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12

    회색 사신 없는 회색 사신 격리실.

    트리니티로 떠나버린 사신이가 빨리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황금 사신이들이랑 장난을 치고 있었다.

    둠칫둠칫.

    격리실 내부에서 울리는 리드미컬한 비트에 맞춰서 황금 사신이가 현란한 춤사위를 선보였다.

    겨우 손바닥만 한 그 작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활기찬 에너지가 격리실을 가득 채웠다.

    춤을 신나게 추다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황금 사신이.

    그러면 나는 손가락을 뻗어서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줬다.

    헤실헤실 웃는 황금 사신이. 

    이렇게 열심히 춤을 췄는데도 황금 사신이에게 지친 기색이 전혀 없는 걸 보면 확실히 오브젝트다웠다.

    그리고 자리에 주저앉은 다른 황금 사신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자리에서 일어나 신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하하하, 귀여워.”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큰 소리로 웃었다.

    내 손짓에 따라서 춤을 추는 황금 사신이들은 말 잘 듣는 강아지 같은 귀여움이 있었다.

    세희 언니도 어느새 격리실로 와서 황금 사신이들과 놀고 있었다.

    세희 언니 너무 자주 쉬는 것 같은데, 우리 연구소 괜찮은 건가? 

    세희 언니는 조리모를 쓰고 바닥에 대자로 뻗어서 쉬고 있는 황금 사신이를 마구 간지럽혔다.

    소리 내지는 않지만, 황금 사신이는 꺄르륵 웃으면서 세희 언니의 손가락을 밀어내려고 했다.

    저거 재미있어 보이네.

    나도 다음에 간지럽혀 봐야지.

    고개를 돌려서 내 손바닥 위에 앉아 있는 황금 사신이를 쳐다보자, 내가 간지럽힐까 봐 살짝 긴장하는 표정을 지었다.

    와, 귀여워.

    손가락을 뻗어서 황금 사신이를 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황금 사신이를 간지럽히던 세희 언니는 어느새 핸드폰을 보고 있었는데, 어쩐지 조금 심각한 표정이었다.

    “방금 뉴스가 떴는데, 중국 난징시를 폐허로 만든 해파리가 사라졌대.”

    “그 핵 맞아도 멀쩡했던 해파리 말하는 거죠?”

    세희 언니의 말은 중국에 별 관심이 없던 나에게도 꽤 놀라운 이야기였다.

    어떻게 해서든 치워내려고 노력했던 오브젝트가 갑자기 사라지다니?

    설마 죽은 건 아닐 테고, 이동을 시작한 건가?

    “지금 갑자기 사라진 상황이라서 중국은 완전 난리가 났어. 안 그래도 인간을 잔뜩 잡아먹던 오브젝트인데, 다른 도시로 옮겨가면 대참사지.”

    “진짜로 다른 도시에 나타나게 되면 골치 아프겠네요.”

    “지금 한국으로 올 수도 있다고 난리야.”

    “에이, 설마요.”

    설마 굳이 바다를 건너서 우리나라로 오겠어? 

    ***

    트리니티 연구소의 베일에 싸인 연구실 안쪽, 깊숙한 곳에서 끔찍한 몰골을 한 남자가 누워있었다.

    제3 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었던 남자는 이제 정체를 알 수 없는 촉수들에 가려져 거의 알아보기 힘든 몰골이었다.

    이 오브젝트에서 유래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꺼림칙한 촉수들은 그의 몸 전체에 뻗어 있었고, 소장의 피부와 불안정하게 융합되어 있었다.

    “소장님. 너무 무리하셨습니다.”

    소장의 옆에는 새하얀 실험복을 입은 한 여성이 서 있는데, 그녀의 얼굴에는 깊은 우려의 표정이 새겨져 있었다.

    경외와 걱정만이 가득 찬 그녀의 눈동자가 소장의 형상을 빠른 속도로 훑어보았다.

    확인을 마친 그녀의 표정은 더욱더 심각한 표정으로 바뀌며, 소장의 상세가 심상치 않음을 알려주었다.

    “이렇게 무리하실 필요는 없었을 텐데요.”

    회복실 문 앞에서 쓰러져 있던 소장을 발견한 여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할만한 말이었다.

    만약 그녀가 소장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촉수가 소장의 몸을 완전히 찢어발겼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소장의 창백한 피부 아래에선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불길한 촉수 같은 존재가 소장의 살갗 아래에서 흘러 다니며 그 피부를 기괴하게 일그러트렸다.

    촉수들이 꿈틀거릴 때마다 소장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사실 여자가 더욱 걱정스럽게 생각하는 쪽은 소장의 피부가 아니었다.

    소장의 침대 근처에 찍힌 정체불명의 발자국.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촉수 무늬.

    그것이 문제였다.

    ‘진화’나 ‘융합’.

    그 어느 쪽에서도 저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기록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강렬한 형광등의 빛으로 가득 찬 방은 더욱 짙은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고, 그 그림자 속에서 꿈틀거리는 불길한 무늬를 더욱 강조해 주고 있었다.

    소장이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여성의 말에 대답했다.

    “아니, 이정도 준비는 해야 했다. 진화액이 모든 오브젝트에게 치명적이긴 해도, 전면에 나서서 제대로 싸우기로 마음먹은 이상 이정도 준비는 해야지.”

    “그래도 중국 한 지역을 괴멸시킨 ‘그 해파리’를 집어삼키시다니요. 회색 사신 따위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평가되는 오브젝트 아닌가요?”

    약간 상기된 표정의 여성이 약간 감정적으로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물론 해파리가 더 위험하지. 그래도 조만간 흡수할 예정이었으니, 조금 일찍 흡수했을 뿐이야.”

    소장은 고통으로 불편한 가운데도 안심하라는 듯이 차분한 기색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어차피 안정화는 금방 끝난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소장은 여자의 말을 자르면서 불편한 대화의 주제를 바꿔버렸다.

    고통으로 가득 찬 목소리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의 언급을 금지하는 듯한 권위를 내포하고 있었다.

    “회색 사신은 언제쯤 도착하지?”

    “아마 오늘 오전 중으로 도착할 겁니다.”

    실험실 가운을 입은 여자도 태도를 바꿔서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체념한 것처럼 소장은 두 눈을 감고 지시를 내렸다.

    “나는 당장 싸울 수는 없다. 내가 융합을 마칠 때까지 시간을 끌거나, 너희들끼리 처리하거나 알아서 해라. 어차피 너희들만으로도 충분할 테니 말이다.”

    “네, 준비는 완벽합니다. 소장님이 깨어나시면 바로 결과를 보고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여성은 망설임 없이 대답하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넘쳐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럼, 나가보도록.”

    실험실 가운을 입은 여자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더니, 밖으로 나갔다.

    여자는 약간 긴장되면서, 공을 세울 기회가 생긴 것을 기대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

    트리니티 이송 차량에서 창밖을 내다보니, 어느새 트리니티 연구소에 가까워졌다.

    트리니티 연구소의 영향력을 알려주는 것처럼 건물들의 높이가 점점 높아져 가고, 거리에 보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하지만 분위기가 이상했다.

    활기차게 물건을 나르는 배달부.

    부지런히 천막을 펼치는 상점 주인. 

    급히 길을 나서느라 분주한 직장인.

    새로운 하루를 준비하는 분주함으로 거리에는 활기가 가득해 보였다.

    언뜻 보기에는 생동감 넘치는 전형적인 도시 풍경과 도시 특유의 소란스러움이 가득해 보였지만, 이질적이었다.

    나에게는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모두, 전부 가짜 사람들이었다.

    인간인 척하는 오브젝트들.

    이제까지 인간을 흉내 내는 오브젝트는 많았지만, 이번에는 그것들과는 달리 끔찍한 악취가 났다.

    이 가짜 인간들의 내부에는 인간을 모독하는 검은 점액이 흐르고 있었다.

    트리니티 연구소에 다가갈수록 점점 악취는 짙어져만 갔고, 그 악취는 마치 쓰레기 처리장의 참을 수 없는 악취를 연상시킬 정도로 강력했다.

    검은 점액이 흐르는 오브젝트들의 압도적인 존재감 때문인지, 내 감각은 평소보다 더욱 멀리 뻗어나갔다.

    저 멀리, 어딘가에서 희미하게 진짜 인간의 기척이 느껴졌다.

    사실 감지하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지만, 이 근처에 사람이 너무 없어서 느낄 수 있었다.

    공포, 절망.

    이런 부정적 감정들이 저 멀리 있는 인간에게서 뿜어져 나왔고, 그것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오브젝트의 기척과 극심한 대비를 이뤘다.

    인간들이 꽤 위급한 상황으로 보여서, 푸른 사신들을 미니 사신 정원에서 불러냈다.

    ‘가서 인간들을 지켜줘.’

    푸른 사신은 다급한 기색으로 안개처럼 흩어지더니, 인간들이 있는 쪽으로 날아갔다.

    물리 면역도 없는 약한 막내들이라서 조금 걱정이 되긴 하지만, 이런 임무에는 푸른 사신들이 조금 더 낫겠지.

    푸른 사신을 떠나보내고 나니, 커다란 정문이 눈앞에 보였다.

    <트리니티 제3 연구소.> 

    검은 점액의 원흉, 트리니티 연구소에 도착했다.

    ***

    트리니티 연구소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황량한 분위기를 풍기는 격리실로 옮겨졌다.

    방 중앙의 눈에 띄게 배치된 커다란 테이블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는 삭막한 격리실.

    테이블 위로 시선을 옮기면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푸딩, 쿠키, 마시멜로, 케이크 등등.

    평소라면 좋아했을 상황이었지만,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음식에서 참을 수 없는 악취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음식에 검은 점액을 첨가한 수준이 아니라, 검은 점액을 음식으로 위장시킨 수준의 악취였다.

    사실 음식으로 위장된 검은 점액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나를 향한 지독한 악의. 

    격리실에 위치한 매직미러 너머에서 지독한 악의가 느껴졌다.

    이제까지 봤던 검은 점액 괴물들은 우스울 정도로 농축된 악취를 풍겼다.

    똑똑.

    매직미러 위로 노크를 했다.

    그러자 매직미러 옆에 위치한 문이 열리더니, 실험 가운을 입은 여자가 나타났다.

    굉장히 사람을 깔보는 듯한 표정을 한 여자였다.

    “오브젝트 주제에 음식이 이상한 걸 눈치채다니, 꽤 똑똑한 아이구나.”

    점액 괴물치고는 꽤 강하긴 했다.

    대충 1.5 아귀 아종 정도?

    그래도 저 정도 자신감을 가질 정도는 아니지 않나?

    다음화 보기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