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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1

        철병팔진에는 감옥이라고 부를 만한 시설이 없다.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여덟 구획으로 나뉜 연구소뿐.

         

        그러나 포로가 되어 철병팔진으로 들어온 인간들은 이 장소를 감옥이라고 불렀다. 그들 입장에서는 교도소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어째서…. 저번에는 이 길로 나오면 바깥이랑 가까웠는데…….”

         

        선두에서 탈출을 앞장서던 클라이스는 입술을 떨었다. 명백히 당황한 기색이었다.

         

        가장 앞에 있었다 보니 눈에도 띄었다. 회의장에 모여 있던 절멸급 마수 여섯 명의 시선이 일제히 클라이스를 향했다. 구천지대계는 곧 저마다 살기를 내뿜으며 한 마디씩 던졌다.

         

        “거하게 일들 벌이셨군.”

        “흐응, 혼자서는 버거우니까 단체로 도망치려고? ”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갈 텐데 말이야.” 

         

        마수들에게 동요하는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구천지대계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저마다 마력초를 꺼내서 입에 물었다.

         

        재빠른 손동작이었다. 클라이스나 다른 탈옥자가 이에 대응할 시간은 부족했다.

         

        “공작님, 이 방향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당황하지 말고 요격 태세를 취하세요! 연막을 치고 다른 방향으로 빠져나갑니다!”

         

        클라이스의 말에 로즈마리의 입매가 비틀렸다.

         

        “요격?”

         

        코웃음 나오는 단어였다.

         

       로즈마리는 요르문간드에게 받은 손수건을 손목에 묶었다. 그리고는 바닥에 떨어뜨린 바이올린 현을 주웠다. 때마침 요르문간드가 팔짱을 낀 자세로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교과서적인 예시가 바로 나왔군. 자, 그대는 이 광경을 어떻게 생각하나?”

        “예, 정말이지 꼴불견이네요.”

         

        1석의 나태한 태도는 여전히 마음에 안 들었지만, 조금 전 자신이 요르문간드에게 선제공격을 날리려 했던 일이 얼마나 감정적이고 멍청한 행동이었는지를 깨달았다.

         

        로즈마리에게 있어 인간은 반면교사로 삼아야만 하는 존재. 제 분수도 모르고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공격 마법을 사용하려는 인간들을 보니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하아.” 

         

        오죽하면 한숨이 절로 나올 정도다.

         

        “소란을 피웠으니 수습은 제가 하겠습니다.”

         

        동료 중 행동력이 가장 좋은 게 로즈마리 자신이다. 벌레를 밟아 죽이는 귀찮은 일조차도 먼저 도맡는 성실함이 있었기에 어린 나이에 유격군 총사령관의 지위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실제로 아카샤가 레일건을 장전하고 있고, 슈델가이거나 엔테로까지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아선 이유였다. 제 손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의 워커홀릭이 바로 로즈마리였다.

         

        “당신은…. 블랜튼 공작의 딸인가요….”

        “예, 하스펠트 공작님. 절 알아보시네요.” 

        “당신도 마수였나요?”

        “후흐, 알아차리는 게 늦어요, 공작님. 그러고 보니 우리 옛날에 사교회에서 몇 번 만났었죠? 예전에 황궁에서 파티를 열었을 때 말이예요, 그때 ‘이런 호화스러운 곳은 질색이에요’ 이러시면서 싫어하시는 티 팍팍 내시던 것 잘 봤어요. 뭐… 그 표정도 지금 짓고 계신 상판만큼은 안 유쾌하지만요. ” 

         

        로즈마리는 클라이스를 한껏 조롱하면서 마도사들이 만든 대형을 살폈다.

         

        전열이 공격 마법을 장전하고, 후열은 후퇴를 준비하고 있는 대형이다. 아마도 연막을 치고 도망칠 생각이겠지.

         

        아둔하다.

         

        우매하다.

         

        멍청하기 그지없다.

         

        “혹시 공작님께서 코미디를 하시는 건지 여쭙고 싶네요. 뒤에서 골골거리는 이들을 데리고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로즈마리는 드레스를 슬쩍 들어 올렸다. 치맛자락이 무릎까지 올라왔지만, 맨살이 드러나는 일은 없었다. 소녀의 양 다리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공작님, 자고로 코미디라는 건 말이에요….” 

         

        그녀가 눈을 감으며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아쿠아마린 빛을 지니고 있었던 홍채가 토파즈로 변해 있었다.

         

        “이런 걸 얘기하는 거다, 하등한 년아.”

         

        바뀐 건 눈동자 색만이 아니다.

         

        “너희처럼 그딴 몸으로 이 난공불락의 요새에서 벗어나겠다는 삼류 개그는 조롱거리밖에 안 돼. 알겠어?”

        “그러면…….” 

        “그래, 그렇지. 너희 나라는 이미 망한 지 오래야. 황제도, 황자도, 온갖 대신과 여러 제도까지… 껍데기만 남은 시체에 불과해. 만에 하나 여길 빠져나가서 집에 돌아가도 너희들은 내 손바닥 안이라고! 아하하하하하─!!”

         

        그 누가 그랬던가.

         

        승리 중에서 가장 좋은 승리는 싸우지 않고 얻어내는 것이라고.

         

        “아, 아아….”

         

        가장 먼저 무너진 건 후열이었다. 약해서 도망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던 마도사들이 다리에 힘을 잃고 주저앉았다.

         

        클라이스는 다크써클이 짙게 내려앉은 눈가를 비비며 스태프를 꽉 잡아 쥐었다.

         

        “당신…. 죽여버리겠어.”

        “뭐, 왜. 플레어라도 가져오게?”

         

        로즈마리도 스태프를 들어올린 채로 픽 웃었다.

         

        “할 수 있으면 해 봐.”

         

         

        **

         

         

        싸움이라고 부를 가치도 없었다. 사태는 단 몇 초 만에 정리되었다.

         

        누군가는 입에서 피를 쏟았고, 누군가는 중태에 빠졌다. 누군가는 진작 숨이 끊어졌을 것이다.

         

        클라이스는 벽에 힘없이 기댄 채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7미터 거한의 남자와 블랜튼 공녀가 우습다는 듯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력의 질 하나만큼은 좋아서 살려두고 있었다만…. 세 번씩이나 이러면 어쩔 수 없군. 슬슬 형제자매 만날 준비나 하도록.”

        “그래도 다행이네. 세상 망하기 전에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으니까. 이건 이것대로 자비를 주는 거려나?”

         

        참으로 빌어먹을 인생이었다.

         

        북방의 최전선을 관리하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평생을 전투마도에만 매진하며 살아왔다. 졸업 후 수년을 전선에서 굴렀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잃었다.

         

        언니를. 오빠를. 사촌과 이복동생을. 이모와 이모부를. 고모와 고모부를. 형부와 올케를. 졸업사진까지 같이 찍은 아카데미 동료 여럿을. 그리고 어머니, 어머니를.

         

        너무 많은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서였을까. 자연스럽게 남은 또래 인맥은 메리가 헤를라인 한 명뿐이었다. 

         

        슬슬 때가 되었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다음은 자신이거나 메리 둘 중 하나겠지.

         

        만약 그렇다면…. 하다못해 죽기 전에 모든 절멸급 마수를 쓰러뜨릴 수 있는 마법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그게 설령 도덕을 흠집내는 것이라도. 결국 제 살을 깎아먹는 일이 되더라도.

         

        이루고 싶었기에 비원인 것이니.

         

        “큰 언니가 만든 플레어가 없으니까 아무것도 못 하겠지? 너희 인간들이 그렇지 뭐. 스크롤 하나 없으면 재앙급 하나도 상대 못하는 애들 제국에 널리고 널렸잖아. 내 말이 틀려?” 

        “플레어….”

         

        그래, 플레어. 그랬지.

         

        플레어가 있더라도 역부족이었다. 잔기술만으로는 눈앞의 절멸급에 치명타를 날릴 수 없다. 클라이스의 부대 운용 실력으로는 이들에게 생채기를 남기는 것 정도가 최선이었다. 이는 마왕군과 제국군의 병종 운영에 격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방증이었다.

         

       클라이스는 생각했다.

         

        플레어보다 더 강한 마도가 있다면.

         

        한 소녀의 얼굴을 떠올리려는 찰나, 몸이 옆으로 풀썩 쓰러진다. 왼쪽 귀에서 이명이 들리는 게, 단단한 무언가로 머리를 얻어맞은 모양이다.

         

        필사적으로 의식을 유지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마수 앞에서 두 번이나 기절한다는 건 전략급 마도사로서 치욕일 텐데.

         

        클라이스는 누워있던 채로 윗머리를 잡혔다. 백금색으로 반짝이던 머리칼이 누군가의 손에 붙들려 빛과 형체를 잃어갔다. 

         

        “언니 뭐 해? 그거 더러우니까 만지지 마.”

        “원래 있던 곳에 가져다 놓아야지.”

        “아니, 죽일 거라니까? 여기 탈옥하려 하던 연놈을 싹다 잡아서 이마에 총알구멍 하나씩 뚫어줄 거야.”

        “다른 것들은 마음대로 하던지. 이 인간은 안 돼.”

        “왜?”

        “이 사람 처분을 결정하는 건 큰 언니가 할 거니까.”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그대로 바닥을 핥으며 질질 끌려갔다. 사대공작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대의 치욕이었다.

         

        사대공작으로서 있을 수 없는 치욕이다. 미간에 바람구멍이 나는 것보다도 견디기 어렵다. 때문에 클라이스는 스스로 기절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몸은 뜻대로 안 움직인다.

         

        “일어나셨는지요.” 

         

        10분이 채 안 되어 다시 눈을 뜨고 말았다.

         

        클라이스는 반으로 잘린 원통형 수조 안에 누워있었다. 점성을 띠는 차디찬 액체가 살갗에 닿았는데, 이 부분이 유독 쓰라렸다.

         

        지난 두 달… 아니, 석 달이 되었으려나.

         

        언제부터인지는 까먹었지만, 자신은 마수에게 붙잡힌 뒤로는 이 장소에서 사지가 구속된 채로 종일 천장을 응시해야만 했다.

         

        정황상 이 다음은….

         

        푹.

         

        “흐윽…!”

         

        팔뚝으로 무언가가 들어온다. 주삿바늘이다.

         

        푹, 푹, 푹.

         

        “……!”

         

        조건반사로 나오려는 신음을 어떻게든 참아낸다. 일반 바늘보다 훨씬 굵어서 아랫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어야만 어찌어찌 버틸 수 있었다.

         

        바늘에 연결된 튜브를 통해 피가 빠져나간다. 관을 따라 흘러나가는 선혈은 지하실 가운데에 놓은 커다란 통 안으로 모여 적혈구와 마소로 갈라진다.

         

        이런 식으로 몇 날 며칠을 채혈만 하다 보니 기력이 떨어지기 십상이었다. 그런 주제에 제대로 된 식사나 휴식은 요원하다. 

         

        더는 말할 기운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렇게 살아라도 있는 이상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클라이스는 속으로 이를 갈며 눈을 돌렸다.

         

        함께 탈출하려던 다른 마도사들도 의식을 잃은 채로 이곳에 다시 끌려왔다. 그들은 클라이스와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쳐 피를 뽑혔다. 지하실 내부가 신음으로 꽉 차올랐다.

         

        저 위층에서는 이따금 탕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열에 있던 몇몇 마도사는 몇 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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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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