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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1

    <111 – 뜻하지 않은 폭풍>

     

    빅스톤은 이 위험한 후배들과 오래 얽혔다간 제 명에 아카데미를 졸업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는지 냅다 방독면부터 쓰고 빨간이빨버섯 양식장을 습격했다.

     

    “교대시간도 아닌데 뭔 벌써 왔… 으헉! 너, 너 누구야!”

    “조용히 해!”

     

    빅스톤이 품에서 꺼낸 약병을 바닥에 던지자 푸확 하고 가스가 솟구쳤다.

    핑크색 가스를 흡입한 파수꾼이 컥컥 소리를 내다가 목을 붙잡고 쓰러졌다.

     

    “헤에. 저 선배도 의외로 할 때는 하네.”

    “일단은 2학년이잖아!”

    “그러네. 이런 아카데미에서 2학년이 됐으면 조금은 인정해줘야겠어.”

     

    즈앙은 솔직히 감탄했다.

    골골 거리며 쓰러진 빨간이빨버섯들 사이에서 세 마리의 손목에 폭이 넓은 천을 칭칭 감으니 몬스터들이 가볍게 질질 끌려나왔다.

    가스에는 <수면>과 <확산> 성분이, 천에는 <속박>과 <경감> 주문이 걸려있다.

     

    “빅스톤 선배는 의외로 재주가 많네요!”

    “이 정도도 못하면 험난한 2학년 생활을 어떻게 하겠니? 무슨 검기 쓰고 마법으로 폭격을 퍼붓는 미친놈들이 돌아다니는 마당에.”

    “하긴 그렇죠.”

     

    실력이 없으면 연금술과 부여주문이라도 잘해서 서포터 노릇이라도 해야 살아남지.

     

    “줬으니까 거래 됐지?”

    “넹. 위치는 적어놨으니까 확인해보세요!”

    “잠깐. 정확히 그 장소에 물건이 있는지는 나도 확인을 해야 넘겨주지.”

     

    천에 포박된 빨간이빨버섯을 곧바로 넘겨주는 대신, 그는 확인절차를 요구했다.

     

    “깐깐하시네. 겁쟁이인 주제에.”

    “겁이 많으니까 깐깐한 거지. 속을까봐.”

    “괜찮아요. 거래상대가 불안해하는데 그 정도는 배려해줄 수 있죠. 크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빅스톤 선배는 안목키우기 강의에서 앞으로도 얼굴을 계속 볼 사이.

    확실하게 거래를 매듭짓지 않아서 나중에 뒷말이 나오면 강의시간에 서로 곤란해질 수 있다.

     

    “자, 보셨죠? 여기로 들어가면 돼요.”

    “…벽에 걸린 그림을 손으로 밀어서 ‘뒤집히는 벽’ 뒤의 공간에 들어가면 된다니. 용케도 이런 짓을 저지를 용기를 다 냈구나?”

     

    빅스톤 선배는 미술관의 비밀을 아는지 깜짝 놀랐다.

    즈앙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림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미술관의 보안마법으로 보호받는 그림은 잘못 건들면 이 안의 조각상이 모조리 일어나.”

    “그럼 부수면 되잖아요.”

     

    암살자가 할 발언이 맞나 싶긴 했지만 빅스톤 선배는 코웃음을 치며 조각상들을 가리켰다.

     

    “저 조각상들, 경비용으로 납품된 조각상이거든? 내가 알기론 저 중에는 4학년이 졸업작품으로 납품한 조각상도 있어.”

    “사, 사학년?!”

     

    비밀훈련장에서 고학년의 위험성을 두 눈으로 목격했던 즈앙은 그제야 두려움을 보였다.

     

    “오크노디. 너 알고 있었어?”

    “응? 당연히 알지. 양면띠지의 방에도 제대로 적혀 있잖아. 미술관의 그림 뒤에는 많은 보물이 숨겨져 있지만 잘못 건들면 조각상이 일어남! 이라고.”

    “그 많은 걸 어떻게 벌써 다 기억하겠어.”

    “하긴. 좀 많긴 해.”

    “응? 양면띠지의 방? 뭐야 그건?”

    “모르시면 됐어요.”

     

    아무튼 거래는 끝났다.

    빅스톤은 밀주를 얻었고, 나는 버섯을 구해다가 3학년 선배에게 돌려주었다.

     

    “크기는 조금 작지만… 그 정도는 빠른 납품을 고려해서 봐주지.”

    “고마워요, 선배!”

     

    선배가 이 정도로 용서해준다고 선언하자 이벤트를 무사히 완료했다는 판정이 떴다.

     

    [등가교환 이벤트를 완료했습니다.]

    [조기반납 보너스로 1000포인트를 습득합니다.]

    [3학년 선배의 신용도가 오릅니다.]

    [<암흑사교회> 동아리의 신용도가 오릅니다.]

    [당신의 현재 신용도는 <견습회원>입니다.]

    [견습회원의 자격으로 <의식견학>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갑자기 관심도 없던 암흑사교회 루트가 열렸다.

    부담스러우니까 말도 걸지 말아야지.

    이 선배도 무뚝뚝한 편이니까 말만 걸지 않으면 괜찮겠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인사한 다음에 돌아가려는데 “잠깐.” 하고 선배가 나를 불렀다.

    진짜 싫지만 애써 웃는 얼굴로 돌아보았다.

     

    “넹?”

    “…먹어라.”

     

    선배가 젤리 한 알을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거칠고 까끌한 손가락의 감촉과 달리, 부드럽고 말캉거리는 젤리였다.

     

    “와! 감사합니당.”

     

    생긴 건 무섭고 소속 동아리도 수상하지만 사람은 착한 선배시구나.

    그래, 몬스터한테는 조금 잔인해도 사람한테만 착하면 좋은 사람이지.

    선배를 향한 내 안의 신용도가 50쯤 올랐다.

     

    “지금 먹어라.”

    “넹.”

    “오크노디? 그거… 좀 무섭지 않아?”

     

    즈앙은 꺼림칙해하였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젤리를 입에 쏙 넣었다.

    질겅질겅 깨무는 불량식품 특유의 맛이 있는 쫄깃한 젤리였다.

     

    “…맛있냐.”

    “넹!”

    “암흑사교회에 들어오면 더 줄 수도 있다…”

     

    진지하게 고민하는 내 옆구리를 즈앙이 콕콕 손가락으로 찔렀다.

     

    “바보야. 먹을 걸로 꼬신다고 넘어가면 어떡해?”

    “힝. 그래도 맛있는뎅.”

     

    암흑사교회는 특성상 주기적인 모임도 적고 공개적으로 시키는 일도 적다.

    몇 달에 한 번씩 믿을 수 있는 견습회원들만 정회원으로 승급시켜서 진짜 의식에 참여하고 본격적인 동아리 활동에 들어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멤버들도 대부분은 서로 얼굴도 모르는 것이 비밀조직 특유의 전통인 점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너도 받아라.”

    “엑. 싫어요. 가입 안해요.”

    “그냥 주는 거다.”

    “그럼 고맙고요.”

     

    즈앙도 젤리를 입에 쏙 넣더니 눈이 똥그래졌다.

    양 주먹을 쥐고 어쩔 줄 몰라하더니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이 정말 맛있기는 한가보다.

    나야 지구에서도 먹어본 불량식품 맛으로 먹지만 즈앙은 이쪽세계의 주민이니 더욱 생경하고 신선한 식감과 맛이겠지.

     

    “…즈앙. 나한테 했던 말 잊지는 않았지? 먹을 거 준다고 들어가는 거 아니지?”

    “칫. 안다고.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야.”

     

    젤리로 견습회원을 모집하는 암흑사교회.

    진지하게 반쯤 넘어갔다가 겨우 벗어난 즈앙.

    참 귀여운 동아리에 귀여운 친구다.

     

    “원래 이렇게 젤리를 막 나눠주세요?”

     

    게임에서는 그다지 본 기억이 없는 일이라서 슬쩍 물어봤더니 역시나 선배는 고개를 저었다.

     

    “저희가 귀여워서 준거죠?”

     

    즈앙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에 선배가 엄지와 검지를 모아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우쭐해하는 즈앙의 이마 앞으로 동그라미를 옮긴 선배가 따악 하고 딱밤을 날렸다.

     

    “아얏!”

    “귀여워서가 아니다. 같은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 후배가 딱해서 준 거다…”

    “같은 교수님이요?”

     

    누가 봐도 어엿한 암흑사교회 회원처럼 보이는 수상한 몰골의 선배.

    떠오르는 교수님은 딱 한 명밖에 없었다.

     

    “…사다코 교수님?”

     

    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즈앙이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이 되었다.

     

    “선배는 사다코 교수님의 무슨 강의 들으세요?”

    “<언데드 소환수와의 구조적 이해상충과 대응방안에 대한 이해>.”

    “…와. 강의 이름만 들어도 진짜 듣기 싫겠다. 선배는 그거 왜 들어요?”

    “교수님이 미인이라서.”

     

    즈앙이 거짓말 하지 말라며 웃는 얼굴로 쳐다봤다.

    선배는 대답하지 않았다.

    즈앙이 미심쩍은 얼굴로 떠보았다.

    선배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침내 즈앙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기묘한 정적이 찾아왔다.

     

    “그, 그럴 수도 있지! 사람이 외면이 얼마나 중요한데. 동물적인 본성은 어쩔 수 없는 거야!”

     

    괜히 찔려서 선배를 옹호했더니 즈앙이 굉장히 싫지만 분위기를 읽고 이쯤에서 넘어가준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으로 내 안에서는 나름의 확신이 커졌다.

    역시 사다코 교수님의 긴 머리카락 아래에는 모두가 깜짝 놀랄 미모의 얼굴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교수님에게 얼빠가 생기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교수님의 얼굴 중에 어디가 제일 예뻤어요?”

    “입.”

    “…정말요?”

    “미소가 아름다우셨지.”

     

    그 교수님의 웃음소리를 떠올리면 대체 어떤 미소를 지을지는 상상이 잘 안 되는데…?

    상상해보려 애쓸수록 오싹함만 드는 광경이었지만 우리는 미처 몰랐다.

     

    “…같은 교수의 강의를 듣는 연과는 별개로 네 성실함을 봐서 마지막으로 충고 하나만 해주지.”

    “넹!”

    “빨간이빨버섯 양식장들을 습격하는 것은 2학년을 향한 선전포고와 같다. 마음에 준비를 미리 해두는 것이 좋을 거다…”

     

    천방지축 해맑은 1학년 신입생들에게 진짜로 오싹한 일이 시작되려 하고 있음을.

     

     

    * *

     

     

    980기 입학생들로 이루어진 2학년 빨간이빨버섯 양식장 경영자 여럿이 한 자리에 모였다.

     

    “우리 양식장의 빨간이빨버섯들이 여섯 구나 사라졌다. 산채로 얼려다가 납치를 했다는군.”

    “이쪽은 철판에 구워먹고 남은 버섯 꼬따리가 현장에서 발견되었어.”

    “선배들의 짓인가?”

    “아니. 알아본 결과, 드래곤 교장이 1학년들에게 요리를 가르치겠다며 빨간이빨버섯의 요리연습을 하라는 임무를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1학년이 우리 양식장에 손을 댔다고?”

    “진짜냐?”

    “이놈들, 선배인 우리들의 소유물에 손을 댈 정도로 우리가 그렇게 만만해보였다는 건가?”

     

    단단히 화가 난 양식장 경영자들이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내는 가운데, 비밀회담장에 초대받지 않은 이가 발을 들였다.

     

    “저런, 저런. 우리끼리 화를 내서야 쓰나? 혼쭐을 내줘야 할 건 손버릇 나쁜 1학년들인데.”

    “누구냐!”

    “외부인은 우리 회담에 참석할 수 없지 않았나?”

    “누가 데려온 놈이야!”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자 잔뜩 긴장하며 지팡이를 치켜들거나 검을 뽑아들고 약병이나 두꺼운 법전을 손에 드는 980기 2학년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긴가민가하던 한 학생이 아! 하고 소리쳤다.

     

    “잠깐만. 목소리가 기억나. 저 사람, 우리에게 양식장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고 관련강의목록을 짜고 조언을 해주는 대가로 포인트를 받았던 <자문가>야!”

    “뭐? 그럼 저 자가 우리 빨간이빨버섯 경영자협회를 창립시킨 장본인이라고?”

     

    2학년들에게 마나양식이라는 좋은 문화를 알려주고 하나의 불법이익집단으로 뭉칠 수 있도록 회담장소와 지하조직 설립까지 도와준 장본인.

    빨간이빨버섯 경영자협회의 비공식적인 숨은 실세인 외부고문Advisor이 나타났다.

     

    “네놈, 목적이 뭐냐! 포인트라면 이미 범죄조언을 해준다고 잔뜩 받아갔잖아!”

    “1학년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말이지. 특히 놈들 중에 한 명이 내 장사를 방해했거든.”

     

    동급생 심부름꾼들을 함정에 빠뜨려 반쯤 노예로 전락시켜 부려먹었던 흉악한 계약사기꾼, 벨로카시오.

    평범한 회차에서는 1학년의 영향력 있는 주요인물 중 한 명을 계약사기로 빠뜨려 수족처럼 부리는 것으로 만족했을 그가 이번에는 오크노디의 개입으로 인해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했다.

    자신의 사업을 방해한 오크노디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던 벨로카시오에게 이번 빨간이빨버섯 소동은 뜻밖의 기회로 보였다.

     

    “건방진 후배들에게 조금 혼쭐을 내주려고 하는데. 동참할 생각이 있나?”

     

    980기 2학년 흑막 벨로카시오.

    그의 제안에 빨간이빨버섯 경영자협회 회원들이 만장일치로 동참했다.

    잔잔했던 1학년들의 일상에 폭풍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의외로 착한 암흑사교회 선배와 의외로 무서운 빨간이빨버섯 경영자협회 선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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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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