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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1

       

       

         

         

       수도 호엔바렌 함락으로부터 약 1시간 이전.

         

       일났다.

         

       라인하르트 힘러 준장은 벼락을 맞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다른 이들보다도 더욱 더 총통의 최측근이라 말할 수 있는 그였기에, 아포칼립스 프로토콜이 개시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묵시룩이라는 이름처럼 처참한 공멸이다.

         

       “총통 각하!”

         

       “닥쳐라, 성범죄자 새끼야!!”

         

       총통이 권총을 빼어들었다.

         

       이젠 정말로 남은 것이 없었다.

         

       라인하르트의 눈동자에서 일말의 망설임이 지워지고, 그의 손이 빠르게 움직인다.

         

       타앙!!!

         

       한 발의 총성.

         

       쓰러진 이는 총통이었다.

         

       “커, 커어….”

         

       “이 새끼가, 이제까지 누가 네 똥을 다 치워줬는데 지금와서 담그려고….”

         

       “라인… 하르트…!!”

         

       “닥쳐 이 새끼야!”

         

       탕! 타앙!!

         

       연신 방아쇠를 당기던 미형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진다.

         

       그렇게 얼굴 전체에 몇 방이고 쏘아댄 끝에, 탁! 하고 권총 슬라이드가 고정되었다.

         

       “후우… 후….”

         

       미하일 비스마르크 총통은 애진작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라인하르트 힘러가 그에게 충성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권력 때문이었다.

         

       총통의 제국에서 권력이란 곧 멋대로 할 수 있는 권리였기에.

         

       전쟁영웅의 탈을 쓴 쾌락살인마인 그가 활개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은가.

         

       그러나 총통이 공멸을 택한 순간.

         

       라인하르트는 더 이상 총통에게 아부를 떨 필요가 없었다.

         

       “개새끼가!! 감히 내 걸 멋대로 사용하려고 해? 이 씨발…!! 재미도 못 보고 저 지랄이 났는데!!”

         

       이미 숨이 멎은 지 오래인 총통의 시체를 신경질적으로 짓밟는다.

         

       “후우… 아니, 아니지.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어차피 망할 거라면… 저 년부터 잡아서….”

         

       아포칼립스 프로토콜이 발령된 이상, 이 세상에 가망은 없었다.

         

       온갖 기상천외한 유전자 개발을 마친 티탄 여왕이었다.

         

       기존의 티탄보다 성장도가 3배 이상 빠른가 하면, 충분한 전투 데이터가 쌓이지 않고 단순 섭취한 영양분 만으로 초장거리 포격형과 같은 고위 티탄을 맘대로 생산해낼 수 있다.

         

       그야말로 모든 면에서 기존 여왕 개체를 압살하는 ‘하이브 퀸’.

         

       제아무리 무패신화를 작성한 전설적인 전쟁영웅인 루터스 에단이라 한들, 고전을 면치 못할 게 분명했으니까.

         

       그러니까 기왕 이렇게 된 거, 재미 하나는 보고 갈 생각이었다.

         

       이대로 뒤져버리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아르헨 오르카.

         

       아름다운 그 은방울 꽃을 꺾기 위해 얼마나 공들였는데.

         

       차라리 총통 운운할 때 잡아먹을 걸 그랬어.

         

       라인하르트가 뒤늦은 후회를 하며, 아직 문이 잠기지 않은 비상구로 빠져나가려던 그 순간.

         

       삐빅, 삐비비빅.

         

       “…어라.”

         

       마치 방에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순찰로봇이 불을 뿜었다.

         

       타다다다당!!

         

       매복이다.

         

       순식간에 복부에 구멍 몇 개가 뚫려버린 라인하르트가 바라본 마지막 광경은ㅡ.

         

       “쓰레기 새끼.”

         

       순찰로봇의 디스플레이에 떠오른 아르헨 오르카의 얼굴이었다.

         

         

         

       ***

         

         

         

       “여긴… 어디…?”

         

       아르헨 오르카는 칠흑같은 공간에 내던져졌다.

         

       두 발을 딛고 서 있으니, 바닥이 있는 건 확실한데 주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마치 끝없는 우주와도 같은 공허.

       무(無)의 공간.

         

       하지만 전혀 낯설지는 않았다.

         

       나름 회귀자라면 회귀자인 아르헨이었기에 이 공간이 어떤 곳인지 단번에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오라클… 아니, 아카샤인가.”

         

       그녀가 그 이질적인 감각을 떠올려내자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거대한 육각기둥이 솟아오른다.

         

       몇 번이고 보았던 바로 장치였다.

         

       초고도 양자컴퓨터 아카샤.

         

       [현재 통제 권한은 3순위, 샬롯 에버그린에게 부여되어 있습니다.]

         

       [시스템이 1순위, 아르헨 오르카를 인식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아르헨.]

         

       이윽고 반짝거리는 입자가 한 번에 합쳐지더니, 작은 소녀의 모습으로 그녀의 앞에 나타난다.

         

       그것은 아카샤였다.

         

       아르헨은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루터스 에단의 회귀와 함께한 이는 아르헨도, 샬롯도, 레아도, 그레이브야드의 일원들이 아니었다.

         

       양자컴퓨터 아카샤.

         

       마흔 번에 달하는 회귀동안 루터스가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해주었고, 그 동료들이 여정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 일등공신이다.

         

       특히 그레이브야드 요새에 설치되어있는 아카샤는 몇 번의 비공식 개량을 거쳐, 다른 아카샤와 비해 월등하게 뛰어난 성능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가끔 아카샤가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 들더라. 정신이 완전히 나가버렸는지 말이야.

         

       아르헨은 언제가 루터스가 넌지시 말했던 내용을 떠올렸다.

         

       어쩌면 그것이 환청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오라클을 빌려 아카샤와 접촉한 지금이라면 확신할 수 있었다.

         

       저건 아카샤였다.

         

       마흔 번의 회귀를 거치며, 나름대로의 자아를 가지게 된 인공지능.

         

       아르헨은 아카샤의 손을 힘겹게 붙잡았다.

         

       계속된 고문으로 손톱이 성한 곳이 없었고, 시퍼렇게 물든 멍들만 가득하다.

         

       “내가 뭘 하려 여기에 온 건지… 넌 알고 있지.”

         

       아카샤는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더니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양자컴퓨터다.

         

       이론상으론 빛보다 빠른 속도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개량형인 오라클은 미래를 어떠한 시점으로 ‘고정’ 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아르헨의 노림수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이 설령 죽음보다 처참한 것이라고 한들, 마음을 바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과거를 바꿔줘.”

         

       [이미 일어난 일을 없던 것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덮어씌우는 건 가능하잖아?”

         

       [….]

         

       여전히 루터스가 보유한 능력에 대해선 아는 것이 많이 없었다.

         

       당장 당사자조차 정확하게 모르는데 아르헨 오르카가 알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기억을 아카샤에 저장했던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세계가 루터스의 죽음을 기준으로 리셋된다는 점이었다.

         

       아르헨이 죽어도, 드레이크가 죽어도, 그레이브야드가 함락당해도, 그곳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는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이 멈추는 때는 오로지 루터스 에단이 죽음을 맞이할 때 밖에 없는 것이다.

         

       아카샤에 정보를 저장함으로 이제까지 회귀 능력이 없던 이들이 더욱 더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와 동일하기도 했다.

         

       루터스가 죽더라도, 아카샤만큼은 그와 함께 회귀했으니까.

         

       이미 주입된 정보는 확정되었고, 새롭게 리셋될 세계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다르게 말하자면… 루터스 에단의 죽음을 트리거로 삼아 언제든지 세계를 리셋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르헨 오르카.]

         

       아카샤가 그녀의 이름을 불러세운다.

         

       어디까지나 감정없는 인공지능이었으나, 기 목소리에는 어째서인지 슬픔이 깃들어 있는 듯 했다.

         

       [세계를 리셋, 그것도 당신이 원하는 바램으로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건 불가능합니다.]

         

       아카샤가 단호하게 말했다.

         

       [루터스 에단 사령관님의 죽음을 트리거로 삼아, 회귀되는 모든 분기점을 정리하고 가지를 쳐내야 합니다. 밖에서는 몰라도 이곳에서는 영겁의 세월이 걸리겠지요.]

         

       [그동안 당신의 정신은 마모되고 닳아 없어져, 더 이상 형체도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따지자면… 나처럼 되는 것이지요.]

         

       아르헨은 제 입술을 꾹 깨물었다.

         

       역시나 그 방법 밖에는 없는 걸까.

         

       허나 이미 한 번 결정한 이상 번복할 수는 없었다.

         

       저 미친 총통과 성범죄자가 모든 일을 물거품으로 만들기 이전… 모든 열매가 충분하게 익었을 때.

         

       그녀의 노림수가 정확하게 먹혀들어가야 했다.

         

       시간대를 변경하는 일은 생각 이상으로 복잡하고 고된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괜찮다는 말인가요?]

         

       “그래.”

         

       아르헨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마지막 인사도 남겨두고 왔으니, 망설일 이유는 더더욱 없다.

         

       [확인했습니다.]

         

       아카샤는 그런 그녀에게 경례를 붙여올리며 나름대로의 경의를 표하곤.

         

       [부디, 사령관님을 위하여 생명을 바칠 수 있도록.]

         

       그레이브야드에서 농담삼아 언제나 말했던 ‘사령관님을 위하여 생명을 바쳐라’.

         

       그녀에게 무척 익숙한 배웅을 받으며, 아르헨은 자리에서 일어나 새하얀 빛이 내리쬐는 저편으로 향했다.

         

       지금부터는 직접 과거를 목도할 시간이었다.

         

       이제까지 회귀자 루터스가 겪어왔던 모든 일을 보고, 듣고, 느낀 뒤.

         

       끝끝내 후회하지 않고, 그의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한 전쟁영웅으로 만들어주기 위해서.

         

         

         

         

         

         

       시작은, 가장 가까운.

       마흔 번째 회차였다.

         

       최고사령관 루터스 에단과 함께, 그레이브야드의 모두가 힘을 써 마지막까지 도달했던 엔딩.

         

       그 끝맺음은 썩 좋지 않았지만, 그만큼 루터스의 기억과 무의식을 혼동시켜 받아들이게 만들기엔 충분하리라.

         

       아르헨이 허공을 향해 손을 뻗자, 어둠에 잔잔한 진동이 일며 그 당시 참모부관 아르헨 소령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 날, 아르헨은 전장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실 아카샤가 진히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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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ar Hero With No Regrets

A War Hero With No Regrets

후회 안 하는 전쟁영웅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victory earned after forty regressions.

It was now my turn to leave their side.

Not by anyone else’s will, but by my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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