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110

       의사를만나게 된 것은 그로부터 약 20분 뒤였다.

        

       우리가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스스로 시간을 내어 우리가 있는 카페테리아 쪽으로 찾아왔다.

        

       안경을 끼지는 않았지만, 왠지 눈이 나쁠 것 같은 인상의 의사였다. 머리카락은 제대로 만지지 못했는지 조금 삐쳐 있었고, 옷은 파란 수술복이었다. 그 위에 하얀 가운을 걸친 것이 척 봐도 아침에 와서 지금까지 쭉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이 보였다.

        

       눈 아래가 검게 죽어있는 것도 그런 이미지를 주는데 한몫했다.

        

       의사는 나를 보고 눈을 크게 뜨더니, 양혜인을 보고 새파랗게 질렸다. 의사답게 기억력이 무척 좋은 모양이었다.

        

       ……저런 반응인 걸 보면 우리가 이곳에 있는 줄 모르고 왔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피곤해서 커피 한잔하러 왔다가 마주쳤을지도.

        

       우리는 카페테리아 입구 쪽에 앉아있었기에, 그 의사가 안으로 들어오려다가 그대로 굳어버리는 모습을 바로 볼 수 있었다.

        

       “…….”

        

       아무리 기다려도 이쪽으로 올 생각을 하지 않기에, 나는 먼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박자박 걸어 그 의사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제가 이곳에 왔던 날. 기억하시나요?”

        

       원래 사람에게 말을 걸 때는 안부부터 물어보는 것이 정석이라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사람을 대하는 법을 잘 모른다. 이제 제대로 익히기 시작한 지 일주일째였으니까.

        

       그렇기에, 내 입에서 나간 것은 그런 돌직구였다.

        

       의사는 입을 살짝 벌리고 나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시간 좀 내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나는 다시 한번 돌직구를 날렸다.

        

       *

        

       카페테리아에 나름대로 미녀, 미소녀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들에게 둘러싸여 앉아있는 그 의사는 별로 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럴 수밖에. 이 의사로서는 처음 보는 세 명은 그렇다 쳐도, 나와 양혜인은 이 의사 직장을 그대로 날려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의사와 나는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앉아있었고, 그 양옆의 테이블을 양혜인과 다른 아이들이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2인용 테이블을 세 개 차지하고 앉아있을 뿐이었지만, 구도상 가운데에 의사가 있었으므로 ‘둘러싸여 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색하지는 않으리라.

        

       “몸은 괜찮아요?”

        

       고작 한 번 봤던 사람을 기억하고, 그 사람이 다짜고짜 자신을 찾아왔는데도, 처음 하는 말이 그런 말인 것을 보면 이 사람은 천생 의사인 모양이었다.

        

       화영학원재단 계열 학교라면 죄다 그렇고 그런 인간들만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긴, 그런 생각도 요 일주일 사이에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아요.”

        

       적어도 지난 일주일 동안 살펴본 내 몸에 상처 같은 것은 없었다. 추가로 다칠 일도 없었고.

        

       오히려 기억을 잃기 전보다 더 건강해졌다고 하는 쪽이 맞는 말일 것이다. 평소보다 음식도 훨씬 잘 먹었고, 체력도 훨씬 좋아졌다. 여전히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좋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운동장 한 바퀴 정도는 제대로 돌 수 있으니까.

        

       솔직히 처음에는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식사 시간이 되면 견딜 수 없게 배가 고프고, 나도 모르게 내가 기억하던 것보다 더 많은 음식을 먹고 있었으니까.

        

       그 사람은 나의 몸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해준 것일까.

        

       “그건…… 다행이네요.”

        

       의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커피를 한 잔 홀짝였다. 그리고 양혜인을 한 번 보고, 그 옆에 똑같은 옷을 입고 앉아있는 신소희를 흘끗거렸다.

        

       그러더니, 내 쪽으로 몸을 살짝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그 이후로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이런 목소리로 말해도 다 들릴 텐데.

        

       하지만 아무도 끼어들지는 않았다.

        

       “아뇨.”

        

       나는 최대한 딱 잘라 말했다.

        

       “그때, 제 몸이 얼마나 심각하게 나쁜 상태였기에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

        

       하지만, 동시에 그 당시의 상황을 제대로 물어보았다.

        

       “……기억하지 못하세요?”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양혜인 쪽을 다시 한번 힐끔거렸다. 우리가 하는 말을 막으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긴, 그렇다고 해도 이상한 것은 없었다.

        

       ……어쩌면, 여기 양혜인을 데리고 온 것은 실수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의사는 그때의 내 상태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벌써 3개월이나 지났는데도.

        

       그만큼 인상 깊었겠지. 나보다 심하게 다쳐서 오는 사람도 많겠지만, 그런 식으로 퇴원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테니까.

        

       잠시 뭐라고 대답할지 고민하다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때의 기억은 별로 없네요. 고통 때문에 정신이 없었어서.”

        

       “…….”

        

       의사는 다시 한번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정말로, 가정폭력은 없었나요?”

        

       폭력의 정의를 어디까지 확장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양혜인이 조금 움찔거리는 것이 시야 한구석에 잡혔지만, 지금은 무시하기로 했다.

        

       “네, 없었어요. 하지만 그 일 때문인지, 그 이후로 기억이 희미해서요. 학교를 어떻게 다녔는지도 잘 모르겠고. 혹시 그때의 제가 어떤 상태였는지 알 수 있을까요?”

        

       내가 진짜로 물어보고 싶은 것은 그것이었다. 이곳에 앉아있는 사람 중 양혜인을 제외하면 아무도 모르는, 나 말고 또 다른 ‘나’가 처음으로 눈을 뜨던 순간.

        

       몸 상태가 어땠다느니, 약물이 어떻다느니 하는 말은 양혜인의 말처럼 진단서를 끊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때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 가장 잘 기억하는 사람은 나를 직접 본 사람들 뿐이다.

        

       그리고 나는 집 밖으로는 자주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바깥에서 나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보더라도 제대로 기억하고 있을 사람은 더욱 드물다.

        

       나는 그 사람의 흔적을 조금씩 찾아가 볼 생각이었다.

        

       마치 기억을 되짚어 올라가듯이.

        

       “그때는…….”

        

       의사는 미간을 살짝 모으고, 팔짱을 낀 채 고민하다가 말했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죠.”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고요?”

        

       “네.”

        

       나의 되물음에,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괜찮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 괜찮다고만 했으니까요.”

        

       그건 정말로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그리고 고통스러워하기도 하셨습니다.”

        

       “…….”

        

       등에 있었다는 멍 자국.

        

       “혹시, 그때의 자료가 있을까요? 진단서 같은 것 말고, 제 상태를 기록한 사진이라던가…….”

        

       “…….”

        

       의사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 말을 듣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어째서?

        

       의사가 양혜인 쪽을 연신 힐끔거리는 것을 보면, 아마 그녀와 관련이 있는 이유였겠지.

        

       “저, 그…….”

        

       “잠시, 저 멀리 떨어져서 기다려주지 않겠어요?”

        

       의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것을 중간에 딱 자르며 내가 그렇게 말했다. 양혜인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걸어서 멀리 떨어졌다.

        

       저쪽 창문 근처까지 간 양혜인은, 몸을 돌려서 이쪽을 보는 채로 대기했다.

        

       “그, 다른 분들도…….”

        

       의사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부탁할게.”

        

       내 말에, 유하늘, 이수아, 신소희는 서로를 바라본 뒤 나에게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양혜인보다는 가깝지만, 여기서 하는 대화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먼 곳까지 걸어갔다.

        

       모두 이쪽을 보고 있는 것은 똑같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쪽을 흘끔거렸다.

        

       “……이제 괜찮으신가요?”

        

       “네…….”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다가 멈칫했다.

        

       “그, 지금부터 보여드리려고 하는 건, 혹시라도 경찰에게 보여줘야 할 일이 있을지도 몰라서 찍어둔 겁니다. 혹시…….”

        

       “네, 문제없어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는데도 조금 걱정되는 표정으로, 의사는 스마트폰을 켜서 화면을 뒤적였다. 그리고 주춤주춤 내 쪽으로 스마트폰을 넘겼다.

        

       ……화면에 떠 있는 것은 사진이었다.

        

       내 사진.

        

       아니, 어떻게 보면 그 사람의 사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누군가가 내 옷을 들춰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카메라에 한가득 들어오는, 새파랗게 물든 등.

        

       그건 그냥 멍이 들었다고 할 수준이 아니라, 거의 피가 통하지 않는 채로 한참 동안 방치되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었다.

        

       사진 속의 그 사람은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고통에 차서 비명을 지르다가 지쳐 쓰러지기라도 한 걸까?

        

       사진은 몇 장 되지 않았다. 그 사람 말대로 개인적으로 소장하려던 사진은 아닌 듯, 딱 등 부분과 팔 뒷부분만 찍혀 있었다.

        

       “사진은 그것뿐이지만, 상태는 그것보다 더 심각했어요. 뒷머리나 다리에도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으니까. 누군가가 집요하게 괴롭힌 것처럼.”

        

       만약 이 상처가 다른 사람 때문이라면, 그건 ‘괴롭힘’으로 표현할만한 것이 아니다.

        

       “상처는 멍뿐이었나요?”

        

       “……예, 그렇죠. 그렇기에 더 학대라고 생각한 겁니다.”

        

       만약 이만한 상처가 들 정도의 다른 사고가 있었다면 멍으로 끝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이 의사의 말이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지금 말씀해주셔도 돼요.”

        

       그게 얼마나 위험한 말인지 알고 하는 말일까?

        

       ……그만큼 착한 사람이라는 뜻이겠지.

        

       처음 보는 소녀를 걱정해서 경찰에게 신고까지 해줄 정도로.

        

       나는 다시 스마트폰을 넘겨주면서 말했다.

        

       “아뇨, 괜찮아요. 이제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적어도, 약을 먹어서 몸을 넘기는 것은 보류다.

        

       설령 내가 죽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그만큼 큰 고통을 다시 안겨주어야 하는 거니까.

        

       나는 이 상처가 왜 생겼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게 말이 될지 안 될지는 따지지 않기로 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적어도 이 사람이 깨어난 것이, 내가 잠든 직후는 아니라는 것은 알 것 같았다.

        

       ……이 사람은 그걸 알았을까?

        

       자신에게 그렇게 큰 고통을 준 것이 나라는 것을 알았을까?

        

       그걸 알았는데도, 나를 위해서 움직여준 것일까?

        

       ……만약 ‘나’였다면, 그렇게는 하지 못했을 텐데.

        

       하긴, 나는 내 인생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었으니까.

        

       *

        

       그가 병원에 오게 된 것은 돈 때문이 아니었다.

        

       사람을 살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의사들이 가지고 있는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 드라마를 보고 자라면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옳겠지.

        

       그래, 사실 돈 때문에 의사가 되었다는 이유만큼이나 멋없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돈 때문에 의사라는 직업을 저버리는 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지난번에 환자를 보내버린 뒤에 속으로 자기합리화를 하지 않았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

        

       그는, 한참 동안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을 찾아온 피해자가 자신의 사진을 보여달라고 하더니, 그냥 다시 돌아가 버린 지 한 시간쯤 흐른 뒤였다.

        

       사진을 지우라는 요구도, 내놓으라는 요구도 없었다.

        

       그저 스마트폰을 보고는, 쓰게 웃어 보인 뒤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을 뿐이다.

        

       “…….”

        

       이대로 지나가는 것이 옳을까?

        

       눈앞에 피해자를 두고, 그저 일신의 안위만을 챙기며 넘어가는 것이 옳은 일일까?

        

       의사라는 사람이?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그는 스마트폰에 전화 키패드를 띄웠다.

        

       스마트폰 화면에 112를 적으면서, 그는 이것도 사실 너무 늦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oseMein님, 후원 감사합니다!

    이렇게 큰 돈 후원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ㅠㅠ

    독자 여러분께서 언제나 제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그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도 독자 여러분 덕분에 글을 썼고, 앞으로도 독자 여러분 덕분에 글을 쓸테니까요. 비록 전업작가는 아니지만, 글을 쓰는 것을 업 중에 하나로 삼고 있기에 더욱 함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후원도, 정산도 받지 않는 팬픽을 쓰고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저의 글을 읽기 위해서 플러스를 결제하고 후원을 해주신 분이 계시니까요.

    여러분이 저의 글을 읽으며 투자하시는 시간과 비용이 아깝지 않도록, 오늘도 저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언제나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꿈을 이루어서 너무나 기분이 좋네요. 앞으로도 여러분 앞에서 이 꿈을 부끄럽지 않게 이어나갈 수 있도록, 매일같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너무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후원해주신 분들도, 저의 글을 읽고 무려 팬아트를 선물해주신 분들도, 표지와 일러스트를 그려주시는 양갱왕님도 너무나 감사합니다.

    글을 쓰면 쓸수록, 글이라는 것은 작가 혼자서 완성해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계속 늘어납니다. 앞으로도 함께 걸어주시는 여러분께 부끄럽지 않은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