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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1

       분해를 작용했다고 해서 대상의 모든 것이 지우개로 지워지듯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파괴되는 건 데볼루트로 이루어진 핵심 부위뿐이었다.

         

       십수 미터나 되는 구조를 버티지 못해 골격이 무너져 내렸고, 단단히 결합해 있던 근육들이 인장력의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갈가리 찢겨 나갔다.

         

       놈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은 평범한 인간의 뼈와 살이었다.

       데볼루트의 힘 없이는 저 형태를 감당할 수 없었다.

         

       고강성의 뼈대와 고연성의 근육이 받쳐주지 않는 맨튤라의 칼날은 그저 거대한 소시지일 뿐이었다.

         

       나는 놈의 육체가 붕괴하는 것을 보며 촉수에서 조심히 손을 뗐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모든 부위를 파괴하려고 덤비는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일부만 파괴하는 것으로 상대의 특성을 문제없이 무력화할 수 있었다.

         

       “케르륵?”

       “데, 데볼루트가…….”

       “머, 먹어야……?”

         

       녀석의 몸에 달린 수백 개의 머리는 힘을 잃고 스러져가는 자신의 꼬리를 당황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나를 둘러싼 주민들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그들도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몰랐을 것이다.

         

       기사도 아닌 마법사가 저 엄청난 괴물의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내고는 역으로 한 방 먹이기까지 했으니.

         

       내 옆구리는 놈의 칼날에 관통당한 덕에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나는 허리를 감싸며 쓰러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5.0의 회복력 덕분에 버티고 서 있기만 해도 지혈이 금방 되었다.

         

       “원더스타인 씨…….”

         

       발렌티나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나는 그녀를 향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보세요. 걱정하지 말라고 했죠?”

       “어떻게 그 꼴로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것입니까?”

         

       발렌티나가 내 상처를 보더니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발을 동동 굴렸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성침(聖針) 치료는 마도사인 원더스타인 씨의 몸에 오히려 해가 될 겁니다…….”

         

       성교회의 사제들은 성정을 바늘만큼 작은 크기로 만들어서 인체에 혈(穴) 자리에 꽂아 회복을 돕는 기술이 있었다.

       그래도 성정은 여전히 성정이었기에 마신의 힘을 가진 자에겐 공격적으로 작용했다.

         

       “마음만 받죠.”

         

       나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그녀에게서 재빨리 떨어졌다.

         

       내가 마도사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녀의 치료를 받는 건 심각하게 고민해볼 문제였다.

         

       그녀는 성녀의 칭호를 받는 6, 7년 뒤까지도 회복술에 관해서는 엄청 서툴렀다.

       성침의 크기도 제대로 조정하지 못했고, 그나마도 엉뚱한 혈을 찌르기 일쑤였다.

         

       그녀의 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반가워하기는커녕 겁에 질려 극구 사양하는 장면이 심심찮으면 나왔다.

       괜히 주먹질로 성녀 자리를 땄다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었다.

         

       “발렌티나 씨는 물러나 계십시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남은 데볼루트의 양을 검토했다.

         

         

       이름: 프랑크 원더스타인

       나이: 27

       직업: 바이오맨서

       -데볼루트: (1372/1966)

       -근육 강도: 5.0 (헬스장 다니는 고릴라)

       -조직 경도: 5.0 (단단한 차돌)

       -세포 재생력: 5.0 (연고 바른 도마뱀 꼬리)

       특성

       : [웃는 남자]

         

         

       나는 놈이 만든 특성의 절반 정도만 붕괴시켰다.

       그것만으로 100여 개의 데볼루트를 소모했다.

       역산해보면 놈의 꼬리는 데볼루트 400개를 정도를 사용해 만든 거라는 결론이 나왔다.

         

       400개라.

       확실히 대단하긴 했다.

         

       두꺼운 성당 문짝을 한 방에 뚫어 버린 위력을 지닌 물건이었다.

       인간의 육체로는 단련을 거듭해도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일 것이다.

       진화의 극에 달한 육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래 봤자였다.

       지금의 나는 프랑크 원더스타인이었다.

       데볼루트를 지배하는 바이오맨서.

       아무리 강력한 생체 능력이라도 내 앞에선 무력했다.

         

       “이이익! 데볼루트 늘려야!”

       “머, 먹어야 한다!”

       “주, 죽여!”

         

       핏발 선 눈들이 나를 노려봤다.

       놈들이 느끼던 당혹스러움은 이제 분노로 바뀌어 있었다.

         

       쿵.

       터져버린 당면순대처럼 생긴 커다란 고깃덩어리가 바닥을 뒹굴었다.

       놈이 쓸모없어진 꼬리를 끊어낸 것이다.

         

       살덩어리는 자신 안에 있는 300명의 인간으로부터 근육과 뼈를 징발하여 또 다른 맨튤라의 칼날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우드득. 우지직.

       뼈가 자라나고 근육과 근육이 겹치면서 피와 살로 이루어진 탑이 솟아났다.

       크기는 아까보다 컸다. 아파트 8층 높이, 그러니까 적어도 20m는 넘어 보였다.

       불끈거리는 핏빛의 징그러운 기둥이 놈의 등 뒤에서 우뚝 섰다.

         

       이번 거는 데볼루트를 한 1000개쯤 썼을까?

         

       아무래도 저걸 한 번 더 맞기라도 한다면 내 몸이 견뎌내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상태창을 열고 데볼루트 150개를 소모하여 기초능력치들을 1씩 더 올렸다.

         

         

       이름: 프랑크 원더스타인

       나이: 27

       직업: 바이오맨서

       -데볼루트: (1222/1966)

       -근육 강도: 6.0 (시리얼 먹은 호랑이)

       -조직 경도: 6.0 (방탄유리)

       -세포 재생력: 6.0 (비 온 뒤의 잡초밭)

       특성

       : [웃는 남자]

         

         

       7.0까지 올릴까 고민하다가 그만뒀다.

       그러려면 240개의 데볼루트를 더 소모해야 했다.

       앞으로 녀석의 특성을 얼마나 더 분해해야 할지 모르는데 자원을 가능한 한 아껴야 했다.

         

       놈이 꼬리를 거의 다 뽑아낸 순간.

       나는 머뭇거림 없이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저런 무식한 공격을 일부러 맞아줄 필요는 없었다.

       놈이 휘두르기 전에 내가 먼저 부수면 그만이다.

         

       “기이이익!”

       “주, 죽인다!”

         

       설마 내 쪽에서 먼저 덤벼들 줄은 몰랐던 듯 녀석은 서둘러 꼬리를 휘두르려 했다.

       그러나 아직 마무리 작업이 끝나지 않은 탓인지 그것은 뻣뻣하게 굳어서 우두둑거리는 소리만 날 뿐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놈의 꼬리에 손을 갖다 댔다.

         

       “분해.”

         

       콰지직. 우두둑.

       뼈가 으스러지고 근육이 파열되는 감각이 손을 통해 느껴졌다.

       데볼루트를 200개 정도 소모했을 때, 나는 놈에게서 손을 뗐다.

         

       “크오오오오!”

         

       살덩어리 괴물이 고성을 토해냈다.

       그가 만든 맨튤라의 칼날이 아까와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핏물에 불어터진 고깃덩어리가 되어 바닥을 뒹굴었다.

         

       “위험하다…….”

       “어, 어떻게 해야……?”

       “먹고 싶은데…….”

         

       놈은 연달아 자신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경계태세를 취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재빠른 움직임으로 성당의 입구까지 물러났다.

       그리곤 눈을 치켜뜨고 나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처음보다 놈의 크기는 상당히 줄어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코끼리만한 몸집을 지닌 녀석이 겁먹어서 몸을 웅크린 꼴이 상당히 우스워 보였다.

         

       놈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는데, 녀석이 갑자기 고함을 내질렀다.

         

       “가까이 오지……마!”

       “멀리서……죽인다!”

         

       놈이 몸 일부를 꾸물거리더니 나를 향해 뻗었다.

       가시가 삐죽삐죽 솟은 수 m 길이의 장창이 살을 뚫고 나왔다.

         

       원더스타인의 장기 중 하나인 ‘본호그의 창’이었다.

       팔을 뻗어 손바닥에서 뼈의 창을 발사하는 원거리 기술이었다.

         

       녀석은 그것을 괜찮은 발상이라 생각했는지 자신감에 찬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놈을 향해 미소로 응수해주었다.

         

       나는 놈이 물러선 순간, 원거리 공격을 해올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미리 세워뒀다.

         

         

       특성: 점액성 토사물

       적용 부위: 입

       효과: 끈끈하고 질긴 유동성의 물질을 방사형으로 발사합니다.

       요구 자원: [데볼루트 8]

         

         

       이것을 거미줄처럼 겹겹이 친다면 투사체의 속도를 충분히 죽일 수 있었다.

       TT1에서 ‘거미 여인’의 보스 스테이지에서 수집할 수 있는 거미줄을 미리 모아두면, 원더스타인 공략에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었던 것에서 떠올린 특성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진짜 입으로 사용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었다.

       시야를 방해할뿐더러, 목 관절의 가동한계에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입 외에 다른 신체 부위를 통해 비슷한 위력을 내려면 개조 비용이 몇 배가 들었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다른 곳에 입을 만들면 됐다.

         

         

       특성: 손바닥 입

       적용 부위: 손

       효과: 손바닥에 입을 만듭니다.

       요구 자원: [데볼루트 6]

         

         

       내 손바닥의 피부가 초승달 모양으로 갈라지더니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었다.

         

       이것 역시 원더스타인의 특기 중 하나였다.

       손바닥을 앞으로 보인 채 양팔을 교차한 채, 손바닥에 달린 입이 이빨을 드러내고 있고, 그의 얼굴은 두 손바닥 사이에서 씩 웃고 있는 모습은 TT1의 표지를 장식한 원더스타인의 그림이었다.

         

       내 손바닥을 내려다보니 손바닥 입 녀석이 혀를 내밀고 강아지처럼 헥헥대고 있었다.

         

       진화 연구소에 의뢰할 때, 세세한 부분은 나의 막연한 기대와 무의식이 작용해서 결정되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평생에 없던 팔과 다리를 두고 개나 고양이 같은 동반 생물 비슷한 것으로 여겼는지 모르겠다.

         

       “죽어라! 카아악, 퉤!”

         

       녀석이 본호그의 창을 발사했다.

       나도 맞서서 ‘점액성 토사물’을 손바닥 입에서 토해냈다.

         

       위력을 가늠할 수 없어서 총 10번의 토사물을 연속으로 사용했다.

         

       보라색의 점액질이 총알과 같은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거미줄처럼 끈끈한 물질이 본호그의 창을 감쌌다.

       이어서 제2, 제3의 점액질들이 창을 휘감았다.

       방사형으로 쏘아진 덕분에 점액질의 끝부분은 벽에 달라붙어 창을 끌어당겼다.

         

       창의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졌다.

       그러다 일곱 번째 토사물에 얽혔을 때, 모든 힘을 잃고 공중에서 휘청이더니, 이어서 날아오는 세 번의 점액질에 덮여 벽에 철퍼덕 달라붙어버렸다.

         

       “아냐아아!”

       “내가 먹는다!”

         

       살덩어리는 설마 이번 공격도 막힐 줄 몰랐는지 발광하며 두 번째 본호그의 창을 발사했다.

       급하게 남은 자원을 끌어모아 써서 그런지 처음보다 조악하게 생긴 녀석이었다.

         

       나는 이번에는 보라색 거미줄을 5번 날렸다.

       창은 비틀비틀 날아오더니 조금 아슬아슬하게 내 발치에 박혀버렸다.

         

       “이, 이럴 수는 없어…….”

       “나는……데볼루트를…….”

       “먹어서 늘려야 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뒤로 기어가는 놈을 향해 나는 뚜벅뚜벅 걸어갔다.

       녀석의 덩치는 이제 곰 정도의 크기로 줄어 있었다.

         

       이 정도면 호랑이의 힘을 가진 내가 맨손으로 겨뤄서 이길 수 있을지도 몰랐다.

       멍하니 바닥을 긁고 있는 놈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

       뜨거운 통증이 어깨를 뚫고 들어왔다.

         

       “키키키!”

       “먹혔다!”

       “멍청이!”

         

       나는 소리가 나는 방향을 돌아봤다.

       두 번째로 날린 본호그의 창 일부가 분리되어 나를 향해 가시를 내세우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녀석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차렸다.

         

       놈은 수백 개의 인격이 융합된 존재였다.

       즉, 분리해 낸 신체 부위에도 자율적인 인격을 심을 수 있었다.

       두 번째로 뱉어낸 본호그의 창은 단순한 생체 물질이 아니라 의식과 데볼루트가 담긴 녀석이었던 것이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내 어깨를 꿰뚫은 가시를 붙잡고 뽑으려 했다.

       그러나 안에서 작은 가시들이 돌기처럼 솟아나서 내 살점에 단단히 박혀들었다.

         

       “끝이다!”

       “죽어!”

         

       방금 전까지 겁에 질린 연기를 하고 있었던 본체가 일어섰다.

       녀석은 주먹을 크게 부풀리더니 그곳에 가시를 솟게 만들었다.

         

       나는 서둘러 방어 특성 하나를 만들어내려 했다.

         

       그때, 내 어깨를 붙잡아두고 있었던 가시가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화르륵 타오르더니 순식간에 하얀 재로 변해버렸다.

         

       “키에엑!”

       “뜨거워!”

         

       밝은 빛을 내며 타오르는 두 번째 괴물.

       거기에는 십자가 형태의 창이 여러 개 박혀 있었다.

         

       괴물의 몸이 불쌍한 울음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그 앞에는 하얀 수녀복을 입은 분홍색 머리의 여인이 있었다.

         

       그녀가 나를 향해 외쳤다.

         

       “지금입니다! 원더스타인 씨! 결정타를!”

         

       나는 나를 향해 날아오는 주먹을 두 손으로 받아냈다.

       가시가 내 손을 마구 헤집었다.

         

       고통스러웠지만 웃었다.

       나는 웃는 남자였으니까.

         

       “으으으……!”

         

       내 미소에 녀석이 겁을 먹었는지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나는 도망치지 못하게 놈의 주먹을 꽉 잡았다.

         

       “분해.”

         

       녀석의 팔 한짝이 펑하고 터져나갔다.

       주먹에 전력을 내실었던 녀석의 몸뚱어리는 균형을 잃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나는 쓰러진 놈 앞에 다가가 섰다.

       녀석의 몸에 난 얼굴들이 나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려댔다.

         

       “사, 살려…….”

       “주, 주인…….”

       “우린 명령을 따랐을 뿐…….”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내 예상이 맞았다.

       데볼루트를 늘리고 싶다는 나의 소망.

       그것이 종속화가 진행중인 데볼루트에 영향을 끼친 것이다.

       그것이 담긴 피를 뿌리는 바람에 주민들에게 전염되었던 것이고.

         

       누구를 원망할 수 있을까.

       내 다리를 물어뜯었던 그 여인?

       그녀는 성당 안에 보이지 않았다.

       아마 괴물에게 잡아먹혔을 확률이 높았다.

         

       나는 눈물을 흘리는 살덩어리에 먹힌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그들의 얼굴 중 하나에 손을 올렸다.

         

       “분해.”

         

       수백 명의 사람이 동시에 단말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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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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