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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1

       다시 미니 성역을 펼칠 수 있게 되기까지 남은 시간. 24시간.

       

       그중 8시간은 꿀잠 잔다고 쳐도 무려 16시간이나 되는 긴 시간이 남는다.

       

       밖이었다면 엘리랑 노닥거리건, 거리를 산책하건, 이 세계의 소설을 읽건, 요즘 들어 다시 쓰기 시작한 이야기를 이어 쓰건 뭔가 할 일이 많았겠지.

       

       하지만 이 텅텅 비어있는 큐브 안에서는 무엇도 불가능하다.

       

       기껏해야 멍때리기랑, 수련 말고는 할 것도 없잖은가.

       

       참고로 전자는 재미없고 후자는 재미없는데 힘들기까지 하니 논외다.

       

       애초에 방금 막 목숨 걸고 강적을 쓰러뜨린 참 아닌가. 그냥 생각 없이 푹 쉬면서 놀고 싶단 말이다.

       

       그리고 여기. 정말 다행히도 이 큐브 안에 갇힌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하루에 한 번씩 미니 성역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벙찐 베니. 그런 그녀를 향해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베니.”

       

       “어? 응…왜?”

       

       “이제 다른 문제는 없는 거 맞죠? 그냥 기다리면 끝이죠?”

       

       “그, 렇지?”

       

       “그럼, 뭐 하고 놀까요? 뭐 하고 놀까요?”

       

       “…….”

       

       베니가 오리너구리는 시력이 매우 좋지만, 정작 잠수할 때는 눈을 꾸욱 감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처럼 눈을 이상하게 떴다.

       

       쉽게 말해 대체 이거 뭐하는 녀석이지 싶은 눈빛이라는 뜻.

       

       “아이 참. 너무 심각하게 굴지 마세요 베니. 우리는 이겼고, 지금은 잠깐 갇혀있을 뿐이에요. 심지어 우리밖에 없는 안전한 공간에서 말이죠.”

       

       “하지만…일단 여긴 미궁이잖아.”

       

       “몬스터도 함정도 존재하지 않는 미궁이죠.”

       

       어깨를 으쓱이며 받아넘기자, 무어라 항변하려던 베니가 입술만 우물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샤도우와의 연결이 희미해져서일까. 베니는 평소보다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심지가 약해졌다고 해야 할까?

       

       그토록 경계하던 침식의 영향에서 벗어나자, 되려 약해진 것이다.

       

       지금껏 베니 자신도 모르고 있었지만, 샤도우에게서 넘어오는 적절한 수준의 광기는 베니의 연약한 정신을 보조해 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베니에게서 흘러간 무언가는 샤도우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걸까.

       

       그리고 지금. 베니를 잃은 샤도우는 어떤 상태인 걸까….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마음 한켠으로는 안심하는 부분도 있다.

       

       어찌됐건 샤도우는 죽음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불사의 괴물 아닌가.

       

       겨우 2층에서 무슨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설령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죽지는 않겠지.

       

       그러면 됐다. 오히려 걱정되는 것은 샤도우가 아니라, 2층을 탐사 중인 다른 모험가들이다.

       

       혹시라도 재수 없게 샤도우와 맞닥뜨렸다가는 그대로 도륙당할 게 뻔하지 않은가.

       

       그럴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지만…혹시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때는 전부 모르가나의 탓으로 돌려야지.

       

       실제로 모르가나 때문에 베니와 샤도우가 분리되기도 했고.

       

       물론 이러한 추측을 베니에게 말할 수는 없다. 안 그래도 심적으로 많이 약해진 사람에게 걱정거리를 떠넘길 수는 없잖은가.

       

       뭐든 하면서 놀자고 한 것도 그래서다. 약해진 베니가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말이다.

       

       “일단 제가 생각한 건 동전 맞추기에요.”

       

       “동전 맞추기? 컵에 동전 넣고 막 휙휙 하고는 어느 쪽에 동전이 있는지 맞추는 그런 거?”

       

       “그거 야바위잖아요…그거 전부 속임수라 무조건 돈 잃으니까 하지 마세요.”

       

       “진짜?!”

       

       “진짜예요. 제가 비슷한 거 하나 보여드릴까요?”

       

       주머니를 털자 1쿠퍼짜리 동전이 하나 나왔다. 아마 어쩌다 생긴 잔돈 같은데….

       

       항상 비상금으로 신발 밑창에 넣고 다니던 1실버는 가챠로 날려버렸으니, 이게 진짜 전 재산이라고 할 수 있겠지.

       

       1쿠퍼를 보란 듯이 손바닥 위에 올리고는 그대로 주먹을 쥐었다. 뒤이어 주먹 안쪽으로 반대쪽 검지와 엄지를 집어넣어 비비는 시늉을 했다.

       

       그렇다. 시늉이다. 그 사이에 슬쩍 동전을 뽑아 손등 위에 올려놓았으니까.

       

       정면에서 보는 베니 눈에는 각도상 제대로 보이지 않았겠지만.

       

       이제 남은 것은 동전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양손을 펼치는 것. 그럼 베니 입장에선 분명 손에 있던 동전이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어?! 동전 어디 갔어?! 마법인가? 마도구? 아냐. 그런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는데….”

       

       혼자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베니. 다짜고짜 마법의 기척부터 추적하는 것이 참 판타지스러웠지만…그런 것에 잡힐 리가 있나.

       

       이건 간단한 마술 트릭이다. 순수한 손재주와 눈속임일 뿐이니, 아무리 마법의 흔적을 더듬어도 나오는 건 없다.

       

       전생의 어린 시절. 어느 날 갑자기 티비에서 마술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지. 그때 분위기를 타고 연습했던 마술이다. 

       

       참고로 이거밖에 못 한다. 흥미가 떨어져서 다른 건 안 배웠거든.

       

       “어때요? 신기하죠?”

       

       “…응. 내가 모르는 방식으로 숨겼다는 건 알겠어. 아마 야바위도 마찬가지였겠지. 나쁜 놈들. 마법의 흔적이 없어서 그냥 내 눈이 나빴던 건줄 알았는데…지금까지 속았을 줄이야.”

       

       “베니는 마법사잖아요. 평범하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있으면 일단 마법부터 찾는 습관이 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죠. 탐지 마법 같은 건 써볼 생각 안 했어요?”

       

       “그쪽은 영 특기가 아니거든. 설령 할 줄 알더라도 마법으로 찾으면 반칙이잖아.”

       

       “이상한 데서 착실하시네요.”

       

       “하아…그러게. 이런 부분에서 맹점이 있을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아무튼 동전은 어디로 간 거야?”

       

       “글쎄요. 어디려나….”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손바닥을 쭉 편 자세 그대로 베니에게 뻗었다.

       

       “으응?”

       

       주춤대며 물러서려는 베니를 향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가만히 계셔보세요.”

       

       “앗, 응.”

       

       빳빳하게 굳은 베니. 그런 그녀의 뒤통수 쪽으로 손을 가져다 대고는 잽싸게 손등의 동전을 회수했다. 

       

       그렇게 다시 손으로 돌아온 동전을 보여주며 히히 웃었다.

       

       “세상에! 베니의 뒤통수에 있었네요!”

       

       “그게 왜 거기서 나와…?!”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기겁하는 베니. 언제봐도 리액션이 참 좋단 말이지.

       

       묘하게 담담한 리디아나 야한 주제에만 재밌게 반응하는 엘리와 달리, 별거 아닌 이야기에도 어린애처럼 방방 뛰는 게 베니의 매력 아닐까 싶다.

       

       낑낑대며 대체 이게 왜 거기서 나왔을까 고민하는 베니. 그녀의 앞에서 가볍게 손뼉을 치며 주의를 끌었다.

       

       “자자. 이제 동전 맞추기가 위치를 맞추는 게임이 아니라는 건 알았죠? 그런 건 얼마든 베니 몰래 조작할 수 있거든요.”

       

       “으응. 그럼 뭘 맞추는 건데?”

       

       “간단해요. 그냥 손가락으로 튕겨서 받아낸 다음, 앞면인지 뒷면인지 맞추는 것뿐이에요.”

       

       “그건 너무 쉽잖아.”

       

       “네?”

       

       “나 같은 고위 모험가에게는 그냥 보일 걸? 마법사는 미궁을 드나들 때마다 주로 성장하는 게 마력이랑 집중력이거든. 집중하면 어느 면으로 떨어지는지 그냥 보일 거야.”

       

       “아니 뭔….”

       

       조금 전처럼 아예 감각의 사각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모를까, 안쪽에 포착되기만 하면 속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

       

       하기야. 지금의 나도 미궁에 들어가기 전과 비교하면 거의 다시 태어난 수준이니, 7층까지 도달한 고위 모험가는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룰을 약간 바꿨다.

       

       “그럼 먼저 앞면인지 뒷면인지를 정하고 그 뒤에 동전을 던지는 걸로 하죠. 서로 번갈아 가면서 말이에요.”

       

       “그거라면…응. 괜찮겠네.”

       

       고개를 끄덕이는 베니.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공정한 운빨 게임이 될 거라 믿고 있는 모습이다.

       

       순진하기는….

       

       이상하게도 동전 던지기는 공정하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실제로 따져보면 그렇게 운에 맡기는 게임이 아니다.

       

       약간의 연습으로 특정 면이 나오도록 조작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

       

       물론 100퍼는 아니고 기껏해야 70퍼 정도지만…소리를 먹는 발걸음을 얻은 이후로 감각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발달한 나다.

       

       그보다는 더 좋은 타율을 낼 수 있겠지. 그리고 그거면 충분하다. 반반에 비하면 훨씬 유리한 조건 아닌가.

       

       하여 약간의 조건을 추가하기로 했다.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 진 쪽이 한 장씩 벗기로 할까요?”

       

       “…뭐?”

       

       순간 흠칫한 베니. 그녀의 시선이 파르르 떨리며 반사적으로 내 쇄골과 복부를 훑는다.

       

       음흉하기도 해라. 뭐어, 이해는 한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미소녀가 우리 둘밖에 없는데 동전 던져서 한 장씩 벗을래요? 라고 하는 꼴 아닌가. 나 같아도 베니 같은 반응을 보였으리라.

       

       “아, 안 돼…그런 짓은 할 수 없어. 애초에 요나 너한테는 엘리 언니가 있잖아?”

       

       “여기에는 없는 사람이죠. 괜찮아요. 이 안에서는 저희가 무슨 짓을 하건 엘리는 모를 테니까요. …어때요? 한번 해볼래요? 선공은 베니에게 넘길게요.”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손에 쥔 동전을 베니에게 들이밀었다.

       

       꿀꺽.

       

       베니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동전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아, 앞면!”

       

       “땡! 뒷면이었답니다! 졌으니까 하나 더 벗으시죠!”

       

       “으으…이거 맞아? 진짜 맞냐구!”

       

       나는 양쪽 신발과 양말, 그리고 가죽 갑옷을 벗고 내의 차림이 되었고.

       

       베니에게 남은 건 몸에 착 달라붙는 드레스뿐이었다.

       

       모자, 신발, 양말, 각종 장신구…그런 건 없다. 진작에 져서 다 벗었으니까!

       

       “베니! 어서요! 제 몸을 보려면 자기 몸을 보일 각오 정도는 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 각오 처음 들어보는데!”

       

       한참을 망설이는 베니. 그녀가 결국 결심한 듯, 두 눈을 꾸욱 감았다.

       

       “에잇!”

       

       단숨에 자신의 드레스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 베니. 혼자 열심히 꼼지락대더니, 이내 동그란 스티커 같은 무언가를 꺼냈다.

       

       “…후우. 이걸로 됐지?”

       

       “…….”

       

       허망한 마음에 멍하니 베니 손에 쥐어진 동전 크기의 스티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목소리.

       

       “가…….”

       

       “가?”

       

       “갈!! 감히 사술을 쓰다니! 신성한 탈의 도박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여기서 니플 패치를 꺼내는 게 어딨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휴재라고 생각했나요? 쟌넨! 새벽연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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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남녀역전 세계의 가챠 중독자
Score 8.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Gacha – Civilization’s Ultimate Game. Spin now for a shot at fortune. Spending that doesn’t disrupt your lifestyle? That’s virtually free-to-play. Keep spinning until you strike gold – success is guaranteed. … … Today, yet again, I’m at the gacha wheel. “Did I get a 5-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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