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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1

       그래도 그 사람의 행적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아니, 불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 사람이 어딘가로 움직일 때마다, 누군가가 따라붙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병원 신세를 진 이후로, 그 사람은 별다른 특이한 점을 보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보통 사람으로서의 특이한 점 말이다. 건강이라던가, 상처라던가, 특이한 버릇이라던가.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바뀐 점은 있었다.

        

       바로 ‘성격’이었다.

        

       “제가 약혼자에게 화를 냈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양혜인은 나에게 말했다.

        

       그게 인상적인 장면이라도 되었던 것일까. 양혜인은 그 장면을 아주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열심히 식사해서 그보다 빠르게 식사를 마친 나에게 그가 ‘돼지’라고 불렀고, ‘나’는 그에게 퉁명스럽게 쏘아붙이고 식당 밖으로 나가버렸다고 한다.

        

       ……나라면 하지 않았을 일이다.

        

       그 사람이 내 몸에 있으며 남긴 잔재 덕분에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긴 했지만, 나는 원래 어머님 외의 다른 사람 앞에서는 입을 거의 열지 않았었다.

        

       나는 특히 나에게 적대적인 인간에게 약했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일이 없었고, 나와 대화해주는 유일한 사람인 어머님은 적어도 겉으로는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대해주었으니까.

        

       약혼자는 나와 대화하는 두 번째 사람이긴 했지만, 나에게 한없이 적대적인 사람이었다.

        

       그를 만날 때면 언제나 주눅 들고 겁먹었다.

        

       ……어머님은 어째서 나를 그런 사람과 약혼시킨 것인지, 고민해보기도 했지만…… 제대로 된 결론을 내놓을 수 있었던 적은 없었다.

        

       그런 내가, 그에게 직접 대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까지 했다니.

        

       “맞아, 학교에서는 그 사람이 너에게 사과까지 했으니까.”

        

       유하늘의 말을 듣고는 더욱 놀랍기까지 했다. 그 사람이 사과 같은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일까? 애초에 본인이 하는 일은 모두 옳다는 듯 행동하는 사람이었는데?

        

       ……아, 그래.

        

       그렇구나.

        

       사실은 내가 겁먹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던 것일까. 그때 내 몸 안에 있던 그 사람은 그걸 확신하고 있었던 거고.

        

       “…….”

        

       정말로 ‘기억을 잃은’ 내가 맞았던 것일까? 약혼자에 대한 정보를 알고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가정하면, 오히려 기억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쪽이 맞지 않을까?

        

       약혼자에 관한 이야기 뿐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행동하며 바라본 모든 미래가, 마치 미리 준비되어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어떻게 행동해야 내가 행복할 수 있을지, 미리 알고 있다는 것처럼.

        

       꾸러미에 선물을 가득 담아와서 내 앞에 턱 내려놓는 산타처럼.

        

       아니, 어쩌면.

        

       어쩌면—

        

       —가슴이 조금 뛰었다.

        

       얼굴도 모르는……아니, 사실 얼굴은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내 몸을 사용했으니, 나와 얼굴이 같겠지. 그 사람이 기억을 잃은 나였건, 아니면 성격 자체가 바뀌었던 나였건. 사실 우리 둘은 서로 손도 잡지 못한다. 만난다고 해서 서로 떨어진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을지 아닐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꼭 만나보고 싶다.

        

       내 몸을 차지하고 그대로 삶을 누려도 되었으면서, 나에게 그 몸을 넘겨준 그 사람을 만나고 싶다.

        

       왜냐하면, 내가 살아가면서 처음으로 만나본, 온전한 나의 편이었기에.

        

       그 어떤 다른 조건도 없이, 온전하게 나의 행복을 빌어준 사람이었기에.

        

       콩닥거리는 가슴을, 나는 손으로 지그시 누르며 그렇게 바랬다.

        

       *

        

       “여기야.”

        

       신소희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어느 주택가 골목의 허름한 가게 앞이었다. 주말인데도 한산했다. 거리는 물론이고, 눈앞에 있는 가게도.

        

       가게 간판에는 커다랗게 ‘떡볶이’라고 쓰여있었다.

        

       나는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이었다. 학교 급식으로 종종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지만, 나는 보통 메인 메뉴만 먹어도 배가 불렀으니까. 음식에 큰 관심이 없었기에, 보통 나는 먹는 것만 먹는 편이었다.

        

       맛에 대해 묘사하는 것을 들어본 적은 있다. 가끔 학교에서 근처 아이들이 나누던 이야기에서 종종 나오던 음식이었다. 식사로 먹는다기보다는 친구들과 하교하면서 함께 먹는, 일종의 간식거리인 모양이었다.

        

       아니, 그보다, 나는 내 생에서 이렇게 친구들과 함께 식당을 와본 적이 없다. 그리고 방문한 식당이 이렇게 좁고 허름했던 적도 없었고.

        

       가게 앞으로 조금 걸어가 보았다.

        

       냄새가 났다.

        

       나쁜 냄새는 아니었다. 약간은 달짝지근한, 그러면서도 그 사이로 조금은 매콤할 것 같은 향이 올라오는 냄새였다.

        

       내가 먹는 음식 중에서 자극적인 음식은 별로 없었기에, 나는 그런 냄새마저 신기했다. 그 사이로 올라오는 희미한 기름 냄새와 생선 끓이는 것 같은 냄새도.

        

       “자, 자, 들어가자.”

        

       신소희가 내 등을 살살 밀면서 말했다.

        

       그 힘에 밀려서 엉겁결에 그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보이는 웨이터는 없었다. 심지어 식탁 위에도 메뉴판은 없었다. 벽에 색 바랜 메뉴가 붙어있긴 했지만, 신소희는 그걸 보지도 않고 손을 번쩍 들면서 말했다.

        

       “떡볶이 오 인분이요!”

        

       우리 다섯 명이 들어오는 것을 그저 멀거니 쳐다만 보고 있던, 이 식당의 주인인듯한 할머니는 그제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

        

       나는, 매운 음식을 그다지 먹어본 적이 없다.

        

       전혀 먹어본 적 없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그런 음식을 즐겼냐고 물어본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저택에서 먹는 음식은 대부분 매울 이유가 없는 서양식 음식들이었다. 아침은 보통 빵이었고, 점심과 저녁은 샐러드와 스테이크인 경우가 많았으니까.

        

       어째서 메뉴가 그렇게 된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내가 어린 시절 좋아하던 음식들이 그대로 굳어졌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내가 따로 뭔가 먹고 싶다고 해본 적은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신소희가 소개해 준 음식이 나에게 어떤 느낌이었냐면,

        

       음, 신기했다.

        

       맛있었다. 맛있기는 했는데, 역시 조금 신기했다. 내가 평소에 먹던 음식들과는 여러모로 결이 달랐으니까. 물론 가격이 말도 안 되게 저렴하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경제 관념을 제대로 모르는 나이긴 했지만, 내가 평소에 먹는 음식들이 평균보다 비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당연히 이 떡볶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가격이리라.

        

       조리법은 단순해 보였다. 이런저런 재료를 섞고 숙성하여 만드는 소스가 아니고, 몇 가지 재료를 단순히 통으로 부어 넣어 만든 것 같은 단순하고 자극적인 맛.

        

       하지만, ……맛있었다.

        

       다만 나름 인상 깊고 맛있는 음식이긴 해도, 진미라고 생각하거나 호들갑을 떨면서 이게 최고의 음식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었지만.

        

       어째서인지, 처음 먹어보는 음식인데도,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아주 오래전에 먹어본 것처럼.

        

       이것도 그 사람이 남기고 간 감정인 걸까?

        

       심장 저 너머에서 미약하게 느껴지는 이 감정은 분명히 그리움이었다. 고작 3개월 치의 그리움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어딘가 훨씬 더 깊은 곳의, 아니, 더 ‘오래전’의 일에 대한 그리움.

        

       “어때? 맛있어?”

        

       포크를 입에 물고 우물거리는 나를 향해, 신소희가 물었다. 마치 대답이 엄청나게 기대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신소희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또 오자고 했었는데, 이제야 왔네. 하긴, 내가 학교 다닐 때야 여기가 하굣길에 들리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조금 멀어지긴 했으니까.”

        

       아, 그랬구나.

        

       그 사람도 이 음식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마음에 들었다기보단 ‘원래부터’ 좋아하는 음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심장이 작게 뛰었다.

        

       나는 포크를 내려, 삶은 달걀 하나를 콕 찍었다. 그리고 옆으로 돌려서 포크의 옆면으로 달걀을 그대로 반으로 갈랐다.

        

       위아래로 갈라진 달걀의 안쪽은, 떡볶이 국물이 범벅이 된 바깥쪽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색이었다. 소스가 전혀 흡수되지 않은 새하얀 흰자와 노란 노른자가 보였다. 안으로 갈수록 점점 더 선명한 노란색을 띠고 있었다. 아마 조금만 덜 익혔으면 반숙 달걀프라이같이 그대로 노른자가 흘러나오지 않았을까?

        

       그대로 달걀을 굴려 그 단면을 떡볶이 국물 위에 올려 비볐다. 노른자의 퍽퍽하게 익은 부분이 조금 부서져서 소스와 섞였다. 포크로 찍어 들어보니, 달걀은 그 단면까지 확실하게 떡볶이 국물로 코팅되어 있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준 것은 아니다. 그냥 왠지, 이렇게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사람이, 내 몸 안에서 어머님을 봤을 때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내가 기억하던 강렬한 감정을, 그 사람도 그대로 느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부끄러운 기분도 들었다.

        

       반면에,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들은 결코 큰 것들은 아니었다.

        

       아주 소소하게 느껴지는, 일상의 사이사이에 스며들어있는 작은 행복과 즐거움들.

        

       하나하나 인생을 바꿀 만큼 강렬한 것들은 아니었지만, 그것들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인생을 끝내는 것이 아쉽게 느껴지게 할만한, 작지만 끈끈한 기억들.

        

       아, 그래. 그렇구나.

        

       나는 떡 하나를 더 입에 넣었다. 그리고 입안에서 느껴지는 그리움을 곱씹었다.

        

       내 주변의 사람들도 말없이 음식을 먹고 있었다. 유하늘과 이수아, 신소희, 그리고 양혜인까지.

        

       타인에 대한 두려움이 희석될 수 있었던 것 또한, 이 사람 덕분이겠지. 사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앞에 있으면 먼저 말을 걸고, 무시하지 않고, 그 벽을 넘으려고 하던 사람.

        

       그 사람이 남겨두고 간 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아직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은 없지만, 나는 왠지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

        

       덕분에 확실하게 방법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약을 먹는 것이 가장 확실할지도 모른다. 나의 기억이 어머님과의 만남을 통해 돌아왔듯, 이 사람이 내 몸으로 겪었던 가장 강렬한 기억을 맞닥뜨리면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실패할지도 모른다.

        

       내 심장이 멈춘 다음 그 사람이 내 몸에 들어왔다고 가정한다면, 이번에 심장이 멈췄을 때 다시 몸이 소생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미 그 방법으로 그 사람에게 끔찍한 고통을 주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나에게 이런 삶을 선물해주려고 온 힘을 다했고.

        

       ……그렇다면, 나도 조금은 부드러운 방법으로 그 사람을 불러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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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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