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10

       <다키스트 아카데미아>는 일단 RPG 요소가 있는 게임이다보니 레벨 시스템이 존재한다.

        

       플레이어의 레벨이 오를수록 게임이 쉬워지는 건 당연지사. 캐릭터와 동료의 스텟이 오르는 것은 물론이요, 여러 스킬과 기능을 배울 수 있게 된다.

        

       [경험치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여 새로운 기능이 해금되었습니다.]

        

       ‘아마 55레벨부터였지.’ 

        

       버멜은 허공에 띄워진 시스템창을 훑었다.

        

       [주변 인물의 현재 심리 상태 및 스트레스 수치를 어림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른 건 그다지 필요 없었다. 흑주의 스트레스 관리만 할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자 눈앞에 반투명한 창 하나가 더 띄워졌다.

        

       [*스트레스 수치]

        

       [에테르 : 30/100 (보통)]

       [안젤리카 토츠펠 : 상태 이상으로 인한 측정 불가]

        

       비록 자신의 레벨이 어느 정도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일정 기준을 충족할 때마다 얻는 능력을 통해 간접적인 유추가 가능하다. 

        

       ‘55레벨이라.’

        

       지금 시기를 고려한다면 충분히 높은 레벨이다.

        

       ‘쉬움이나 보통 난이도였다면 말이지.’

        

       나이트메어 정도 되는 난이도에서는 만렙으로 시작해도 빡세다. 고인물 기준으로 봤을 때 이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클리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보면 되겠지.

        

       버멜은 고개를 돌려 에테르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흑발금안의 소녀는 기절해 있는 안젤리카가 깨어났을 때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앉은 자세를 교정해주고 있었다.

        

       ‘얘한테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눈앞에 있는 이 소녀가 세계 멸망의 단초가 아니더라도 강경하게 나가진 못했을 것 같다. 단순히 동향 사람인 이유에서였다.

        

       버멜이 이 세상에 떨어진 지도 20년이 흘렀다. 그동안 자신은 혼자였다. 여러 엘프와 인간을 만나 교류했지만, 어딘가 허전했다. 

        

       그 허전함의 출처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마도, 세계의 멸망을 혼자만 알고 있어서였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 자신과 똑같은 처지가 된 사람을 만났다.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질감을 느끼기도 잠시.

        

       “이래도 안 되면 한 번 더 때려도 되나?”

       “…되도록이면 참아.”

        

       이 빙의자는 가끔가다 원작 에테르와 비슷한 말과 행동을 한다. 

        

       ‘아니, 가끔도 아니지. ’

        

       말하는 스타일은 어쩌다가 겹쳤다고 하자. 문제는 행동거지였다.

        

       황자는 그렇다 쳐도, 안젤리카를 다짜고짜 때려패서 여기에 데려다 놓은 건 버멜에게는 상상조차 못 했던 돌발 행동이었다. 순간 스태프를 꺼내며 뛰쳐나가는 에테르를 보았을 땐 심장이고 쓸개고 다 떨어지는 줄 알았다.

        

       어쨌거나 현대 문명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이런 건 말로 해결하려고 하는 게 상식일 텐데.

        

       마치 눈앞에 모기가 있으면 살충제를 뿌리는 것처럼, 그저 심기를 조금 거슬렀다는 이유만으로 스태프를 꺼내는 태도는 문제가 있다. 이런 건 인간을 벌레 보듯 하는 마수가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성이었다.

        

       ‘기억이 섞이기라도 한 걸까?’

        

       못해도 마왕을 쓰러뜨릴 때까지는 조심해야 한다. 

        

       [SYSTEM : 현재 세계가 배드 엔딩으로 향할 확률은 46%입니다.]

        

       설령 당장의 일이 잘 풀리고 있다 하더라도, 언제 어떻게 틀어질지 모르니까.

        

       그게 <다키스트 아카데미아>라는 게임이다.

        

        

       **

        

        

       마왕군 영토에는 여러 시설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철병팔진’은 군사시설 겸 연구소로 쓰이는 난공불락의 요새다.

        

       이곳은 마수가 점유한 영토 중에서도 최심부에 위치하며, ‘철의 마탑’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단단하게 설계되어 있던 탓에 허락된 자가 아니라면 출입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어쨌거나 마왕군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시설임은 자명.

        

       “어머나. 부지런하셔라.”

        

       로즈마리가 블랜튼과 함께 철병팔진에 도착했을 땐 2석과 3석, 5석이 원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5석을 제외한 나머지 둘은 소집 명령자인 로즈마리보다 위계가 높다.

        

       본래 위계가 높은 자는 위계가 낮은 자의 소집 명령을 아무 이유 없이 거부할 권리가 있다. 1석이라는 녀석이 누구의 소집 권고에도 참여하지 않을 수 있는 까닭이 이것이다.

        

       “아카샤 언니는 바쁘다는 핑계로 여기 안 올 줄 알았는데.”

       “때마침 좋은 소식을 들고 왔거든. 네가 아니라도 내가 소집 명령을 내렸을걸.”

       “좋은 소식이라.”

        

       아카샤의 풋풋한 미소를 보면 그런 것 같긴 하다. 금안족답지 않은 웃음이다.

        

       “뭐 좋은 일이 있으셨길래 그리 좋아 죽는 얼굴이려나?”

       “언니에게서 토카막을 얻어왔어.”

       “그건 또 뭐야?”

        

       2석이 속한 기술부에서 뭔 짓을 하는지는 로즈마리도 잘 모른다.

        

       “있어. 그런 거.”

       “살리에르 영지에서 에테르 언니와 접촉하긴 한 모양이네. 그래서 어땠어?”

       “듣고나 놀라지 마. 언니가 날 잠깐이나마 알아봐 줬어!”

       “뭐…?”

        

       로즈마리의 고개가 우드득, 하고 돌아갔다. 곁에서 조용히 탄피를 세고 있던 3석 또한 흥미가 돋았는지 아카샤에게로 시선을 집중했다.

        

       “그게 무슨 소린가. 기억이 돌아왔다고?”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봐.”

       “말도 마. 언니가 내 이름을 불러줬다고! 그것도 애칭으로! 이게 얼마 만에 들어보는 소리였는지 알아?”

        

       과연. 작은 언니가 좋아라 한 이유가 있었구나.

        

       그러나 이 발언은 로즈마리가 오늘 발표할 내용과 반대된다. 로즈마리는 입술을 달싹이며 쟁여놓은 커피를 홀짝였다.

        

       베릴륨을 가득 추가해서 그런지 달달한 맛이 느껴진다. 그와는 반대로, 머릿속은 한 차례 뒤집어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만약. 만약 작은 언니의 말이 맞다면…. 

        

       ‘하, 그러면 제정신으로 그 엘프놈이랑 언니가 사귄다는 거야?’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깨끗한 도화지 상태의 금안족이라면 모를까, 마왕군 시절 기억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었더라면 인간과 엘프에 대한 일말의 티끌이라도 존재하고 있을 터.

        

       [아마 그건 아닐 거다.]

        

       말 한마디가 툭, 치고 들어온다. 

        

       로즈마리를 포함한 모두가 그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철병팔진 내부가 칠흑으로 뒤덮였다. 그 어둠 사이에서 한 쌍의 역십자가가 아른거리며 다가왔다. 

        

       따각거리는 스태프 소리, 낮게 내리깔린 분위기. 같은 절멸급조차도 짓눌리게 만드는 위압감.

        

       단언컨대 현재 마왕군에서 이게 가능한 존재는 딱 한 명뿐이다.

        

       구천지대계 1석, 방사룡(放射龍) 요르문간드.

        

       “…평소에 코빼기도 안 비추던 1석께서 무슨 바람이 부셨는지.”

        

       그동안 요르문간드의 회의 출석률은 저조했다. 근래 수백 회의 모임 동안에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갑작스럽게 나타나니, 동료들 입장에서는 황당해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바람이긴. 단순한 여흥이다.”

       “변덕이겠죠.”

        

       요르문간드의 등장에 모두가 꿈쩍 않고 있는 사이, 누군가가 1석의 말을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조소와 매도가 한데 섞인 어조.

        

       로즈마리였다.

        

       “나태한 자의 변명을 고상하게 포장하지 말아 주실래요?” 

       “오랜만에 마실 나왔는데 심한 소리를 하는군.” 

       “심한 소리? 이게 왜 심한 소린가요?”

        

       로즈마리는 발언 수위를 한층 높였다. 곁에서 아카샤가 ‘또 시작했네’라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마왕군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매사에 건성건성, 수인족을 모아 살리에르 영지를 침공한다는 계획도 몇 번이고 반려했죠. 그런 태도로 일관하다가 이런 곳에 뜬금없이 나타나면 좋은 소리를 들을 거라고 생각했나요?”

        

       로즈마리가 싫어하는 부류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인간과 엘프.

        

       다른 하나는 게으르고 나태한 존재.

        

       로즈마리가 나라 셋을 파멸로 몰아넣고 드워프를 멸족하는 전과를 세우는 동안, 요르문간드는 피치블렌드 산에 틀어박혀서 연금이나 타 먹고 있었다. 단지 마왕의 가장 오랜 친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호의호식하고 있는 것이다.

        

       “안 그래도 나타나면 한 말씀 드리려고 했는데 잘 오셨네요. 일 좀 하시죠?”

        

       ‘허어’, 하고 요르문간드가 비소를 흘린다.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천 년 묵은 용을 상대로 너무하다는 생각 안 드나? 그동안 여는 한 일도 많았는데.”

       “안 들어요. 마왕님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면…….”

        

       그러나 로즈마리의 말은 거기에서 뚝 끊겼다. 무언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까닭이다.

        

       정면을 바라보았다. 요르문간드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시건방지구나.]

        

       소리는 뒤에서 들려왔다. 로즈마리를 포함한 마수들은 다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쾅!

        

       천장에 매달려있던 샹들리에가 떨어졌다. 덕분에 원탁이 난장판으로 변했다.

        

       [위계가 왜 있는지 다시 한 번 가르쳐주련?]

        

       이번엔 왼쪽에서… 아니. 오른쪽인가?

        

       로즈마리는 마력을 먹인 스크롤에서 다급하게 스태프를 소환해냈다.

        

       그러나 바이올린 현을 손에 제대로 쥐기도 잠시, 단아하게 차려입었던 드레스의 팔 부분의 옷감이 그대로 찢겨 나갔다. 

        

       “윽…!”

        

       오른쪽 손목의 열감이 장난 아니다. 어찌나 강하게 맞았는지 표피가 뜯겨 나갔다. 인간을 완전히 모방하기 위한 인공 피부가 사라지고 남은 자리에는 금속으로 된 차가운 진피가 있었다.

        

       [한때 인간이었던 주제에 그런 몸을 하사받았다고 까불어대기는. 본래의 2석처럼 겸손히 있기라도 하면 내 아무 말 않을 터인데.]

        

       기름이 철철 새 나오는 팔을 붙들며 로즈마리는 휘청거렸다. 잇새에서 위험한 소리가 났다.

        

       “당연한 지적을 한 건데….”

        

       그리 말하면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전의 상실, 다른 말로는 패배 선언이었다. 그제야 요르문간드도 어둠을 걷고 모습을 드러냈다.

        

       “원래는 소식 하나만 전해주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서로 얼굴만 붉힌 꼴이 되었군.”

        

       터벅터벅. 요르문간드는 제어봉을 지팡이 삼아 짚으며 걸어왔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하나 꺼내 로즈마리에게 던져주고는 눈을 슬며시 떴다.

        

       초점이 없는 맹인의 눈. 그러나 빛을 잃어버리진 않았다.

        

       “모두에게 하나 묻지. 여가 동료를 상대로 너무 나갔다고 생각하는가?”

        

       감히 대답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아카샤 정도라면 발언할 수는 있겠지만,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그녀 또한 입을 꾹 닫고 기다렸다.

        

       “꼰대 같을지도 모르겠지만… 마왕이 봉인된 이후 태어난 어리숙한 후배들을 위해 조언 하나 하지. 방금처럼 적대할 상대를 고를 땐 먼저 그 자의 역량부터 가늠하는 기술을 몸에 익히도록 하여라. 그것 하나 경시했다가 과거의 대전쟁에서 정령에게 떼죽임당한 동료만 수십 수백만에 이르니까.”

       “…이건 그 얘기가 아니잖습니까.”

       “전의를 먼저 보인 게 어느 쪽이더라? 4석이 스태프만 안 빼들었어도 적당히 위협만 하고 끝낼 생각이었다. 자, 다시 얘기하지. 나약한 인간들이 너희를 보고 곧바로 도망치듯, 너희도 상위 정령을 보면 도망칠 준비를 해야 한다. 전력차를 파악하지 못하고 정신론을 운운하거나 순간의 기교에 기대려고 하였다간…….”

        

       쾅, 쾅, 콰아앙─!!

        

       “제 명에 못 산다.”

        

       요르문간드의 훈계가 끝나기 무섭게 회담 장소의 벽 하나가 우르르 무너졌다.

        

       “무슨 소리지…?”

        

       회담을 경청하고 있던 마수 대부분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사태 파악에 나섰다.

        

       아카샤조차도 살짝 당황했다. 회담 장소의 외벽이 박살난 걸 보고도 태연한 이는 오직 두 명뿐. 사전에 기척 탐지를 깔아두고 있던 요르문간드와, 철병팔진의 총관리자인 3석 슈델가이거였다.

        

       “또 시작이군.”

        

       슈델가이거는 드르륵거리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발로 똑바로 서자 그 키만 7m에 달했다.

        

       “아….”

        

       벽면 너머로 한 여성의 나지막한 탄식이 들려온다. 마수가 아닌 인간의 음성이었다.

        

       “무슨 일이야?”

       “탈옥 시도다. 최근에 쓸데없는 발악을 하는 년이 하나 있어서 말이야.” 

       “간덩이가 부었군. 누구지?” 

        

       5석의 비웃음 섞인 질문에, 슈델가이거는 담담한 어조로 주동자의 이름을 읊었다.

       

       “클라이스 하스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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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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