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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1

       -끼리릭. 끼리릭.

        

       거대 석궁의 장전용 크랭크를 돌리는 소리를 배경으로, 광전사와 기사는 교전을 재개했다. 여태까지와 달라진 점이라면……기사가 소극적인 겁쟁이로 변했다는 점일까.

        

       발리스타 죽창에 맞았으니 상대 기사의 체력은 많아도 5할. 저 무식한 양날도끼에 단 한 번만 유효타를 맞아도 즉사다.

        

       부담감이 상당하겠지.

        

       슬금슬금 후퇴하는 기사가 내어주는 공간으로 진입해서, 광전사의 뒤에 안전하게 자리를 잡았다.

       

       상대가 어느 경로로 합류하더라도 대응할 수 있는 위치이자, 눈 먼 공격은 나무꾼 바리케이드로 막을 수 있는 포지션. 이걸 이렇게 쉽게 내주네.

        

       장전은 거의 끝나가지만, 장전이 끝난다고 바로 발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조준점이 더럽게 노골적인 이 무기로 방패까지 든 기사한테 유효타를 넣을 타이밍을 잡는 건 쉽지 않으니.

       

       하지만 완벽한 각을 만들겠답시고 무한히 대기할 수는 없다. 4대 5로 분투하고 있는 본진이 그리 오래 버틸 수는 없을 터. 

        

       《뒤로! 뒤로! 한 번 빼요! 상대 작열번개! 사제 힐 기사한테 집중하고, 다 빼요!》

        

       《여기서 더요? 센터 뺏겨요!》

        

       《다시 점령하는 게 나아! 우리가 먼저 죽으면 절대 안 돼요! 빼! 튀어요!》

        

       ……아크가 고생이 많네. 조금씩 빼면서 버티되, 죽지는 말라는 오더를 정말 충실히 지켜주고 있었다.

        

       본진보다 아크 목이 먼저 나가겠는데.

        

       정돈되지 않은 마구잡이 싸움이 긴박하게 벌어지는 생생함이 느껴지는 본진과 달리, 눈앞의 교전은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한 방으로 끝나는 이런 구도에선 거리재기가 전부인 건 알지만……역시, 별로다. 이럴 시간은 없는데.

        

       아크가 지르는 비명만 들어봐도, 본진의 패퇴가 분초를 다투고 있잖아.

       

       무너지기 전에 합류해야 한다.

        

       “빨리 죽여봐요. 다 잡아놓은 거 막타 치는 건데.”

        

       《상대가 대놓고 빼면서 유도하잖아. 어설프게 들어갔다가 나 죽으면 님도 죽어요.》

        

       어지간히 신중하시네. 아직 폭주가 안 켜진 모양이니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아.

       

       그렇지.

        

       “폭주 켤까요?”

        

       《네? 폭주를 어떻게……야!》

        

       -푸욱.

        

       옆구리를 슬쩍 찔러주며, 레반의 머리 위 체력바를 확인했다.  

       

       궁수 단검은 확실히 딜이 너무 낮네.

        

       역시, 단검은 도적이 근본이다.

        

       “음……한 번 더?”

        

       -푸욱.

        

       아, 됐다.

        

       “자, 돌격하세요.”

        

       《야, 이 미친년아-!》

        

       ……말은 그렇게 해도, 몸은 솔직하네. 펌핑된 이속으로 돌격하는 레반의 뒷모습은 흉포하기 그지없었다.

        

       저렇게 잘 할 수 있으면서 그래.

        

       흐뭇한 미소와 함께 장전이 완료된 석궁을 들어올렸다. 어디를 맞추든 좋아. 이런 구도에선, 움직임만 제한하면 그만이다.

        

       막으려는 순간 쏜다.

       피하려는 순간에도 쏜다.

       공격하려 해도 쏜다.

        

       아무튼, 뭘 하려 해도 그걸 견제하는 방향으로 쏜다.

       

       네가 뭘 하고 싶든, 그것만은 못하게 할 거야. 게임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그렇게 마음속으로 되뇌이며, 겨누어진 석궁을 아주 조금씩 흔들듯 움직였다. 그 때마다 기사의 시선이 순간순간 내게 향하며 칼끝이 흔들리는 모습이, 제법 짜릿하더라.

        

       궁수도 나름 괜찮네.

        

       도적만큼은 아닌데, 그래도.

        

       * * * *

        

       [바다바다님이 처치되었습니다!]

       [레반(광전사) → 바다바다(성기사)]

        

       《바다바다 선수! 결국, 목을 내어주고 맙니다!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갑자기 켜진 폭주에 대응을 못했어요!》

        

       《이건 대응하기 너무 어려웠습니다. 아, 리플레이 나오네요. 보시면, 이 타이밍에 아따먹 선수가 레반 선수의 등 뒤로 숨어버리는데, 이러면 바다바다 선수 입장에선 순간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지거든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아올 투사체를 의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틈을 타서 아군 광전사를 폭주시킨 거예요. 이 와중에 눈 좀 빨개지는게 보일 리가 있나요!》

        

       《정교하게 훈련해서 합을 맞춰 둔 플레이로 보입니다. 이렇게 거리가 벌어진 상태에서 아군 공격으로 폭주를 켜버리면, 원래 보는 순간 뒤로 빼면 그만이거든요. 그런데 폭주를 확인하는 것도 늦은데다가, 투사체 속도가 압도적인 석궁으로 견제하고 있으니 함부로 등을 돌릴 수도 없었어요. 5인의 도적팀, 조합 준비를 정말 잘 해왔습니다!》

        

       《아, 탑에서 내려와 합류하는 광전사와 궁수!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고군분투하던 아크 선수 입장에서는 가뭄의 단비 같은 원군이에요. 조금 전까지 몰아치던 노인과바다 팀이 앞뒤로 포위당했습니다! 위기입니다!》

        

       오소독스는 해설들 특유의 호들갑이 마음에 든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건, 제법이었는데.

       

       호들갑을 떨 정도의 플레이기는 했다.

        

       아무리 은퇴한 몸이라고 해도, 바다바다 정도 되면 요행으로 따낼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도적도 아니고 궁수가 지하에서 튀어나와서 덮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탓이기도 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조차도 의도된 전략일 터.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계획이었을까.

       

       2지하로 상대 지하의 성장은 차단해버리고, 우리 본진은 숫자 부족으로 밀려난다. 그러니 상대 본진은 자연스럽게 신을 내며 이득을 보려고 깊은 곳까지 빨려 들어가게 되는데- 이 때 탑에서 기습적으로 킬을 낸다.

        

       밀리며 후퇴하던 아군 본진은 어느새 단단한 모루가 되고- 순간 화력으로는 최강인 광전사와 궁수가 뒤에서 합류하며 망치처럼 적을 내리친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흐름에서는 정교한 의도가 느껴졌다. 브론즈들이 포함된 본진은 사실상 고기방패에 가까운 역할만 하면 된다는 점이 특히.

        

       오소독스는 문득, 해설들이 주접을 떠는 공식 방송 대신 저 게임을 하고 있는 스트리머들의 방송을 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사회생활의 경륜으로 애써 억누르고 있었지만. 

        

       “봐요, 형! 이거 진짜 말이 된다니까요? 아따먹 이 사람 피지컬 때문에 묻히는데, 사실 빌드나 전략 쪽으로 진짜 천재예요.”

        

       “……제대로 된 경기였으면 탑까지 가기도 전에 이미 본진 박살나고 중앙 거점 먹혔지. 그리고 저 석궁질이랑 2지하가 무슨 상관이야.”

        

       블루 팀이 승기를 잡자마자 눈을 반짝거리며 헤헤거리는 꼴이 어째 마음에 들지 않아서, 볼멘소리를 내뱉었지만- 오소독스의 감 역시 저 움직임에 무언가가 있다는 듯이 간질거리고 있었다. 저 전략을 만든 사람이 저 스트리머 중에 있다면, 얘기 한 번은 해보고 싶을 정도로.

       

       물론, 월드시리즈를 앞두고 인터넷방송이나 보던 동료는 조금 혼낼 생각이었지만.

        

       “궁수가 저렇게 탑까지 돌 수 있는 거 자체가 2지하여서잖아요. 그리고 결국 본진 버틴 것도, 도적 성장 속도가 시간 대비 너무 빨랐어서 그런 거예요. 도적이 파밍할 동안 지하에서 마주치는 상대를 궁수가 견제하면서 지켜줬으니까. 저 도적이 실버여서 그렇지, 챌린저였으면 본진도 어떻게 됐을지 몰라요.”

        

       그러나 랩이라도 하는 양 속사포처럼 내뱉는 말을 듣고 있자니, 화를 낼 힘조차 사라졌다. 나름 진지하게 팀의 승리를 생각하는 모양이라고 믿을 수밖에. 

        

       “알겠어. 알겠으니까, 진정 좀 해봐.”

        

       마지막 남은 기사를 마무리하고 중앙 거점을 차지한 블루팀. 첨탑에서 저격을 준비해야 할 궁수는, 당연하다는 듯이 도적과 함께 지하로 뛰어들고 있었다.

        

       ‘2지하……캐리는 궁수가 한 것처럼 보이지만, 핵심은 도적이다 이거지.’

        

       빈말로도 현란한 움직임은 아니었다. 붙어서 중립몹을 사냥하다가, 흩어졌다가, 각자 잠시 매복한 채 대기하다가, 라인에 합류했다가……관중들 중 이해할 사람이 거의 없을, 일견 무의미해보이기도 하는 움직임.

        

       그럼에도, 눈을 떼기 어려웠다.

        

       퍼플팀의 지하에 오소독스 자신을 이입한 채 아무리 플레이를 상상해보아도, 제대로 된 대처법이나 동선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숫자에서 밀리니 당연한 얘기기도 하지만……애초에 일반적인 동선이 아니야. 두 명이 한 명을 찍어 누르는 플레이에 최적화시켰네.’

        

       이러면 당연히 지하는 버리고, 본진에서 뭔가 해줘야 하는데. 방치되는 시간 동안 신나게 공짜 상자를 열고 다니는 도적의 성장 폭이 너무 크다.

        

       ‘애초에 조합을 다르게……아니야. 그래봐야 시간 내에 본진을 무조건 뚫어야 되는 입장이 되면, 선수를 무조건 뺏긴다.’

        

       나름, 전세계에서 나오나 지하로는 1, 2등을 다툰다고 자부하는 오소독스. 그는 머리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면 돌려볼수록, 게이머로서의 감이 점점 더 강하게 반짝거리는 걸 느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가능성. 분명, 가능성이 있었다. 모르면 맞아야 하는 그런 전략의 냄새가 솔솔 풍겨왔으니.

        

       월드 시리즈 다전제에서, 깜짝 전략으로 꺼내들면 한 방 먹이고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야, 니네 뭐하냐? 어? 대회야?”

        

       “아, 코치님. 여기 이거 한 번 같이 보실래요? 인터넷방송 대회긴 한데, 전략은 스크림에서 한 번 써볼 만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어! 그쵸, 형! 역시! 형이 보기에도 이거 쓸 만하지 않아요?”

        

       “조용히 해봐. 2경기에서도 같은 전략 쓰면 좋겠는데. 혹시 이 팀 2지하 연습하는 영상도 있어?”

        

       “어……네. 팬튜브에 있을 거예요.”

        

       “팬튜브? 뭐……아무튼. 나중에 주소 톡으로 보내줘.”

        

       “뭐야, 무슨 팀이길래? 2지하?”

        

       “네. 저도 아직은 긴가민가한데……쉬는 시간 동안만 같이 보시죠.”

        

       그렇게 놀 사람 없나 기웃거리다가 연습실에 들어온 팀의 코치까지 옆에 앉힌 채, 오소독스는 본격적인 관람 겸 분석을 시작했다.

        

       * * * *

        

       [별포크 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저, 저 사제도 끊었어요!”

        

       《나이스! 별포크님 미쳤다!》

        

       별포크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화면 상단의 5킬 0데스 3어시스트라는 스코어가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대체 얼마만의 캐리인지.

        

       마법사에 사제까지 연달아 끊어내는 순간 느껴졌던 짜릿한 손맛이 아직도 저릿저릿하게 남아있었다. 이게, 이게 게임을 잘 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각일까. 이런 기분을 항상 즐길 수 있다면, 게임을 그렇게나 좋아할 만도 했다.

        

       흥분으로 떨리는 시선이 여기저기로 쏘다니다가, 텅 빈 채팅창에 안착했다.

        

       날카로운 말만 유독 잘 보여서, 차라리 비어있기를 바랄 때도 있었던 채팅창이었지만- 지금만큼은, 채팅을 제한해야 한다는 규칙이 못내 아쉬웠다. 분명 경악과 찬양으로 가득했을 텐데.

        

       항상 브론즈라고 무시하기만 하던 시청자들이 감탄하는 광경이 꼭 보고 싶었다. 

        

       《잘 했어요.》

        

       공식 방송 채팅이라도 다시보기로 꼭 챙겨 보리라고 다짐하던 그녀는, 스승의 차분한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흥분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힐 수 있었다.

        

       ‘진짜 신이야! 미쳤어! 어떻게……진짜 신이야!’

        

       물론, 아주 살짝.

        

       당연한 일이었다. 올려다보기도 어려운 다이아들을 상대로, 수 만명이 지켜보는 대회에서 캐리하는 상황. 자기 전에 상상하기에도 낯부끄러운 망상이 현실이 되었는데, 흥분하지 않는 편이 더 이상하리라.

       

       그러고 보면……교주, 라고 했던가. 농담으로 받아쳤지만, 지금 느껴지는 이예나에 대한 감정은 정말로 신앙심에 한없이 가까운 경외감이었다.

        

       ‘예나님 진짜 뭐지? 왜 프로 안 하시지? 프로가 너무 시시하신가? 뭐지? 신이어서 그런가? 그래, 얼굴부터가 여신이었어. 맞아.’

        

       처음에 나오나를 공포게임으로 만들겠다는 양, 지칠 때까지 도망가는 훈련만 시킬 때는 후회를 한……돌이켜보면, 불경스럽기 그지없는 시간도 있었지만.

        

       모든 건 결과가 말해주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은, 신앙심을 가지고 따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따름이었다.

       

       《서렌! 서렌 나왔어요!》

       

       우승까지 단 한 걸음.

       

       별포크는 이미, 멘티 MVP 소감에서 어떤 말을 해야 스승이 가장 기뻐할지에 관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ilili 님, 4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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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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