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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0

       “아직이야?”

       

       “이, 이제 곧 도착합니다.”

       

       몇 번이나 반복된 리디아의 재촉에 길드 소속 패스파인더가 몸을 떨며 가까스로 대답했다.

       

       홀로 채도가 다른 양 선명하게 타오르는 적발 적안. 비키니 아머 덕에 당당하게 드러낸 가슴이 급한 걸음걸이에 맞춰 거칠게 흔들린다.

       

       키는 작지만, 자신의 몸뚱이보다 거대한 대검을 어깨에 걸친 모습은 위협적이기 그지없다.

       

       실제로 걸어 다니는 중장비나 다름없는 무력을 지닌 그녀는 평소답지 않게 기세를 마구 흩뿌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기세를 제어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흘리고 다닌다고 해야겠지.

       

       그 이유는 간단하다. 길드에서 받은 의뢰. 마탑의 상위 마법사 다섯을 살해하고, 그들이 지키던 신물과 최고급 마정석을 탈취해 도망친 미친 마법사.

       

       모르가나 데스위버를 추적한 결과 미궁 2층으로 향했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다. 요나와 베니가 모험 중인 그 2층 말이다.

       

       판 그레이브에서 사고치고 도망친 이들은 대부분 미궁으로 향한다.

       

       도시의 방범 시스템이 상상 이상으로 튼튼하기도 하고, 어찌어찌 도망치더라도 숨어있을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천 년 전의 멸신 전쟁으로 판 대륙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장소는 확 줄었다.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숨어있을 장소 같은 건 없다는 소리다.

       

       그러니 미궁으로 향한다. 그중에서도 지도가 완성되지 않은 3층 이상의 계층으로.

       

       미궁은 넓고, 복잡하며, 자신에게도 추적자에게도 위험한 환경이다.

       

       하지만 애초에 위험을 두려워했으면 사고를 치지 않았을 족속들.

       

       그들 눈에는 성장의 땅인 동시에 추적자를 물리쳐 줄 천연 트랩 정도로 보이겠지.

       

       괜히 판 대륙에서 가장 큰 범죄 집단인 황혼을 삼키는 자가 미궁 안에 숨은 것이 아니다.

       

       헌데,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면서 지도가 완전히 그려진 2층으로 향했다?

       

       이는 모르가나가 단순히 도주하기 위해 미궁으로 향한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리고 베니와 오랜 기간 파티를 맺은 리디아는 모르가나가 가장 원하는 것이 그녀의 파티원임을 잘 알고 있었다.

       

       베니가 위험하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 있을 요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 불길한 사실이 리디아의 정신을 몰아세우는 것이었다.

       

       가슴속에서 휘몰아치는 답답함을 해소하듯, 때마침 나타난 코볼트를 단숨에 베어버리는 리디아.

       

       서걱.

       

       “와아….”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소멸한 몬스터. 7층에서 활동하는 고위 모험가가 2층의 몬스터를 압도적인 힘으로 쓰러뜨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름 4층의 중견 모험가이자, 추적술과 함정 해제 등을 인정받아 길드에서 정식으로 패스파인더라는 직위를 받은 이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속도는 충분히 놀랄만한 것이었다.

       

       물론 리디아는 그 감탄의 시간조차 아까웠지만.

       

       “길 찾는 데만 집중해. 다음 갈림길에서는 어디로 가야 해?”

       

       “앗, 넵! 왼쪽으로 꺾으시면 됩니다!”

       

       최대한 빠르게 모르가나의 흔적을 더듬는 패스파인더. 그 모습을 보며, 마찬가지로 길드의 의뢰를 받은 고위 모험가. ‘야만 전사 히폴리테’ 가 혀를 찼다.

       

       “쯧쯧. 거 불쌍한 길잡이는 왜 괴롭히고 그래. 오늘따라 예민한 것 같은데…욕구 불만이야?”

       

       “그런 거 아냐.”

       

       “에이. 아니기는. 아무리 고결하신 기사님이라도 사람인 이상 욕구는 있을 것 아냐. 부끄러워서 그런 거라면 이 언니한테 다 맡겨. 처음인 사람도 만족시킬 자신 있으니까.”

       

       “…모르가나가 노리고 있는 건 아마 베니야.”

       

       “어, 음. 베니라면 항상 너랑 같이 다니는 그 쪼끄만 주문 쟁이? 징그러운 슬라임을 그림자에 넣고 다니는 녀석 말이야.”

       

       “맞아.”

       

       “쓰읍. 동료가 위험한 거면 그럴 수 있지.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걸? 그 꼬맹이가 덩치는 작아도 주문 쟁이 중에서는 꽤 쓸만하니까.”

       

       “히폴리테. 모르가나는 네가 아냐. 추적이 따라붙기 전에 쓰러뜨릴 자신이 있으니까 이런 무모한 짓을 벌인 거겠지. …그리고 위험한 건 베니 뿐만이 아니고.”

       

       “엉? 그건 또 무슨 소리래.”

       

       히폴리테가 눈을 끔뻑이며 되물었다.

       

       거칠게 자란 머리카락. 그 위에 뒤집어쓴 황금색 사자 가죽. 천 쪼가리 하나 대충 걸치고, 두꺼운 곤봉을 든 그녀는 누구나가 알아주는 뛰어난 전사였으나…싸움에 미쳐 사는 터라 소문에 밝은 편은 아니었다.

       

       하여 리디아는 조금 사정을 설명하기로 했다.

       

       “요즘 내가 키우고 있는 애가 있어.”

       

       “제자 같은 거야?”

       

       “아니. 굳이 말하자면….”

       

       나의 작은 주군.

       

       이라는 말이 나오려던 것을 억지로 집어삼킨 리디아가 적절한 단어를 찾았다.

       

       “동료 후보. 그리고 엘리 선배의 남편 후보?”

       

       “그 정도라고?! 심지어 남자야?!”

       

       아무리 미궁을 드나드는 모험가의 성장 속도가 빠르다지만, 초보 모험가가 이미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고위 모험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동료 후보로 볼 정도라니. 천재 중의 천재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거기에 다른 누구도 아닌 엘리가 점찍은 남자다. 분명 무슨 일이 생기면 판 그레이브가 한번 대차게 뒤집어질 것이다.

       

       은퇴한 지 제법 시간이 지났다고는 하나, 용자라는 이름값은 여전하니까.

       

       머리를 벅벅 긁은 히폴리테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아깝지만 길잡이에게 아껴둔 비약이라도 먹이는 수밖에.”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 확장 비약은 이미 먹였어.”

       

       미궁 탐사에 필요할 것 같으면 일단 사고 보는 리디아다. 당연히 일시적인 버프를 위한 물약 정도는 들고 다닌다.

       

       하지만 히폴리테는 뻘쭘하게 물러나기는커녕 한층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공방에서 파는 싸구려가 아냐. 네메아의 비약이지.”

       

       “…그걸 쓰겠다고?”

       

       “오냐. 이거 빚이니까 잘 기억해 두라고?”

       

       “고마워.”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것보다 몇 배는 효과가 좋은 것이 네메아의 마녀들이 만든 비약이다.

       

       애초에 판 그레이브에 자리 잡지 않은 이들이기도 하고, 아무에게나 약을 내어주지도 않아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물건.

       

       이를 목숨이 걸린 상황도 아니고 리디아의 동료를 조금이라도 빨리 찾기 위해 쓰겠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호의다.

       

       하지만 히폴리테는 원래 그런 여자다.

       

       좋게 말해 망설임이 없고, 나쁘게 말해 단순한 사람. 그런 주제에 야만 전사라는 이명에 걸맞게 행동력만큼은 뛰어난 사람.

       

       히폴리테가 허리춤에서 꺼낸 투박한 유리병을 들고 눈이 빠져라 바닥을 훑어대는 패스파인더를 불렀다.

       

       “어이. 길잡이야. 이거 좀 마시고….”

       

       “차, 찾았습니다!”

       

       “엉?”

       

       “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2층 전체에서 이상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가리키는 것은 한 방향이고요! 자기 흔적은 꼼꼼하게 숨긴 주제에 벌인 일의 여파까지는 숨기지 못한 모양이에요!”

       

       “…어, 응. 금방 찾아서 다행이네.”

       

       머쓱하게 다시 네메아의 비약을 집어넣는 히폴리테. 그녀를 제치고 리디아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어디로 가면 되지?”

       

       “몬스터! 몬스터가 몰리는 방향으로 가시면 됩니다! 우선 저를 따라와 주십쇼!”

       

       조심스레 움직이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전력 질주로 통로를 내달리는 길잡이.

       

       4층의 모험가 중에서도 민첩에 특화된 이답게 엄청난 속도였다. 물론, 그래봐야 근접계 고위 모험가인 리디아와 히폴리테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몇 차례 땅을 박찬 것으로 패스파인더를 따라잡은 둘. 셋이 한 덩어리가 되어 미친 듯이 미궁을 주파하기 시작했다.

       

       달리면 달릴수록 점점 많아지는 몬스터. 하지만 놈들은 리디아와 히폴리테의 몸에 부딪히는 순간 그대로 폭발하듯 산산조각날 뿐.

       

       누구도 그녀들의 앞을 가로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달리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일대의 몬스터란 몬스터는 죄다 끌어모은 것인지, 이제는 통로가 꽉 끼어 자기들끼리도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

       

       리디아와 히폴리테는 앞을 가로막은 몬스터를 일격에 마석까지 부숴 소멸시켰다. 그렇게 막혀있던 길을 뚫은 순간.

       

       -크워어어어어어!!

       

       마법의 기척이 느껴지는 새하얀 큐브. 그 앞을 가로막은 그로테스크한 그림자 덩어리.

       

       수백 개의 눈과, 수십 개의 아가리. 그리고 셀 수도 없을 정도의 촉수를 꿈틀거리는 불사의 괴물이 달려드는 몬스터를 죄다 찢어버리고 있었다.

       

       샤도우. 최심부의 몬스터와 비견되는 광기를 품은 그 몸뚱이에 이끌려 온갖 몬스터가 모여든 것이다.

       

       물론, 무엇하나 샤도우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겨우 2층의 몬스터는 그 날카로운 이빨과 분열하는 촉수에 저항하지 못하고 육편 조각이 될 뿐.

       

       샤도우는 그런 시체를 마석 채로 삼키며 계속해서 몬스터를 도륙 내고 있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목표였다. 날파리가 모여드니 손을 흔들어 쫒는다 정도의 감각이리라.

       

       샤도우가 지금 집중하고 있는 것은

       

       쿵!

       

       -키에에에에엑!!

       

       눈앞의 큐브를 깨부수고 자신의 반신을 다시 만나는 일이니까.

       

       뭐어. 그러한 사정을 모르는 리디아와 히폴리테에게는 베니의 통제에서 벗어난 샤도우가 무차별적으로 날뛰는 것처럼 보였지만.

       

       “…히폴리테.”

       

       “알고 있어.”

       

       반사적으로 무기를 겨누는 둘. 그 위로 각자의 오러가 들불이 번지듯 피어오른다.

       

       딴에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것. 하지만 샤도우는 타인의 호의와 적의에 반응하는 아주 간단한 행동 패턴을 지닌 존재다.

       

       -크릉….

       

       자신을 향하는 적의에 맞서기 위해 몸을 돌리는 샤도우.

       

       묘하게 베니를 닮은 작달막한 인간의 형상을 취한 샤도우의 눈동자 수백 개가 꿈틀거리다 말고 리디아와 히폴리테에게 집중된다.

       

       그 섬뜩한 광경에 리디아가 대검을 꾹 움켜쥐며 속삭였다.

       

       “요나…베니….”

       

       대체 무슨 상황이길래 샤도우가 홀로 날뛰는 것인가.

       

       리디아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최악의 상황을 애써 외면하며 오러를 한층 크게 불태웠다.

       

       세상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불꽃처럼. 그리하여 세상에 자신의 각오를 새기려는 것처럼.

       

       “지금 갈게.”

       

       리디아의 그 한마디를 시작으로 미궁 전체를 뒤흔드는 전투가 시작되었다.

       

       ***

       

       큐브 안쪽.

       

       리디아가 애타게 찾는 요나는 지금….

       

       “아, 앞면!”

       

       “땡! 뒷면이었답니다!”

       

       베니와 동전 던져 방향 맞추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졌으니까 하나 더 벗으시죠!”

       

       “으으…이거 맞아? 진짜 맞냐구!”

       

       참고로 진 사람이 탈의하는 룰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세기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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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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