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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0

       제국은 마석을 안 쓰는 순수공학을 무시하는 기조가 강하다.

         

       예전엔 마계의 마석 광산에서만 나오는 비싼 마석을 수입해 쓰는 특권 문화가 얽혀서 그랬다. 마석을 못 쓰는 귀족이면 수치스럽다는 정도.

         

       현재는 총화기의 등장에 경각심을 느낀 마법사 계층의 반발과 신민도 쉽게 쓸 수 있는 무기의 발전에 꺼림칙함을 느낀 황실의 견제까지 뒤섞여 깔보는 인식이 굳어져 버렸다.

         

       “저희는 나쁜 인식 속에서도 꿋꿋이 학문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고. 산학협력 축제 때 증기기관 열차를 전시해 간신히 기회를 잡았을 뿐인데. 학과가 결국 이렇게.”

         

       운명에 억울해졌는지 고학년생이 울먹였다. 얼굴이 붉어지고 물기가 촉촉한 게 펑펑 울 기색이었다.

         

       으아아.

         

       무릎 꿇은 선배님은 기분이 좋지만 그렇다고 우는 모습을 보며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선배의 손을 꼭 잡았다. 객관적으론 땀에 젖어서 촉감이 별로긴 했지만 인기인은 신경 쓰지 않아!

         

       “선배님! 지금까지 어떤 고생을 하셨길래 그래요! 다 털어놓으세요! 학생회는 그런 곳이라구요!”

       “말도 못 하죠! 오랜 역사를 되짚어 보면 마석 등장 이전의 공학부는 순수공학과를 의미하는 거였다고요! 애초에 순수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도 이상했고! 공학이면 그냥 공학이지! 그런데 웬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더니 다들 공학부하면 마석공학을 떠올린다니까!”

         

       흥분한 선배님이 반말을 되찾았다.

         

       우아우아.

         

       더는 울지 않는 모습이라 파스텔은 촉감이 별로인 손을 슬쩍 놓았다. 묻은 땀을 손수건으로 대강 닦았다.

         

       “후배님! 솔직히 말해봐!”

         

       선배가 삿대질했다.

         

       으엣!

         

       땀 닦기는 너무 실례였나?!

         

       무의식적으로 닦아버림!

         

       “우리가 순수공학부인지 순수공학과인지 구별할 수 있어?! 공식 명칭이 뭔진 알아?”

         

       허억.

         

       이 선배님은 순수공학부에서 온 것인가 순수공학과에서 온 것인가.

         

       모르겠다.

         

       졸지에 특권 의식에 절여진 귀족이 될 상황인 파스텔은 분홍 눈동자가 떨렸다. 도서관에 있을 악마님도 긴가민가할 고난도 문제였다.

         

       이, 임기응변!

         

       “순수공학부요!”

         

       모르지만 중요한 건 당당한 목소리!

         

       중요하니 첫 번째로 언급된 거겠지!

         

       “아아. 학생회도 모르잖아! 타 학부 교수님들도 헷갈려 하신다니까!”

         

       고학년생이 가슴을 치며 분통해했다.

         

       “우리는 공식적으론 순수공학과야! 공학부 산하의 순수공학과와 마석공학과로. 하지만 우리는 순수공학부라 자칭하고 그렇게 부르자는 캠페인을 진행 중이지.”

         

       우앙.

         

       “원래는 공학부라고 부르자고 했는데 마석공학과로 너무 헷갈려하길래 순수공학부로 타협했어.”

         

       고학년생이 차가운 현실 앞에 안타까워했다.

         

       “이해해요! 저도 요즘 위대한 인기인 파스텔 각하로 부르라고 말할까 고민 중이었거든요!”

         

       파스텔은 왠지 공감이 엄청 잘 됐다.

         

       “위대한 건 위대한 거니까 그렇고! 인기인도 인기인이니까 그렇고요! 거기다가 크래프트 각하는 괜한 억울함만 생기길래 파스텔 각하라고 표현을 순화하는 거죠!”

         

       신문부에 이 캠페인을 게재 요청할까?

         

       서류 작업을 하며 대화 소리만 듣던 엘리가 힐끔 바라봤다.

         

       선배도 마찬가지였다. 흥분을 가라앉히더니 권력자가 서민 코스프레한다는 눈빛으로 봤다.

         

       나만 공감했나 봐.

         

       공감력 부족인 사람들.

         

       뿌우.

         

       “하여튼 흠흠.”

         

       선배가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았다. 언급은 안 했지만 파스텔의 손 땀 닦기가 신경 쓰였나 보다.

         

       객관적으로 더럽긴 했어!

         

       “후작 각하, 순수공학부가 폐지될 위기입니다. 학부생을 모아 상단에 투자했더니 상단이 망하며 모두 파산했어요! 지금 저희 학부생 중에 멀쩡한 사람이 없습니다! 제발 구해주십쇼!”

         

       선배는 머뭇거리다가 빠르게 덧붙였다.

         

       “저희가 기댈 대상은 위대한 인기인 파스텔 각하뿐입니다!”

         

       으아, 듣기 좋은 명칭.

         

       파스텔은 갑자기 연민이 뿜뿜 솟구쳤다.

         

       증기기관 열차 개발이라니.

         

       만년필도 보급이 안 돼서 여전히 깃펜을 쓰는 이 제국에서 완전 독보적인 성과 아닌가?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뭐가 필요하세요? 개인회생? 학과 지원? 예산 배정?”

         

       위대한 인기인 파스텔 각하께 말만 하시라!

         

       에헴.

         

       선배의 표정이 환해졌다.

         

       “상단 청산 자산의 매입입니다!”

         

       오잉.

         

       선배가 열심히 준비해 온 듯한 문서를 서류 가방에서 허둥지둥 꺼냈다.

         

       “제국은행이 선순위 채권자로서 상단의 자산을 매각하기로 했습니다. 이대로 팔린다면 싼값에 나온 토지와 부동산에만 관심 있는 엉뚱한 상단에 팔리고 말 겁니다! 마계 철도 사업은 할 생각도 없어 폐기할 상단에요!”

         

       영업사원인 줄.

         

       엘리가 새 홍차를 들고 다가왔다.

         

       “식었으니 이거 마셔.”

       “아! 고마워! 역시 엘리밖에 없어!”

         

       사무 작업도 바쁠 텐데 손님 대접 때마다 매번 차를 준비해 주다니!

         

       기존 홍차를 원샷하고 새 홍차를 받았다.

         

       엘리는 찻잔을 회수하며 문서에 슬쩍 시선을 줘 훑더니 떠났다.

         

       선배가 가슴팍을 퍽퍽 쳤다.

         

       “이게 다 제국은행의 음모입니다! 마계의 철도 개발을 방해하겠다고 일부러 신용 하락과 융자회수를 이용해 상단을 파산하게 만든 겁니다! 마계와 끈이 닿은 상단은 제국 안보상의 문제로 매각 협상 대상에서 완전히 배제한 걸 보면 의도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으에.

         

       “제국은행이라고 말하지만 보나 마나 황실의 손길일 겁니다! 황실이 공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펴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안 듭니다! 마석공학조차 군사용으로만 투자가 집중되는 걸 보면 공학의 본질과 세련됨은 고려하지도 않죠! 세련되진 않나? 하여튼 그렇습니다!”

         

       으에에, 정치 발언!

         

       난 그냥 파스텔이라 이런 건 잘 모르겠어. 인기인으로서 곤란한 주제기도 하고.

         

       살짝 위험한 황실 모욕을 대놓고 하는 걸 보면 이 선배님은 내가 같은 편이라 생각하는 걸까.

         

       솔직히 아빠가 내 가산 팔아넘겨 교단에 들고 갈 때 황제가 협조한 정황이 있으니 원한은 있을지도.

         

       “과대표님 너무 그러진 마세요. 황실도 사정이 있겠죠. 다만 선량한 피해자가 쪼끔 많을 뿐이에요.”

         

       선배가 천천히 진정했다. 고개가 꾸벅 숙여졌다.

         

       “죄송합니다, 각하. 추태를 보였습니다. 과대표로서 찾아와 할 발언은 아니었군요.”

       “그 마음만큼은 이해해요! 어른의 사정에 답답할 수 있죠!”

         

       파스텔은 문서를 훑어봤다.

         

       “저도 철도 사업엔 관심이 많아요! 초기 투자비가 과하게 많이 들 뿐 인프라의 민간 운영은 엄청난 돈이 되는 거 아니겠어요? 공기를 돈 받고 파는 거니.”

         

       공기 냠냠!

         

       “네? 인프라요? 그게 뭐죠?”

         

       선배가 어안이 벙벙해 했다.

         

       아하?

         

       파스텔은 고개를 갸웃했다.

         

       “철도 인프라를 예측한 게 아니라면 뭘 보고 학부생 전체가 전 재산을 투자한 거예요?”

         

       신기술 도박이 학과 전통인가?

         

       선배가 움찔했다. 말하기 곤란한지 갈등하다가 서류 가방에 손을 넣었다. 가방 밑바닥의 비밀 공간이 열리더니 문서가 꺼내졌다.

         

       “상단과 비밀 계약이…….”

         

       문서는 바로 건네지지 않고 잠시 들렸다.

         

       “비밀은 보장해 주셔야 합니다.”

       “당연하죠! 인기인은 입이 가벼우면 곤란하다구요!”

       “꼭입니다.”

       “네!”

       “꼭이요!”

       “완전 보장!”

         

       얼마나 꺼림칙한 비밀이길래.

         

       설마 들키면 사형인가?

         

       받은 문서는 거래 장부였다. 제국 무역법을 무시한 거래 내역이 가득했다. 법률상으론 마계에 절대 수출이 불가능한 연료의 반출이라거나.

         

       우아아!

         

       하늘섬에 밀무역이 가득해!

         

       지정학적 위치상 별수 없긴 하지만 다들 양심이 없는……!

         

       파스텔은 책임 있는 권력자로서 심각성을 느꼈다.

         

       책임감을 담아 곧장 수익률에 눈이 갔다.

         

       회당 300%

         

       허억.

         

       전 재산 투자할 만하다.

         

       “이게, 이게 어떻게 돈이 벌리는 거죠?”

         

       프로페셔널 밀무역자, 호레이스 선배님이 최적화한 루트가 회당 100%였는데?

         

       “마석은 마계 광산에서만 나오지만 정작 마계는 마석 유통이 통제되기 때문에 마석 제품을 자체 생산할 수 없습니다. 특히 철도 부설에 필수인 건설용 골렘이요. 대여 자체는 가능한 대신 마계주식회사의 공식 마석 연료를 사기 치는 가격에 억지로 사야 하죠. 사업 간섭은 추가 옵션이고요.”

         

       선배는 비장한 얼굴이 됐다.

         

       “그래서 저희가 마석 연료를 만들어 헐값에 넘겨줬습니다. 겨우 원가의 300%로. 오직 순수공학의 발전을 위해서였죠.”

         

       파스텔은 입이 벌어졌다.

         

       “마석 연료면 순수공학이 아니지 않아요?!”

         

       그걸 왜 선배님들이 팔아요!

         

       기회를 놓친 마석공학과는 억울할 듯!

         

       “결과물이 순수하니 순수공학인 겁니다.”

         

       선배는 돈에 눈이 먼 얼굴이었다.

         

       이 무슨 억지……!

         

       “선배님! 그렇게 순수성을 잃으시니 파산이라는 천벌이 떨어진 거예요!”

         

       선배가 움찔했다.

         

       “그건.”

         

       표정이 급격히 침울해졌다.

         

       “그런 염려가 나오긴 했었죠. 이러다 우리의 본질을 잃는 거 아닌가. 증기기관의 소리에 매료돼 가시밭길을 선택했던 순수함은 어디로 갔는가.”

       “그렇다니까요! 천벌 받으신 거예요! 안 되겠어요!”

         

       파스텔은 비장한 얼굴이 됐다.

         

       “대의엔 적극 공감해요! 하지만 선배님들이 앞장서다 마음을 잃어서는 본말전도가 되고 말겠죠! 그런 뒤틀린 미래가 있어서는 안 돼요!”

       “파스텔 각하.”

         

       선배가 아련하게 바라봤다.

         

       “이젠 후배가 나서겠습니다!”

         

       주먹을 꼭 쥐어 심장에 댔다.

         

       “그 사명감! 이 가슴에!”

         

       오직 순수공학의 발전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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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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