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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1

     

    “…으음.”

     

    번쩍, 침상에서 황제가 눈을 떴다.

     

    안도의 미소를 짓는 앰브로시아를 보며 그가 상황을 파악했다.

     

    비록 몸은 사경을 건너와서 엉망이지만 귀신같은 정신력으로 동앗줄을 콱 붙잡는다.

     

    황제가 천천히 기억을 되살렸다.

     

    권터의 술을 먹고 중독됐다. 간신히 고트베르크를 불렀고 그가 막 도착했을 때의 소리가 어렴풋이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그가 이 몸을 이승에 붙들어주었나.

     

    이대로 세상을 하직했다면 황제를 잃은 제국은 혼란의 시기에 빠지고, 그에겐 후회만이 남았을 터였다.

     

    “고트베르크는.”

     

    “폐하를 치료한 후 범인에게 향했습니다.”

     

    황제가 상체를 일으키며 자신의 팔에 꽂힌 링겔줄을 당겨 뺐다. 앰브로시아가 기겁하며 그를 말렸다.

     

    “폐하, 안정하셔야 하옵니다.”

     

    “짐에 대한 공격은 제국에 대한 공격이다. 즉시 대응하겠다.”

     

    수술 부위의 통증이나 구토감 따위는 그의 정신력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앰브로시아는 황제가 이럴 때 특히 반드시 의지를 관철하는 사람이라고 잘 알았다. 그녀는 명을 받들어 출타를 준비했다.

     

     

    황제복을 걸친 그는 어느새 카리스마 넘치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월광궁으로 모시겠습니다.”

     

    친위대와 함께 마차에 올라탄다.

     

    월광궁에서는 소식을 들은 아셀라가 이미 준비를 맞추고 예를 표하고 있었다.

     

    “옥체의 수복을 감축드립니다, 폐하.”

     

    “아셀라, 보고를 들으마.”

     

    황제의 명에 아셀라가 고개를 들어 눈매를 날카롭게 정단했다.

     

    “폐하를 시해하려 한 실행범은 체포해 구속했습니다. 폐하의 적은 제국의 적. 마땅한 벌은 물론이고 그 이상의 책임을 물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분노는 절제하며 증오는 차갑게.

     

    “황명을 내려주십시오.”

     

    확고한 아셀라의 태도는 황제에게 인상 깊게 박혔다.

     

    카밀라에게서 벗어나 승계전에 참전한 그녀는 해가 다르게 강인한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이제는 소녀 티도 한꺼풀 벗은 딸에게서, 황제는 제국의 황제에 어울리는 자질을 엿보았다.

     

    “월광궁에서 빠르게 대응하였군. 칭찬을 하사하마.”

     

    “황공하옵니다.”

     

    “고트베르크는?”

     

    “실행범을 심문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대령하겠습니다.”

     

    “기다리겠다.”

     

    막 걸음을 돌린 아셀라를 향해 황제가 막 생각난 듯 불러세웠다.

     

    “아셀라.”

     

    “예, 폐하.”

     

    “고트베르크와 사이는 좋느냐?”

     

    예상치 못한 질문에 아셀라가 입술을 앙 오므렸다.

     

    뭐라 대답할지 고민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황제는 가벼운 코웃음을 치고는 손을 내저었다.

     

    “충분한 대답이다. 가보거라.”

     

    “예.”

     

     

     

    ***

     

     

     

    “상태는 좀 어때.”

     

    나는 월광궁 지하 감옥으로 내려와서 경비 중인 타냐와 만났다.

     

    “어떤 질문을 해도 묵묵부답입니다. 수갑을 채웠으니 허튼 수작은 못 부릴 겁니다.”

     

    주문 무효화 인챈트가 된 수갑이다.

    상당한 고가인데 월광궁 감옥에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나저나 살벌한 분위기였다. 개미 하나 지나갈 틈새 없는 돌벽에 온갖 고문기구가 가득하다.

     

    월광궁에 고문관도 있었나? 설마 시녀장 누님이 쓰진 않겠지.

     

     

    내가 감옥으로 들어가니 리비오가 힘없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잠자리는 좀 어때? 리비오 전 신관.”

     

    팔다리가 구속된 그는 온몸이 상처투성이라 당장 혼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어우, 심하네. 애를 너무 패놨잖아.”

     

    “제가 아니라 황녀님이 하셨습니다.”

     

    “진짜? 오우…”

     

    팔다리의 구멍은 아셀라의 얼음창에 뚫린 거였나. 그거 드럽게 아프지.

     

    그래도 연민은 안 들었다.

     

     

    나는 나무 의자를 가져와 리비오의 앞에 거꾸로 놓고 앉았다.

     

    “얘기 좀 하자고. 좋은 소식이 있어.”

     

    “…….”

     

    “황제는 내가 살려냈어. 워낙 정신력이 강한 양반이니까 오늘내일이면 깨어날지도?”

     

    소식을 들은 리비오는 진심으로 기뻤는지 어깨를 비틀며 이를 딱딱 부딪쳤다.

     

    타냐가 이빨도 몇 개 빼놔서 소리가 아주 크진 않았다.

     

    “고트베르크…!”

     

    “그래, 나야. 시간 없으니 빨리빨리 진행하자고.”

     

    나는 즉시 본론을 말했다.

     

    “이번에 쓴 저주들, 카밀라 제 3황비에게 받았냐?”

     

    리비오는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할 말은 없습니다.”

     

    “인정하는 게 좋을걸. 너로서는 제국이 지금보다 강대해지면 재미없잖아.”

     

    “지금보다… 완벽하게 완성된다고?”

     

    “그래. 너는 법국에서 파견된 치유사니까, 제국은 법국에 전쟁을 걸 명분이 생기거든. 지금이야 동맹이지만 황제 시해범을 파견해? 당장 전군을 일으킬 사안이지.”

     

    리비오는 내 말을 이해했을 터다.

     

    대륙에는 수십 개의 국가가 있지만 대부분은 소국이고 현재 강대국은 제국, 법국, 왕국의 3국이다.

     

    그중에서도 제국은 대륙 영토의 삼분지 일을 정복한 최강대국이다.

     

    정복 전쟁을 멈춘 십몇 년간의 상황은 황제의 변덕 때문이지, 언제든 다른 국가를 침략할 군사력은 준비되어 있다.

     

    “제국이 법국을 먹으면 대륙 통일도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완벽한 대륙 지도의 완성. 인류사에 남을 업적 아니겠어?”

     

    “…윽.”

     

    리비오는 사상범도 아니고 이해관계를 챙기는 타입도 아니다.

     

    쾌락범.

     

    완성되어가는 물건을 망가뜨려야만 쾌감을 얻을 수 있는 사이코패스다.

     

    마치 남이 열심히 짓던 모래성을 발로 차버리는 못된 꼬마애 같은 사고회로다.

     

    그로서는 자신의 실패 때문에 여기서 끝났어야 할 제국의 전성기가 더욱 완벽해지는 걸 견딜 수가 없겠지.

     

    “네가 인정하면 제국 안에서 끝날 문제 같은데, 어때?”

     

    내가 바라는 자백은 그것이었다.

     

    수정구 영상 정도는 결정적인 증거까지는 아니다. 그가 받아온 병이 권터에게 쓰인 주술이라고 증명하기 힘드니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황제 시해에 쓰인 저주다.

     

    그것과 카밀라의 연관성을 증명해야 때려잡을 명분이 생긴다.

     

    “저는 처형됩니까?”

     

    리비오의 질문에 나는 씨익 웃어줬다.

     

    “인정하면 처형해줄게. 안 하면 평생 정보를 털기 위해 고문실에 처박아주고.”

     

    내 대답에 리비오가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로서는 살아서 제국의 완성을 보는 것이 더 괴로우리라.

     

    마침내 리비오가 힘겹게 대답했다.

     

    “…자백하겠습니다. 대신 저를 일주일 내에 처형해주십시오.”

     

    “좋아. 사법거래 성립이다.”

     

     

     

    심문을 끝내고 올라오니 아셀라가 나를 찾고 있었다.

     

    “공자, 폐하가 찾아오셨어.”

     

    “잘됐네요. 마침 드릴 말씀이 있어서.”

     

    응접실로 향하려는데 팍, 아셀라가 내 팔을 붙잡았다.

     

    “할 말 없어?”

     

    “흠, 감사 인사는 괜찮습니다?”

     

    아셀라는 내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인상을 찡그렸다.

     

    “그게 아니잖아. 또 내 명령을 안 들었어.”

     

    “결과적으로 해냈잖아요. 폐하께서 월광궁에 점수를 얼마나 주시겠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아셀라는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공자는 목숨이 아깝지도 않아? 언제까지 지금처럼 아슬아슬하게 줄을 탈 건데.”

     

    “왜 아슬아슬하다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저도 승산 없는 게임은 안 해요.”

     

    “그러다 실패하면 어쩌려고. 지금처럼 목숨이 걸린 도박에서 져봐. 변명도 못 하게 된다니까?”

     

    “에이, 치료행위가 어떻게 도박이에요.”

     

    “그럼 앞으로도 계속 지금처럼 내 명령을 무시하겠다고?”

     

    “허, 왜 또 의미를 부풀리세요.”

     

    이번 일은 나로서 반드시 맡아야 하는 건이었다. 가문의 멸문은 당연히 막아야 했고, 용사파티에 차출될 미래도 없어졌다.

     

    아셀라로서는 내가 회귀 덕에 가진 정보나 스킬을 모르니 확률이 낮아 보였을까.

     

    그래도 도박이라는 비유는 심했다.

     

    하지만 아셀라도 물러설 생각이 없는지, 원망 담긴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공자, 왜 그렇게 내 기분을 몰라줘?”

     

    “어… 뭐라고요?”

     

    순간 내가 단어를 제대로 들었는지 의심이 갔다.

     

    내가 아는 황제 아셀라는 언제나 당당하고 남의 감정 따위는 쥐뿔도 신경 쓰지 않는 안하무인이었다.

     

    기분이 나쁘면 상대를 벌해서 풀고, 기분이 좋으면 주변에 동참하라 강요하면 그만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과거의 그녀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확인했었다. 후작가나 월광궁에서 멋대로 행동하고 다닌 모습을 보면.

     

    그런 아셀라가 이런 표현을 썼다는 건 내게 바라는 게 있다는 뜻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당신의 행동이 아니라, 나의 반응으로 기분을 풀고 싶다.

     

    ‘아셀라가 이상해졌어.’

     

    최근 들어 계속 느꼈던 위화감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내 눈앞의 아셀라는 최악의 폭군도, 황금의 마녀도 아니었다.

     

    “황녀님, 제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재확인을 위한 질문에, 아셀라는 빈정이 상했는지 나를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뭐겠어!”

     

    “말씀해주지 않으시면 정확히 알 수가 없어요. 왜 저에게만 그러시나요.”

     

    내 대답에 아셀라가 기가 찬 듯 헛숨을 내뿜었다.

     

    한 번도 듣지 못했던, 가냘픈 목소리로 그녀가 목소리를 바람에 흘려보냈다.

     

    “공자는 내 혼약자잖아.”

     

    몇 번이고 내게 해왔던 말이다.

     

    아셀라는 거기에서 무슨 대답을 원할까.

     

    내가 즉시 대답하지 못하자 그녀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도중, 아셀라가 갑자기 머릿속에 뇌리가 친 듯 눈을 깜빡였다.

     

    자신이 여태 굳게 믿던 어느 사실에 의구심이 들었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공자는 날 어떻게 생각해?”

     

    침묵과 함께 대치가 이어진다.

     

    그러기를 잠시, 황제의 비서관이 내게 찾아왔다.

     

    “폐하께서 찾으십니다.”

     

    시선을 돌린 아셀라를 그 자리에 내버려 둔 채, 나는 황제에게 향했다.

     

     

     

    ***

     

     

     

    접견실로 들어서니 분위기가 시끌시끌했다.

     

    “아빠! 진짜 몸 괜찮아요? 죽다 살아났다며, 더 누워있어야 하지 않으세요?”

     

    소식을 듣고 왔는지 라우가가 황제의 손을 꽉 잡고는 눈을 그렁이고 있었다.

     

    황제는 그런 라우가의 태도가 싫지 않았는지 온화한 표정이었다.

     

    “어머 세상에, 고트베르크!”

     

    그녀가 총총 뛰어와서는 예고도 없이 나를 와락 안았다.

     

    “아바마마를 살려줬다며, 정말 고마워.”

     

    “업무를 다했… 숨 막혀요.”

     

    “헉, 내 정신 좀 봐. 여기 아셀라 없지?”

     

    라우가가 내게 떨어지고는 혀를 내두르며 눈동자를 급하게 굴렸다.

     

    “없네. 이리 와, 좀 더 안아보자.”

     

    “충분합니다. 옥체는 괜찮으십니까, 폐하.”

     

    내가 인사를 올리니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숨을 받았군, 고트베르크. 그대는 짐뿐만 아니라 제국을 구했다.”

     

    “황송한 말씀입니다. 혼자서는 결코 해낼 수 없었습니다.”

     

    “앰브로시아에게 들었다. 그대도 수고했다.”

     

    앰브로시아 역시 황제에게 고개를 숙였다.

     

    포상도 좋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았기에 나는 황제에게 간언을 올렸다.

     

    “폐하, 이번 사건을 꾸민 자는 리비오 신관입니다.”

     

    “들었다. 그는 법국에서 보낸 자객인가?”

     

    “심문 결과 개인으로 행동하는 쾌락범이라 판단했습니다.”

     

    “단신으로 제국을 혼돈으로 몰아넣을 생각이었나. 배포는 큰 자로군.”

     

    황제도 리비오가 얼마나 정신 나간 자인지 깨닫고는 감탄했다.

     

    그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심문이 끝났다면 처형 날짜를 잡아라. 비서관, 법국에 보낼 서신을 준비하라.”

     

    “으왓… 아빠, 전쟁은 아니죠? 그동안 파티 열기 눈치 보여서 싫은데.”

     

    “법국의 태도에 따라 대응할 생각이다.”

     

    역시 황제였다. 눈뜨자마자 제국에 대한 생각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법국 대응보다 중요한 일이 남았다.

     

    “폐하, 범인에게 저주를 제공해 협력한 자가 있습니다.”

     

    “협력자라?”

     

    방금 병상에서 일어났음에도 눈을 부라리는 황제는 힘이 넘쳤다.

     

    아직 몸도 제 상태가 아닐 텐데, 이 정도는 기개가 있어야 황제를 하나 싶다.

     

    “황궁 내부의 인물입니다.”

     

    “누구인가.”

     

    “토진궁의 카밀라 황비입니다.”

     

    그녀의 이름을 들은 황제는 바로 상황을 이해했고,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선언했다.

     

    “제국의 제3 황비 카밀라는 현 시간부로 폐위한다. 기사단을 소집하라. 흑마술사에게 관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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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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