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11

        

         ‘스탑 앤 샵 홀세일 25시! (Stop & Shop in Wholesale 25 O’clock!)’이라는 다소 이목 끌기가 과한, 과한 걸 넘어 노골적인 영역에 한 발 걸친 간판을 지나쳐 매장 안으로 들어선다.

         

         물론 저래 봬도 업계 최정상을 다투는 종합 할인점 브랜드이기에 관련된 퀘스트도 있고 그랬는데… 당장은 관련 없는 이야기다.

         

         뚜벅… 뚜벅.

         

         시선은 전방으로 고정. 고개를 돌리더라도 진열대와 안내판을 살피는 수준에서 그친다.

         수상자들의 구체적인 위치 같은 건 아직 듣지 못했으나, 미행이 의심된다고 한 만큼 최대한 등 뒤를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쪽은 제로가 어련히 잘 감시해주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 더 호들갑 떨거나 대응에 나서기 전에.

         우선은 어디서부터가 추측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파악하도록 하자.

         

         “…미행일 확률이 얼마나 돼? 구체적으로.”

         

         – 주거단지를 빠져나와 전화를 연결하신 시점부터 다수의 인기척이 감지되었습니다. 방금 마트 앞에서 서성이실 때, 따라서 멈춘 인물이 셋. 나머지도 제 인지 범위 바깥에서 다른 출입구를 확인하고 있을 수 있으니… 계산 결과 약 57% 확률로 아샤님께 용건이 있어서 따라온 것으로 판단됩니다. –

         

         입은 중얼거리는 수준에 머물러도 다리는 착실하게 움직여 생필품 코너로 몸을 이끈다.

         필요한 정보가 알아서 척척 주어지니 판단만 하면 되는데도, 거슬리는 문제라는 건 변함이 없는 게 우스웠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훨씬 낮네.”

         

         아닐 가능성이 대충 반 정도라면 나름 공평한 억측의 범주에 속하지 않을까… 하고 내뱉은 말이거늘.

         눈치 없음과 눈치 넘침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우리 드로이드 녀석은 별로 듣고 싶지는 않지만 중요한 추신을 덧붙였다.

         

         – 거기에 일부 시선이 얼굴 쪽에 집중되었던 걸 고려하면, 단순한 길거리 헌팅이 약 16%, 우발적 성범죄 충동이 6%, 마지막으로 고가의 로봇 부품을 노린 조직형 절도가 9%…. –  

         

         “……염병 좀 하지 마. 합치면 거의 백 퍼센트잖아 그럼!”

         

         각각의 도출 값은 반올림된 결과물인 만큼 단순히 합산하면 오차가 커진다~ 같은 속 터질 소리를 늘어놓는 제로의 정강이를 뒤꿈치로 가볍게 차 준 뒤.

         선반에 놓인 까끌까끌한 재생지 휴지를 집었다가… 이내 약간 비싼 대신 질감이 더 부드러운 물건으로 바꿔 집었다.

         

         기왕 내 지갑으로 사드리는 거라면 절약보다는 여성 분들 피부도 고려해드려야지. 암.

         …절대 내가 휴지를 뽑아 쓸 때마다 감촉에 열 받아서 개혁을 추구하는 건 아니고.

         

         “으응….”

         

         상품을 고민하는 척하며 매장 내의 폐쇄회로 카메라들을 곁눈질했다.

         

         물류 유통업계 경쟁사인 ‘보일스턴 클럽’이 자동화 시스템을 통한 쇼핑 간소화를 무기로 삼았다면, 여기는 아직도 선반에 물건을 잔뜩 쌓아 놓고 손님이 집어가는 옛날 방식을 고집한 프랜차이즈.

         

         그 덕분에 만약 일이 터진다면 내가 잠깐 빌려 쓸 만한 방범 장치들이 곳곳에 아주 많았다.

         

         가령… 출입구에 설치된 도난방지용 차단벽이라든가, 한 켠에 절전 상태로 인테리어처럼 녹아 들어 있는 경비 로봇이라던가.

         

         “…아.”

         

         그렇게 열심히 눈알을 굴리다가, 여태 내 판단만을 기다리고 있는 충직한 제로와 시선이 교차했다.

         제일 믿음직한 만능 카드가 있는데, 만약을 대비할지언정 너무 복잡하게 꼬아서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전혀 아니라고 본다.

         

         “그 인간들. 혹시 지금 마트 안까지 따라왔어?”

         

         – 레토르트 식품 코너에 하나, 나머지는 의약품 진열대 쪽으로 사라진 뒤 관측이 어렵습니다. –

         

         “여기에서 동향을 확실히 살펴보고. 나갈 때까지도 다가올 생각이 없으면 우리 쪽에서 먼저 끌어내자.”

         

         덤비면 부수고. 계속 따라오기만 한다면 붙들어서 꿀밤이라도 먹인다.

         심사숙고한 결론이라기엔 꽤 난폭하다 못해 조악한 작전을 내세웠음에도 내 호위는 불만하나 없이 수긍해주었다.

         

         하지만 이대로면 완전히 책임을 떠넘긴 거나 다름없으니… 얘한테도 활용할 무기를 쥐어 주도록 하자.

         

         지직…!!

         

         단시간 내에 데이터 줄기를 짜 올리느라 머리에 심장이 들어간 것처럼 욱신거렸지만 참아냈다.

         

         집들이 선물 마냥 수북한 휴지뭉치를 건네 주며, 자연스럽게 손가락끼리 접촉한다.

         

         뜨거운 피가 흐르는 피부에서 태어난 번뜩임이 달궈진 냉각수가 흐르는 강철로.

         두 인조 신경이 얽혀 들어갔다가,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서는 떨어진다.

         

         급조한 신호 덩어리이긴 해도. 일개 할인점과 상업구에 투하되기엔 더럽게 악질적인 스파이웨어(Spyware; 정보를 무단 수집해 공격자의 서버로 전송하는 종류의 바이러스)가 송수신기를 타고 근방 네트워크에 분사된다.

         

         구태여 안테나를 펼칠 필요는 없었다. 일시적으로 도움을 받는 수준이면 충분했으니까.

         더군다나 기록되는 영상 데이터의 송신처를 슬쩍 하나 끼워 넣는 행위라 발각될 공산도 적었고.

         

         감각적으로는… 도처에 깔린 회선 끄트머리를 들키지 않게 갈라서, 컴퓨터 후면 패널에 꽂아 넣는 느낌?

         

         일단 제로의 홀로그래픽 스캐너에서 나오는 빛줄기가 만화경처럼 갈라지기 시작한 걸 보면 별 탈 없이 성공한 모양이다.

         

         간단히 말해, 이 녀석의 제어 하에 존재하는 눈의 개수를 밑도 끝도 없이 늘려버렸다고 보면 되시겠다.

         

         전에도 몸 여러 개를 동시에 다루던 경험도 있으니. 겨우 카메라 수십대에 접속된 걸로 허덕일 약골이 아니라는 믿음에서 나온 폭거.

         

         근데, 잘 생각해보니 이거 면허도 없는 인간이 다짜고짜 불법 뇌수술을 집도한 꼴 아닌가?

         한 번도 부작용이 있었던 경우가 없어서 저지른 건데, 다음부터는 좀 상호협의를 거치고 설치 과정을 진행해야겠다.

         

         “……괜찮아?”

         

         – 일말의 문제도 없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그렇다면 좋아쓰.”

         

         한결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겨 진열대 사이를 누빈다.

         …실비아 씨가 부탁하셨던 게 주방 세제였나? 아니면 다용도 세정제인가? 에이씨, 몰라. 둘 다 사서 붙여버리면 되겠지.

         

         다다익선을 흥얼거리며, 바스락거리는 상품 포장지를 집어 든다.

         거기에 더해 귀가가 많이 늦어질 수도 있으니 누군가에게 바칠 간식거리까지 끼워 넣으면 완벽. 나만의 작은 뇌물 패키지가 완성되었다.

         

         지이잉….

         

         계산대 앞에 서자 순식간에 집어온 상품들이 등록된다.

         전신을 커버하는, 오작동을 최저까지 줄인 입체 스캐너의 존재는 21세기에도 꼭 상용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정보 문제는 어쩔 수 없으나 시간을 아껴주는 게 말이 안 될 정도로 편하다보니… 나도 근래는 없는 경우에 더 당황하게 되어버렸다.

         

         최종적으로 물건값에 더불어 드론 딜리버리 서비스까지 결제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포장기기의 벨트 위에 올려놓으니 심부름 문제는 이제 내 손을 떠나버렸다.

         

         그럼 어디….

         

         “…믿는다? 적당한 타이밍이 오면 알아서 잘 해줘야 해?”

         

         – 염려마시길. 아주 확실하게. 사살하겠습니다. –

         

         “얌마.”

         

         범죄와 일상 사이에 걸친 미행이라는 행위가 가진 특수성 때문에 평소보다 배로 날카로워진 바보를 진정시키면서 마트를 빠져나왔고.

         

         거기서부터 우리는…… 걸었다. 주구장창 계속 걸었다.

         

         

         “?! 야, 빨리…!!”

         “*&%#%…!”

         

         등 뒤로 당황한 외침의 편린이 간헐적으로 들려왔으나 무시로 일관.

         집 방향이 아닌, 전혀 엉뚱한 길로 들어선 다음 마트가 있는 건물을 낀 채로 빙빙 돈다.

         

         잰 걸음을 반복하며 이쪽과 마찬가지로 비정상적인 경로로 이동하거나 태도를 바꾼 인물들을 일일이 체크한다.

         

         나야 대략적으로 상황 보고만 받으면서 따랐고, 실질적인 경로 선정이나 무장 분석은 다 제로가 수행. …불공평한 업무분담이라고 하지 말아주기 바란다. 각자의 강점을 최대한 살리는 작업의 일환이니까!

         

         그나마 노골적인 이상 행동에도 쉽게 반응하는 걸로 판단하건대, 작정하고 덤벼든 범죄자들이라기보단 어쩔 수 없이 따라붙는… 그런 느낌이 강했다.

         

         뭐, 사실 어느 쪽이던 상관없었다. 명백히 떨쳐내려는 의도는 상대도 충분히 알아먹었을 테니, 이제는 서로에게 직접 캐물어보면 될 일이니까.

         

         타닥! 하고 뛰어, 냅다 가까운 골목으로 진입한다.

         

         곧장 따라붙는 인원은 셋.

         골목 반대편으로 돌아오는 사람들까지 합치면 더 수가 늘어나겠지만 가기까지 얌전히 기다려줄 생각도 없었다.

         

         “거기…! 잠깐만 멈춰…!!”

         “네에~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굉장히 다급한 소리가 터져 나오는 타이밍에 맞춰, 재빨리 뒤로 돌아 보란듯이 얼굴을 마주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예 항복한다는 의미를 담아 손을 쫙 펼친 채 어깨 높이까지 들어서 비무장 상태임을 잘 보이게 호소했다.

         

         남들보다 앞으로 나선 남자의 얼빠진 표정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갑자기 협조적으로 돌변한 내 태도에 당황한 나머지 두 사람도 차차 확인.

         

         목 위로는 마스크나 선글라스, 끽해야 귀걸이. 허리춤 뒤가 불룩한 걸 보면, 수도 시민에 걸맞은 호신 용품 정도는 분명 갖춘 것 같은데 뽑아 들려는 기색은 없었다.

         

         …아, 정정하겠다.

         적어도 맨 뒤에 여자는 어딘가 관찰하는 듯한 내 시선을 받고는 재빨리 이상한 점을 꼬집는데 성공했으니까. 뽑아 들기 직전이었다고 하는 게 맞겠지.

         

         “잠깐!! 정신차려! 그 요상한 드로이드가 안 보이잖…!”

         “늦었어.”

         

         쾅—!!

         

         골목 입구에 진 그늘, 미행자들이 멈춘 자리 바로 뒤에서 센서의 발광마저 널려 있던 쓰레기로 감추고 있던 포식자가 돌진을 개시했다.

         

         경악한 선글라스남의 팔이 본능적으로 뒷주머니로 향하고, 마스크남은… 과연 정면에서 권총을 뽑아 드는 나에 대한 경계를 배제해도 머리통이 무사할지 간 보는 것 같았다.

         

         임플란트를 백 개씩 처박아도, 일부 관절과 근육을 기계로 대체해도.

         육체가 견딜 수 있는 한계와 뇌가 자극에 반응하는데 필요한 최소시간은 극단적인 개선이 어렵다.

         

         정확히, 쉬운 방법으로는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에나마 같은 경우엔 세대(Generation)를 나눠 추적자 양성과 진화에 힘쓰는 거고 용병들은 약이나 고위험 임상 시술에 매달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정당당하게 맞붙어도 어려운 그저 그런 뒷골목 용역과 수상할 정도로 실전 경험이 풍부한 드로이드가. 선공까지 빼앗은 상태로 격돌한다면 얼마나 지리멸렬한 결과가 나올까?

         

         “크겍?!”

         

         ‘영구적인 손상’을 입히는 건 피하라는 내 지시를 따라, 강렬한 래리어트(Lariat; 목을 가격하는 레슬링 기술)를 먹여 웃기는 비명소리를 연주하는 미스터 선글라스를 단번에 침몰시킨 제로의 몸체가 맥동한다.

         

         세상 처량한 자세로 개구리처럼 바닥에 널브러지는 동료를 본 남자의 손이 반사적으로 파이팅 스탠스를 취하며 응전 태세를 갖춰갔지만….

         

         어허, 그거 아니야. 진지하게 싸우지 말고 편해집시다 우리.

         

         탕!!

         

         발치를 조준하고 순식간에 발포한다.

         맞출 생각도 가망도 없는 총격은 숫제 공포탄에 가까웠지만, 그 찢어지는 소음은 동일했으며 무엇보다 콘크리트 바닥이 깨지는 충격이 거짓이 아니었으니.

         

         적을 앞두고도 남자의 고개가 돌아간다.

         자신도 모르게 파편이 튄 자리로부터 발을 치우려 하다가 자세가 무너진 그는, 어느덧 바로 앞까지 다가온 합금 주먹 보디 블로우를 보고는 더럽게 억울하다는 것처럼 마지막 소감을 남겼다.

         

         “…이런 썅.”

         

         빡! 하고 주먹이 꽂힌다.

         충격으로 인해 새우등이 된 남자가 개구리 옆에 쓰러져 박제 전시회에 싱싱한 표본이 추가되었다.

         

         이러면 남은 건 깔끔하고 포멀한 차림새의 여성 분밖에 없는데.

         그녀는 고 잠깐 사이에 우리를 멈추고 싶다면 제시하고 제공해야 할 정보를 명확하게 깨달은 듯했다.

         

         “아이보리…! 블랙마켓 태그, 아이보이 해커님… 맞으시죠?! 제가 담당 안내인이니 부디 잠시만 진정하시고 대화를…!!”

         

         “…거 진작 말씀하시지.”

         

         불순한 의도가 없었다면 진작 명함이라도 들고 인사하면 되지, 괜히 기웃대다가 때묻은 복합 장갑도 닦고 빈 탄창에 삽탄하는 귀찮음까지 만들어준 자칭 안내인 씨에게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반면 그녀는 내 혼잣말을 듣고는 굉장히 억울해 했고. …뭐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으아아, 왜 때려요!

    날벼락 맞은 안내인 씨의 하소연은 다음에 이어집니다. (아마도)

    햐얌 님이 헉!! 하고 입을 틀어막으시면서 50코인을 또 후원해주셨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항상 재밌게 봐주셔서 다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