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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1

       “문주! 혈교와 협력했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이 곳은 분명 정파였을 터인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요!”

       “나와서 해명해! 이 새끼들아!”

       

       문파 건물의 바깥은 소란스러웠다.

       

       어떤 경유에서인지는 몰라도 화산이 혈교와 협력했단 사실을 안 외부인들이 화산의 사람들에게 해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들의 분노는 가볍지 않았다. 화령의 방송을 통해 화산에 남아있으면 위험할지 모른단 사실이 밝혀진 지금 대다수의 이들은 대피를 한 지 오래였다.

       

       지금 화산에 남아 있는 이들은 게임을 시작할 때 화산의 재건부터 같이 했던 이들. 화룡무인의 삶을 화산에 바치다시피 했던 사람들이었다.

       

       무너져 가던 정파를 자신들의 힘으로 되살렸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화산에 항의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필사적인 목소리가 닿은 것일까. 건물의 문이 열리며 화산의 문주와 장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주! 대답해 주시오.”

       “당신은 우리를 배신했소?”

       “나는 그대들을 배신하지 않았소.”

       

       유저들의 물음에 화산문주는 무덤덤하게 답했다.

       

       허나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화산문주의 말을 믿지 않았다. 화산과 혈교가 협력했다는 증거는 이미 모두 다 나온 지 오래였으니까.

       

       “끝까지 거짓을 입에 담다니.”

       “거짓이라니. 내가 무슨 거짓말을 했단 건가.”

       “지금 하는 말이 모두 다 거짓부렁 아닌가!”

       “난 사실만 말했네. 난 그대들을 배신한 적이 없어. 애초에 그대들을 동료로 여긴 적이 없으니까.”

       

       화산문주가 그리 답을 하기 무섭게 뒤의 장로들이 검을 뽑아 들었다.

       

       “이 쓰레기들이!”

       “네 놈들이 그러고도 정파의 무인이냐!”

       

       그러자 유저들도 저마다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들도 지난 몇 년 동안 무를 수련한 이들. 게임을 하는 유저답게 다른 모든 걸 배제하고 강함만을 추구했으니 경지는 그렇다 쳐도 육체만큼은 장로에게 뒤지지 않았다.

       

       허나 싸움의 양상은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화산의 유저들은 장로들이 내미는 검에 속수무책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난 몇 년간 유저들에게 무공을 가르친 것이 장로이니 겨우 육체가 같아졌다 해서 대등한 싸움을 벌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기이한 것은 화산의 장로들이 유저를 죽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유저를 기절 시켜서 제압할 뿐 목숨을 빼앗진 않았다.

       

       하나 둘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이 줄어든다. 수가 비슷할 때에도 불리했는데 그 수가 줄면 상황이 어찌 변할지는 뻔했다.

       

       화산의 유저 중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건 박연이었다.

       

       화룡무인 공략의 최전선을 달리는 그는 가진 모든 것을 이용해 발악을 했으나 수의 폭력을 버틸 정도로 강하진 못했다.

       

       천성이 부드러워 웃음밖에 지을 줄 모르던 그의 눈에 분노가 서려 있었다.

       

       “당신들이 처참히 망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박연이 눈을 감자 화산에 정적이 감돌았다.

       

       침묵을 깬 것은 한 남자의 허술한 목소리였다.

       

       “이야 확실히 해주셨네요. 고생하셨습니다.”

       

       혈교주는 강시의 몸을 빌려 화산파 안을 둘러보다가 웃음을 흘리며 화산의 이들 쪽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외부인을 좋아하시지 않는다지만 몇 년간 동고동락한 동료인데 거리낌 없이 제물로 내밀 줄은 몰랐습니다.”

       

       혈교주의 말엔 명백한 비꼼이 담겨 있었다.

       

       몇 년 간 함께 화산을 재건하려 노력한 이들을 배신하고도 가책을 느끼지 않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저들은 동료가 아니다.”

       

       화산문주가 이를 악물고 대답하자 혈교주가 웃음을 흘렸다.

       

       “아하. 그랬죠. 죄송합니다. 말실수를 했네요.”

       “잡다한 이야기는 필요 없다. 계획에 대한 말이나 해라.”

       “그러도록 하죠.”

       

       혈교주는 말했다. 지금 산 전체에 설치한 혈교의 진을 발동할 것이라고.

       

       화산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공양함으로써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경지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그들이 그토록 바라왔던 대업을 달성할 수 있게 되리라고.

       

       천마의 습격을 받은 그 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잊지 못했던 숙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에도 화산의 이들은 기뻐하지 않았다.

       

       그 뒤에 이어진 혈교주의 말 때문에.

       

       “이미 들으셨겠지만 계획이 실행되면 산 전체에 있는 생명이 한 사람에게 모여들 겁니다.

       외부인 뿐 아니라 장로 분들도 그를 견딜 수는 없겠죠.

       살아남는 건 단 한 사람 뿐입니다. 그를 정하셨습니까?”

       “그래.”

       “누구입니까?”

       “나다.”

       

       혈교주의 물음에 화산문주가 답을 하자 다른 이들의 얼굴에 수심이 깃들었다.

       

       그것은 화산의 이들이 죽음을 두려워해서가 아니었다.

       

       한 사람에게 모든 짐과 죄를 떠넘겨야 한다는 사실이 통탄스러워서.

       

       그 사람이 걸어가야 할 가시밭길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일지를 짐작해서.

       

       다들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바로 시작하시겠습니까?”

       “그러지.”

       

       혈교주가 손가락을 튕기자 풍사율의 품 안에 있던 구슬이 빛을 냈다.

       

       그와 동시에 산 전체에서 사기가 피어올랐다.

       

       “모두.”

       

       화산문주가 입을 열자 장로들의 시선이 한 데 모였다.

       

       “여태까지 고생했소.”

       

       이들은 화산의 떼죽음에서 살아남은 동지들이자 복수를 위해 죽지 못해 살아온 이들이었다.

       

       “남은 것은 내가 해결하고 가지.”

       “지옥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천천히 오시지요.”

       “먼저 가서 죄송합니다.”

       

       장로들의 입에서 여러 가지 말이 새어 나온다.

       

       그 목소리를 묵묵히 듣던 문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을 뽑아 들었다.

       

       “내 반드시 천마에게 화산의 이름을 새기리다.”

       

       혈술의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화산파 부지 안을 뒤덮은 사기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기를 바깥으로 끌어냈다.

       

       간신히 삶을 부지하던 유저들이 하나 둘 눈을 감으며 사기가 점차 크기를 키워 간다.

       

       사기의 영향을 받는 건 장로라 해서 다르지 않았다.

       

       내기를 다루는 게 능숙하기에 유저보다 생기를 빼앗기는 속도가 느릴 뿐 그들도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허나 장로들 사이에서 동요는 없었다.

       

       그들은 정좌를 취한 채 한 치의 미동도 없이 죽음을 기다렸다.

       

       눈을 감은 장로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에 새긴 후 화산 문주도 정좌를 취했다.

       

       서서히 사기가 그의 몸 안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이전에도 여러 번 인신공양을 해보며 사기를 받아들여 본 화산 문주였으나 이번에는 그 정도가 달랐다.

       

       겨우 사람 몇 명의 생명을 공양 받는 것과 산 전체의 생명을 단번에 들이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집중하지 않으면 사기에 휘말려 자의식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 상황에서 화산문주가 떠올린 것은 천마가 쳐들어오던 날의 기억이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던 비명 소리와 너무도 진해 어느새 느껴지지 않게 되었던 피의 냄새.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수많은 시체들과 지키고자 했으나 지킬 수 없었던 장문인의 얼굴.

       

       그리고 그 날 동이 튼 후 모두 함께 다짐했던 복수의 약속.

       

       지금 화산문주에게 머무는 것은 단순히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가 머무르던 화산 전체의 생명이었다.

       

       그러니 의식을 잃어서는 안 됐다.

       

       의식을 잃는 순간 죽는 것은 그 혼자가 아니었으니.

       

       점차 그의 몸 안에 진한 사기가 스며들었다. 

       

       *

       

       산 전체의 생기를 모은 무인인가.

       

       그 힘을 온전히 다룰 수만 있다면 그 자는 어지간한 무인은 평생 보지도 못할 곳에 오르겠지.

       

       허나 그게 가능할까?

       

       수많은 생명을 집어 삼킨다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원한을 속에 품는 다는 것과 다르지 않을 터인데.

       

       그 일을 화산문주 따위가 성공 시킬 수 있을까.

       

       궁금하구나.

       

       본래는 혈교주의 계획을 망쳐 놓기 위해 사기를 흡수하는 화산문주를 칠까 생각도 해보았다만 그러지 말아야겠구나.

       

       화산문주가 성공한다면 성공하는 대로 강자를 상대하는 재미가 있을 터이고, 실패한다면 실패하는 대로 혈교주를 놀리는 보람이 있을 듯하니.

       

       혈술이 끝나는 것을 기다려볼까.

       

       시간이 지나 서서히 화산에 퍼져 있던 사기가 줄어 들어간다.

       

       느긋이 그를 구경하고 있던 중 메시지가 하나 날아들었다.

       

       박연이었다.

       

       <화령님. 화산에 있던 유저들이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도망치지 않고 있었나 보구나.”

       

       <예.>

       

       시간도 남기에 그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 해달라 부탁했다.

       

       박연이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기가 찼다.

       

       아무리 타락했다 하더라도 자신들이 받아들인 문파원을 직접 제물로 바쳤다니.

       

       그 소리는 애초부터 유저를 화산의 일원으로 보지 않았다는 소리겠지.

       

       – 진짜 쓰레기들이네.

       – 이딴 게 정파?

       – 게임 초기부터 화산파로 활동했는데 이렇게 통수 맞을 줄 몰랐다.

       – 남은 사람들 다 화산 재건에 몇 년씩 바친 사람들이었는데.

       

       박연의 말을 잇듯 내 방송을 보던 화산의 이들이 하나 둘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저들에게 이 곳이 게임이라 한들 지난 몇 년이란 세월을 바친 곳.

       

       어찌하면 화산이 더 잘 될 수 있을 지를 고민하던 이들에게 화산의 배신은 크나 큰 상처가 된 것 같았다.

       

       <복수를 해 주시겠습니까?>

       

       “어렵지 않은 일이구나.”

       

       어차피 화산 문주는 직접 뭉개버릴 셈이었다.

       

       그 위에 누군가의 원한을 싣는다 하여도 문제될 것은 없지.

       

       그리 잡담을 나누다보니 어느새 화산 전체에 퍼져 있던 사기가 그치고 화산파의 건물 한 가운데로 집약되었다.

       

       드디어 혈술이 끝을 맞이한 모양이구나.

       

       슬슬 움직여보도록 할까.

       

       “바루야. 여기서 잠시 기다려 주겠느냐?”

       “내가 방해가 될 거라 생각하느냐?”

       “그대가 휘말리지 않기를 바라서 하는 말이다.”

       

       화산의 문주는 이전에도 화경을 넘어섰던 무인이다.

       

       그런 놈이 산 전체의 생기를 공양받았으니 분명 높은 수준에 도달했겠지.

       

       문주가 그 힘을 제대로 다루건 다루지 못하건 간에 싸움이 격화될 것은 불 보듯이 뻔한 일.

       

       무슨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상황에 바루를 데려갈 수는 없다.

       

       나와 달리 바루는 게임에 속한 몸이지 않는가. 방금 전의 신령처럼 죽어 사라질 지도 모르는 데 어찌 그녀를 데려갈까.

       

       “머잖아 오마. 구경하고 있거라.”

       “…기왕이면 이기고 오거라.”

       “무얼. 그것은 당연한 일이지.”

       

       그리 답을 한 후에 입이 툭 튀어 나온 바루를 내버려 두고 허공을 밟았다.

       

       화산의 문 앞에 도착하니 정적이 나를 반겼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바닥에 들어선 시체들이 눈에 들었다.

       

       그를 보고 있자니 옛 기억이 떠오르는구나.

       

       과거 화산을 뭉갠 후 떠나갈 무렵의 풍경이 이랬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말이야.

       

       시체들로 이어진 길을 지나 앞으로 걸어가다 보니 화산파 가운데에 있는 건물에 도착했다. 

       

       집약된 사기가 이 안에서 느껴지고 있다.

       

       닫힌 건물의 문을 가벼이 박살내고 안으로 들어가자 무언가가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호오. 사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모양이야.

       

       그렇지 않았다면 기운을 이런 식으로 정돈할 수 없었을 터이니.

       

       내가 들어온 것을 눈치 챘을 터인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보면 자신이 있는 곳으로 찾아오라는 것일까.

       

       오냐. 초대에 응하마.

       

       기운이 가장 짙은 곳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그 곳에 화산의 문주가 있었다.

       

       그 자는 허공에 뜬 채로 정좌를 한 채 운기조식을 하는 중이었다.

       

       하단전에서 시작된 기운이 중단전을 타고 올라 상단전을 뚫고서 퍼지니 화산 문주의 머리 위로 꽃잎이 퍼진다.

       

       꽃잎의 색은 연한 보라색 빛을 띄고 있었는데 그 안에 담긴 기운이 얼마나 진했던지 한 번 피었던 꽃은 모습을 감추지 않고 그 자리에 계속해서 남아 있었다.

       

       덕분에 화산문주의 머리 위에는 수많은 꽃잎이 생겨났으니 그 풍경은 꼭 화산 문주라는 뿌리를 기점으로 한 그루의 매화나무가 피어난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디어 매화구경을 하게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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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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