이 되었을 무렵.

       

       “슬슬 들어가자.”

       

       하숙집에 돌아가지 않고, 학교 앞의 허름한 국밥집에 서 시간을 때우고 있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리고 옆에서 들려오는 대답.

       

       “요시! 이꾸요!”

       

       나는 미리 양복자를 포섭해두었다. 어차피 오컬트 매니아인 이 녀석도 요 근래 수상한 일의 중심인 인체모형을 조사해보려고 안달이 나 있었던 차라, 내가 동행을 부탁하자 흔쾌히 수락했다.

       

       “네에네에, 있지! 실은, 나도 혼자 찾아가보려고 했는데 혼자 가기엔 무서웠거든! 하지만 시라바야시 군이 잇쇼나라 괜찮아!”

       “그렇다고 너무 달라붙지는 말고.”

       “헤에, 부끄럽니? 남사스럽니?”

       

       나는 빙글빙글 웃는 양복자와 거리를 벌렸다. 또 교복에 향수 냄새가 배일 것이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게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야.”

       “……? 뭔진 모르겠지만, 알았어! 그럼, 이 정도?”

       “아니, 야! 그렇게 멀리 떨어지진 말고.”

       “흐흥! 시라바야시 군도 무섭구나? 그래서 나랑 잇쇼니 가자고 한 거구나?”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앞장섰다.

       

       “그래. 무서우니까 제대로 따라붙어 와.”

       

       물론, 동물 내장 표본과 인체모형이 전시되어 있는 치유학 강의실은, 학교의 수많은 공간들 중에서도 밤에 보면 특히나 무서운 장소이긴 했다. 

       

       하지만 당연히 내면은 어른인 내가 그런 걸로 딱히 공포를 느낀다거나 해서 양복자를 포섭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것.

       

       만약 인체모형이 인공 기계로 개조되어있다면, 물론 내가 제압하지 못할리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만에 하나 문제가 일어났을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내가 생각치 못한 형태로 반격해올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그런 인공 기계를 제압하는데에는, 원거리에서 염동력을 부릴 수 있는 양복자의 능력이 효율적일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또, 밤중에 이런 일을 하는데 기꺼이 와줄만한 사람이 양복자뿐이기도 했고.

       

       딱히 무서운 것은 아니었다. 

       

       교문을 지나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본관을 향해 걷던 중, 나는 양복자에게 물었다.

       

       “그런데, 너 저번에도 밤중에 몰래 고꾸리 상 의식 하다가 걸려서 이번주 내내 변소 청소했잖아. 괜찮은 거 맞냐? 걸리면 기간 더 늘어날텐데.” 

       “다이죠-부! 변소 청소도 오늘이 마지막이었으니까! 그리고…… 오늘은 걸리지 않을 비장의 한수가 있거든!”

       

       비장의 한 수.

       

       우리는 오후에 미리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본관에 몰래 들어가, 1층에는 교무실 옆으로 향했다. 그곳에 있는 것은 당직교수 숙직실. 

       

       당직교수 숙직실에서는, 기다무라 무쓰오(北村睦夫) 분대전술학 교수가 의자에 앉은 채 졸고 있었다. 품에 잡지가 들려진 것을 보니 읽다가 졸음을 이기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본 양복자가 나를 향해 찡긋하며 작게 속삭였다.

       

       “마까세떼(맡겨줘!)”

       

       곧이어 양복자는 문 틈으로 손가락을 넣고는, 기다무라 교수를 향해 마력을 발산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기다무라 교수의 꾸벅꾸벅하던 고개가, 완전히 푹 고꾸라진다. 

       

       사실, 지금 수준의 양복자가 고등동물인 사람을 조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미 꾸벅꾸벅 졸고있는 사람을 확실하게 재우는 것은 쉬운 일.

       

       “흐흥, 잘 잔다! 보-즈 상, 이이꼬 이이꼬!”

       

       민 머리를 푹 수그리고 잠든 기다무라 교수를 보며 ‘빡빡이 씨 착하다 착해’ 같은 말을 지껄인 양복자는 슬그머니 숙직실 문을 닫았다. 

       

       이것이 양복자가 말한 비장의 한수. 이로써, 치유학 강의실에서 뭘 하든지 교수에게 들킬 걱정은 없었다.

       

       “그래도 빡빡이는 너무 심한 것 아니냐.”

       “헤헷! 그치만 빡빡이인 걸 어떡해?”

       

       나와 양복자는 치유학 강의실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3층 복도에 오르고 보니, 한 강의실에서 미닫이문이 반쯤 열려있고, 은은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촛불이라도 켜져있는 듯한 불빛이 나오고 있는 곳은, 다름아닌 치유학 강의실이었다.

       

       “어라? 불빛이…… 누군가 있어?”

       “조심해.”

       

       스르릉!

       

       나는 칼을 빼어든 채 치유학 강의실을 향해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그리고 반쯤 열린 문 안쪽을 들여다보니,

       

       “아이까와!”

       

       은은하게 밝혀진 치유학 강의실 안에서, 나는 테이블 위에 촛불을 밝혀둔 채 혼자 기절해있는 아이까와의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바로 달려들어가 아이까와의 목덜미에 손가락을 얹어 호흡과 맥박을 체크했다.

       

       ‘호흡은 정상이야.’

       

       양복자도 깜짝 놀라, 잠든 아이까와에게 다가가 일본어로 외쳤다.

       

       『아이까와 쨩! 무슨 일이야? 기운 차려!』

        

       양복자는 아이까와를 흔들었고, 나는 테이블 위에 놓여진, 가타가나 오십음도가 그려진 종이와 그 위의 동전과 연필을 발견했다. 아이까와를 흔들던 양복자도 그걸 보고는 흠칫 놀라며 말했다.

       

       “설마, 혼자서 고꾸리 상 의식을 한 거야? 왜, 나한테는 말하지 않고……”

       

       명백한 고꾸리 상 의식의 흔적. 아이까와 스스로도 인체모형이 의심스러워서 혼자서라도 의식을 벌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왜 혼자……’

       

       평소같았으면 양복자에게 같이 하자고 부탁했을텐데, 그러기 싫었던 것일까.

       

       『으응……』

       

       양복자가 연신 흔들자 마침내 깨어난 아이까와. 아이까와는 눈을 뜨고 『여긴 어디……』하며 잠시 멍하니 있다가, 

       

       나와 양복자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시라바야시 군? 그리고…… 도미꼬 쨩……』

       『아이까와 쨩! 괜찮아?』

       『……응, 그, 그런데…… 여긴 어떻게,』

       

       휴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아이까와에게 별 이상은 없어보였다.

       

       ‘젠장, 진짜로 큰일이라도 났으면 어쩌려고.’

       

       나는 강의실 한구석에 세워진 인체모형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인체모형도 그대로 서 있고 얘도 그냥 잠든 걸 보면, 다행히 별다른 일을 당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밤 늦게까지 고꾸리 상 의식을 하다가, 잠을 이기지 못하고 골아떨어진 것 뿐일까?

       

       아니면, 그 이시다라는 여일찐처럼 약품 냄새를 맡고 기절한 것일까? 나는 강의실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이시다가 얼마나 깨끗하게 청소해놨는지, 저번에 바닥에 쏟아진 포르말린 냄새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긴, 벌써 거의 일주일이 다 지났으니까.

       

       양초 타는 냄새와, 약간의 알콜 냄새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향취는 없었다. 애초에 강의실 한켠의 창문도 열려 있어서 공기는 깨끗했다.

       

       환각 작용을 일으킬만한 약품이 누수된 흔적도 없었고,  특별히 느껴지는 수상한 마력의 흐름도 없었다.

       

       아이까와가 아무리 겁이 많다지만, 움직이지도 않은 것을 움직였다는 환각을 볼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 애초에 인체모형은 저기에 그대로 서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인체모형이 세워진 곳에 고개를 돌렸다가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치유학 강의실 한켠에 세워져있어야 할 인체모형은 온데간데 없고, 그 바로 옆의 창문이 열린 채 커튼만 나부끼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분량조절 실패! 6000자가 조금 안되는 바람에 삭/삭을 못하고 한번에 올립니당!

    오늘은 여기까지!
    그럼 저는 월요일에 뵙겠습니당!!!
    즐거운 주말 되세용!!

    다음화 보기


           


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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