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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1

       명계의 문.

        4대 재앙 중 하나인 ‘명계의 왕’이 기거하는 명계로의 유일한 통로이자 망자들의 군세가 쏟아져 나오는 출구.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열 여섯개의 문이 존재하며 번호가 클수록 명계의 깊은 곳과 연결되어 있다.

       

        마지막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문에 새겨진 숫자는 16이었다.

       

        “이, 이거 괜찮은 거에요? 혹시 열리기라도 하면…….”

       

        열리면 위에 있는 수인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끔찍한 일이 벌어지겠지.

        그러나 대미궁에서 한 번 망자들의 군세를 상대한 적 있던 세라의 걱정에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기감이 크게 반응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건 일종의 ‘모조품’.

        천변의 방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니 진짜 명계의 문과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죽은 이들이 내뿜는 시취나 문 너머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살기도 느껴지지 않고.

        열 여섯번째 문까지 도달하기 전에 먼저 모습을 드러냈어야 할 나머지 문들도 없었다.

       

        겉껍대기에 불과하다고 확신했지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다.

        다름 아닌 마리엘이 지금껏 문을 열지 못했다고 말한 것이었다.

       

        명계의 문은 엄연히 ‘출구’이며 흑마법으로 가동하는 ‘재단’이다.

        바깥에서 열기 위해서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제물을 바쳐야 한다.

       

        예를 들어 세 번째 문이 열리는 조건은 왕에게 바칠 무고한 어린아이 백 명의 영혼과 양의 피다.

        바치는 제물의 양과 질이 높을수록 소환되는 군세도 강해지며, 문의 숫자가 커질수록 요구되는 제물도 더욱 까다로워진다.

       

        지옥도나 다름없는 명계의 문을 열어젖히는 이들은 영혼까지 타락한 흑마법사들 정도이기에 대부분의 조건은 베일에 쌓인 상태.

        그러나 나는 열 여섯 번째 문을 여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저 혼자 들어가도록 할게요.”

        “네!?”

        “다른 분들은 위로 올라가서 발디니 가문을 도와 시간을 최대한 끌어주세요.”

        “싫은 것이에요.”

       

        비록 껍데기에 불과하더라도 문의 기능이 일부나마 살아있는 이상 저 안은 위험하다.

        그러나 나의 말에 마리엘은 즉시 고개를 저었다.

       

        “저는 저 안에 볼일이 있는 것이에요. 반드시 들어가겠어요.”

        “위험하다니까요? 그냥 여기 있으면 제가 알아서 깨고 나올게요.”

        “아뇨! 홀크로프트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 꺄아아앙!! 아파요! 머리 잡아당기면 아픈 것이에요!!”

       

        쓸데없이 고집 부리기는.

        위치노트만 작동했어도 마리엘을 떼어놓기가 훨씬 수월했을 텐데 이렇게 되면 물리적인 방법밖에는 쓸 수 없었다.

        그러나 무슨 중대한 결심을 했는지 평소 아끼던 머리카락이 투구게 모양으로 땋여질 때까지 마리엘은 문 앞에서 버티고 서서 비키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녀에게 따라오는 조건을 내걸었다.

       

        “안에 들어가면 절대 멋대로 행동하지 마세요. 무조건 제가 말하는 대로 따라야 합니다.”

        “알겠는 것이에요.”

        “그럼 다녀올 테니 여러분들은 위로 합류하시면 됩니다.”

        “도와드리지 않아도 괜찮으시겠어요? 아직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아, 이거요?”

       

        나는 문에 한쪽 손을 대고 가볍게 밀었다.

        그러자 거대한 문의 중앙이 갈라지더니 안쪽으로 열렸다.

        힘을 주기는 커녕 가까이 다가갔을 뿐인데 마치 환영한다는 듯이 입을 벌린 시커먼 어둠.

       

        “이렇게 들어가면 됩니다.”

       

        나는 마리엘을 먼저 밀어넣고 뒤따라 그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

       

        명계의 마지막 문을 여는 조건은 흑마법의 기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4대 재앙 중 하나인 명계의 왕은 말 그대로 ‘죽음’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흑마법이 추구하는 극의란 무엇인가.

        질병, 기근, 전쟁의 확산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죽은 자의 소생, 즉 사자부활이다.

       

        땅을 비집고 솟아난 새싹만 보면 파괴욕구를 참지 못하는 이자젤도 일단은 흑마법사지만, 정통적인 흑마법사와는 거리가 멀다.

        신비를 추구하지 않는 그들에게 명계의 문은 신비의 대척점과 다를 바 없다.

        하늘의 별을 향해 뻗어야 할 손을 차가운 땅 아래 묻힌 시신을 파내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이란, 가장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자들에게 주어질 터였다.

       

        명계에 영혼을 바쳐서라도 되살리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

        그게 열 여섯 번째 문을 여는 조건이었다.

       

        예전과 똑같이 열린 문으로 들어간 나는 이내 우리가 의자에 앉아 있음을 깨달았다.

        주위는 금방이라도 전투가 끝난 듯한 공터였고, 만찬에서나 쓸 법한 원형 테이블 위에 새하얀 식탁보가 깔려 있었다.

        마리엘도 내 옆자리에 있었다.

        눈을 가린 머리카락 때문에 이리저리 고개를 휘저으면서.

       

        “안 보여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에요.”

        “잘됐네요, 그대로 가만히 앉아 있어요.”

        “호, 혹시 제 옆에 있는 게 관리인인 척하는 망자는 아니겠죠?”

        “흐으, 들ㅋㅣㄴ 건ㄱㅏ요…….”

        “히끼야아아앙!!!”

       

        대학원생의 왕처럼 목소리를 늘어뜨리며 대답했더니 기겁하며 뒤로 자빠진다.

        장난이라며 일으켜 세워주자 그녀는 곧장 투구게 껍질 같은 머리로 내 가슴을 밀어붙이며 소리쳤다.

       

        “여기까지 와서 저를 놀리고 싶은 건가요!”

        “이것도 다 이명을 얻기 위한 작은 발걸음이죠.”

        “대체 그렇게까지 해서 얻고 싶은 이명이 뭐길래 그래요?”

        “말하면 뺏어갈지 모르니 비밀입니다.”

       

        평소처럼 티격태격 대화를 나누던 와중, 주변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사방에서 망자들이 다가오는 중이었다.

        먼저 창을 날려야 하나 고민하던 나는 그들이 모두 은익기사단의 갑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팔다리가 덜렁거리고 눈두덩이가 푹 꺼진 망자들이 차례로 자리에 둘러앉았다.

        빈 자리가 하나도 남지 않자 식사를 알리는 종이 황량한 공터에 울려퍼졌다.

        깨진 유리잔 안에 붉은 액체가 채워지며 식탁에도 음식들이 나타났다.

       

        나는 냄새를 맡고 더듬거리는 손으로 식기를 붙잡은 마리엘의 허벅지를 살짝 찌르며 말했다.

       

        “먹으면 안 됩니다.”

        “네?”

        “여긴 형식상 명계이니 음식이나 물을 한 모금이라도 입에 대면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어요.”

        “관리인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죠?”

       

        나는 대답 대신 유일하게 갑옷을 차려입지 않은 늙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마리엘과 꼭 닮은 금색 머리카락을 묶어올린 귀족이었다.

       

        명계의 왕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절대 살아서 나가지 못했겠지.

        은익 기사단과 함께 홀크로프트 백작가를 마지막까지 이끌었던 가주.

       

        “어젯밤, 제도로부터 전갈이 도착했소.”

        “…….”

        “근위대장 한스가 4황자의 약혼녀의 저택에서 은색의 갑주를 입은 기사들을 봤다고 증언했다더군. 이에 황실은 우리 홀크로프트에게 반역죄를 묻기로 했소.”

       

        남자가 입을 열자 마리엘의 어깨가 흠칫 떨려왔다.

        천변의 방의 마지막 스테이지는 마탑에 들어오기 전, 4황자의 약혼녀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백작가가 멸망했을 당시의 이야기.

        원탁에 둘러앉은 기사들은 모두 그날 목숨을 잃은 이들이었다.

       

        — 황실의 군대와 마법병단이 들이닥치는 것도 시간 문제로군요.

        — 다른 가문에 지원을 요청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 반역자로 낙인 찍힌 이상 도움을 줄 귀족은 제국에 남아있지 없을 것입니다.

        — 저희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황실에 낙인이 찍힌 것입니까?

        — 뻔하지, 신비의 파편을 넘기지 않았기 때문이잖아.

       

        혀도 안구도 손가락과 이빨마저도 없는 기사들의 아우성.

        그. 결론은 이내 하나로 도출되었다.

        기사들의 삐걱이는 목이 새하얗게 질린 마리엘이 앉은 방향으로 돌아갔다.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더라도 알 수 있는 찌르는 듯한 한기가 느껴졌다.

       

        — 지금이라도 파편을 그들 손에 쥐어주는 게 어떻습니까.

        — 허나 심연의 기사가 들고 있던 파편은 지금 마리엘 영애님께 있는데…….

        — 그렇다면 영애님을 바치면 되겠군요.

        — 오, 그거 명안이군요. 마침 죽은 약혼녀의 빈 자리를 채우기에 딱 좋을 것 같습니다.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주님?

        — 가주님?

       

        내가 실제로는 검을 쓰는 검사가 아니고 루벤과 발디니 가문의 마법사들이 퍼리단이 아니듯 이들 역시 은익 기사단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천변의 방이 만들어낸 시련의 일부일 뿐.

        마리엘이 무사히 마탑에 들어온 이상 과거 홀크로프트 백작가의 구성원들은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 아…….”

       

        그러나 그녀가 받은 정신적 충격은 이미 상당한 듯 보였다.

        입을 끔뻑이며 자신의 아버지가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이들을 설득해 이곳에서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이 마지막 과제였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마리엘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글쎄요, 그런다고 멸문을 피할 수는 없을 겁니다.”

        — 뭐라!?

        — 네놈은 누구냐!

        “가주님, 홀크로프트가 변경백의 지위를 갖게 된 지 얼마나 지났습니까.”

        “올해로 꼬박 5년이 되었소.”

       

        가주가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재차 물었다.

       

        “그렇다면 영지민들의 세금 중 제도로 납부해야 하는 군인세와 시벽세가 폐지된 지는 얼마나 되었습니까.”

        “대략 7년쯤 되었소.”

        “황실이 제도에 백작가의 군대를 소집하지 않은 지는 몇 해가 흘렀습니까.”

        “우리가 북부의 방비를 강화한 해 부터이니 10년쯤 되었소.”

        “허면 망자들의 땅인 북부에서 크나큰 공훈을 세운 것은 언제입니까.”

        “프루소냐 대평원의 회전을 말하는 것이라면…… 딸아이가 일곱 살이 되었을 무렵이니 15년 전이오.”

       

        대화를 주고받을수록 원탁의 분위기가 기묘해졌다.

        기사들의 노한 목소리가 가라앉고 마리엘을 향한 시선도 분산되기 시작했다.

        나는 마리엘의 손이 얕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이 떨림이야말로 내가 은익 기사단이 그녀를 데리고 홀크로프트를 재건하고자 했을 때 말렸던 이유였다.

       

        “공을 치하합니다. 작위를 내립니다. 세금을 면제하고 군역도 제외하지만 지원은 갈수록 줄이고 중앙과의 연결고리를 서서히 분리시킵니다.”

        “…….”

        “더욱 넓은 전선에서 싸우도록, 큰 피해를 내도록 유도합니다. 선전을 통해 인류를 수호한다는 자부심을 주입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머지 않아 당신들의 패배는 제국민들의 피해가 되고 황실에 창을 겨눴다는 오명을 뒤집어써도 들어줄 이 따위 주위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되죠.”

        “…….”

       

        이건 시대의 주인이 되지 못한 자들이 재앙의 토벌에 나섰을 때 파멸에 이르는 과정이었다.

        본인들은 몰랐겠지만, 마리엘이 신비의 파편을 지니기 훨씬 이전부터 제국은 홀크로프트를 집어삼킬 준비를 해왔다.

       

        “잔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듯, 당신들은 이미 실패했습니다.”

       

        식사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접시가 바뀌며 후식이 차려졌다.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죠.”

       

        디저트에 손을 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음화로 이번 챕터는 마무리 짓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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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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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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