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12

    그의 기억은 그다지 명확하지 않았다.

    시간관념이 이상하기도 했고, 장면이 뒤죽박죽이기도 했다.

    심장에 존재하는 드래곤하트, 그 강대한 마력으로 심장에 깊숙히 파고들었던 불안정한 서클을 모조리 분해하여 재구축해버렸지 않았던가.

    그 작업으로 폐인이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루크의 섬세한 기술에 대한 찬사를 보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의 기억은 지금도 서서히 흐릿해져만 가고 있다.

    머릿속의 빈 공간을 채울 장면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일까?

    기억들이 마치 꿈속의 장면처럼 무의미한 것 같았다.

    정말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그냥 꿈을 꿨는데 그것을 경험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흐릿해져가는 기억만큼이나 흐릿한 눈빛.

    완벽하게 정신이 딴 곳에 가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그런 남자의 눈빛을 되돌린것은 기억속의 목소리였다.

    ‘날 고칠 수 있다고 단언했지. 맞나?’

    ‘물론이지.’

    루크 이루시, 그래. 그런 이름이었지.

    물론, 아직 잊지 않았다.

    “아, 아아. 그래…….”

    그는 머리를 짚으며 루크를 떠올려본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 생김새는 설령 단 1초만 보더라도 머릿속에 각인될 정도로 특이한 모습이었으니까.

    백금발, 청록색과 금빛으로 각각 빛나는 눈동자와 뿔과 동시에 동물귀라.

    그리하니 다시 떠오르는 기억들, 장면들.

    소녀와 처음 만났고, 간단히 제압당했으며, 일방적으로 연락처를 받게 되었다.

    그 다음, 뒷조사를 했고, 그후 배신당했다.

    마침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연락을 보냈고, 그녀가 나를 치료했다. 좋아, 여기까지는 아직 기억하는군.

    그 다음의 기억은 그래, 예르나라는 엘프 숲지기다.

    그녀는 왠지 ‘프로이튼’이라는 말에 반응했었지.

    그리고, 그녀를 나 대신 프로이튼에 엮기 위해서…….

    그녀를 ‘프로이튼’의 시설로 보냈던 것까지.

    “하, 제기랄.”

    그는 자조하듯 욕을 토했다.

    어떻게 목숨을 건졌나 싶었더니, 이제는 치매를 걱정해야하나.

    그는 원망스런 눈빛을 자신의 가슴께로 향했다.

    —-

    디아나가 정신없이 마물을 구경하고, 루크가 그 옆에서 자신이 지닌 지식을 뽐내는 장면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

    “뭐? 금방 또 출장을 간다고?”

    “응, 이제 단서를 잡았으니까, 조금 더 자세히 해보려고.”

    예르나의 설명은 다이튼도 납득할 수 있었다.

    프로이튼이라는 가문이, 루크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

    드래곤하트라는게 그렇게 흔하지는 않으니까, 분명 뭔가 연관이 있겠지라고 생각은 들지만.

    그렇지만 아직 돌아온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

    오자마자 급하게 동물원을 가자고 한 것은, 다시 또 출장을 가서 언제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던 건가.

    힘이 쫙 빠지는 느낌으로 그는 벤치에 기댔다.

    그의 초점은 멍하니 정면을 응시하다가 문득 그녀를 바라본다.

    “……이번엔 또 얼마나 걸리는데?”

    결국,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까.

    그의 질문엔 그녀가 먼저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모르겠어.”

    “…….”

    다이튼은 되도록 표정을 드러내보이려 하지 않았지만, 눈빛에 실망감이 담기는 걸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겨우 몇주정도 떨어져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벅찼으니까.

    일을 나가서도 별로 의욕이 안 나고, 운동도 나가질 않았다. 뭘 하더라도 결국 공허하게 느껴졌다.

    그가 일을 열심히 하는 이유도 예르나와 같은 수준에서 근무를 하기 위함이었고, 그가 운동을 하던 이유도 그녀가 건강하고 남성적인 몸을 좋다고 말해줬기 때문이었고, 엘프용 요리를 열심히 공부한 이유도 평소 식사를 대충 챙겨먹는 그녀에게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내어주기 위해서였다.

    루크의 앞에서야 되도록 드러내지 않으려 애를 쓰기는 했지만, 고작 그정도였다.

    다이튼은 그만큼 예르나를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로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보내줄 수 있을리가 없잖은가.

    ‘그러다 예르나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나는?’

    잠깐 눈에 안 보였을때조차 그런 느낌이었는데.

    그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반드시 네가 해야만 하는 일은 아니잖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도 되잖아.”

    “아니, 이건 내가 해야될 일이야. 알잖아, 다른 사람들은 믿을 수 없어.”

    예르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녀가 혼자서 한 가문을 완전히 헤집어 놓았을 때 그녀에게 가해졌던 보복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그 덕분에 현재는 이름까지 바꿔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

    ‘5클래스 이상의 살상마법’까지 허용되었던 그녀의 권한은 이제 초기화되었지만, 아직 그녀에겐 충분한 지식이 있었다.

    어떻게 상대에게서 정보를 뽑아내고, 어떻게 그 단서로 사건을 더욱 깊숙히 파고들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 그리고 또 어떻게 사람을 효과적으로 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지식.

    이 시대에서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말 그대로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미 충분히 더럽혀지고 거칠어진 손, 그렇다면 조금 더 더러워진다고 해도 티도 나지 않겠지.

    예르나는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귀족들’의 보복을 또 다른 누군가가 짊어지도록 할 수가 없었으니까.

    절대 공론화되지 않을거고, 수사를 해도 금방 흐지부지해지겠지.

    그러니 자신 말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예르나는 시선을 올려 저 멀리서 디아나와 떠드는 모습을 본다.

    “봐, 언니! 그리폰이야! 멋있다!”

    “음, 유니콘은 무서워 했으면서 그리폰은 무섭지 않느냐?”

    “응! 독수리 같아서 귀여워!”

    “아하, 디아나는 조류가 취향이었던 모양이구나.”

    그렇게 둘이 키득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예르나가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짓고 있으니, 다이튼이 그런 그녀의 입꼬리를 한번 보고, 루크를 향해 시선을 돌리면서 입을 열었다.

    “루크도 네가 없을 때, 많이 쓸쓸해 했어.”

    “……그랬어?”

    루크가 쓸쓸해한다니, 솔직히 그걸 걱정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정말로 쓸쓸해 했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살짝 죄책감도 든다, 보호자를 자처했으면서, 이건 지금 제대로 하는걸까.

    루크를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현재를 내팽개치고서 여전히 그녀를 위한다 말할 수 있는걸까.

    “……루크가 어떻게 쓸쓸해 했는데?”

    예르나의 약간 젖어있는 목소리에서, 조금의 희망을 본 다이튼은 있었던 일들을 토해냈다.

    “나한테는 괜찮다고 하기는 했지만, 매일같이 표정이 좋지 않았어. 한숨도 많이 쉬었고.”

    “그래……?”

    “아마, 마법경시대회에서 1등을 했던걸 자랑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상금 100만길을 어떻게 쓸거냐고 물었을때, 너한테 줄 거라고 말했었고.”

    “루크가 1등을 했어? 왜 나한텐 말을 안했지? 전화로 했으면 분명 칭찬해줬을텐데.”

    예르나는 깜짝 놀랐단 표정으로 다이튼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시선을 받으며, 디아나와 루크를 바라보았다.

    아이답게, 굉장히 즐거워보이는 모습이다.

    ‘속이 아무리 깊어도, 결국 아이는 아이인거지.’

    그동안 루크가 보여준 어른스러운 모습은 티끌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순수한 미소.

    그래, 아이는 아무리 어른인 척 해도 아직은 아이인 것이다.

    “직접 말하고 싶었겠지.”

    다이튼의 말을 들은 예르나는 시선을 떨궜다.

    “그랬구나…….”

    어쩐지, 가슴이 무거워지는 기분이어서.

    책임감이었다.

    그때, 다이튼은 과장된 몸짓으로 벤치에서 일어나, 연극톤으로 말했다.

    “아,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네. 시원한거라도 먹어야겠어. 빙수 괜찮아?”

    다이튼의 어색한 몸짓에, 예르나는 풋, 하고 웃어버리고 말았다.

    “아, 먹을래. 고마워.”

    ‘역시, 놀러 오니까 기분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아.’

    그래,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건 어쩌면 나뿐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루크의 옆에 있어줄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

    반면, 루크는 예르나와 다이튼 쪽을 바라보며 걱정스런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이야기는 잘 되고 있는건가?’

    루크가 이렇게 디아나와 놀아주고 있는 것은, 사실은 일종의 배려였다.

    다이튼이 예르나와 단 둘이, 조금이라도 더 붙어있을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

    그동안 다이튼의 연애사업 도와주기에 소홀했다고 판단했고, 매번 좋은 식사를 대접받은 은혜도 갚을 겸 해서 생각한 꾀였다.

    그러나, 지금 루크가 조바심을 내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아니었다.

    ‘언제쯤 내 얘기도 할 수 있을런지.’

    마법경시대회 1등? 고작 그런걸 얘기할 것이 아니다.

    드랙상과 라스상을 수상하거나 거절할 경우, 예르나의 동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 시대의 10살에겐 법적인 권리가 부족했으니까.

    미성년자들은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판단에 보호자가 법정대리인을 맡는다.

    그러니 라스상과 드랙상도 물론, 보호자만이 거절하거나 동의할 수 있었다.

    이게 전부 자신이 너무 어린 몸이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조금 더 자란 몸이었으면 안되었나?’

    보호자의 동의가 없이는 상을 거절하지도 못 한다니.

    사실은 이게 전례가 없는 일이라 마탑도 꽤 당황스러워하는 중인 것이다.

    루크가 예르나와 상담이 필요한 일이라는 게 이것이다.

    어쩌다보니 라스상을 받게 되었는데, 되도록이면 상을 거절하고 싶다는 얘기.

    그냥 받는다고 해도, 일단 그녀에겐 말을 해야했으니까.

    아무래도 이런 깊은 이야기를 전화나 문자로 할 수 있을리 없다.

    그리고 다이튼에게도 이걸 굳이 말할 리도 없다.

    말해봤자 그는 별 고민도 안 할테고, 법적인 보호자도 아니니까 굳이 밝힐 필요도 없다.

    그가 비밀을 지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아니지만, 굳이 비밀을 아는 사람을 늘릴 필요도 없잖은가.

    예르나에게 밝히는 이유도 어디까지나, 그녀가 법정대리인이기 때문이지, 그게 아니라면 일부러 이야기하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휴우…….”

    “언니, 왜 자꾸 한숨쉬어? 힘들어?”

    “으음. 아무것도 아니란다.”

    디아나의 걱정스런 물음에 루크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젓는 순간, 다이튼이 앉아있던 쪽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야! 디아나! 루크! 이리와봐!!”

    다이튼이 입 주변에 손을 대고 외치는 모습이다.

    루크는 디아나의 손을 붙잡고 다이튼에게 다가왔다.

    “왜 불렀느냐? 둘이 얘기는 잘 됐나?”

    “뭐, 대충은? 아무튼, 그런건됐고. 아이스크림 먹으러가자. 어때?”

    다이튼은 동물원 한 구석에 차려진 노점을 가리켰다.

    “아이스크림! 나, 좋아!”

    루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스크림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뭐, 예르나는 싫어할지도. 그녀는 너무 달고 끈적한건 좋아하지 않으니까.

    루크와 디아나가 각각 민트초코맛과 바닐라맛을 받았고, 디아나는 이번에도 루크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한입 먹고싶느냐?”

    “아니! 전혀!”

    “흠…….”

    “하하! 왜 그래, 민트초코도 맛있다니까? 저거 봐.”

    “으으, 싫어. 싫다는데 왜.”

    루크는 디아나의 시선을 피했다.

    왜지, 어째서 아이들은 다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싫어하는것인가.

    ‘내가 너무 늙은이 입맛인가……?’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그런 고민을 하는 루크였다.

    -……루크, 치사해.

    ‘…….’

    이번에도, 못마땅한 것은 파이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민초에 제가 굳이 색을 넣은 이유는 그냥 생긴게 너무 민초같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민초에 더 신경을 쓴 걸 보니까 민초단이냐 물으실 수 있겠지만 해당 삽화에 작가의 사상은 일절 관여되지 않았음을 알려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