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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0

        

         

       별을 쳐다보던 진성이 걷기 시작하자 멈춰있던 버섯들이 다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찢어진 틈으로 노래를 불렀다.

         

       [ 헝-글! 손님 대접이 끝이 났네! ]

       [ 헝-글! 식사 시간이 끝이 났네! ]

       [ 손님은 만족하고 돌아갔고! ]

       [ 우리도 만족했다네! ]

         

       버섯들은 진성이 지나갈 때마다 반응하듯 몸을 움직였다.

         

       [ 불을 끄고 먹는 과일이 가장 맛있는 법! ]

       [ 우리는 맛있는 식사를 주었고! ]

       [ 주인은 손님에게 진미를 주었네! ]

       [ 다만 저항력을 잠시 빼앗은 것은 ]

       [ 식사를 위한 준비이니 ]

       [ 이 역시 헝글의 규칙에 어긋나지 않았다네! ]

         

       진성이 지나간 길에서 노래를 부르는 버섯 요정은 몸이 바스러지며 가루가 되었다. 그 자리에 하얀색, 갈색의 가루가 되어 자그마한 원뿔 모양 산을 이루었고, 냉기를 품은 바람이 스쳐 지나가면 빵가루가 하늘에 날리듯 사라졌다.

         

       [ 헝글의 규칙! ]

       [ 음식을 대접하고 또 대접하는 것! ]

       [ 주인의 차례가 끝이 났으니 ]

       [ 이제는 우리가 해야겠지! ]

         

       길 잃은 사람을 대접하기를 좋아한다는 버섯 요정의 모방체는 주인이 손님을 대접하였듯, 자신 역시 제 몸을 부숴 가루로 만들어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그렇게 노래를 부르며 몸이 가루로 변해갔다.

         

       그리고 가루는 그들이 인식하는 ‘손님’에게 날아가 현혹하기 시작했으니.

         

       찍-

       찌직.

         

       요정이 인식하는 손님이란 평소에 버섯을 뜯어 먹고 사는 작은 잡식성 동물이며, 번식력과 적응력이 좋아 세상 어디에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동물이었다. 그들은 텁텁해 보이는 색의 털을 몸에 휘감은 채 네 발로 버섯가루를 먹기 위해 달려오기 시작하였고, 길쭉한 분홍색 꼬리를 흔들며 비어버린 놀이공원의 돌바닥을 가득 메웠다.

         

       쥐.

       인간이 내켜 하지 않는 동반자이며, 어디를 가든 볼 수 있는 동물.

       그들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진미를 먹는 것처럼 정신없이 가루를 탐했다.

         

       진성은 쥐가 가루를 먹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품속에서 천 하나를 꺼내 펼쳤다. 천에는 크롬 크루어히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

         

       그리고는 아무런 뜻도 없는 듯한 고음을 내었다.

       성대를 쥐어짜서 만든 듯한 고음에 쥐들은 먹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쳐들었고, 이내 다시 머리를 처박고 가루를 먹었다. 하지만 개중에서도 몇몇 쥐들은 홀리기라도 한 듯 문양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고, 진성은 그 쥐들을 허공에 띄웠다.

         

       쥐들은 허공에 몸이 부유함에도 아무런 저항도 없이 오직 크롬 크루어히의 문양만을 쳐다보았다.

         

       진성은 그 모습에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곤 놀이공원 구석에 있는 건물로 향했다.

         

       건물은 벽돌을 쌓아 올려 만든 낡아빠진 형태였는데, 사람의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장소에 있는 것이 과거 직원의 휴게실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칠이 벗겨지다 말아 흉한 모습이었는데, 기이하게도 의식하고 쳐다보지 않으면 일상 속의 풍경을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게다가 시선이 잘 집중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 건물을 보고 있자면 기이하게도 건물 외의 것들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선명함에 다른 것에 신경을 쏟기라도 하면 건물은 제 존재감을 완벽하게 지워버리고 기억 속에서 사라지려 하였다.

         

       이세린이 계약한 악마, 그레모리의 ‘비밀’의 권능에서 비롯된 힘이었다.

         

       진성은 눈에 주술을 걸고 계속 건물을 의식하며 걸어갔다.

       그리곤 건물의 문 앞까지 다가가 작게 똑똑 두들겼고.

         

       끼이이익.

         

       낡아빠진 나무 문짝이 천천히 열리며 누군가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오라비, 끝났어?”

         

       이아린이었다.

       이아린은 심심해 죽겠는데 잘됐다는 듯 튀어나왔고, 이윽고 진성에게 달라붙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손님은 누구였냐.

       손님이 누구길래 숨어있으라고 했냐.

       이세린이 무슨 짓을 한 거 같은데 그게 정확하게 뭐냐.

       왜 손님한테 얼굴을 보이면 안 되는 거였냐.

       카피바라로 맛있어 보이는 걸 만들던데 그게 무슨 요리냐.

       내 차례는 언제 오는 거냐.

       맛있는 냄새가 나던데 남은 거 없냐.

       입이 심심한데 남은 고기라도 먹어야 기분이 풀릴 것 같다.

       양은 얼마나 있느냐.

         

       그러한 질문이 쉴 새 없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

       진성은 그녀의 질문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단 한 가지만 답해주었다.

         

       “이제 곧 네가 의식을 할 차례가 왔다.”

       “어, 진짜?”

         

       이아린은 기뻐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활발한 그녀를 지치게 하기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의문이 하나 들었으니.

         

       “그런데 그, 재료 없지 않아?”

       “설치류 말이냐?”

         

       진성은 그녀의 질문에 허공에 띄웠던 쥐 몇 마리를 그녀의 앞에 가져갔다.

         

       “여기 있느니라.”

         

       쥐들은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가루가 주는 포만감에 잠든 것인지, 아니면 가루에 들어있었을 묘한 성분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쥐들은 하나같이 눈을 감고 몸을 웅크리고 있었으며, 기다란 꼬리만 없다면 나름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설치류, 응. 맞네. 오라비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쥐를 바라본 그녀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가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한 얼굴로 진성에게 한 걸음 크게 다가가 조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기 남은 거는?”

         

       진성은 아주 비밀스럽고 위험한 것을 거래하는 것처럼 소곤소곤 말하는 목소리에 피식 웃으며 답해주었다.

         

       “없느니라.”

       “응?”

         

       그 말에 이아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잘못 들었나?”

       “아니다. 제대로 들었느니라. 고기 남은 것은 없다.”

         

       이아린은 정보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그 자리에서 눈을 끔뻑끔뻑 깜빡였다. 그러더니 살짝 눈을 감고 코를 쫑긋쫑긋 움직이며 허공에 남은 강렬하고 기름진 고기의 향기를 맡았고, 이내 다시 눈을 떴다.

         

       다시 뜬 이아린의 눈은…화난 고양잇과 맹수의 것과 비슷했다.

         

       “없다고?”

       “그러하다.”

       “왜?”

       “그렇게 되었느니라.”

       “내가 저 좁아터진 곳에서 그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돌아가서 먹으면 된다.”

       “저 사악한 짐승을 내가 먹어 없애려고 했는데? 복수하려고 했는데?”

       “돌아가면 해주겠느니라.”

         

       자신을 달래는 듯한 진성의 말에 이아린은 돈을 뜯어내듯 말했다.

         

       “에이, 장난이지? 있지? 어서 줘.”

       “없는 것을 어찌 주겠느냐?”

       “줘.”

       “돌아가면 카피바라를 사서 해주마.”

       “줘.”

         

       이아린은 떼를 쓰듯 말하다가 바람을 타고 자신에게 날아오는 카피바라 구이의 잔향에 살짝 짜증이 난 듯 표정을 찡그렸다.

         

       “오라비? 응? 그 뭐냐, 비혈연 호적리스 동거메이트라서 나에 대한 공격성은 없을 줄 알았는데. 지금 나한테 장난이라도 친 거야? 먹을 거 가지고 장난을 친 거야? 어?”

         

       진성은 이아린이 마치 자신의 아버지인 이양훈에게 투덜대듯이 자신을 대하는 것을 보고는 피식 웃었고, 손짓으로 낡은 건물에 있는 이아린을 상대할 전문가를 불렀다. 그러자 이세린은 슬그머니 이아린에게 다가와 그녀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고.

         

       “어? 잠깐. 아니, 그.”

         

       그 말을 들은 이아린은 크게 당황하며 이세린을 바라보았다.

         

       “그, 바보야. 나 춥고 배고프니까…. 빨리 의식을 하고 가고 싶, 싶거든?”

       “아니…. 아무리 그래도…. 아니. 하. 그건 대체 어떻게 본 거야?”

       “권능.”

         

       이아린은 자신의 쌍둥이 여동생이 자기 혼자만 알고 있는 비밀을 말하자 달려들어 제압하려고 했으나, 박진성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을 깨닫고 몸을 멈췄다. 그 모습에 이세린은 그녀를 재촉하기라도 하려는 듯 단어 몇 가지를 툭 던졌다.

         

       “보드카. 술주정. 동물 붙잡고 진상짓….”

         

       이아린은 번개같이 달려들어 이세린의 뒤를 점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곤 그 자세 그대로 진성에게 가자는 듯 눈짓을 했고, 진성은 건물 안 구석진 곳에서 머리를 처박고 잠들어 있는 수리부엉이를 허공에 띄우고 어딘가로 걸어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이름 모를 잡초가 우거진 공터였다.

       이름 모를 잡초는 이것이 바로 러시아의 기상이라고 말하는 듯 허리 높이까지 솟아올라 있었고, 죽은 풀과 살아있는 풀이 엉켜 빼곡하게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달빛이 사라져 어두컴컴하기 짝이 없는 공간 속에서 흐느적흐느적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사나운 짐승이나 악귀가 숨어있기라도 할 것 같은 모습이었으니.

         

       그 음산한 모습에 자매들은 슬쩍 진성을 향해 붙었다.

         

       진성은 허공을 쥐는 시늉을 해 풀을 눕혀 길을 만들고, 풀 한 무더기를 뜯어내 빈 곳을 만들었다.

         

       “너는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그리곤 이세린을 풀숲 앞에다가 앉히고는 이아린을 끌고 들어갔다. 그리곤 로부르참나무로 만든 막대기를 이용해 땅을 다지기 시작했다.

         

       돌과 흙이 뒤섞여 만들어진 바닥은 단단했다.

         

       퍼억.

         

       흙은 상상을 초월하는 러시아의 밤을 지나며 단단하게 얼어붙었고, 그 강도는 다른 돌이나 얼음과 비슷했다. 그렇기에 로부르참나무로 이루어진 단단한 나무막대기는 땅에 부딪치면서 둔탁한 소리를 내었고,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충격에 흔들렸다.

         

       하지만 진성은 개의치 않고 계속 땅을 두들겼다.

         

       퍼억!

       퍼억!

         

       알지 못할 진성의 이러한 행위는 저 멀리서 한 줄기 빛이 솟아오를 때까지 계속되었다. 진성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계속해서 두들기다가 하늘이 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하자 하던 것을 멈추고 물건을 끌어왔다.

         

       그는 불을 중앙에 피우고 거기에 도수 80도가 넘는 보드카를 사정없이 쏟아부었다. 불은 보드카를 먹어치우자 맛있다는 듯 몸집을 크게 불리며 하늘 높이 솟구쳤다.

         

       그는 불꽃이 자신의 가슴께까지 피어오르기를 기다리다가 불 속에 물건을 넣기 시작했다.

         

       처음 수확한 밀.

       처음 수확한 자두.

       처음 수확한 라임.

       처음 수확한 납작 복숭아.

         

       그것들은 불 속으로 뛰어들어 먹이가 되었고, 잿더미가 되어 불꽃의 밑바닥에 쌓이고 또 쌓였다.

       진성은 불이 만족할 때까지 먹여주겠다는 것처럼 하나씩 하나씩 집어넣었다.

       

       이윽고 불에 줄 것이 남지 않게 되었을 때.

         

       찌-익.

         

       허공에 띄웠던 쥐 중 가장 어린 것을 불 속으로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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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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