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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1

       7월은 학생들이 여러모로 풀리는 시기다.

        

       그리고 특히 이 세상은 내가 살던 곳보다 더 분위기가 풀리는 것 같다.

        

       일본 고등학교의 시스템을 따라 만들어진 아카데미였기에, 7월 말에는 기말고사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까워진 방학에 대한 기대감이 완전히 사그라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귀족가의 아이들보다는 평민들 사이에 더 넓게 퍼졌다.

        

       귀족은 자존심으로 살아가는 생물들이다.

        

       아무리 학연이 제일 중요한 목표고, 여기서 좋은 성적을 얻는 것보다 좋은 인연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귀족가의 아이들이라고 하더라도, 성적이 일정 수준 밑으로 떨어지는 것을 두고 ‘망신’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귀족 부모 중에서도 성적에 예민하게 구는 사람들이 많았고.

        

       반면에, 평민들은 이 아카데미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이미 팔자가 폈다고 할만한 애들이 많았다. 귀족보다 평민이 두 배 많은 곳이기는 했지만 그건 제국 내에 귀족의 수보다 평민의 수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지원자의 수를 따지자면 귀족보다 평민 쪽이 정원에 들어오기 더 빡빡했다.

        

       아카데미를 무사히 졸업하기만 해도 먹고 살 방법을 찾는 데 큰 문제가 없다. 사관학교를 겸하는 곳이니 뭣하면 제국 장교로 지원하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그래도 유급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성적은 유지해야겠지만.

        

       그리고 나는…… 6월 중순 이전으로 돌아갈 방법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의외로 그렇게 큰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그게 다 평소에 예습 복습을 철저히 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업이 끝날 때마다 몇 번이고 시간을 돌려서 이해할 것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넘어갔다는 소리다. 자습할 때도 몇 번씩 시간을 돌려서 문제 하나하나의 풀이를 이해해나갔고.

        

       아무리 그래도 시험 문제를 보고 시간을 돌려 다시 푸는 것은 내 기준으로도 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시험 한번 보자고 시험 기간 직전에 시간을 몇 개월씩 되돌리는 것도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학기 내내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다.

        

       아무리 범인(凡人)이라도 시간을 느긋하게 들이면 누구나 수재가 될 수 있는 법이다. 내 손에 넘쳐나는 것은 시간뿐이었으니, 그때그때 기회를 날리지 않고 꾸준히 사용해온 결과가 이것이었다.

        

       그렇다고 여름방학이 별로 기다려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집’이라고 할만한 곳인 황성으로 가면, 무조건 황제를 마주치게 될 테니까.

        

       지난 6월의 그 사건 이후로 황제는 별다른 말이 없었지만, 분명 돌아가서 황제를 보면 백 퍼센트 내가 별로 원하지 않는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

        

       하지만 사람한테 나쁜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그 나쁜 일을 조금 미루는 정도에 불과한 사건일지라도, 종종 기꺼운 일이 일어나기는 했다.

        

       “초대장입니까?”

        

       기말고사가 시작되기 일주일 정도 전, 내 방을 찾아온 클레어가 내민 것은 고급스러운 봉투에 들어있는 편지였다.

        

       앨리스가 샤를로트에게 건넸던 것과 비슷한 것이었지만, 적어도 여기 쓰여있는 내용은 나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응. 우리 영지로 초대하는 초대장이야.”

        

       제도 내에 있는 그레이스 영지는 이곳에서 그렇게 멀지 않았다. 애초에 일반적인 대귀족들의 영지와는 조금 다른, 특수한 형태의 영지였으니까.

        

       실질적인 크기는 영지라고 하기보다는 대저택 수준의 크기다. 현대를 기준으로 생각하자면 조금 큰 학교 정도일까. 커다란 건물 하나와 일반적인 크기의 건물 몇 개가 있고, 그 건물들 사이에 약간의 부지가 있고, 운동장이라고 할 수 있을법한 잔디밭이 있고……

        

       물론 그런 크기의 땅과 건물을 개인의 이름으로 소지하고 있다는 것이 대단하다면 대단하지만, 하나의 국가나 지방의 크기와 비교해도 이상하지 않을 백작령, 공작령들과 비교하자면 그래도 현실적인 크기였다.

        

       “아버지, 어머니께 언니에 대해 이야기를 했거든.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셔.”

        

       그 말을 들은 내가 클레어를 멀거니 바라보자, 클레어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내가 찾던 언니라는 말만 했으니까. 그 외에 다른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어…… 아.”

        

       그리고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야 클레어는 그 사실 자체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라는 것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조금 불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클레어는, 분명 나와 거의 비슷한 키였는데도 불구하고 묘하게 어리게 보였다.

        

       “그, 괜한 이야기를 한 걸까?”

        

       “아닙니다.”

        

       나는 편지 봉투를 열어보며 말했다.

        

       “그레이스 가는 충성스러운 가문이니까요. 그리고…… 당신이 그곳에 있는 한은 언젠가 밝혀질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내 말에 클레어는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무엇보다, 당신을 그곳으로 데려다준 사람이 저입니다. 이제 와서 당신이 어떤 일을 했다고 화를 낼 이유가 없습니다.”

        

       “그, 그래……?”

        

       조금 기쁘다는 듯 말하는 클레어를 앞에 둔 채로, 나는 봉투에 있던 편지를 꺼내 들었다. 편지지 또한 고급스러운 종이였다. 귀족들이나 사용할법한.

        

       남작가라고 해도 귀족은 귀족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편지를 펼쳐 들자, 마치 인쇄기로 뽑은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말끔한 필기체로 쓰인 편지 내용이 보였다.

        

        

       [영광스러운 제국의 실비아 팬그리폰 황녀님께.

        

       뜨거운 태양 빛이 대지를 달구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공기가 습기를 머금고 있습니다. 그 날씨를 다소 불쾌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지만, 때로는 그 날씨를 핑계 삼아 어디 다녀오기 좋은 계절이기도 합니다.

        

       황녀님께서 지내시는 곳과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은 아니라 별천지처럼 시원한 바람이나 쾌적한 공기를 선사해드리지는 못하겠지만, 저희 영지 안의 푸른 잔디밭은 귀족들 사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관리가 잘된 곳입니다. 다소 칙칙한 도시 가운데에서 눈이 쉴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로 유명하죠.

        

       그런 푸르름을 감상하며 서늘한 그늘에서 황녀님과 차 한잔할 수 있는 영광을 주신다면 저희 그레이스 가에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희 여식을 통해 황녀님의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올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겠습니다.

        

       1901년 7월 11일 화요일.

        

       에드워드 그레이스 남작 올림.]

        

        

       편지 내용은 그렇다 쳐도, 필체에서부터 ‘나 정직하오’하는 분위기가 물씬 풍겨왔다. 뭐, 악당 중에서도 필체가 좋은 사람은 널리고 널렸겠지만. 어쩌면 내가 그레이스 남작에 대해 이미 알고 있기에 고정관념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나는 편지를 다 읽고 나서 시선을 들어, 내 앞의 클레어를 보았다.

        

       클레어는 내가 이 편지에 대해 긍정적인 대답을 할 거라고 확신하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손을 등 뒤로 하고, 조금 쭈뼛거리면서 나를 보고 있었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나를 올려다보는 그 모습은, 희미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모습이기도 했다.

        

       고아원에서 내가 먹을 몫의 음식을 클레어에게 나누어 줄 때마다 클레어가 짓던 표정이었다.

        

       딱히 눈치 볼 일도 없이 살았을 텐데,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그런 버릇이 전혀 사라지지 않은 것을 보면, 클레어의 삶에서 그 아무것도 없던 5년의 삶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 그래서 나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거겠지. 자기 삶에서 가장 먼저 친절을 보여준 사람일 테니까.

        

       “알겠습니다.”

        

       나는 편지를 다시 조심스럽게 접어 봉투 안에 넣으며 말했다.

        

       “초대에 응하도록 하겠습니다. 날짜는 언제가 되어도 상관없습니까?”

        

       “아, 응!”

        

       내 대답에 클레어는 얼굴에 활짝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지, 이런 아이가 원작에서처럼 삐뚤어지기 위해서는 무슨 짓을 겪어야 하는 걸까.

        

       어쩌면, 부서지지 않고 버텨낸 것 자체가 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클레어는 그만큼 강한 아이였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마지막에 그렇게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던 자기 동생을 위해서 죽어줄 수 있었던 성격이었으니까.

        

       그래도, 덕분에 황제 얼굴을 조금 늦게 보아도 될 수 있어서,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그리고, 그레이스 가에도 한 번 정도는 방문해보고 싶었으니까. 원작에서도 가게 되는 곳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때까지 멍하니 기다리고 있는 것도 조금 답답했다.

        

       “그렇다면 시험 끝나고, 방학식 이후에 바로 방문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그러면 나야 좋지! 부모님께는 미리 말씀드려둘게!”

        

       부모님이라.

        

       생각해보니 나는 클레어와 함께 돌아다니기만 했지, 막상 클레어가 어떻게 자랐는지는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원작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좋은 환경이었을 거고, 오히려 그렇기에 따로 말을 해줄 필요가 없었을 뿐이겠지만.

        

       게다가 거긴 주인공 집이기도 했다.

        

       레오와 클레어가 어떻게 자랐는지, 그레이스 남작 부부에게 직접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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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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