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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1

       

       

       스윽, 스윽.

       

       칼날을 숫돌에 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하실의 단점이라고 해야 할까.

       

       소리가 울려 퍼지다 보니 이런 자그마한 소리도 크게 들렸다.

       

       

       “역시 좀 시끄럽네. 그렇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었으니.

       

       대답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도 하고.

       

       

       “지하실을 활용해서 이 방을 만든 건 좋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는 많이 불편하네. 소리도 울리는 데다가 곰팡이도 쉽게 피고. 냄새도 잘 안 빠지고, 우중충해.”

       

       

       ···슬슬 충분하려나?

       

       칼날을 갈아내던 걸 멈추고 칼을 집어 들었다.

       

       굳이 날이 잘 들었는지 확인하지는 않았다.

       

       나는 칼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제대로 날이 세워졌는지 봐도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굳이 왜 그런 쓸데없는 행동을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쓸데없는 건 아니다.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이 시간은 중요한 역할을 맡아주고 있으니까.

       

       

       “하지만 불편하기 그지없는 지하실이라 해도, 역시 아르테 님께 부탁해서 받아오길 잘한 것 같네. 그렇지?”

       

       

       역시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여기서 조금 더 몰아붙일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겁주도록 할까.

       

       공포심이 너무 커도 기절해버릴 수도 있으니까.

       

       여러 번 겪어보고 나서 알아낸 나만의 노하우였다.

       

       

       “네놈 같은 쓰레기들을 처분하기에는 딱 좋은 장소니까.”

       

       

       덜컥, 덜컥.

       

       공포심에 이곳에서 벗어나고자 의자에 온몸이 결박된 남성이 이리저리 몸부림쳤다.

       

       그러나 도주 같은 건 불가능했다. 남성이 초인이라고는 하지만, 재료가 재료니까.

       

       초인 범죄자들을 가두어두는 감옥에서 사용하는 강도 높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의자다. 겨우 저 정도의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아.

       

       그 사실을 여러 차례 시도해서 알고 있음에도 본능적으로 다시금 도주를 시도했지만, 여전히 움직일 수 없음을 깨달은 남성의 눈에 공포심이 깃들었다.

       

       

       “힘이 넘치는구나. 아직 기력은 충분한가?”

       

       

       그걸 위한 시간이었다. 숫돌을 갈아내며 울려 퍼지는 소리는 모두 상대방의 공포심을 유발하기 위함이었다.

       

       그 외의 것은 모두 부가적인 것.

       

       생각보다 효과적인 방법인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다음에 올 사람에게도 사용해볼까.

       

       하지만 나의 기분이 좋았던 것도 잠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들떴던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더럽게. 누가 그런 걸 허락했지?”

       

       

       분명 물은 탈수를 면할 만큼만 줬을 텐데.

       

       짜증이 치솟아 식칼을 거칠게 잡아들었다.

       

       남성의 목덜미에 살며시 가져다 대자 피가 방울방울 떨어졌다.

       

       남성의 두 눈이 공포에 휩싸였다.

       

       ···그렇게 무서워할 필요는 없는데.

       

       지금 당장 죽일 생각은 없었으니까.

       

       적어도 지금은 그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당장 목덜미를 찔러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이 녀석이 지은 죄에 비한다면 그냥 죽어버리는 것은 얼마나 사치스러운가.

       

       언젠가 다가올 죽음에 매 순간 두려워하며, 매 순간 고통스러워하는 게 좋을 거다.

       

       

       “오늘은 하나로 봐주려고 했는데···. 좋아. 두 개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으읍, 읍···! 으읍!”

       

       

       시끄럽네.

       

       안 그래도 청소하기 힘든 장소에 더러운 걸 뿌려댄 주제에.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죽여버리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이놈의 죄를 더 갚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아직 죽이지는 못해.

       

       ···하지만 그 대가로, 이 녀석은 오늘은 혹독한 하루를 보내게 될 거다.

       

       

       “저녁까지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계세요. 반성의 기미가 보인다면 하나로 줄여줄 테니 조용히 하고 있어, 알겠지?”

       

       

       책상 위의 펜치를 묶여있는 남성에게 잘 보이도록 위치를 바꾸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조용해지는 남성.

       

       그래, 이미 겪어본 고통이라 무슨 느낌인지 잘 알겠지.

       

       지금 심기를 거스르면 어떻게 될지 잘 아는구나.

       

       줄여준다는 건 거짓말이지만.

       

       

       “역시 여기 있었네.”

       

       “아, 라이라. 무슨 일이야? 여기는 오기 싫어했으면서.”

       

       “이런 곳에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질린 듯한 표정을 짓는 그녀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이런 꺼림칙한 공간에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으니.

       

       

       “···그거 이빨이야?”

       

       “맞아. 꽤 많이 모였지.”

       

       “평소에는 그런 부산물 같은 거 다 버렸잖아.”

       

       “그랬지. 그랬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가보려고.”

       

       “···다르게?”

       

       “응.”

       

       

       별거 아니다.

       

       이 하얀 것이 그 녀석의 생명줄이다.

       

       마치 마지막 잎새처럼.

       

       그게 모두 사라진다면···. 뭐, 뒤는 말 안 해도 괜찮겠지.

       

       

       “···취미가 너무 나쁜 거 아냐?”

       

       “···.”

       

       “알아, 알아.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어.”

       

       “그래서, 왜 부른 거야?”

       

       “아, 맞다.”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눴다가는 시간이 훌쩍 지나갈 것만 같아서, 이곳에 온 목적을 물었다.

       

       

       “이상한 쪽지가 하나 왔는데, 혹시 누구 건지 알고 있나 해서.”

       

       “···쪽지?”

       

       “발신인 이름이랑 수신인 이름이 이상해. 숫자투성이야.”

       

       

       ···숫자투성이라.

       

       오늘 저녁은 뭐로 하고 싶냐, 뭐 그런 가벼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대충 장비들이나 조금 손보면서 이야기하려고 하던 자세를 바로 하고 라이라에게 편지를 요구했다.

       

       

       “줘 봐.”

       

       “아, 응. 여기.”

       

       “···역시.”

       

       “누구야?”

       

       

       발신인의 이름은 숫자의 조합. 내가 생각한 내용과 일치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상한 숫자의 조합.

       

       그러나 협회에서 보내는 공문은 대개 이런 식이다.

       

       언제나 빌런과 싸우고, 어떤 능력자가 빌런이 될지 몰라 정해진 방식.

       

       그렇기에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잘못 인쇄된 물건이라고 생각하기 쉬웠다.

       

       라이라는 이미 내용물을 뜯어봤을 거다.

       

       닫혀있어야 할 내용물이 살짝 떠 있는 흔적이 있었으니.

       

       그런데 내용도 역시 읽을 수 없어서 가져온 거겠지.

       

       이런 물건을 받을만한 건 이곳에 나밖에 없었으니까.

       

       

       “협회에서 온 거네. 어디, 내용은···.”

       

       “···? 뭐야, 무슨 내용인데 그렇게 심각해져?”

       

       “아르테 님은 어디 가셨지?”

       

       “응? 아마 시우네 집일걸. 요즘 항상 거기서 묵고 있으니까.”

       

       “빨리 스피라 데리고 거기로 와. 나는 먼저 이야기하고 있을 테니까.”

       

       “뭐? 자, 잠깐! 무슨 일인데?! 게다가 걔를 내가 데리고 오라고?!”

       

       “설명할 시간 없으니까 먼저 간다.”

       

       

       다급하게 안개로 변했다가 원래대로 돌아가기를 반복하며 최대한의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협회에서 토벌 요청이 올 정도라니, 보통 일은 아니었으니까.

       

       그것도 도시 내 치안 유지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라크네를 말이야.

       

       

       “···그나저나, 이게 정말 사실인가?”

       

       

       최대한 빨리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에 아르테 님에게로 향하고는 있었지만···.

       

       믿기지 않는 이야기에 잠깐 멈추어 선 다음 내려온 공문을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그러나 변하는 건 없었다.

       

       내가 착각한 건가 싶어 다시 읽어봐도, 여전히 공문은 그것이 사실이라는 듯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마수와 소통하는 인간이라니.”

       

       

       시민들 앞에서 생포한 마수를 죽이는 퍼포먼스는 있어도, 정말 마수와의 소통이 성공한 사례는 없었는데.

       

       반신반의했지만, 그렇기에 다시금 속도를 올려 아르테 님께 향하기로 했다.

       

       정말 마수와 소통하는 인간이라면 더욱 위험했으니까.

       

       그런 인간이 빌런이라면 사태가 어떻게 커질지 생각하기 힘들었다.

       

       

       

       ***

       

       

       

       “일어나, 스피라! 빨리 일어나라고!”

       

       “···나 졸린데.”

       

       “긴급상황이야! 빨리 움직이라니까?!”

       

       

       라이라는 답답함에 발을 동동 굴렀다.

       

       이전에도 가만히 누워있으면서 움직이기 싫다는 듯 게으름을 보여주는 경우가 가끔 있긴 했는데, 이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식충이처럼 뒹굴거리는 건 아르테가 다른 곳에서 눌러앉기 시작한 이후.

       

       아르테가 사라진 이후부터 보는 눈이 없다고 아예 드러눕기 시작하더니 이 꼴이다.

       

       

       “왜. 할 일은 다 끝냈잖아.”

       

       “그거 말고! 지금 당장 밖에 나가야 한다고!”

       

       “귀찮은데···.”

       

       

       더 짜증 나는 건 할 일은 다 하고 놀고 있다는 것.

       

       옆에서 일하고 있는데 자기 혼자 좋을 대로 쉬고 있는 게 짜증 나는 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자기 분량을 다 해내고 쉬는 거라 뭐라고 할 수도 없어 여태껏 가만히 내버려 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지.

       

       지금은 당장 움직여야 할 시간이란 말이야.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율이 그렇게까지 급하게 움직이며 스피라를 데리고 오라고 한 이유가 있을 텐데.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짜증이 치솟아 머리를 벅벅 긁으며 외쳤다.

       

       

       “···어쩔 수 없지. 네가 사고 싶어 하던 게임기 사줄 테니까 빨리 일어나! 급하다고!”

       

       “정말?! 나 준비됐어!”

       

       “이 년이···.”

       

       

       설마 이걸 노린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신속하게 밖으로 나갈 채비를 끝마친 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스피라가 얄미웠다.

       

       자기는 하반신이 이래서 밖으로 못 나간다고 자꾸 나한테 원하는 걸 사달라고 조르던 걸 무시해서 토라졌던 걸까.

       

       예전부터 노래를 부르던 게임기를 사준다는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나갈 채비를 끝내다니.

       

       

       “하아···. 그래, 그래. 사줄 테니까 빨리 나가자고. 힘든 건 네가 아니라 나야.”

       

       “나도 꽤 힘들거든? 상자에 담겨있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그걸 들고 가는 내 입장도 생각해! 이 돼지 년아!”

       

       “돼지라니?! 나는 뱀이야! 그렇게 무겁지도 않다고! 대충···200kg 정도밖에 안 해! 게다가 너는 초인이잖아!”

       

       “200kg이 아니라 230kg이겠지, 이 년아! 그 정도면 깡마른 여자 대여섯 명은 하는 무게라고!”

       

       “꺄, 꺄아악?! 너 그거 어떻게···! 그, 그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알겠지?!”

       

       “됐으니까 빨리 상자에 들어가기나 해.”

       

       “마, 말 안 하는 거지? 진짜지?”

       

       “안 할 테니까 들어가라고!”

       

       

       골이 아파져 한숨을 내쉬었다.

       

       이딴 년이 전 위버멘쉬의 간부, 현 아라크네의 조직원이라니.

       

       아라크네 조직원들에게 환상을 품고 있던 시민들의 댓글이 생각나 헛웃음이 지어졌다.

       

       이 꼴을 보면 뭐라고 생각할지.

       

       어이가 없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 님, 오늘도 좋은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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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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