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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2

    <112 – 등굣길>

     

    “주거랏─!”

     

    눈을 번쩍 뜨며 소리를 질렀다.

    머지 이게?

    눈을 꿈뻑꿈뻑 뜨고 있자니 깨달았다.

    잠꼬대를 했구나!

    머쓱한 기분에 괜히 스트레칭을 하려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주먹을 회수하고 기지개를 켜는데 엄청나게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책상 한 편에 올려놓은 응애 만드라고라가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다.

     

    “아앗,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부끄럽단 말야!”

    “응애.”

     

    만드라고라의 시선이 벽으로 향했다.

    뭘 보나 했는데 주먹 모양으로 파인 벽을 보고 있었구나.

     

    똑똑똑똑똑

     

    벽 속에 사는 <대답하는 문>이 미친 듯이 노크를 하며 불만을 피력했다.

     

    “미안…”

     

    무슨 꿈을 꿨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이것저것 뚜까 패며 즐겁게 날뛰었던 기분이 어렴풋이 든다.

    은근히 스트레스가 쌓였던 걸까?

     

    “나중에 청소부 불러서 수리해달라고 할게. 진짜루!”

     

    거듭 사과를 하고 나서야 벽에서 울리던 노크소리가 그쳤다.

    정말이지? 하고 의심하는 기색 같아서 최대한 빨리 부르기로 결심했다.

     

    끼익. 쿵.

     

    복도를 나서니 평소라면 정문 밖에서 새벽공기를 마시며 운동 준비를 할 돌핀팬츠 언니들이 멀뚱멀뚱 입구를 쳐다보고 있었다.

     

    “안녕, 오크노디.”

    “오크노디, 이제 일어났어?”

    “밖에 봐봐. 완전 쩐다?”

     

    주황머리 언니의 말대로 정문 밖은 물바다가 되었다.

    정문 높이보다 더 높이 찬 물 때문에 물살 속을 떠다니는 물고기들까지 보인다.

    집중호우가 그치질 않고 계속 쏟아지니 끝내 아카데미 일부가 수몰된 것이다.

     

    “조깅은 글렀지?”

    “에바지.”

    “지금 나가면 자이언트킹크랩한테 맛나게 먹힐걸?”

     

    기사학부 지망생 언니들이 김샜다는 얼굴로 방으로 돌아가거나 맨몸운동을 시작했다.

     

    “오크노디도 할래?”

     

    팔다리를 쭉쭉 뻗으며 스트레칭을 하는 언니들 사이로 주황머리 언니가 물었다.

     

    “헤헤. 조와용!”

    “그럼 일루 와봐.”

     

    팡팡 하고 정문 옆 대기의자를 치는 손에 잽싸게 의자 위에 앉았더니 언니의 고운 손이 다리를 쭉 뻗는 동작을 취하게 도와주었다.

     

    “이제 그대로 허리를 굽혀서 손끝으로 발끝을 붙잡으면 돼! 유연성이 부족하면 그냥 발끝을 가볍게 터치만 해도 되고, 아니면…”

    “이렇게요?”

    “우와! 오크노디, 너 유연성이 정말 좋구나?”

     

    근육떡대였을 때에는 덩치가 너무 커서 유연성은 진즉에 포기했지만 지금은 응애노디가 된 몸.

    모든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며 뚝배기를 깨는 맷집마검사 대신 모든 공격을 흘리고 회피하며 뚝배기를 깨는 회피마검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유연성으로 가능한 동작과 신체가동범위를 넓히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래도 아직 좀 더 내려갈 수 있겠는데? 등 눌러줄게. 아프면 말해!”

     

    등 뒤로 다가와 꾸욱 하고 몸을 누르는 주황머리 언니에게서 좋은 향기가 났다.

    향수나 비누냄새하고는 사뭇 다른 여체 특유의 부드러운 향기에 웃음꽃이 절로 핀다.

    사내자식들만 모인 체력단련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호사에 왜 진즉 여캐로 플레이를 하지 않았는지 후회까지 들었다.

     

    ‘직업만족도 100%!’

     

    잠꼬대로 사고를 쳐서 다운되었던 기운이 만땅으로 충전되었다.

     

    “오크노디는 장하네. 기사학부 지망생도 아닌데 매일 새벽에 빠짐없이 운동하러 나오고. 우리학부로 데려가고 싶다니깐?”

    “동감!”

    “집에 두고 온 여동생도 이렇게 씩씩하고 말 잘 들으면 좋을 텐데.”

     

    하하호호 웃으면서 머리를 어루만지고 볼을 잡아당기고 굉장한 존재감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가슴으로 안아주는 통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에잇, 기분이다! 언니들 따라와요. 제가 좋은 거 하나 가르쳐드릴게요!”

     

    언니들은 쿡쿡 웃으며 오크노디가 무슨 재롱이라도 펼치나보다, 어제 주운 비장의 예쁜 돌멩이라도 보여주려는 거 아닐까? 같은 소리를 하며 따라왔다.

    물론 진짜로 재롱잔치를 펼치거나 돌멩이를 보여주려고 데려온 건 아니었다.

     

    “여기 3층 창문에는 커튼이 없는데 커튼 줄이 있는 거 보이시죠?”

    “응. 엄청 이상하지?”

    “맞아. 3층 애들이 커튼 좀 똑바로 설치해달라고 했는데 사감선생님은 안 된다고만 하시더라.”

    “근데 여긴 하급반 숙박구역인데 상급반인 오크노디가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언니들 여름에 눈부시지 말라고 미리 알려주러 왔어? 어쩜 이리 귀여울 수가.”

    “아니거든요! 이 줄의 올바른 사용법을 알려드리려고 온 거예요.”

     

    이 줄, 언뜻 보면 커튼 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재난상황에서 사용하는 비상용 구명보트 호출기다.

     

    “이 줄은 사용조건이 충족되면 당겨지는데, 모종의 이유로 아카데미 1층이 물에 전부 잠기고 줄에 마력을 불어넣으면 탑승수단이 나와요. 이렇게.”

     

    줄을 슥 잡아당기니 구명보트가 뿅 하고 튀어나왔다.

    마법으로 생성된 구명보트 위로 0/12 표시가 떠올랐는데 저건 12인승이라는 표시다.

     

    “우와! 갑자기 신기한 배가 생겼어.”

    “강의는 어떻게 들으러 가나 걱정됐는데 이거라면 강의실까지 갈 수 있겠어!”

    “오크노디 굉장해~!”

     

    사방에서 쏟아지는 칭찬세례에 또 한 번 웃음꽃이 피었다.

     

    “근데 너무 같은 학부 지망생들만 타면 강의실까지 도착하기가 힘들 거예요!”

    “왜애~?”

    “그냥 언니들끼리 가면 안돼~? 오크노디도 같이 타자. 응? 응?”

    “아하핫! 알려드릴 테니까 간지럽히지 마요. 직업군이 같으면 다른 위험에 대처할 수가 없잖아요.”

    “다른 위험?”

    “저런 거요.”

     

    갑자기 나타난 구명보트에 놀라 물러났던 몬스터들이 자존심이 많이 상했는지 우르르 몰려왔다.

    커다란 잉어가 몸통박치기로 보트를 때리고, 튼튼한 집게발을 내세워 자이언트킹크랩이 보트에 구멍을 뚫고 위아래로 마구 흔든다.

    거기에 쐐기를 박듯이 근처 나무에 착지해있던 비행형 몬스터 한 마리가 바람 빠진 배를 사냥감으로 착각했는지 발로 덥썩 붙잡아 날아갔다.

     

    다각다각

     

    허공에 같이 딸려간 자이언트킹크랩이 당황해서 집게발을 흔들어댔다.

     

    “앗, 떨어진다.”

     

    보트를 놓친 자이언트 킹크랩이 쿵 소리와 함께 물기둥을 만들며 물바다에 빠지더니 부글부글 물거품을 만들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허공을 향해 찰칵찰칵 집게발을 들이미는 것이 비행몬스터한테 화가 많이 나 보였다.

     

    “창수들이 잉어들의 몸통박치기를 막고, 방패수들이 킹크랩의 집게발을 막고, 궁수나 마법사가 비행몬스터도 잡고 지원도 하고 그래야죠.”

    “…무슨 등굣길이 던전 가는 것처럼 이리 빡세?”

    “교장님 진짜 싫어.”

    “이 아카데미, 다닐 자신이 사라지네…”

    “그래도 오크노디가 귀여우니까 봐준다!”

    “동감!”

     

    씩씩한 언니들은 내 머리를 어루만지며 기운을 되찾고, 나 또한 언니들의 손길에 기운이 충전됐다.

    이런 게 윈윈이지!

     

     

    * *

     

     

    빨간이빨버섯 경영자협회 회원 <페이퍼콤포니>는 20인승 배를 이끌고 1학년 기숙사 근처로 나왔다.

     

    “다들 준비는 됐지?”

    “공석 열두 자리, 제대로 남겨뒀다고.”

    “양식장을 건든 놈들을 제외한 나머지만 등교를 돕고 따돌림을 당하게 만드는 거야. 얼음마법을 쓰는 녀석하고 철판을 가진 놈은 절대로 태우지 마.”

     

    2학년의 1학년 괴롭히기, 그 첫 번째.

    등굣길 차별하기 전략!

     

    “일반 1학년생들에게는 호감을 쌓으면서 놈들을 괴롭히는 거야. 이러면 이 뒤로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자업자득이라는 여론이 생기고 1학년들도 뭔가 나쁜 짓을 했으니까 선배들한테 혼난다고 생각하겠지.”

     

    범죄자문가 벨로카시오는 민심을 사로잡으면서 목표를 괴롭히는 방법을 제시했다.

    협회원들이 생각하기에도 꽤 실현가능성이 높은 제안이었기에 아침부터 1학년생들을 나르려고 이렇게 배를 가지고 나왔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창문 앞에 서있는 1학년생들 수가 좀 적지 않아?”

    “그러게. 얘들 등교도 포기하고 전부 방에 들어가서 잠이라도 자는 거 아니야?”

    “비 좀 내린다고 휴강할 정도로 만만한 아카데미가 아닌데. 981기 애들도 참 순진하네.”

     

    멍청한 후배들의 잠을 깨워줘야겠다고 부지런히 노를 저으며 다가온 2학년생들.

    돌아갈 때는 노 젓는 일은 얘들한테 맡겨야겠다고 단단히 벼르며 접근했건만, 커튼이 처지지 않은 빈방에는 학생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데?”

    “뭐지?”

    “앗, 저기 사감선생님이다.”

     

    2학년생 한 명이 우울한 얼굴로 지나가던 사감선생님의 창문을 노를 들어 노크했다.

     

    “2학년이 1학년 기숙사에는 무슨 일인가요?”

    “후배들을 태워주러 왔는데 보이지가 않네요. 다들 어디 갔나요?”

     

    사감선생님이 안됐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벌써 등교했어요.”

    “예?! 이런 물살 속에서요?”

    “애들이 물에 떠내려가게 두다니, 너무 잔인하신 거 아니에요 사감쌤?”

    “잔인한 건 손버릇 나쁜 1학년들이죠.”

     

    사감선생님은 싸늘하게 대답했다.

     

    “제가 소중히 아끼던 애완돌멩이를 훔치다니. 1년 동안 소중히 기르던 아이였는데. 아아, 프랑소와르…”

     

    2학년생들은 몹시 당황했다.

     

    “프랑소와르? 지금 돌멩이에 이름 붙인 거야?”

    “뭐 어때. 돌멩이 정도면 남한테 폐도 끼치지 않고 온순한 펫이지. 선배들 중에 엘프 한 명은 무슨 백살 먹은 떡갈나무를 펫으로 삼았대.”

    “그럼 나무도 별 문제 없잖아.”

    “거기에 매미가 살아도?”

    “…망할 나무쟁이놈들. 우리 기숙사 앞에 보이기만 해봐. 바로 불 질러버릴 거야.”

    “그만.”

     

    큰 맘 먹고 20인승 배까지 꺼냈던 페이퍼콤포니는 허탕쳤다는 생각에 힘이 빠졌다.

     

    “태울 학생이 없으면 이만 돌아가야지. 우리도 등교할 시간이잖아.”

    “그러네.”

    “에휴. 이게 뭔 개고생이람.”

     

    주섬주섬 노를 들고 힘없이 자리에 앉으려는 그때, 펑 소리와 함께 보트 한 대가 창가에 나타났다.

     

    “저게 뭐야?”

    “나 아카데미 다니면서 저런 거 처음 봐!”

    “구명보트를 만드는 마법도 있었어?”

    “우리도 작년 여름에 집중호우 겪었잖아!”

    “그땐 저런 보트 없었는데?”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하는 2학년생들.

    그들의 불만스러운 시선에 사감선생님이 말했다.

     

    “보트 달라고 말한 적 없잖니.”

    “…….”

    “1학년들도 물어본 적 없어서 안 알려주려고 했는데, 쓸데없이 눈치만 좋아가지고는.”

     

    궁시렁궁시렁 불만을 드러내는 사감선생님.

    그러나 사감선생님의 불만보다는 자신들이 목숨 걸고 등교할 때에도 저런 편리한 수단이 있음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2학년들은 배신감을 느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이 악마! 4학년! 졸업과제 같으니!”

     

    2학년들이 사감선생님과 한참 싸우는 그때, 밧줄을 타고 창문에서 내려온 학생들이 보트에 착지했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두고 갈 뻔 했잖아요.”

    “미안. 과제준비 하느라 늦었어.”

    “노질은 맡겨줘, 오크노디.”

    “헤에. 재밌는 장난감을 구했네.”

     

    등교를 늦추고 기다리던 오크노디가 이사벨이나 헤스티아, 즈앙처럼 친한 학생들을 태우고 출발했다.

     

    “앗, 잡아! 어떻게 된 일인지 저놈들을 붙잡고 물어보자고. 대답하지 않으면 보트를 침몰시켜서라도-”

     

    오크노디의 보트를 가리키며 말하던 페이퍼컴퍼니가 꿈뻑꿈뻑 눈을 움직였다.

    자그마한 아이와 커다란 여전사가 노질을 시작하더니 보트가 엄청난 속도로 물기둥을 일으키며 파바밧 시야 저 너머로 사라졌다.

     

    “무슨 힘이 저렇게 세?”

    “우리보다 노질 속도가 빠른데?”

     

    남겨진 2학년생들은 망연자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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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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