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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2

       “우리는 가족 같은 학생회야!”

         

       파스텔은 상급자로서 고개를 치켜들고 당당히 말했다.

         

       “힘든 일이 있다면 서로 돕고! 나와 너를 구분하지 않는 그런 학생회! 가족 같은 분위기인 거야!”

       “위대한 선배님, 질문 있어요.”

         

       멜리사가 손을 가볍게 들었다.

         

       “얼마든지! 그리고 위대한 선배님이 아니라 슈퍼 울트라 위대한 선배님이야! 위대한 선배님이라는 호칭은 엘리 거라구!”

       “나는 그렇게 안 불러도 돼.”

         

       엘리가 고개를 돌리며 살짝 창피해했다.

         

       멜리사가 엘리를 보다가 파스텔을 돌아봤다.

         

       “슈퍼 울트, 으흠.”

         

       멜리사의 볼이 다소 붉어졌다.

         

       “슈, 슈퍼 울트라 위대한 선배님.”

       “응응!”

         

       파스텔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 슈퍼 울트라 위대한 선배님이야!

         

       엘리가 모범생을 안쓰럽게 봤다.

         

       “파스텔에게 너무 안 어울려 줘도 돼. 일만 제대로 하면 적당히 무시해도 뭐라 안 하니까.”

         

       허억.

         

       분홍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나를 여태까지 그렇게 생각한 것?

         

       멜리사의 안색이 밝아졌다.

         

       “그랬군요. 조언 고마워요, 엘리 선배님. 파스텔 선배, 질문 있어요.”

         

       으아아!

         

       위대한까지 빠졌어……!

         

       창피했나 봐!

         

       흐윽.

         

       내가 창피한 거야?

         

       다들 나빠.

         

       “얼마든지 물어봐아.”

       “모두 동급생인데 굳이 선후배 관계를 만들어야 하나요?”

         

       앗, 모범적 질문.

         

       “응!”

         

       파스텔은 단호히 끄덕였다.

         

       “나중에야 의미 없겠지만 지금은 멜리사와 앨시어 모두 학생회에 문외한이니까. 인수인계 받을 때 괜한 자존심 세우지 말라는 의미야.”

         

       책상에 쌓인 서류 뭉치를 툭툭 두들겼다. 개혁 전의 학생회 프로세스라면 이 정도로 서류가 많아질 이유가 없었다.

         

       “문서주의 행정은 가정교육으로 성장한 귀족 엘리트가 금방 능숙해지기엔 진입장벽이 매우 높거든.”

         

       문서에 따라 행동하고 문서에 모든 것을 기록하는 건 근대적 사고방식이니.

         

       보통 귀족 엘리트는 상급자에게 서면 결재를 받으라고 가르쳐도 현장에서 바로 월권행위를 한 다음 사후 결재를 받아버린다구.

         

       “이건 나도 동의해.”

         

       엘리가 긍정했다.

         

       정작 초-엘리트 마족 소녀는 금방 능숙해졌지만!

         

       그래서 위대한 선배님인 거야!

         

       “그렇군요.”

         

       멜리사가 곰곰이 생각했다. 푸른 눈동자가 옆의 은발 소녀를 슬쩍 봤다.

         

       “왜?”

         

       조용히 있던 앨시어가 의아해했다.

         

       멜리사가 다시 파스텔을 바라봤다.

         

       “제가 먼저 가입 권유를 받았으니 벨라몬트보다 제가 더 선배겠네요.”

         

       분홍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멜리사 너 친구가 됐다며.

         

       기회가 생기면 바로 상하관계를 잡으려는 게 친구 사이?

         

       슈퍼 울트라 위대한 선배 파스텔은 경악했다.

         

       인기인 파스텔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

         

       앨시어가 멜리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내가 먼저 권유받았어. 하늘섬 유적에 잠입했을 때.”

         

       친구 같지 않은 자존심 싸움.

         

       중간에 낀 파스텔은 곤란곤란!

         

       파스텔은 양팔을 휘저었다.

         

       “얘들아 너무 그러지 마아! 어차피 도토리 키재기니까! 차라리 슈퍼 울트라 위대한 선배를 찬양해!”

         

       응응!

         

       그게 맞아!

         

       말없이 시선만 쏠렸다.

         

       앨시어가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슈퍼 울트라 위대한 선-”

       “오리엔테이션은 된 거 같으니 기초 업무를 알려줄게.”

         

       엘리가 쓸데없는 찬양을 끊고 나섰다.

         

       으아아!

         

       “더스틴, 자료실에서 신입 교육자료와 문서관리규정을 가져와. 1학기 때 만든 거 있잖아. 일부 고치긴 해야겠지만 일단 그거로.”

       “알겠어.”

       “이제 자리 정해줄 테니까 한 번씩 앉아봐. 불편한 부분 있으면 책걸상을 바꿔줄 테니.”

         

       학생회가 분주해졌다.

         

       “으아아!”

         

       파스텔은 실내 한복판에서 홀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내 찬양!

         

       내 찬야앙!

         

         

         

       #

         

         

         

       수목이 우거진 산골짜기.

         

       파스텔은 순수공학부 고학년생들을 졸졸 뒤따랐다. 그 뒤를 학생회 일원이 졸졸 뒤따랐다.

         

       팔이 힘껏 휘저어졌다.

         

       “병아리!”

       “삐약삐약.”

         

       앨시어가 혼자 대답했다.

         

       “참새!”

       “짹짹.”

       “오리!”

       “꽥꽥.”

       “야광 드래곤!”

       “야광, 드래곤…….”

         

       앨시어가 순간 멍해졌다.

         

       이럴 수가.

         

       앨시어는 야광 드래곤이 어떻게 우는지 모르나 봐!

         

       그런데 어쩌지?

         

       나도 몰라.

         

       파스텔은 같이 멍해졌다.

         

       엘리가 살짝 힘 빠진 걸음으로 고학년생에게 다가갔다.

         

       “슬슬 다 왔어요?”

       “좀 더 가면 협곡에 부설한 철도가 보일 거야. 학술 입학이지? 다리 아프면 업어줄까?”

         

       엘리가 순간 고뇌했다.

         

       “아니요.”

       “엘리! 엘리!”

         

       파스텔은 한 팔을 휘저었다.

         

       “선배님이 부담스럽다면 내가 업어줄까?”

         

       엘리가 굉장히 고뇌했다. 망설이더니 고개를 저었다.

         

       “사양할게.”

         

       파스텔 일동은 순수공학부가 하늘섬에 테스트용으로 만든 철도로 향했다. 현장 시찰 느낌이다.

         

       그런데 테스트용 철도가 왜 하필 이런 산골짜기에 있는가 하면.

         

       “이참에 돈 들여서 만들 거면 험악한 환경에서 제품 테스트도 겸하자! 는 느낌으로 만든 거였죠. 정작 토지를 사고 부설을 해보니 공사비도 그렇고 오가는 교통도 그렇고 철도가 아니라 사람에게 너무 고단한 환경이었지만.”

         

       기술자가 사업 경험 없이 의욕만 앞서면 겪는 일.

         

       이젠 파스텔이 인수했으니 이렇게 투자 유치와 마케팅도 고려하지 않은 대참사는 없을 거야!

         

       생각보다 넓고 평평한 협곡에 당도했다. 철도 정거장은 그사이에 다소 덩그러니 존재했다.

         

       원시적 형태긴 해도 협곡에 쭉 깔린 철도가 보였다. 편의 시설은 설계부터 고려가 안 된 듯 하지만 사람이 대기할 정거장까지 나름 갖춘 모양새였다.

         

       쪼그려 앉은 파스텔은 정거장 지면을 톡톡 건드렸다. 시멘트에서 돌소리가 났다.

         

       으에, 시멘트.

         

       충격.

         

       멜리사가 흥미로워했다.

         

       “이건 저도 알아요. 어머니께서 대수림의 성벽 보수에 마계 신기술을 도입했다고 공사 현장을 보여 주셨거든요. 빠르고 효과적이에요. 비록 전쟁에 성벽이 유의미한 시대는 아니지만 야수에겐 유용하죠.”

         

       앨시어가 슬쩍 다가왔다. 주변에서 눈치를 보다가 본인이 아는 얘기가 나오자 드디어 친구에게 말을 걸려는 모양새였다.

         

       “우리 벨라몬트에서도 도입 얘기가 나온 적이 있긴 해. 북부 산맥은 개척 대상이지 수호 대상이 아니라고 거절됐지만.”

       “벨라몬트는 낙후됐으니까요.”

         

       이유도 말했건만 멜리사는 그냥 낙후됐다고 정의했다.

         

       앨시어가 멜리사를 뚫어져라 봤다.

         

       친구 됐다며.

         

       유감스럽게도 멜리사는 무의식적으로 말한 듯했다. 마음에 새겨진 본심이라는 얘기다.

         

       유감.

         

       근데 시멘트도 안 쓰는 최전선은 낙후된 게 맞는 거 같아!

         

       응응!

         

       앨시어의 입술이 살짝 나왔다.

         

       “하긴 대수림 앞에서 지키기만 하는 남부 겁쟁이들은 성벽에 의존해야 할 거야.”

       “왜 갑자기 말싸움을 거는 거죠?”

         

       멜리사가 당혹스러워했다.

         

       진짜 자각 없는 본심이었나 봐.

         

       비바람 안 맞으라고 천막으로 덮어놓은 열차를 정비한 선배들이 다가왔다.

         

       “파스텔 각하! 운행 준비가 끝났습니다!”

       “와아아!”

         

       내 인생에 열차 탈 줄은 몰랐어!

         

       칙칙포포! 칙칙포포!

         

       구름구름 뭉게구름!

         

       파스텔은 증기기관차에 후다닥 달려갔다.

         

       “열차 친구우! 넌 아직 자기소개도 안 했지만 절친 랭크에 올라갈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거야!”

         

       의외로 친구 선별하는데 까다로운 파스텔에겐 진짜 몇 명 없는 영광의 자리라구!

         

       과대표가 자랑스럽게 천막을 잡았다.

         

       “이것이 최신 공학 기술의 총집합!”

         

       천막이 벗겨지고 열차의 검은 차체가 드러났다.

         

       “증기기관차입니다!”

         

       분홍 눈동자가 반짝였다.

         

       “이것이……!”

         

       파스텔은 숨을 들이켜고 적극 감탄하려다 멈칫했다.

         

       뭔가 생긴 게 상상과 살짝 달랐다. 상상 속 열차의 동그란 앞부분만 덩그러니 있고 기다란 몸체 부분이 없었다.

         

       열차 머리만 있어.

         

       들이켠 숨 바람이 푸슈슝~ 나왔다.

         

       파스텔은 빠른 걸음으로 열차 친구의 주변을 맴돌았다.

         

       이 정도면 기차놀이 칙칙포포가 아니라 연필놀이 짜리몽땅인 듯.

         

       선배들이 경직됐다. 창백한 안색으로 다가왔다.

         

       “파스텔 각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

         

       헛.

         

       눈이 너무 높았다!

         

       당황한 파스텔의 양팔이 휘저어졌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파스텔은 친구를 가려서 사귀지 않는다구요! 마음속에 친구 랭킹 같은 것도 만들지 않았어요!”

         

       멜리사는 랭킹 1위에 앨시어는 최상위권이고 엘리는 빼서 별도 랭킹에 산정해 놓은 데다가 레너드는 첫인상 마이너스로 중하위권에 존재하고 더스틴은 깜빡해서 랭킹 산정을 안 했다거나 하진 않았어요!

         

       참고로 악마님은 가족 랭킹에 있다.

         

       멜리사가 경악했다.

         

       “친구 랭킹, 정말 있는 건가요? 소문일 뿐이라 생각했어요.”

         

       허억.

         

       이러다 뇌물 랭킹이 있다는 사실까지 들키겠어어!

         

       벌써부터 억울해애!

         

       파스텔은 허둥지둥 열차 친구를 돌아봤다.

         

       “열차 친구! 방금 뭐라 했어? 친구가 된 기념으로 한번 탑승해 봐야겠지 않겠냐구?! 그런 착한 마음!”

         

       적극 수용할게!

         

       파스텔은 양손을 꼭 모았다. 간드러진 목소리로 애원했다.

         

       “선배님들! 선배님들! 후배는 열차가 타고 싶어요!”

         

       어떻게 타면 되려나~.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과대표가 후다닥 달려왔다. 문도 안 달린 기관차에 올라타더니 없는 먼지를 괜히 치우는 제스처를 하곤 손짓했다.

         

       “타시죠!”

         

       먼지 한 톨도 치우는 노력에 후배는 감동~.

         

       파스텔은 잽싸게 올라탔다.

         

       “열차 친구! 우리 힘내 보자구!”

       “출발하겠습니다!”

         

       과대표가 기계 장치를 조금 조작하더니 화실의 문을 열고 석탄 삽질을 시작했다.

         

       “와아!”

         

       진짜 석탄 열차!

         

       기적 소리가 나고 열차 바퀴가 움직였다.

         

       “구름구름 뭉게구름!”

         

       파스텔은 해맑게 웃으며 문간에서 상체를 내밀었다. 기관차 위를 올려봤다.

         

       열차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뿜뿜 나왔다.

         

       오잉.

         

       하얀 구름이 아니야.

         

       파스텔은 생각하다가 다시 해맑게 외쳤다.

         

       “구름구름 먹구름!”

         

       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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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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