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10

     내가 세빌리야를 지나 오염지대에 원정을 나가든 말든, 모두의 눈을 속이고 엘프의 숲에 다니든 말든.

     지브롤터 영지 자체는 그대로 굴러가고 있다.

     보육원에서 제작된 캐롤라인은 모르가니아의 유통망을 통해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으며.

     협곡 2관문 너머에 생긴 아이페리아 아웃렛에서 제국산 물건을 사들이려고 하는 보따리 장사꾼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으며.

     지브롤터의 비호를 받는 이들은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그레이 지브롤터, 15세.

     이미 지브롤터의 사람들은 그레이라는 인간에게 관심 없다.

     10살 때까지만 하더라도 으레 다들 그러려니 했겠지만, 지금은 모든 관심이 그레이가 아닌 동생에게 쏠려있다.

     누아르 지브롤터, 12세.

     중급 기사가 되다!

     “축하드립니다, 도련님!”

     연회가 열렸다.

     “벌써 12살에 중급 기사에 이르다니…!”

     저택의 사용인들과 함께, 어머니 샤를로트 백작 부인이 편지로서 교류하던 이들이 연회에 초대받았다.

     -보육원을 열겠다고 한 것도 어느덧 수년이 지났네요. 모두 다 함께, 아이들의 성장을 축하하지 않으시겠어요?

     명분.

     아이들의 성장을 축하하는 연회.

     -이번에 지브롤터에서 새로운 저택을 지었는데, 이곳에 정식으로 여러분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장소.

     노스트럼 왕궁의 연회장보다 더 넓은 지브롤터 제국식 신축 저택 ‘캐롤라인 성’의 연회장.

     어머니의 초대를 받은 수많은 이들, 보육원에 아이들을 추천해 준 이들이 지브롤터에 도착하여 연회에 참가했다.

     나?

     ‘알고는 있었지만, 엘프의 숲이 더 중요하니까.’

     공교롭게 딱 타이밍이 맞아떨어지기는 했지만, 딱히 관심이 없다.

     일부러 연회가 열리기 전날에 돌아올 생각은 없었지만, 공교롭게 타이밍이 딱 맞아떨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초대에 응하겠다고 한 이들의 명단을 살폈으나, 기대한 것과 달리 실망이 조금 컸다.

     ‘초대 명단은 전부 다 로버트 경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었지.’

     양심에 때가 묻지 않은 착한 사람들.

     사람이 착해서 때로는 선의로 누군가를 곤란하게 만드는 사람들.

     미르딘 자작 부인 같은 이들.

     ‘흰색은 내 관심 밖이야.’

     나로서는 미래의 매국노나 걸레 쓰레기들이 낚였으면 좋겠지만, 이 연회장에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착한 호구들만 모여있다.

     미르딘 자작 부인이라거나, 세자르 공이라거나.

     “에단. 많이 컸구나.”

     “지브롤터 백작님의 은혜 덕분입니다. 그리고 그분에게 저를 보내주신 자작 부인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이렇게 멋진 옷을 입고 있다니…. 세자르 공. 보세요. 당신의 아들이 이렇게 늠름하게 자랐습니다.”

     “크흠. 자작 부인. 너무 그렇게 붙지 마세요….”

     

     협곡의 아이들을 후원했던 귀족들이 주로 초대에 응했고, 이들은 자신들이 후원한 아이들의 성장을 맞이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오늘의 연회가 성장의 결실을 확인하는 자리인 만큼, 초대받은 이들로서는 감회가 새롭겠지.

     “이렇게 멋진 곳에서 열린 최초의 연회에 저희를 초대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백작님.”

     “별말씀을. 마음껏 해후를 나누시오.”

     초대 비용도, 체재비도, 의상 대여비도 전부 지브롤터에서 부담했다.

     금전적인 부담이라고는 전혀 없이 지브롤터에 왔기에, 연회에 온 이들 모두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감사를 표하기 바빴다.

     세력이 약한 귀족도 있고, 몰락 귀족도 있다.

     지방에 있는 거대 상단의 주인도 있고, 은퇴한 군인 명가에서 대표로 온 자도 있다.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들이라는 건 분명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오늘 이 자리는 우리가 보살피는 아이들과의 해후도 해후지만, 우리의 미래-누아르 지브롤터를 부디 축하해줬으면 하오.”

     판을 깔아둔 이상.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누아르 도련님!”

     “중급 기사라니! 그 나이대의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가 아닙니까!”

     “성인 기사를 상대로 이길 정도로 강해지시다니. 이것이야말로 지브롤터의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누아르를 향해 박수를 보낸다.

     “아, 음, 감사합, 크흠, 고맙습니다.”

     누아르가 떨떠름한 얼굴로 연회장에 온 이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누군가를 찾고 있는 듯한 시선.

     누가 자신을 납치하려고 온 것도 아닌데,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

     “하하. 마음에 드는 레이디라도 있습니까?”

     “12살이라도 남자는 남자로군요. 으허허!”

     누아르 주변에 있는 귀족들이 껄껄 웃고 있지만, 누아르의 온 정신은 분명히-

     “…혹시 형님을 보신 분 계십니까?”

     나를 찾고 있다.

     “그레이 지브롤터요? 흐음. 도련님.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그레이 지브롤터.

     연회장, 그 누구도 쉽게 이름을 꺼내지 못하는 이름.

     연회장에는 존재하지 않는 자.

     지브롤터 가문에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신생아들을 제외하면 거의 준 성인임에도 연회장에 참가하지 않은 자.

     “그레이 지브롤터라. 동생이 중급 기사가 된 것을 축하하지는 못할망정…크흠.”

     “한 잔 드시겠습니까?”

     “아. 고맙네. 지브롤터 백작가는 사용인도 예의가 바르군.”

     라고는 하지만, 머리를 물들이고 변장하여 몰래 시종으로 염탐하고 돌아다니는 자.

     “그레이보다 누아르가 더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니, 역시 그 말이 맞는 모양이군.”

     “그렇긴 해. 그 친구, 아예 백작이 검을 가르치지도 않았잖아?”

     “멘테 경이라고 했던가? 스승으로 붙여두는 척하면서 기사단 전력을 늘리려고 한 것이니. 이용당한 거지.”

     ‘이것 참.’

     지금 내 변장을 눈치챈 이가 몇이나 있을까.

     ‘아버지. 어머니. 로버트 경. 카를로스 경. 집사장 말콤. 보육원장 메릴리.’

     끝.

     계속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귀족들에 인사하는 누아르도.

     에단의 옆에 딱 달라붙어 에단의 아버지에게 인사하며 곤란하게 만드는 레타르도.

     어머니에게 안겨 곤히 자는 루비도.

     “페드로. 혹시 그레이 지브롤터를 보았니?”

     “기, 길드장 님. 저는 못 봤습니다.”

     “보육원에서 지내면서 보니까 어땠느냐? 소문에 의하면 사람 깔보기 좋아하는 망나니라고 하던데.”

     “그, 그게…. 저는 그 뭐냐, 누아르 도련님 옆에서 계속 붙어있어서 잘은 모릅니다….”

     “그래? 흐음. 뭐, 그 녀석이 마스터의 재능이 있었다면 너를 진작 붙여줬겠지. 흐흐, 지브롤터도 참 곤란하겠어.”

     보육원의 아이들마저도, 그 누구도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모른다.

     “그, 그래도 그레이 도련님은 좋은 분입니다. 보육원을 가장 많이 신경 써주시는 분이기도 하며….”

     “그래봤자 마스터는 안 될 거 아니냐. 누아르 지브롤터에게 잘 보여둬라. ‘반드시’라고 강요는 안 하겠지만, 누아르 지브롤터의 기사가 되는 게 네가 성공할 수 있는 길이란다.”

     “네, 네…. 그래도 그레이 도련님은…. 크흠.”

     단지 보육원 아이들도 그렇고 누아르도 그렇고, ‘학습된 공포’가 있어서 함부로 말을 못하는 것뿐.

     ‘아버지가 저기 연회장에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내 험담을 한다? 쫓겨나고 싶어 안달이 난 놈이지.’

     보육원에서 햇수로 3~5년 정도 살았는데, 다들 눈치는 있다.

     “하하하. 너를 보낼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자랄 줄은 몰랐는데. 흐흐. 혹시 뭐 좋은 이야기는 없느냐? 응?”

     “배, 백부님…!”

     문제는 그들의 후원자로 처음으로 초대된 이들은 잔뜩 술에 취해 있다는 것.

     “혹시, 막 2년 뒤에 어디로 보내겠다고 그런 이야기는 없어? 응?”

     너무나도 오랜만에 만나기도 했고, 백작 가에서 오냐오냐하니까 다들 긴장감이 살짝 풀렸다는 것.

     “2년 뒤에 왕도에서 아카데미가 열린다고 하던데, 거기에 관해서 뭔가 들은 바가 있거나 하니?”

     그리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뭔가 정보를 얻어내려고 한다는 것.

     ‘당연한 수순이지.’

     예상했던 과정이다.

     그렇기에 보육원 아이들은 자신을 추천해준 이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할 것이다.

     “거기는 제국식 방식이 적용될 거라, 저는 입학하지 못합니다.”

     “응? 제국식? …왜?”

     “그야, 제국이 건물 짓는데 엄청 돈을 많이 지원했다고 했으니까요.”

     모르는 이들에게는 정보를 제공하고.

     “그건 나도 풍문으로 듣기는 했는데, 네가 왜? 혹시 백작가에서 뭔가 일을 시키려고 하는 거니?”

     “아뇨. 그곳은 나이가 맞지 않으면 입학할 수 없습니다.”

     “나이?”

     “2년 뒤에 17살이 되는 아이들만 입학할 수 있다고 하던데요.”

     어설프게 아는 자들에게는 좀 더 심화된 내용을 알려준다.

     반응은?

     “그, 그런…!”

     90%는 당황할 것이다.

     ‘지금 15살인 자식 없는 이들은 곤혹스러워하고, 기뻐하는 이들은 나랑 동갑인 자녀가 있는 자들이겠지.’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며, 모든 인간은 제 자식이 우선인 법.

     “그, 그렇구나. 하하하…. 신식 아카데미에 들어갈 수 없는 건가….” 

     보육원 명단에 추천했다고 하더라도 한 다리 걸치면 남이므로, 초대받은 귀족들 입장에서는 제 자식의 아카데미 입학이 막힌다는 것에 당혹스러우리라.

     “왜 17살이라고 한다더냐?”

     “음. 이건 비밀인데.”

     그리고 일부, 질척거리는 이들에게 선심을 쓰듯 정보를 알린다.

     “나리아 공주님께서 17살이잖습니까.”

     “아, 그래! 나리아 공주께서 한 때 이곳에 머무르셨다고 하셨지. 혹시…?”

     “그분과 같은 나이의 이들만 1학년으로 입학시키겠다는 소문을 들은 것 같기도 합니다.”

     “누구로부터?”

     “그냥 소문입니다. 저도 잘은 모릅니다.”

     “으음….”

     적당한 개연성을.

     어느덧 누아르를 향해서는 무감정한 의례적인 칭찬만이 이어지고, 점차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들끼리 서로 신식 아카데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분위기가 무르익은 때.

     “모처럼 다들 이곳에 왔으니, 요즘 가장 왕도에서 이야기가 많은 아카데미에 관해 이야기를 해두겠소.”

     아버지가 연회장 중앙 계단을 올라가며,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왕도에서는 2년 뒤에 아카데미를 열 생각이며, 제국식 학년제를 도입하여 17살인 아이들만 1학년으로 입학시킬 생각이라더군.”

     “그, 그런…?”

     “그러면 그레이 지브롤터를…?”

     “…….”

     아버지는 잠시 모두를 훑으며-아주 짧게 내게 시선이 머물렀다-,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것은 제국의 방식. 제국에서 천문학적인 자금을 대고 건물이 올라가고 있으니 뭐라고 할 입장은 아니지만, 배움에 나이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렇다면…!”

     “적어도 정원의 일부는 나이에 관계 없이,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할 생각이오.”

     “오, 오오…!”

     원래 이런 대규모 연회라는 것은 명분과 실리가 다른 법.

     “여러분이 이 지브롤터와 뜻을 함께 해주셨으면 하오. 본 변경백은 협곡에 보육원을 세웠던 것처럼, 왕도에 별도의 기숙사를 세워 신식 아카데미에 입학한 학생들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하오.”

     몇몇 이들이 표정이 굳는다.

     특히 돈 많은 이들이 자기네들한테 기숙사 건물에 필요한 돈을 내놓으라고 할까봐 불안해하는 눈치다.

     “안심하시오. 본인은 그저 나이에 제한 없이, 아카데미에는 누구나 입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을 뿐이니.”

     “……!!”

     “나이에, 상관없이.”

     눈치 빠른 이들이 ‘헉’하면서 입을 손으로 막는다.

     2년 뒤에 14살.

     나이에 상관없이.

     그리고 연회장에는 그레이 지브롤터가 없고, 주인공은 누아르 지브롤터.

     귀족의 언어가 아무리 돌리고 돌리고 또 돌려서 이해해야 한다고 해도, 이 정도로 던져줬다면 다들 눈치껏 행동하기 마련.

     “오늘은 기쁜 날이오.”

     아버지가 와인이 든 잔을 가볍게 들었다.

     “모두, 잔을 듭시다.”

     * * *

     

     연회가 끝났다.

     

     지브롤터의 연회가 으레 그러하듯 연회가 끝난 시간은 늦은 저녁이었기에, 연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저마다 지브롤터에서 준비한 호텔-새로 지은 지 불과 1년이 채 되지 않은-에 머무르게 되었다.

     “형.”

     연회가 끝난 뒤, 누아르가 나를 찾아왔다.

     “그, 형. 어, 그러니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누아르를 내려다봤다.

     “지브롤터의 차기 후계자라고 사람들이 떠받들어 주는데, 이런 유약한 모습을 보여서야 되겠어?”

     “……!!”

     12살의 나보다는 아무래도 더 많이 구르고 더 많이 활동한 만큼, 확실히 체격은 다부지다.

     ‘회귀 전이나 후나 둘 다 밀리겠는데.’

     같은 12살이었다면 누아르에게 밀렸겠지.

     “늦게 태어났다고 해서 따라잡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하지만 나는 누아르보다 3년 일찍 태어났다.

     “먼저 태어난 이가 훨씬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더 빠르게 강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나와 합스베르크 황태자 사이의 틈새가 그러하듯.

     “…….”

     “호오. 중급이 되어서 눈에 마나를 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구나.”

     “형은…도대체…?”

     “누아르.”

     나는 누아르에게 다가가,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좋은 지브롤터가 되어야 한다.”

     “…….”

     누아르의 표정이 어색하다.

     나도 표정을 최대한 굳히고 있지만, 아마 표정 관리가 제대로 안 된다면 일그러져 있겠지.

     ‘어쩔 수 없잖아.’

     다른 사람은 모르겠는데, 누아르에게 이런 말을 해본 적이 없으니.

     항상 잔소리만 하고 짜증 내고 욕하고 주먹질만 하던 녀석에게 아무리 회귀 후라고 하더라도, 좋은 말 하기에는 여러모로 어색한 부분이 많다.

     “그러니까, 나를 실망시키지 말라고.”

     “…….”

     “대답은?”

     “알겠, 어….”

     누아르는 무겁게 고개를 숙였다.

     “그래. 그거다, 누아르.”

     모든 오탁과 그림자는 내가 짊어질 것이니.

     너는 찬란한 지브롤터의 빛으로서, 밝게 빛나기를 진심으로 바라마.

     * * *

     그레이 지브롤터가 대중으로부터 사라지고, 약 1년 하고도 수 개월.

     협곡에 겨울이 찾아왔다.

    다음화 보기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