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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1

        

         

       화르르륵!

         

       그러자 불꽃은 만족했다는 듯 활활 타오르더니 몸을 압축시키는 것처럼 쪼그라들어 손바닥 크기의 불꽃이 되었다. 그것은 음식이 더 필요 없다는 듯 작은 몸을 유지한 채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였다.

         

       진성은 쪼그라든 불꽃에 막대기의 끝을 집어넣어 불을 붙였다. 그러자 수분이 바싹 마르는 소리와 함께 막대의 끝에 불이 붙었다.

       횃불이라기에는 너무 불꽃이 작았고, 단순히 불이 붙었다고 하기에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불꽃의 상징(symbol)의 형태를 하고 있어 마치 옛날 마법사가 사용했다는 지팡이 같았다.

         

       그는 그것을 이리저리 휘두르더니, 일정한 리듬으로 다시 바닥을 두들겼다.

         

       퍼억!

       퍼억!

         

       그러자 다시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바닥을 치는 것을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소리가 변화하였는데, 그것이 마치 속이 빈 나무를 후려쳤을 때 나는 듯한 소리와 흡사했다.

         

       터-엉!

       터엉!

         

       약한 진동.

       커다란 울림.

         

       단순히 바닥을 치는 소리는 악기와 같은 소리가 되었다.

       원시의 고양을 담은 듯한 소리가 되었고, 이아린의 뇌에 영향을 주었다. 그녀는 점점 눈에 초점이 사라졌으며, 머리에 잡생각이 사라지고 오직 들리는 진동과 소리에만 집중하는 상태가 되었다.

         

       진성은 이아린의 멍한 표정을 확인하자 허공에 띄워둔 겨우살이와 수리부엉이를 가져와 그녀의 앞에 들이밀었다. 그리곤 뒤로 가서 이아린을 꽉 안았다.

         

       포옹의 강도는 단련된 무인의 신체로도 조금 숨이 막힌다고 느낄 정도였다.

         

       “어, 어?”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진성에게 안기게 된 이아린은 화들짝 놀랐다.

       이아린은 반사적으로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이아린의 움직임이 느껴지자 진성은 팔에 힘을 더 주며 말했다.

         

       “빠져나가지 말고 눈앞의 수리부엉이에 집중해라.”

       “으, 응?”

       “어서.”

         

       진성의 단호한 말투에 이아린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수리부엉이를 바라보았다.

       잠이 들어있는 수리부엉이는 멍청한 표정으로 그녀와 마주하고 있었고, 그녀는 그런 수리부엉이를 지켜보긴 했지만, 자신의 몸에서 느껴지는 다른 사람의 체온 때문에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다.

         

       “공감하라.”

       “뭘?”

         

       터-엉!

       터어엉-!

         

       진성은 이아린을 껴안은 채로 다시 바닥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까보다 더 커다란 진동과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기에 로부르참나무 위에 타오르는 불꽃에 하얀 가루를 태운 연기를 한껏 들이마시게 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이아린의 눈에서 다시 초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아린의 정신이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에 위치하게 된 것이다.

       

       반복되는 소리와 진동, 그리고 버섯 요정의 잔해에서 비롯된 ‘특별한 효과’로 인해 멍한 상태가 되어버린 그녀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자극을 잠결에 보고 듣는 것처럼 인지하게 되었다. 게다가 그녀를 껴안고 있는 진성과 버섯가루로 옥시토신(Oxytocin) 수치가 점점 올라감에 따라 공감 능력이 크게 오르고, 반사적 비난을 할 가능성이 반비례로 낮아졌다.

         

       진성은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보아라. 저기 네 앞에 전사가 있다.”

       “응….”

         

       이아린은 반쯤 감긴 눈으로 힘없이 진성의 말에 답했다.

         

       “보아라. 저 위풍당당한 눈을. 어둠을 꿰뚫을 저 눈은 밤을 거니는 맹수와 같으니, 그 어떤 적도 저 눈길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으응….”

       “보아라. 저 귀를. 작은 발소리도 놓치지 않으며, 칠흑 같은 어둠을 장막으로 두른다 한들 저 귀를 피하지 못할 것이니. 가족을 지키고 자신을 지키는 전사로서 저것보다 훌륭한 귀는 없을 것이니라.”

       “응….”

       “날개옷을 휘감고 어둠에 숨었으니 참으로 날렵하다. 밤의 어둠에 동화되는 빛의 털을 몸에 휘감았으니 적을 볼 수 있되 나는 적에게 보이지 않을 것이며, 나무의 빛깔과 같으니 나무와 한 몸이 되어 적을 기다릴 수 있으리. 다만 손에는 날카로운 것이 있으니 이는 피를 머금고 자라나는 전사의 무기로다.”

         

       진성은 쉴 새 없이 그녀에게 속삭였다.

         

       “태양이 타오르고 빛이 세상을 밝히니 그 모습이 드러난다. 피를 머금은 발톱은 햇빛에 빛나고, 나무의 껍질과 같았던 것은 깃털로 만든 갑옷이니. 그 모습이 전사의 귀감이로다, 참으로 맹수와 같은 전사로다.”

         

       진성은 겨우살이를 움직여 수리부엉이를 감싸기 시작했다.

         

       “어린 전사야. 저기 네가 닮아야 하는 이가 저기에 있다. 보아라. 저 위대한 전사의 눈을 보아라. 저 전사의 눈은 어둠을 꿰뚫고 밤을 낮처럼 거닐게 만들 수 있도다. 너는 그리할 수 있느냐?”

       “응…나도 가능해….”

       “어린 전사야. 저 귀를 보아라. 바싹 말라비틀어진 잎사귀를 밟는 소리마저 듣는 저 귀를 보아라. 너는 그리할 수 있느냐?”

       “가능해….”

         

       진성은 멍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이아린에게 깃털과 물고기의 비늘을 붙이기 시작했다. 맹금류의 깃털은 이아린의 목과 어깨에 붙었고, 물고기의 비늘은 그녀의 손톱에 붙어 형태를 이루었다. 구부러지고 끝이 날카로운 것이 마치 맹금류의 것과 비슷한 형태였다.

         

       “어린 전사야. 맹금류의 깃털을 뽑아 만든 날개옷이 저기에 있다. 마땅히 전사라면 그것을 가져야 할 것인즉, 너는 그것을 가지고 있느냐?”

       “없…아니, 있…네? 가지고 있어….”

       “어린 전사야. 저 반짝이는 칼날을 보아라. 적의 배를 찢고 머리를 꿰뚫을 저 무기를 보아라. 너에게도 저런 것이 있느냐?”

       “있…으어….”

         

       진성은 이아린의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보아라. 전사의 용맹함을.”

         

       그는 그 말과 함께 혈액팩을 찢어 수리부엉이에게 뿌렸다. 이아린과 같은 혈액형을 가진 피는 수리부엉이의 몸 전체를 새빨갛게 물들였다. 진성은 수리부엉이의 몸에 닿지 않고 떨어지는 핏방울을 허공에 띄워서 빈틈없이 수리부엉이의 몸을 빨갛게 만들었고, 이윽고 수리부엉이가 완전히 빨간색으로 물들자 겨우살이를 움직여 수리부엉이를 완전히 감싸버렸다.

         

       그 모습이 마치 거미에게 붙잡혀 고치가 되어버린 먹이의 모습과 흡사했다.

         

       진성은 불이 붙은 막대기를 휘저어 겨우살이를 다시 움직였다. 그러자 고치 형태의 겨우살이는 모양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겨우살이가 꼬아지기를 반복하며 팔과 다리의 모양이 생겼고, 머리로 보이는 혹이 툭 튀어나왔다.

         

       의인화(Personification).

       투사(projection).

       옥시토신(Oxytocin) 수치 증가로 인한 공감 능력 강화.

       트랜스 상태(Trance)와 태양의 영향을 받아 높아진 체온.

       알파파(α-wave) 형태를 띤 뇌파.

       크롬 크루어히의 제물로 적합한 이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 상징, ‘희생양’과 ‘첫째’의 상징을 수리부엉이에게 떠넘기는 악의 전이(The transference of evil).

         

       그가 하는 모든 행위가 말하고 있었다.

         

       여기에 제물이 있노라고.

       여기에 공양의 혜택을 받을 자가 있노라고.

         

       그리고, 적합한 절차에 따라 제물을 바치고.

       그 결실을 내려주어야 한다고!

         

       진성은 로부르참나무를 이용해 겨우살이로 만든 우상을 불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러자 우상은 마치 사람이 그러는 것처럼 무릎을 꿇고 양손을 하늘로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 몸에 불이 붙어 타들어 가는 와중에도 누군가를 숭배하듯 그 자세를 똑바로 유지하였으며, 겨우살이가 전부 타버리고 고기 냄새가 풀풀 풍기는 상태가 되어서야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는 손에 들고 있는 참나무를 잿더미가 되어버린 우상에 푹 꽂았고, 그러자 나무 막대기가 순식간에 재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겨우살이가 타서 만들어진 재와 함께 수직으로 하늘로 솟구치더니 사라져버리고, 오직 잘 익은 새고기만을 남겼다.

         

       진성은 고기를 들어 묻은 재를 대충 털어내고는 이아린에게 가져갔다. 이아린은 계속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코에 향긋한 고기 냄새가 풍기자 퍼뜩 정신을 차렸고, 자신의 눈앞에 놓인 뭔지 모를 새고기를 보았다.

         

       “어, 이게 뭐야?”

       “의식은 끝났다. 이제 이것을 먹으면 되느니라.”

       “어…. 진짜?”

       “다만 이 고기는 너 혼자 전부 다 먹어야 한다. 가능하겠느냐?”

         

       진성의 물음에 이아린은 웃었다.

         

       “열 마리도 가능한데?”

       “그럼 다행이구나.”

       “아, 그런데…내장이나 뼈도 먹어야 해?”

       “내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테니 괜찮고. 뼈는 절대로 먹으면 안 되느니라. 새의 뼈를 먹으면 뼈가 약해질 수 있어 오히려 독이 될 것이다. 그리고 눈알은 반드시 먹어야 하며, 귀…는. 연골을 먹을 위험이 있으니 그냥 아예 먹지 말도록 해라.”

       “알았어. 그냥 뭐, 대충 뼈만 조심해서 먹으란 거지?”

         

       동종 주술에 따르면 날렵하고 가벼운 동물을 먹으면 마찬가지로 민첩하게 된다고 여겼다.

       눈이 좋은 동물의 눈을 먹으면 눈이 좋아진다고 하였고, 힘이 강한 동물을 먹으면 마찬가지로 힘이 강해진다고 여겼다.

         

       이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여기는 존재를 먹음으로써 그 속성과 능력을 분유(分有, Methexis)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 동종 주술(homoeopathic magic)이었다.

         

       “다 먹었어!”

       

       이아린은 몇 분 지나지도 않아 한 마리를 모두 해치워버렸다.

       그것을 본 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가자.”

         

         

         

        * * *

         

         

       “언제 오려나…?”

         

       스위트룸의 소파.

       갈색 머리를 늘어뜨린 마녀가 문을 빤히 쳐다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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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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