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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0

       111. 세계의 중심과 주인공(2)

       

       

       “…연락이 닿지 않는군.”

       

       제국의 1황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리 중얼거렸다.

       

       여태까지 검은 송곳니에게 보기 좋게 속고 있었다는 것, 그놈들의 진짜 정체, 거기에 용사에 관한 이야기까지.

       

       전할 것이 그렇게 산더미처럼 있는데도 아버지께 연락을 할 수가 없던 것이다.

       

       마경(魔境)이라는 위치의 특수성.

       그것이 통신을 계속해서 방해하고 있었다.

       

       세상의 중심이여야 할 그가 한낱 테러리스트 따위에게 당할 뻔 했다는, 시체인형이 없었다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만 해도 불쾌하기 그지없었는데.

       

       중대한 사실을 알아놓고서도 전할 수가 없는 답답한 상황. 자연스레 1황자의 표정은 일그러져만 갔다.

       

       평범하게 생각했을 때. 마경에서 바깥과의 통신이 어렵다면, 저 엘프 여자를 데리고 마경에서 벗어나 연락을 보내면 그만이겠지만….

       

       “이건… 물리적인 접근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카를이 그리 보고한다.

       

       소녀를 둘러싼 검은 그림자의 장벽.

       그 안에서 소녀가 의식을 잃은 채로 쓰러져 있는 것이 보임에도 접근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놈을 놓고 갈 수도 없었다. 언제 아까처럼 그림자 통로로 탈출을 시도하거나, 반대로 동료를 불러올지 모르니. 대응할 수 있는 인원은 남아 있어야 했다.

       

       결국 그들은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인질을 사로잡았는데 오히려 자신들이 묶여 버렸다는 괴상한 상황.

       

       참으로 불쾌하기 그지없었지만….

       1황자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어찌 되었든 포획은 포획이지.’

       

       거기에 귀중한 정보까지 수집하였으니. 이 시점에서 계획은 성공이라고 보아야 했다.

       

       의식으로 놈의 위치를 특정하지 않아도, 성묘에 오는 괴물을 잡기만 하면 된다고 호언장담하던 엘프들의 족장.

       

       그놈은 성묘 따위 오지 않아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럼에도 엘프 족장의 말을 다시 한 번 믿어본 건 좋은 선택이였다.

       

       게다가 이 장벽을 깨트리는 것도 시간문제다.

       

       ‘철저하게 계획해두길 잘했군.’

       

       마경에서 외부와 연락을 취할 방법은 없지만. 그렇다면 마경에 오기 전에 미리 연락을 보내버리면 그만이다.

       

       출발 직전에 그는 지원을 요청했었다.

       

       악마를 다룰 가능성이 높은 검은 송곳니와 대적할 때 요긴하게 쓰일 인재.

       

       세간에서는 이미 차기 교황이라고도 불리는 인물.

       

       다시 말해, ‘도미닉 추기경’을.

       아마 늦어도 이틀 안에는 도착하겠지.

       

       그자의 힘이면 악마의 결계 따위 순식간에 해결될 것이다. 그러니 조금 일이 안 풀린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 따위는 없었다.

       

       고작해야 이틀인데.

       그 이틀 사이에 별일이야 있겠는가?

       

       *****

       

       대수림에 위치한 집무실.

       그 고요하던 방 안에 부득부득 이를 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소리의 주인은 다름아닌 엘프의 족장이였다.

       

       ‘그 망할 년은 대체 어디까지 내 인생을 망쳐놓아야 속이 시원하단 말이냐!’

       

       처음에 1황자에게서 연락을 받았을 때는, 이게 바라 마지않던 기회라고 생각했다. 

       

       출세와 동시에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종족을 모욕하는 저주받은 애새끼까지 처리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

       

       헌데 하필이면. 그년은 마치 그를 놀리기라도 하듯 올해에만 성묘를 오지 않았다.

       

       군대까지 동원해서 그놈을 포획하려고 했던 1황자는 당연히 격노할 수밖에 없었고.

       

       족장은 졸지에 목이 달아날 신세가 되고 말았다.

       

       성묘와는 별개로 저번에 말한 의식은 계속 진행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위치를 알 수 있다며 1황자를 진정시키려 하긴 했지만.

       

       결과는 지금의 이 외팔이 신세다.

       목을 자르면 의식을 진행할 수 없겠지만, 팔은 아니지 않냐며 오른팔을 베어버린 1황자.

       

       1황자는 그걸로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만약 다음 정보도 빗나간다면 그때엔 정말 목을 베어버리겠다고 살벌한 경고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결국 출세는 개뿔, 당장 살아남기에도 급급한 처지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실패도 이런 실패가 따로 없는 수준.

       하지만 그렇다고 1황자에게 거역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여느 때처럼 그 빌어먹을 년을 욕하며, 사라진 오른팔이 있던 곳을 어루만지고 있을 때의 일이였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노크 하나 없이 족장의 집무실에 누군가가 쳐들어온 것이다.

       

       그 비상식적인 상황.

       족장은 쳐들어온 엘프에게 정신이 나간 거냐고 다그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나타난 젊은 엘프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큰일 났습니다! 침입자가… 침입자가….”

       

       심각하기 그지없는 말투.

       목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  

       

       하지만 족장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신입인가? 뭐 이런 거 가지고 호들갑이야. 그 정도 일은 나한테 보고할 것도 없어. 어련히 알아서 처리하겠지.”

       

       연금술의 재료로서든, 노예로서든.

       엘프는 몸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종족이다. 그러니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냥꾼 또한 많고.

       

       하지만 이 대수림에 침입한 인간들의 말로는 언제나 정해져 있다.

       

       죽음.

       처참하기 그지없는 죽음.

       

       당연한 결과다.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명에 타고난 재능까지. 

       

       세계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제약을 빼고 본다면, 엘프만큼 강력한 종족은 없었으니까.

       

       아마 저 호들갑 심한 놈이 보고하려 달려오는 사이에 일이 마무리되었겠지. 족장은 그리 의심치 않았다.

       

       “침입자가 단신으로 12명의 수호자들을 쓰러트리고 세계수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족장은 창백해진 얼굴로 자리를 박차며 달려나갔다.

       

       *****

       

       나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해야 할 일도, 그것을 이룰 방법도 알고 있으니. 망설일 이유 따윈 없었다.

       

       “잠깐, 지금 뭐 하는 거지? 이 앞은 출입금지다. 멈추지 않겠다면 당장 너를 사살….”

       

       앞을 가로막는 건 때려부쉈다.

       

       “빨리! 빨리 수호자님들을 불러!”

       

       어차피 망가져도 고치면 된다. 고깃덩어리로 변한다고 하더라도 내 힘이면 언제든 돌릴 수 있다.

       

       “너는 대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그러니 손 속에 사정을 둘 필요 따윈 없었다.

       

       “비열한 인간 새끼가, 대체 어디까지 빼앗아가야 속이 시원한 거야!”

       

       내 것을 건드리고 기여코 잃게 한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줄 이유도 없을 뿐더러.

       

       베풀고 싶은 마음 또한 없었으니 말이다.

       

       “괴, 괴물….”

       

       마지막 장애물은 그 말을 마치고 쓰러진다. 

       

       제 1수호자라든지, 

       대마법사의 경지에 발을 걸친 천재라든지.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신성력은 끝없이 솟아나니, 나는 죽어도 죽지 않는다.

       

       원래도 비정상적이였던 육체에 마력이 더해지니, 그 어떤 무기도 내게 상처를 내지 못한다.

       

       아무런 이치도, 묘리도, 깨달음도 담기지 않은 검은, 그 어떤 전사의 검기에도 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패하지 않는다.

       

       나는 피칠갑이 된 채 어느새 코앞까지 다다른 목표물을 올려다봤다. 

       

       세계수.

       생명의 근원이라고도 불리는 나무.

       

       그 명성은 괜히 생긴 게 아니라는 듯, 확실히 압도적이기 그지없는 크기다. 

       

       나는 한참 동안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나에게 조심스레 접근하고 있던, 어째서인지 한쪽 팔이 없는 늙은 엘프와 내 눈이 마주친다.

       

       놈은 한참을 당황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멈추게나. 이건 자네를 위해서 하는 말일세.”

       

       진지한 목소리로 그리 이야기하는 늙은 엘프. 하지만 내가 그 말에 멈출 리가 없었다.

       

       고개를 돌린다.

       어차피 저놈이 공격해 봤자 내게 먹힐 리가 없으니. 낭비할 시간 따윈 없었다.

       

       나는 허공에 술식을 그렸다.

       물론, 나는 마법 따위 제대로 배운 적 없다. 시엘에게서 몇 시간 강의를 듣긴 했지만.

       

       고작 몇 시간의 강의로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인간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건 딱히 상관없는 이야기다.

       

       허공에 새겨지는 술식.

       마력을 그러모아 현실을 왜곡하여 내 심상을 덧씌운다… 고 하면 복잡해 보이지만.

       

       평범한 화염구 마법을 시전할 뿐이다.

       애초에 1서클로 쓸 수 있는 마법이라 해봐야 그것밖에 더 있겠는가.

       

       허나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면….

       

       “이, 이건….”

       

       과부하.

       멀티캐스팅.

       신박하기 그지없는 자살방법이라고 불리는 행위.

       

       다시 말해서, 내가 수천 개의 술식을 동시에 구축했다는 것이였다.

       

       보통 아무리 마력이 충분하다고 한들, 이런 짓을 하면 순간적인 부하를 버티지 못해 두뇌가 터져버리고 술식도 취소되겠지만.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다.

       머리가 터지면, 회복한 다음에 술식을 발현시키면 되는 이야기 아니겠는가.

       

       “머, 멈추게나! 세계수를 함부로 건드린 자들이 어떤 말로를 맞이했는지도 모르는 겐가!”

       

       늙은 엘프가 그리 소리친다. 

       

       확실히.

       저놈의 말은 블러핑 따위가 아니였다. 신성한 나무를 멋대로 불태운 죄인에게 아무런 벌도 내려지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수백, 수천의 반짝임.

       붉은 빛이 세상을 뒤덮는다.

       

       귀가 아플 정도의 파공음과 함께, 그 거대한 나무는 순식간에 제 형태를 잃어간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그 늙은 외팔이 엘프는 바닥에 주저앉으며 눈물을 흘렸다.

       

       “지금 자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나 있나! 망한 건 우리뿐만이 아니야! 자네는 자네 손으로 자기 인생을 파멸시킨 거란 말일세!”

       

       나에게 그리 소리치는 엘프.

       하지만 나는 태연하게 이야기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의 격이 세계수의 저주를 무효화합니다.]

       

       [탐식 버프가 발현됩니다. 처리한 적, 세계수의 특성을 모두 흡수합니다.]

       

       놈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나는 비명을 내지르며 썩어들어가지 않았고. 놈은 생명력을 잃고 죽어가지 않는다. 그 사실을 눈치챘을 테니까.

       

       나는 그런 엘프 족장에게 말했다.

       

       “아직 상황이 잘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인데….”

       

       이제부터는 내가 곧 세계수다.

       저놈들을 살리는 것도, 그 삶을 박탈하는 것도 전부 내 의지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애 못 구하면, 너희들은 전부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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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How did you create a dark organization? 어쩌다 흑막 조직 만들어버림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game spoilers turned out to be fake. The characters I gathered thinking they were heroes are actually all villains. In other words,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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