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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0

       

       

       “드디어! 움직였다!”

       

       [진짜?!]

       

       [설마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감격에 겨운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왔다.

       

       항상 얄미울 정도로 나를 놀려대는 놈들이지만, 이럴 때만큼은 서로의 마음이 일치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이성을 향한 애정. 미약한 사랑의 감정이 싹트는 데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줄이야.

       

       

       “얼마나 걸렸더라?”

       

       [네가 그 독자님을 집어넣고 나서부터 말하는 거면 9개월 정도 지났을걸.]

       

       “생각보다 짧네.”

       

       

       분명 굉장히 오래 지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짧구나.

       

       

       [우리 기준에서야 그렇지, 인간 기준이면 꽤 길지 않던가?]

       

       [몰라. 그런 거 알아서 뭐 해?]

       

       [네가 그렇게 관심이 없으니까 건드리는 것마다 다 멸망하지.]

       

       [뭐 인마?!]

       

       

       서로 왁왁 시끄럽게 싸워대기 시작한 녀석들을 무시하고 독자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시끄럽게 울리는 심장 탓일까.

       

       시야가 조금 흔들리는듯한 기분이었다.

       

       

       “···역시 주인공이다 이건가.”

       

       

       감탄이 새어 나왔다.

       

       선물 하나와 가벼운 대화 몇 번으로 독자님을 저렇게 흔들어놓다니.

       

       분명 처음 설정할 때 이런 걸 잘한다는 설정은 집어넣은 적 없었는데.

       

       

       “독자님은···. 아직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네.”

       

       

       스스로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전까지와는 다르게 여유롭게 지켜볼 수 있었다.

       

       한 번이라도 그런 감정이 든다면.

       

       오직 한 번이라도 그런 감정이 생겼다면, 이제는 가파르게 진행될 뿐일 테니.

       

       아멜리아와 도로시에게 잔뜩 놀림당하고 있는 독자님의 시선이 가끔 주인공에게로 향할 때.

       

       주인공의 선물을 무심코 쓰다듬을 때.

       

       그럴 때마다 심장이 조금씩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독자님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더라도,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감정은 싹트고 있었다.

       

       

       “거기서 끊은 건 아쉽지만···.”

       

       

       오히려 좋다고 볼 수 있겠지.

       

       독자님은 갑작스러운 변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이니까.

       

       스스로가 그 마음을 자각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최선일 거다.

       

       만약 저 상황에서 기세에 몸을 맡긴 채로 고백이라도 했다간···.

       

       

       “있지, 너희들. 만약 저기서 고백했으면 어땠을 것 같아?”

       

       [차였겠지.]

       

       [마음은 고맙지만 죄송합니다. 뭐 그런 이야기가 나왔을 것 같은데.]

       

       “역시 그렇지?”

       

       

       독자님과 주인공이 이어지길 바라는 입장에서는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아무래도 독자님의 사정상 쉽게 받아들이기는 힘들 테니.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어 안타까운 눈으로 독자님을 바라보았다.

       

       감질나는 건 어쩔 수 없잖아. 조금 더 진도가 나갔으면 했는데.

       

       아쉬움에 얕은 한숨이 새어 나왔지만, 그런데도 기분이 좋아 빙긋 웃었다.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아주 조금.

       

       조금만 더 등을 떠밀어주면 괜찮을 것 같았으니까.

       

       여태껏 독자님을 몰아넣은 대신 시우에게 의존하도록 유도한 게 성과를 본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아직도 안 통해?]

       

       “응? 뭐가?”

       

       [네 능력. 아직도 주인공한테 안 통하냐고.]

       

       “전혀 안 통하는데?”

       

       [너, 변수가 생기면 어쩌려고···.]

       

       

       변수라니?

       

       

       “그런 게 생길 리가 없잖아.”

       

       

       소녀는 맑게 웃었다.

       

       변수 같은 게 생길 리 없잖아.

       

       주인공의 능력은 직감이라고.

       

       물론 내가 성장이 끝나면 엄청난 능력이 될 거라는 설정을 집어넣은 적이 있긴 했지만···.

       

       

       “직감이 성장해봐야 얼마나 성장하겠어.”

       

       [···하긴. 그래, 미안하다.]

       

       

       한낯 필멸자가 우리를 위협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러니 그런 사소한 문제를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

       

       

       

       “···크르륵.”

       

       “히히.”

       

       

       후드를 쓴 소녀가 맑게 웃었다.

       

       눈앞의 강아지가 사랑스럽다는 듯이.

       

       외견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소녀와 동물의 교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온몸에 흉측한 무언가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소녀와 5톤 트럭 정도 크기의 개가 교감을 나누는 모습이라는 점을 무시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너, 강하구나!”

       

       “크르륵···.”

       

       “응, 응. 알고 있어. 인간들이 자꾸 집에 쳐들어와서 힘들지?”

       

       

       후드를 쓴 소녀는 마수를 향해 말했다.

       

       인간과 마물이 서로 대화할 수 있을 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인간을 따로 구분하는 것 같은 언행의 소녀가 마수를 쓰다듬었다.

       

       그러나 마수는 소녀를 공격하지 않았다.

       

       마수들은 언제나 인간들에게 생리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데도.

       

       그렇기에 마수를 사육하고자 하는 시도는 모두 실패했음에도.

       

       소녀는 마치 마수와 교감을 나누는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힘들었겠구나. 그렇지?”

       

       “···크륵.”

       

       “만약 내가 우연히 지나가지 않았다면 위험할 뻔했네. 걱정하지 마. 이제 안전하니까.”

       

       

       아하하.

       

       아하하하.

       

       소녀가 미친 듯이 웃었다.

       

       

       “···그만 웃고 목적을 말하는 게 어떨까.”

       

       “아, 그렇지. 미안해 미르.”

       

       “괜찮아. 자, 이 아이가 기다리고 있잖니.”

       

       

       “응. ···있지, 나를 도와주지 않을래?”

       

       “크륵.”

       

       “응? 네게 도움이 될 이야기냐고? 그건 모르겠지만, 만약 이게 잘 된다면 인간들은 네 집에 오지 못할걸.”

       

       “크르륵!”

       

       “···정말? 도와주는 거야?! 고마워!”

       

       

       소녀는 홀로 웃고 떠들며 이야기했다.

       

       인간은 마수와 이야기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듯이.

       

       

       “···.”

       

       

       그 모습을 나는 줄곧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숨어있다는 표현은 조금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었으니까.

       

       

       “···네 친구도 많아? 인간들이 자꾸 찾아와서 힘들어해? 걱정하지 마! 내가 도와줄게!”

       

       

       마수 구제에 나선 평범하디 평범한 하루.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고전하긴 했지만 무난하게 마수를 처치하고 기지로 돌아가려고 했다.

       

       ···뒤에서 갑작스레 등장한 저 미친년이 동료들을 순식간에 도륙 내기 전까지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무도 반응하지 못했다.

       

       그나마 어떻게든 눈치챈 내가 몸을 비틀어 즉사를 면했을 뿐.

       

       동료들은 눈을 뜰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 즉사해버린 거겠지.

       

       나도 이미 글렀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배에서 피가 자꾸 새어 나오고 있고, 점점 생각하는 게 힘들어지고 있었다.

       

       

       “본부. 본부, 응답해···.”

       

       

       죽는 건 언제나 각오하고 있었다.

       

       목숨을 내놓고 다니는 전장. 그런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죽음을 각오하지 않은 사람은 최전방에서는 오래 살아남을 수 없었으니까.

       

       그러니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단 하나.

       

       내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이 이상 사태를 보고하지 못하는 것.

       

       이 상황을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본부. 여기는 2팀. 응답···해. 빨리.”

       

       -치직, 치익. ···무슨 일이지? 방금 복귀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

       

       

       다행이다. 연결되었어.

       

       이 상황을 전달할 수 있어!

       

       

       “이상 사태 발생. 키는 대략 150cm 정도 되어 보이는, 후드를 뒤집어쓴 소녀가 배후에서 급습. 2팀은 전멸했다. 소녀는···.”

       

       -뭐, 뭐···? 전멸? 그게 대체 무슨···.

       

       “있지, 거기서 뭐 해?”

       

       

       아.

       

       그 순간, 나는 죽음을 직감했다.

       

       

       “뭐하냐니까?”

       

       

       가만히 있었다면 혹시라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전달해야만 했다.

       

       그것이 죽어버린 동료들을 위한 행동이었으니까.

       

       

       “소녀는 마수와 소통이 가능한 것으로 추정! 몸에는 흉측한 무언가가 다수···!”

       

       

       우두둑.

       

       

       -···방금 그 소리는 뭐지? 이봐, 대답해. 아직 살아있나? 대답해!

       

       

       그것으로 끝.

       

       죽어가는 초인이 목숨을 걸고 전달한 마지막 정보이자 유언이었다.

       

       

       “흉측하다니, 내 동료들에게 말이 심하잖아. 실례라고.”

       

       

       콰득, 콰득.

       

       소녀는 괜히 짜증이 치솟아 무전기를 발로 밟아댔다.

       

       가혹한 환경에서도 오래 사용할 수 있게끔 제작된 튼튼한 무전기였지만, 소녀의 발길질에 산산이 조각나 제구실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있지, 멍멍아. 그건 조금만 먹고 빨리 도망가자. 자리를 옮겨야 할 것 같아.”

       

       “···크륵.”

       

       “쓸데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서 들켜버렸잖아. 죽은 줄 알았는데.”

       

       

       그리고 잠시 후.

       

       다급하게 파견된 구조대가 찾아낸 것은, 끔찍한 몰골로 발견된 2팀의 초인들이었다.

       

       

       

       ***

       

       

       

       [헤헤, 독자님. 저 왔어요.]

       

       “···?”

       

       

       환청인가.

       

       앞으로는 들릴 리 없을 거라고 생각한 목소리가 들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우는 씻으러 가서 아무도 없는데, 대체 뭐지.

       

       

       [독자님···? 저 왔어요. 독자님?]

       

       “하아, 지루하다.”

       

       

       괜스레 TV의 채널을 바꿔보았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시우는 언제쯤 오려나.

       

       잠깐이지만 떨어져 있으니 견디기 힘드네.

       

       

       “···.”

       

       

       무심코 외롭다는 생각이 들자 팔찌를 쓸었다.

       

       따뜻한 온기가 퍼져나가며, 팔찌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헤헤.”

       

       

       팔찌를 바라보며 실없이 웃는 것도 대체 몇 번째일까.

       

       이것 때문에 도로시와 아멜리아에게 잔뜩 놀림당하기는 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야 지켜보면 웃음이 나오는 걸, 어쩔 수 없잖아.

       

       

       “언제쯤 오려나···.”

       

       

       시우가 곁에 없는 건 불안했지만, 더는 불안하지 않았다.

       

       결국에는 나를 도와주러 온다고 해줬으니까.

       

       그러니 아무리 힘들어도 더는 불안하지 않았다.

       

       

       [우아아아아아앙···! 독자님···! 무시하지 마세요!]

       

       “···아이, 깜짝이야. 진짜였네.”

       

       [우아아아아아아앙!]

       

       

       환청인 줄 알았는데, 진짜 작가님이었잖아.

       

       깜짝 놀랐네.

       

       ···없는 편이 나았던 것 같은데.

       

       시끄러운 목소리에 머리가 아파져 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슬슬 이가 썩어들어갈것같아서 스토리 진행을 해야겠네요

    독자님들의 이빨건강은 소중하니까!

    ***

    감추어진축복 님, 1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군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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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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