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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0

     

    아르윈은 베르그와 열매를 나눠먹으며 웃는 네르를 바라보았다.

     

    익숙한 상황이었다.

     

     

    자신은 히히덕 대는 네르와 베르그를 바라보는 상황이.

     

    “…”

     

    또 다시, 여행할 때 네르는 베르그와 함께 이동하는걸 선택했다.

     

     

    아르윈은 네르를 지긋이 지켜보았다.

     

    아양을 떨어가며, 자꾸만 베르그의 품에 고개를 묻었다.

     

    베르그는 그 여우짓에 넘어가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간혹 네르는 열매 바구니에서 열매를 꺼내 베르그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럴때마다 그녀는 마치 그를 좋아하는 것처럼 미소를 지었고, 그 가증스러운 모습이 갈수록 견디기 어려워졌다.

     

     

    아르윈은 그 모습에서 눈을 떼어낸다.

     

    이내, 뒤를 바라보았다.

     

    먼발치에서 게일이 걸으며 따라오는게 보였다.

     

     

    우두머리 조 또한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만큼, 그도 따라오는데 있어 어려움이 없어보였다.

     

    “…”

     

    하지만 괜히 용인족의 최고 전사를 저렇게 처량히 두는게 내키지 않았다.

     

    국왕과도 연이 닿아있는 인물이다.

     

    혹여나 이렇게 하대했다가 나중에 문제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러니 아르윈이 말한다.

     

    네르를 방해할 겸.

     

     

    “베르그, 게일님을 저렇게 둬도 괜찮은가요?”

     

    “…”

     

    베르그의 입가에 머물었던 미소가 그녀의 의문에 지워진다.

     

    베르그는 이내 차가운 눈으로 뒤편을 바라보았다.

     

     

    그가 말했다.

     

    “…따라오지 말라해도 따라오는 건 말릴 수 없지.”

     

    “제가 대화 좀 해보고 올까요?”

     

     

    아르윈이 물었다. 순전한 걱정에서 파생된 마음이었다.

     

    베르그가 잘 아는지는 모르겠지만…게일은 유명한 검사였다.

     

    용사 일행의 스승이라는 사람을 저렇게 둘 순 없었다.

     

     

    “…마음대로 해.”

     

    베르그가 말한다.

     

     

    “…”

     

    아르윈은 대체 그가 게일과 무슨 이야기를 나눈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좋지 못한 것이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어째서인지 중재를 해야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게 아내의 일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어차피 아르윈은 네르의 상황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그녀는 고개를 끄떡이며 말머리를 천천히 돌렸다.

     

    “잠시 갔다 올게요, 베르그.”

     

     

    ****

     

     

    베르그는 떠나가는 아르윈을 보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르는 그런 베르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무언가 일이 있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하지만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

     

     

    베르그는 자신들에게 약한 모습을 드러내기 싫어했다.

     

    언제나 홀로 감당하고 견뎌낼 뿐이었다.

     

     

    이마저도 모든 어려움에서 자신을 지켜내려는 노력일까.

     

    고마우면서도 든든했다.

     

    또 때론…그가 약한 모습을 드러내며 자신에게 기대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

     

    하지만 베르그가 그 약한 모습을 드러내기로 하지 않은만큼, 네르도 그에 따르기로 했다.

     

     

    요새는 갈수록 더더욱 그랬다.

     

    순종적으로 베르그를 따르는게 기쁨이라는걸 알아가고 있었다.

     

     

    그러니 대신, 네르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허벅지에 놓여있던 열매 바구니에서 다시금 열매를 꺼낸다.

     

     

    “아.”

     

    동시에 입을 벌려줄걸 부탁한다.

     

    베르그는 그런 그녀의 행동에, 얼굴에 드리웠던 무거운 표정을 지우고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입을 연다.

     

    “…”

     

    네르는 순간 느껴지는 충동에 열매 대신 손가락을 베르그의 입에 집어넣었다.

     

    -쏙!

     

    “…?”

     

    베르그가 그 행동에 잠시 혼란스러워하다 웃음을 터트렸다.

     

     

    네르는 베르그가 웃는게 좋아 똑같이 쿡쿡댔다.

     

    “…”

     

    그리고 그 웃음 중간에 느껴지는 베르그의 혀.

     

    네르의 심장이 순간적으로 맥박쳤다.

     

     

    “…자, 다시.”

     

    그 동요를 숨기고자 네르는 베르그의 입에 열매를 집어넣었다.

     

    간식을 받아든 베르그는 음식을 씹으며 앞을 바라보았다.

     

     

     

    “…”

     

    네르는 그런 베르그를 바라보다, 제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베르그의 혀를 만졌던 검지를 바라본다.

     

     

    …이내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 손가락 그대로 열매를 집어먹었다.

     

    굳이 손가락을 닦아내는 수고는 들이지 않았다.

     

     

    “앗!”

     

    네르는 그러다 순간적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그들이 올라탄 말이 돌부리에 걸린건지, 잠시 휘청였다.

     

    허벅지에 놓여있던 열매 바구니에서 열매가 쏟아져 내렸다.

     

     

    네르는 베르그의 허리에 감긴 꼬리를 더욱 강하게 감으며 베르그에게 매달렸다.

     

    베르그도 한팔로 강하게 네르를 감쌌다.

     

     

    “괜찮아?”

     

    그가 묻는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네르가 내려다보는건 하나였다.

     

    “…열매가…”

     

    “…”

     

    혀를 찬 베르그가 말했다.

     

    “많이 먹었으니까. 괜찮아.”

     

    “…”

     

    “다음에도 기회가 있겠지.”

     

     

    하지만 네르는 당장의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조금 더 그와 현재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면서도, 베르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앞으로도 기회는 수도 없이 많을 것이었다.

     

    결혼했으니까.

     

     

    그 작은 단어에 네르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푸른 언덕들이 수도 없이 늘어진 한 초원에 도달한다.

     

    인방에 마을이 있는지 사람들도 드문드문 보였다.

     

    주로 칼놀이를 하는 아이들이었다.

     

     

    “베르그 저기 봐.”

     

    네르가 그 아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이들은 멀리까지 스스로만의 여행을 나온 듯 했다.

     

     

    그들은 지나가는 용병단의 모습에 경계를 하면서도, 동시에 동경하는 눈빛을 보냈다.

     

     

    베르그는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네르는 문득 느껴지는 궁금증에 물었다.

     

    “너도 어렸을 때는 저렇게 놀았어?”

     

    잠시 고민하던 베르그가 답한다.

     

    “…나는.”

     

    “…”

     

    “…좀 많이 싸우고 다녔지?”

     

    네르는 어린 베르그의 모습을 상상하며 킥킥 웃었다.

     

    “그랬을 것 같아.”

     

     

    베르그는 그 아이들을 바라보다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들이라.”

     

     

    그러는 동안 옆에서 숀이 물어왔다.

     

    “베르그 부단장. 아이 소식은 대체 왜 들려오지 않는겁니까?”

     

    네르가 그 농담에 바싹 굳었다.

     

     

    바란이 그런 숀을 툭 때렸지만, 잭슨은 옆에서 웃으며 숀의 편을 들었다.

     

     

    숀이 계속해서 키득대며 말했다.

     

    “부단장 아이가 남자면 키우기 어렵겠다. 안그러냐 잭슨? 주구장창 싸움만 하고 다니지 않겠어?”

     

     

    네르는 동시에 상상할 수 밖에 없었다.

     

    베르그와의 아이.

     

     

    사실 생각해본다면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기도 했다.

     

    혼인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니까.

     

     

    “…”

     

    -툭.

     

    베르그는 단원들의 장난에 미소를 짓다, 말을 앞으로 빠르게 몰았다.

     

    장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베르그만의 행동이었다.

     

    또 한번 베르그의 배려에 보호받는 느낌이었다.

     

    언제나 자신의 편만을 들어준다.

     

     

     

    네르는 그와 함께 앞서나가며 생각했다.

     

    아까부터 시작된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그 말을 다시금 곱씹었다.

    베르그와의 아이.

     

    “…”

     

    베르그를 닮은 아이를 상상하니 네르는 이상하게도 미소가 나왔다.

     

    왜인지 잭슨의 말이 옳을 것도 같았다.

     

     

    사고뭉치에, 사납게 생기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분명, 선하고 듬직하기도 할 것이었다.

     

    배려하는 자세와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갖출것이었다.

     

     

    “…”

     

    하나 문제가 있다면…꼬리.

     

    하프로 태어날 그에게는 어떤 꼬리가 주어질까. 자신처럼 흰꼬리일까.

    혹시 자신과 비슷한 핍박을 당하며 자라지는 않을까.

     

     

    네르는 베르그를 올려다보았다.

     

    …어쩌면 흰꼬리 따위 상관 없을지도 모른다.

     

    베르그는 그 흰꼬리를 예뻐해줄테니.

     

     

    그렇게 말을 달려, 이야기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순간 베르그가 물었다.

     

     

    “그래서?”

     

    “….어?”

     

    “우리 애는 언제 낳을까?”

     

     

    베르그가 물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간만에 짙은 장난기가 떠올라 있었다.

     

    -꾸우욱.

    심장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네르는 얼굴이 푹 붉어져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몰래 꼬리를 붙잡았다.

     

    혹시라도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하면 안되니.

     

     

    베르그가 말을 이었다.

     

    “언제가 좋을까. 나도 이제 충분히 기다렸는데.”

     

    이건 장난이자, 일종의 구애였다.

     

    거리를 좁히고자 하는 베르그의 행동이라는 걸 알았다.

     

     

    과거에는 이에 대해 부담을 주지 않았던 베르그였지만, 이제 친해져서 그런걸까.

     

    이 정도 이야기는 가볍게 말하는 듯 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구애에는 내성이 전혀 없던 네르였던만큼, 그저 당황할 뿐이었다.

     

    “다….단계가 있는거잖아…그건…”

     

    부끄러워하면서도 찌릿한 쾌감이 머리를 타고 흐른다.

    자신과 아이를 원하고 있다는게 못내 행복했다.

     

     

    제 장난이 잘 먹혀들고 있다고 느꼈는지 베르그가 이어나갔다.

     

    “그럼 첫 단계는 언제 밟는데?”

     

    “아…으읏…”

     

     

    -톡.

     

    네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놀라 몸을 흠칫 떨었다.

     

    “꺗!”

     

    베르그는 자신의 허리에 감긴 네르의 꼬리를 부드럽게 훑고 있었다.

     

     

    네르는 그 야한 손길을 제 손으로 막아내며 말했다.

     

    “아, 안돼…베르그. 너, 너무 야하…잖아…”

     

    “꼬리를 내 허리에 감는건 되고, 만지는건 안되는 거야?”

     

    베르그가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 아쉽게 손을 회수했다.

     

    이상하리만치 순간적인 아쉬움도 느끼는 네르였다.

     

     

    네르는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피가 머리에 쏠린 듯 했다.

     

     

    이내 네르는 말을 더듬으며 답한다.

     

    “….그….그러니까…”

     

    이내 변명처럼 뱉어냈다.

     

    “…기다려줘. 단계는…”

     

    “기다리면 돼?”

     

    “…”

     

     

    베르그는 장난속에서 원하는 말을 캐낸 듯, 지속적으로 파고들었다.

     

    “네르. 기다리면…..되는거야?”

     

    살짝은 진중해진 베르그의 말투.

     

     

    네르에게는 어차피 다른 사람도 없었다.

     

    그녀가 결국 일평생 사랑하기로 한 사람은 베르그였다.

     

    그와 현재보다 더욱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되는건 기정사실이었다.

     

     

    그러니 그녀는 부끄러움을 억누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이건 베르그의 행동에 대한 그녀 나름의 보답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조금은 밝히는 순간.

     

    이조차도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베르그는 다시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러면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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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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