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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0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레벨업이라고?’

       

       생각지도 않고 있던 레벨업이었다. 

       

       ‘경험치를 어디서 얻은 거지?’

       

       분명 유적지를 나오기 전까지 나온 메시지는 다 읽었다. 

       이건 전부 이번 전투 이후에 뜬 메시지가 틀림없다. 

       

       그리고 그렇다는 건.

       

       ‘설마 아까 아르가 간부들을 한 번에 쓸어 버렸을 때 경험치가 들어온 건가?’

       

       「레키온 사가」에서 마물 이외에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다. 

       특히 게임 초중반까지는 그냥 마물 사냥 이외엔 경험치를 수급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고 봐야 했다. 

       

       ‘심지어 이 게임은 의뢰를 완료할 때도 경험치를 안 준단 말이지.’

       

       의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캐릭터 레벨’에 대한 경험치가 아니라 ‘용병 등급’에 대한 경험치, 그리고 의뢰 보수, 즉 돈뿐이다. 

       

       약초 캐기 같은 비전투 의뢰만으로 레벨을 올리는 걸 막기 위해서인지 어떤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아마 제작사만이 알고 있겠지.

       

       아무튼, 초중반을 벗어나면 그래도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 좀 늘어나긴 하는데, 이게 또 기준이 애매하다.

       

       ‘일단 내가 플레이해 본 바, 마물을 제외하고 경험치를 주는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고렙 해적들을 잡거나, 고렙 용병과 결투를 해서 이기거나, 하무트 교단원을 잡거나, 마왕 바할라크의 수하들을 잡는 경우였지.’

       

       마왕 바할라크의 수하들은 사이비 교단처럼 일반 사람들 사이에 숨어서 활동하는 대신, 쥐 죽은 듯 숨어 있다가 마물들을 조종해서 제국의 병력에 타격을 입히는 방식을 사용했다. 

       

       ‘바할라크의 군단을 잡거나 하무트 교단원을 잡는 건 둘 다 마왕의 세력을 잡는 거라 경험치가 오르는 게 이해가 되는데…. 그냥 용병이나 해적들이랑 싸워서 이길 땐 왜 오르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일관성이 없어, 일관성이.’

       

       시프 길드 놈들을 잡았을 때 경험치가 안 오른 걸 보면 마왕과 관련 있는 놈들을 잡는다고 무조건 오르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뭐, 시스템이 그렇게 된 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

       

       결국 경험치가 오르는지 안 오르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그냥 직접 잡아 보는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방금 아르가 잡은 녀석들은 경험치를 주는 쪽이었던 거고.’

       

       실비아 씨의 말에 따르면 방금 아르가 잡은 놈들은 ‘헤카르테교’ 소속.

       

       「레키온 사가」를 하면서 대륙 남부에서 활동할 때 몇 번 들어 본 적은 있는 이름이지만, 워낙 조용히 지내던 놈들이고 가끔 좋은 말씀 나누러 왔다며 남부 구석탱이의 마을에 포교를 하러 다닌다는 소문만 조금씩 들려 오는 집단이었다. 

       

       ‘그땐 설마 마왕의 수하들일 줄은 몰랐지.’

       

       애초에 그때의 난 마왕이 바할라크밖에 없다고 알고 있었으니까.

       

       ‘알고 보니 조용히 지내는 게 아니라 유물을 가지고 드래곤과 용사 사이를 이간질하는 엄청난 사건을 터뜨리는 놈들이었지.’

       

       여튼, 이로써 용병 결투나 해적은 잘 모르겠지만 마왕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놈들을 잡으면 경험치가 오른다는 건 알 것 같았다. 

       

       [사역마 ‘아르젠테’가 현재 ‘천 년의 힘’을 회복 중이므로, ‘성장’은 회복 이후에 자동으로 이루어집니다.]

       

       ‘일단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다음 성장한다는 소리군.’

       

       저번처럼 성장이 또 하루 만에 끝난다고 가정하면….

       

       ‘천 년의 힘 회복에 하루, 성장에 하루니까 이틀 안에는 도시에 도착을 해야겠네.’

       

       아르가 말랑콩떡이 된 동안 숨기는 건 가능해도, 성장한 이후의 모습까지 숨기는 건 조금 힘들다. 

       

       ‘아르가 작아져 있을 때 모습을 들키는 건 상관없어. 그냥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와이번이라고 잡아떼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만약 기존 성장 단계에서 한 단계 더 성장한다면, 걱정했던 대로 아르가 와이번이라고 더 이상 우길 수 없을 정도가 될지 모른다. 

       

       다행히 다음 목적지인 로멜드까지는 이틀이면 충분히 도착하는 거리. 

       

       빠르게 로멜드에 도착해서 최고급 여관 방 하나 딱 잡고, 아르가 방 안에서 성장을 이룩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 줘야 한다. 

       

       ‘그리고…. 아르랑 다시 그걸 시도해 봐야겠지. 제발 됐으면 좋겠는데.’

       

       나는 내 품 안에서 잘 자고 있는 아르의 배를 쓰다듬어 주었다. 

       

       덜그럭.

       덜컹.

       

       마차는 속력을 내 탄탄대로를 달렸다. 

       

       “레온 씨, 저쪽에 트윈 헤드 트롤 무리가 있는데 빨리 쓸어 버리고 올게요.”

       “아아, 부탁할게요.”

       

       슉.

       

       말을 마친 실비아의 신형이 즉시 사라졌다. 

       

       ‘블링크를 무영창으로…. 역시 보통이 아니야.’

       

       역시 재능이 심상치 않….

       

       “다녀왔어요.”

       “…벌써요?”

       

       실비아는 숨도 차지 않은 듯 아주 차분하게 다시 좌석에 앉았다.

       

       하긴, 9성의 검사가 트윈 헤드 트롤 따위를 정리하는 데에 시간이 걸려야 얼마나 걸리겠는가. 

       

       ‘그러고 보니, 전에 가끔 마물들이 나와야 되는 구간인데 안 나온 구간들이 몇 군데 있었지.’

       

       심지어 그때 출몰할 예정인 마물들은 경험치도 별로 안 주고 전리품으로 챙길 것도 딱히 없는데 처치하기는 귀찮기만 한 마물들이었다. 

       

       ‘경험치도 잘 주고 전리품도 가치 있는 마물들은 또 어김없이 잘 나타났었고.’

       

       루트별로 자주 출몰하는 마물들을 알고 있는 나는 그럴 때마다 내가 운이 이렇게 좋았었나 생각했었다. 

       

       ‘그게 단순히 운이 좋은 게 아니었구나. 어쩐지.’

       

       실비아 씨가 그간 나와 아르를 키우기 위해 뒤에서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이제야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좌석에 몸을 기대는 실비아를 보며 씩 웃었다. 

       

       “실비아 씨, 그동안 연기 하느라 꽤 힘드셨겠어요.”

       “네? 아.”

       

       실비아가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4성…. 아니지, 그전 완전한 햇병아리 시절부터 저와 아르를 키우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하하, 속인 건 죄송해요. 하지만….”

       

       실비아가 눈을 슬쩍 피하며 변명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탓하려는 게 아니에요. 진짜로 고마워서 그래요.”

       

       나는 실비아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최대한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말씀은 부족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실비아 씨랑 지내면서 느낀 건, 실비아 씨는 진심으로 아르와 저를 소중하게 생각해 주신다는 거였어요.”

       

       이제 와서 하기에는 낯뜨거운 이야기긴 했지만, 왠지 지금 해둬야 할 것만 같았다. 

       

       “그냥 임무대로 지키기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저랑 아르랑 함께 웃고 떠들고, 뭘 가르쳐 주실 때면 진심으로 제 실력이 늘기를 바라며 꼼꼼하게 봐 주셨죠. 어느새 실비아 씨는 파티원이 아닌 그저 실비아 씨로서 저희 옆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어 있었어요.”

       “레온 씨….”

       

       실비아의 눈이 감동으로 물들었다. 

       

       “이거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전 정말 실비아 씨한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저야말로 고마워요. 아르가 드래곤이란 걸 이용해서 뭐든 하실 수 있었을 텐데, 진심으로, 사랑으로 아르를 키워 주셨잖아요. 레온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아르의 계약자가 레온 씨라서 정말 다행이에요.”

       “실비아 씨….”

       

       나와 실비아의 눈이 강렬하게 마주쳤다. 

       

       두근, 두근.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 분위기는….’

       

       꿀꺽.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거리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심장이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쀼우우…?”

       “앗, 아르야. 미안, 더 코오 자도 돼.”

       “뀨우….”

       

       긴장한 나머지 품의 아르를 꽉 안아 버리는 바람에 아르가 깨 버렸고, 동시에 분위기도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

       

       “오늘은 여기서 야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버트 씨가 서둘러 준 덕분에, 그리고 실비아 씨가 방해물을 시원하게 미리 쓸어 준 덕분에 우리는 예정보다 로멜드 쪽에 가깝게 도착했다.

       

       이대로라면 내일 해가 지기 전에 반드시 로멜드에 도착할 수 있을 듯싶었다. 

       

       “오오, 역시 레온 님이 해 주신 요리는 기가 막히는군요…!”

       “하하, 감사합니다.”

       

       버트 씨는 고기를 듬뿍 넣은 치즈 스튜를 떠 먹더니 감탄을 내뱉었다. 

       그리고 곧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아르가 안 보이는군요. 아르라면 이 스튜를 엄청 마음에 들어할 것 같은데….”

       “아아, 그건….”

       

       역시 그동안 요리를 행복한 얼굴로 먹으며 각종 혜자 리액션을 뿜어 냈던 아르의 빈 자리를 바로 알아차리시는군.

       

       “아르가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아서요. 지금 텐트에서 쉬고 있습니다.”

       

       나와 실비아 씨는 텐트를 완성시키자마자 마차 안에 있는 아르를 옮긴 뒤 침낭 안에 숨어 있게 했다. 

       

       -아르야, 이따가 밥 갖다 줄 테니까 여기 얌전히 있어야 해. 알겠지?

       -쀼우….

       

       “이런…. 빨리 나았으면 좋겠군요.”

       “하하. 그러게요.”

       

       나는 적당히 식사를 하다가, 스튜를 따로 그릇에 덜어서 일어났다. 

       그리고 텐트 쪽으로 걸어갔다. 

       

       ‘잠이 평소보다 많은 것도 그렇고, 아까 텐트로 옮길 때 축 처져 있던 것도 그렇고. 역시 무리를 많이 한 건가.’

       

       처음에 말랑콩떡이 됐을 때만 해도 건강해 보여서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르야, 많이 힘들지? 스튜 가져왔어.”

       

       내가 텐트를 열며 말했지만, 침낭 속은 요지부동이었다.

       

       ‘맙소사. 일어나서 먹을 힘도 없는 건가.’

       

       평소 같으면 ‘쀼우웃!’ 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났을 아르다.

       

       생각해 보면 갓 태어났을 때 육체로 돌아간 거니 스탯도 낮을 텐데.

       

       문득 가슴이 아팠다.

       

       ‘안 되겠다. 옆에서 먹여 주고 가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침낭 쪽으로 걸어가는데.

       

       바스락. 바스락.

       

       “…?”

       

       소리는 침낭이 아닌, 텐트 구석에서 나고 있었다. 

       

       “아르야?”

       “쀼, 쀼욱!”

       

       나를 돌아본 아르는 간식 상자에서 꺼낸 초콜릿을 입에 잔뜩 묻힌 채 먹고 있었다. 

       

       “아르야.”

       “…쀽.”

       

       아르는 먹던 초콜릿을 마저 꿀꺽 삼켰다. 

       

       “밥 먹기 전에 간식 먹지 말랬지!”

       “삐유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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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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