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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0

        

         나는 객관적으로나 주관적 평가로나 야심가가 못된다고 본다.

         

         실컷 상승 지향적인 목표와 그 과정을 떠들어 놓고는 갑자기 무슨 헛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수단과 목적의 차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명확한 차이점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진짜 야심가는 사회적 성공 그 자체를 목표로 두고 행동한다. 굳이 예시를 들어보자면 아론처럼.

         반면 나 같은 우연의 산물은 소박한 꿈-귀환-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어중간한 기반 다지기를 삼았을 뿐, 크게 바라는 게 없었다.

         

         ……아, 정정하겠다. 하나 정도는 있네.

         

         사시사철 정수 처리된 물이 콸콸 쏟아지고 안전이 보장된 고급 주거지에서 두 발 뻗고 편히 지내면서도, 알아서 크레딧이 복사되고 필요한 실물 자원이 척척 모이는 그런 환경을 조성해서 제로 부품이나 내키는 대로 마개조하면서 초미래형 도시 라이프를 만끽하고 싶었다.

         

         …뭐요. 원하는 게 한 개도 아닐뿐더러, 누가 들어도 존나게 양심 없는 생각이라고?

         

         정답이다. 연금술사…. 나는 사실 원래부터 양심이 없었다!

         

         “…하.”

         

         짧은 헛웃음을 짓고는 평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반 정도는 농담이더라도 스트레스가 없는 삶은 어디까지나 모든 현대인의 공통된 소망이라는 점 분명히 하겠다. 내가 특별히 상식을 망각한 게 아니라.

         

         “에헤헤….”

         “……으휴.”

         

         자는 와중에도 이따금씩 기운 빠지는 웃음을 흘리는 메리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귀 뒤로 넘겨서 정리해주었다.

         

         그냥 얌전히 잤으면 한 번 다듬어주면 그만이었겠으나, 요 맹랑한 꼬마 아가씨는 자꾸만 얼굴을 배나 가슴팍에 비벼대서 곤란했다.

         

         마냥 나를 좋아해주고 달라붙는 게 싫은 건 아니고, 보통 이러다가 간지러움이 도를 넘어서 몸을 비틀면 메리가 깨기 때문이다.

         그리고 겨우 낮잠에 든 아이가 깨면 다시 잠들 때까지 놀아줘야 한다는 책임이 있다는 점도 크게 한몫 거들었고.

         

         “흐응…? 세제랑 휴지가 벌써 다 떨어졌네….”

         

         “제에에가 다녀오겠습니다아…!”

         

         “어머나? 그래 주겠니, 아나스타샤?”

         

         마침 부외자에겐 들려주기 곤란한 전화 통화도 해야겠다.

         찬장을 연 실비아 씨의 혼잣말을 듣자마자, 시키지도 심부름에 냉큼 자원해서 외출-탈출-할 구실을 만들었다.

         

         하필 저 두 생필품만 떨어진 이유? 말끔하다고 표현될 수준에 머물던 집안이 정신 차리고 보니 윤기 흐르게 바뀐 곳에 있지 않을까…. 실상 말을 꺼낸 그녀도 감추지 못할 정도로 흐뭇한 기색이 감돌았으니 말 다했지.

         

         – …청결 유지 및 관리 보수 프로토콜 종료. 통상 경호 모드로 전환합니다. –

         

         그나마 본분을 잊은 건 아닌 모양인지. 거의 마을 아낙네 같은 차림새를 하고 있던 제로가 순식간에 입고 있던 청소복을 벗어 던지…지는 않고, 다소곳하게 의자 등받이에 걸쳐 놓은 채 내 쪽을 바라봤다.

         

         잠깐, 아닌가? 따지고 보면 얘는 원래 저게 본업이 맞고, 사람 칼에 꿰어서 휘두르는 건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응급 대처 같은 거라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 같은데?

         

         ……모르겠다. 고민해봐야 달라지는 것도 없는 거에 너무 신경 쓰지 말자.

         

         “읏차.”

         

         우선 조심스럽게 메리의 머리를 들어 다가온 실비아 씨께 인계했다.

         감히 자신의 허락없이 이루어진 환경 변화에 주름졌던 이마는 익숙한 어머니의 품에 안기니 금방 다시 매끄러워졌다.

         

         딸깍…!

         

         문밖으로, 집밖으로 나가는데도 특별한 인사 같은 건 따로 오가지 않았다.

         군식구처럼 지내는 동안, 맥퀸 가족 모두가 정말 편하게 대해줘서 어느샌가 돌아가는 게 당연하다는 감상이 생겨버렸기에.

         

         특히나… 슈나이더 씨가 일로 바쁜 사이 집안의 기둥 같은 역할을 해주시는 실비아 씨에게는 몇 번을 감사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이런 아내와 애교 많은 딸을 하루 아침에 잃어버리고도 고작 2년만에 ‘까칠하고 회한이 많은 중년 캐릭터’ 정도로 평가받은 그의 정신력도 칭찬해야 할 수준이랄까.

         

         난 성까지 받은 주제에 귀성도 못하고 바깥을 떠도는 불효녀인데 말이다.

         

         “…콜록! 아이씨, 마스크라도 사서 끼던가 해야지 진짜.”

         

         – 가격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활동량에 비례해 필터가 소모되는 방독 마스크보다, 노출된 후 주기적으로 복용하는 노폐물 배출 약품이 더 효율이 좋습니다. –

         

         “……그럼 수명은?”

         

         – 약품 상용화 후 충분한 기간이 지나지 않아 네트워크에 공개된 누적 데이터가 부족합니다. …마스크 착용을 적극 권장드립니다. –

         

         “이런 망할.”

         

         투덜거리면서도 부지런하게 슈트를 잠그고 입가까지 끌어올렸다.

         공기청정기가 꽤 넉넉하게 돌아가는 거주 구역임에도 불구하고, 멀리서 불어온 바람 한 번 잘못 맞으면 저절로 나오는 기침에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신원을 감추기 위한 복면이나 간지 넘치는 패션의 일환이 아닌 이런 엉뚱한 이유로 사이버펑크 세계에 마스크가 유행하는 원인을 체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야, 게임에서도 얼핏 지나가는 묘사 정도는 있었는데 이렇게 거슬리는 줄은 몰랐지….

         

         야이 기업 새끼들아…! 공공설비에 화끈하게 재투자 좀 해줘라 정말!

         관리되는 구역만 신경 쓰면 뭐하냐, 슬럼가에서 막 흘러 들어오는데!

         

         깡! 하고. 분풀이삼아 굴러다니는 쓰레기를 차 날린 뒤.

         일반 거주구를 빠져나와 가장 가까운 C 섹터(Commercial Sector; 상업 구역)로 발길을 옮긴다.

         

         목적지는 맥퀸 패밀리가 자주 애용하는 체인점형 대형마트. 또한 가는 길에 하려던 일도 잊으면 안 되겠지.

         

         “…….”

         

         뚜르르… 뚜르르.

         세상 초조하게. 대기 중에 울리는 신호음을 하릴없이 기다린다.

         

         저~ 바깥에 있는 중계기지와 궤도 위성들이 단체로 폭격이라도 맞지 않는 이상, 절대 연결에 문제가 생길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 그대로 박살 난 자연 환경과 크레이터가 생긴 달 표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건 뭐건 도저히 외부에도 다른 사람들이 살아있다는 기분이 안 들었다.

         

         어마어마한 단절감이 느껴진다고 하는 게 맞을까?

         그냥 톱니바퀴처럼 삭막하게 설계된 미래 도시를 걷다 보니 쓸데없이 감상적이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저희 사무…. –

         

         “기운 빠지는 인사말도 됐고, 전화로는 힘들겠다는 원리원칙도 내밀 생각하지 마. 벌써 일주일이 넘게 접선책이 안 오는 거나 납득가게 설명해 봐!”

         

         이 변태 양반아, 당장 이게 어떻게 돼먹은 상황인지나 말해.

         

         전화기도 몸에 이식되어 더이상 손에 쥘 물건도 없었지만. 대신 팔짱을 끼고 노려보는 감각으로 느긋한 소리를 늘어놓으려는 정보상, 간만에 목소리 듣는 중성 마녀 씨를 갈궜다.

         

         – !! 이거… 우리 전도유망한 아가씨 고객님 아니신가요…! 그런데 왜 이렇게 화가 나셨는지? 혹시 네오 헤이븐 생활이 몸에 안 맞으셨나요? –

         

         “……괜히 푼돈 좀 아껴보려다, 열흘쯤 실직 상태로 있으려니 마냥 더 참아 주기가 힘들어서. 그보다 빨리 해명이나 해보시지? 뭐가 그냥 당당하게 기차역으로 나와서 숙소 잡고 기다리면 알아서 일이 진행될 거라는 거야?!”

         

         나로서는 꽤 표독스러움을 담아서 정곡을 찔렀다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사람가지고 놀며 품평하는 게 익숙한 이 인간은 흔들리는 기색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아니면 그냥 단순히 내가 수싸움이 안 될 정도로 심리전에 밀려서 눈치를 못 채는 거던가.

         

         – 관여하는 일마다 사건 규모를 큼직큼직하게 키우시길래 참 대범하신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잔걱정도 꽤나 많으셨군요? –

         

         “…전화 끊어봐. 지금 당장 되돌아가는 기차표 끊을 테니까.”

         

         비웃음 당한다는 불쾌감이 없었으나, 왠지 얼굴 들이밀며 깐족거리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져서 나도 모르게 살짝 이를 악 물었다.

         

         여기서 호텔 화재 경보 시스템이라도 오작동 시키려면 얼마나 머리를 혹사하면 될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찰나, 조용히 내 어깨를 잡아서 무분별한 도보 진행을 멈춰준 제로가 옆쪽을 곁눈질했다.

         

         …아, 그새 마트 앞에 도착했네.

         사람 많은 곳에서 떠들 내용은 아닌 만큼 어떻게든 바깥에서 마무리-끝장-을 짓고 들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으나.

         

         내 한껏 빡친 대답을 듣고 쫄았는지, 훗날 이루어질 사적 보복을 직감했는지는 몰라도. 한바탕 시원하게 웃어 제낀 이 인간은 순순히 필요한 정보를 털어놓았으니 그나마 다행이겠다.

         

         – 수도에 가까운 하베스트 플래닛에서 곧장 떠나신 아가씨야 오래 기다렸을 지 몰라도, 먼 곳에서 발품 판 다른 참가자들은 이제 막 도착할 무렵이니… 금방 마중이 나갈 거라고 생각됩니다만. –

         

         “잠깐… 먼 곳에서? 다른 참가자?”

         

         지명 의뢰 비스무리한 경우라고 들떠서 준비했더니 실은 몇 번 경험해본 공동 작업이었다?

         난데없이 쏟아진 폭로에 뒷골이 띵하고 울렸다.

         

         – 그래서 처음부터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네오 헤이븐의 의뢰주가 여기저기 중개업자들에게 쓸 만한 사이버 엔지니어를 소개해 달라고 연락을 넣었다고. –

         

         “…지랄났네, 진짜로.”

         

         이마를 탁 하고 짚어서 흐늘흐늘 빠져나가려는 정신머리를 간신히 제자리에 붙잡아 놓았다.

         

         반면 진심으로 당황한 내 혼잣말을 들은 회선 건너편 그인지 그녀인지는 아무래도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고는 말을 덧붙였고.

         

         – 그… 어마어마하게 큰 건수랍니다? 아가씨라면 충분하다고 생각되어서 추천한 거지만, 실력만 확실하다면 모두가 꿈에 그리는 인생역전도 아마 가능한…. –

         

         – …아샤님. –

         

         “응?”

         

         심지어 공동 작업은커녕 비공개 오디션 같은 팍팍한 일자리라는 설명까지 절찬리에 듣던 도중, 묵묵하게 옆자리를 지켜주던 제로 녀석이 또 어깨 근처를 톡톡 건드렸다.

         

         뭐, 따로 재촉하지 않아도 슬슬 얘기가 끝나간다고 대답하려 했는데.

         멀쩡한 음성 모듈도 내버려둔 채로 그는 사이버웨어에 짧고 굵은 메시지를 송신해왔다.

         

         [ 확답 드리기는 어려우나, 높은 확률로 미행이 따라 붙었습니다. ]

         

         “…….”

         

         그들이 마중나오기로 한 접선책일지, 겁대가리 없는 단순 강도인지는 당장 판단하기 어려워도. 양반은 절대 못 되는 것들이라고 나는 박한 내부 평가를 내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흥.

    항상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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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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