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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2

       원더스타인과 마야가 마을로 떠난 지 5시간이 넘었지만, 여전히 두 사람에 대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엘라는 초조함을 숨기지 못했다.

         

       저녁 먹을 시간은 한참 전에 지나버렸다.

       두 사람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그녀의 불안감은 1시간 전에 시도했던 정찰이 무산되면서 극도에 달했다.

         

       구돌이와 찍순이는 마을로 가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

       둘은 겁에 질려 있었다.

         

       동물과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그녀는 그 이유를 물었다.

       둘은 그것을 표현할 어휘를 찾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

         

       무섭다. 잡아먹는다.

         

       그것은 심상치 않은 징조였다.

       커다란 솔개같은 천적이 나타난 것이라면 그에 해당하는 어휘가 있었다.

       엘라가 혹시나 그런 것이냐고 되물었지만, 둘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다르다. 본 적 없다.

         

       둘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둘의 동물적 감각이 그곳에 위험한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원더스타인과 마야는 괜찮을까?

         

       설마 이런 시골에 두 사람을 위협할 무언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위험한 존재라 하면 원더스타인 이상가는 대상을 떠올릴 수 없었다.

         

       엘라는 2시간 전에 자신들을 보고 도망치던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 그녀가 느낀 불안감은 역시 잘못된 게 아니었다.

       마을에서 뭔가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마을로 직접 찾아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래도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자신의 그런 행동이 상황을 더 위험하게 만드는 일이 될 수 있었다.

         

       그녀의 결심을 앞당겨 준것은 어떤 폭음이었다.

       커다란 무언가가 부서지고 무너지는 소리가 땅을 뒤흔들었다.

       마치 거대한 투석기가 성벽을 때리는 것 같았다.

         

       엘라는 더는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

         

       “아무래도 가봐야겠어.”

         

       처음에는 그녀 혼자 가려 했다.

       그러나 이미 폭음을 다 함께 들은 마당에 단원들이 그녀를 혼자 가게 놔둘리 없었다.

       결국, 서커스단 전체가 마을로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엘라는 유라크네와 같은 마차를 탔다.

         

       “두 사람 다 괜찮을 거야.”

         

       유라크네의 뜬금없는 위로에, 엘라는 그녀가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두 손은 서로 맞잡은 채 떨고 있었다.

         

       “이건……마야가 걱정되서 그래요.”

         

       엘라는 손을 재빨리 소매 사이로 숨기며 말했다.

       그리고 궁색한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그 인간 따위는 알 바 아니지만요.”

       “……엘라, 아까부터 그 말 벌써 세 번째 하는 건 알고 있니?”

         

       유라크네가 장난기 섞인 미소를 지었고, 엘라는 그녀의 시선을 재빨리 피했다.

         

       “솔직히 말해 봐. 단장님도 걱정되지?”

       “그, 그럴 리 없잖아요……. 애초에 누군가 걱정해줄 만한 인간이 아닌 걸요.”

         

       엘라의 말이 맞긴 했다.

       유라크네도 그가 위험에 처한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다.

         

       “너와 단장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제 얘기해줄 수 있지 않니?”

         

       그녀의 말에 엘라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유라크네는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조심스럽게 다음 말을 꺼냈다.

         

       “너도 알잖아. 단장님 태도도 많이 바뀐 거.”

       “바뀌었다고요? 뭐가요?”

       “그렇지 않니? 좀 더 살가워지시고. 우리에게 좀 더 진심이 되신 거 같고…….”

       “친절한 척 하는 건 원래 그 인간 특기였잖아요. 진심은 무슨……. 좋아요. 인정하죠. 서커스에 대해서는 진심이라는 것은. 애초에 그 인간이 우리에게 잘해주는 것도 모두 그걸 위해서니까요.”

         

       엘라는 평소보다 원더스타인에 대한 마음을 다스리기 어려웠다.

       하필이면 아까 그 꿈을 꿔서…….

         

       그녀는 조금 숨을 돌리며 말했다.

         

       “사람들을 그렇게 죽인 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요?”

         

       그녀의 말에 유라크네도 표정을 굳혔다.

       그녀도 여전히 그날의 기억들을 잊지 못했다.

         

       그의 손짓 한 번에 완전무장한 병사들이 폭죽처럼 터져나갔고, 죄없는 마을 사람들이 산 채로 공처럼 뭉쳐버렸다.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는지 아직도 의문이었다.

         

       대신 그녀는 숲속에 홀로 살아가던 자신에게 내밀었던 따뜻한 손을 떠올렸다.

       자신의 앞을 막아서주었던 그의 등을 떠올렸다.

       자신에게만 비밀을 털어놓았던 그의 미소를 떠올렸다.

         

       그리고 죽은 남편을 떠올렸다.

         

       유라크네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단장님도 뭔가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사정? 사정이라고?

         

       엘라는 죄없는 어린아이들 수십 명을 학살한 데에 무슨 사정이 있냐고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간신히 감정을 억누르고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을로 가까이 다가갈 수록 그들은 뭔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이 번갈아 들렸다.

       냄새에 민감한 랫맨들이 코를 킁킁거렸다.

         

       “피다!”

       “피 냄새다!”

         

       단원들은 아무도 명령하지 않았지만, 무기가 될만 한 것들을 찾아 손에 쥐었다.

         

       엘라는 단검을 꺼내기 위해 품에 손을 넣었다가 다른 무언가가 손에 닿았다.

       원더스타인이 준 물건이었다.

       그녀는 속으로 욕을 몇 마디 내뱉고는 단검을 꺼내 손에 쥐었다.

         

       그들이 마을 입구 바로 앞까지 왔을 때, 목책의 문이 열렸다.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 몇이 뛰어나왔다.

         

       그들은 마차에 걸린 등불을 보고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가장 가까이 있던 요벨은 그들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소리를 빽 질렀다.

       

       “괴물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대로 유난히 눈에 띄는 우리 속의 우몬을 발견하고 비명을 질렀다.

         

       “괴물이다!”

         

       그들은 손에 들고 있던 농기구를 그들에게 내밀었다.

       마차 안에 있던 단원들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들이 내민 쟁기와 갈퀴 끝에는 피와 살점, 그리고 사람의 신체 일부가 걸려 덜렁거리고 있었다.

         

       “살인자들이잖아!”

       “위험한 놈들이군!”

         

       단원들이 마차 문을 열고 나섰다.

       주민들은 갑자기 우르르 튀어나오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는 꽥 비명을 지르며 자지러졌다.

         

       “뭐야, 이 인간들은.”

         

       그들은 쓰러진 마을 사람들을 살폈다.

       요벨이 그들을 보고 괴물이라고 소리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일부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는 이상한 것들이 돋아나 있었다.

         

       “무슨 전염병이 도는 모양인데?”

       “피부 좀 봐. 밴딕보다 끔찍한 사람은 처음 봤어.”

       “말 다했냐.”

         

       단원들이 쓰러진 마을 사람들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엘라는 속으로 비명을 간신히 삼켰다.

       그들의 몰골이 끔찍해서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걸 예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스벤이 말했다.

         

       “저주 역병이군요.”

         

       그 이름을 꺼내는 스벤의 목소리는 진중했다.

       항상 억지로라도 활기찬 목소리를 짜내 광대로서 본분을 다하던 그가 이렇게 진지하게 구는 것은 처음 봤다.

         

       우몬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게 뭐예요?”

         

       요벨이 머리를 긁적이며 확신없는 태도로 중얼거렸다.

         

       “그거 되게 유명한 전염병이지 않나?”

       “모르는 분들도 많군요. 훗훗, 저주 역병. 다른 이름으로 데볼루트. 그건 우리 모두와 관련이 깊은 저주입니다.”

         

       스벤은 데볼루트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로부터 그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단원들도 있었다.

         

       “확실히 마을에서 단장님과 마야 양이 곤란에 빠진 건 맞겠군. 저주 역병이 퍼진 마당에 우리 같은 사람들이 오면 절대 좋은 소리 듣기 힘들겠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모르겠어요. 사람들 무기에 묻은 피와 살점을 보세요. 사람들 간에 패싸움이라도 벌어진 걸까요? 아니면 이곳 영주가 저주에 걸린 사람들을 일소하기 위해 병사들을 보낸 걸지도…….”

       “죽인단 말이에요?”

       “데볼루트의 기전이 밝혀지기 전에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어.”

       “핫핫, 서둘러야겠군요. 이제 상황 파악은 어느정도 됐으니.”

       “그, 그런데 우리는 괜찮은 거 맞을까?”

       “핫핫, 글쎄요. 제가 아는 얘기로 그렇다는 겁니다. 혹시 압니까. 데볼루트에 노출되면 저는 살이 돋아날지도?”

       “저……정말이냐?”

         

       밴딕이 붕대를 들썩이며 되물었다.

       스벤은 다시 광대다운 태도를 회복해 낄낄거렸다.

         

       “당연히 농담이죠.”

       “이런 망할 영감탱이가…….”

         

       다들 의문이 해소된 거 같아 한시름 놓은 것과 달리 엘라는 여전히 표정을 굳힌 채 서 있었다.

         

       주민들이 변한 이 모습.

       이건 원더스타인이 그녀의 고향을 공격했을 때, 그가 저지른 짓과 같았다.

         

       -죽여줘! 차라리 그냥 죽여달라고!

       -그 악마가 그런 거야! 허공에 손을 뿌리니까 사람들이 다 쓰러지면서 다들 이렇게 됐어!

         

       온갖 끔찍한 형태로 변이되어 땅바닥을 기어다니고 엉켜 있는 사람들.

         

       스벤은 저주 역병이 역병 군주라는 악마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엘라는 생각했다.

       정말 그런 악마가 존재한다면, 자신은 그가 누군지 알 거 같다고.

         

         

       ***

         

         

       성당 안은 곡소리로 가득했다.

       꽁꽁 억눌려 있던 슬픔과 공포가 상황이 진정되면서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발렌티나는 죽은 사람들의 혼을 달래어 그들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재앙은 아직 모두 끝난 게 아니었다.

       그녀는 주민들을 향해 외쳤다.

         

       “아까 그 광분 현상은 저주 역병 환자을 대상으로 일어난 게 분명합니다! 슬픔은 잠시 뒤로 미뤄두고 치료를 받으러 와 주시지 않겠습니까?”

         

       발렌티나와 원더스타인은 이전에 앉았던 자리로 가서 환자들을 차례차례 들어오게 했다.

       그러나 아무도 원더스타인 앞에 서지 않았다.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아까와 같은 적대감은 없었다.

       어쨌든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준 건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괴물서커스단을 이끌고 다니는 수상쩍은 인간이라는 사실은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제 성당 안에 남은 환자는 50명도 채 되지 않았다.

       어차피 받을 거 검증되지 않고 불안한 방법 대신 성교회의 수녀님에게 받는 게 낫다고 다들 생각했다.

         

       원더스타인은 모든 환자들이 발렌티나 앞에 줄 선 것을 보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할 일은 끝났군요.”

       “떠, 떠나는 겁니까?”

         

       발렌티나가 그를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그녀를 향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제 자러 가아죠. 후후, 발렌티나는 씨는 좀 더 고생해주세요.”

       “우웃! 너, 너무합……아, 아니.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원더스타인은 걸레짝이 된 수도복을 휘적이며 밖으로 나왔다.

       그곳에는 지친 기사가 비교적 멀쩡한 사람들을 동원하여 시체를 수습하고 있었다.

         

       “이바넨코 경, 말한 대로 단원들에게 야영장을 제공해줄 수 있습니까?”

       “그럴 필요 없습니다. 마을 회관이 비었으니 그곳에 단원들을 모두 데려가서 주무십시오. 당신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했습니다. 어차피 마을 주민 대부분이 몰살당했으니 따질 사람도 없을 겁니다.”

         

       원더스타인은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성당을 떠났다.

       막 마을로 내려가는 언덕길에 섰을 무렵, 아래에서 마야가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단장님!”

         

       그녀는 무기를 든 주민들과 감염자 사이에 벌어진 싸움을 돕느라 나머지 감염자들의 동태를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다 교회에서 폭음이 들리는 것을 듣고 급히 달려왔다.

         

       “마야 양은 무사했군요. 다행입니다.”

       “……단장님도요.”

         

       그녀는 군데군데 피를 흘리고 있지만 멀쩡하게 걸어다니는 그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그의 뒤쪽을 흘끗 바라봤다.

       그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있었지만 다 끝났어요. 후후, 내려가죠. 우리 단원들을 봐야죠.”

       “……네.”

         

       두 사람은 함께 언덕길을 내려갔다.

         

       성당의 종지기는 종탑 위에서 그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봤다.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죽었지만, 30년 넘게 하루도 종 치는 일을 거르는 법이 없었던 늙은 종지기는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 이곳에 올라왔다.

         

       그는 종을 울리기 위해 줄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종은 예전처럼 맑은 소리를 들려주지 못했다.

         

       아까 싸움의 여파로 종탑의 일부분에 금이 가면서 쇠 부분이 뒤틀렸기 때문이다.

         

       찌지직. 지직.

         

       금속 긁는 소리가 마을에 울려 퍼졌다.

         

       이제 자정이었다.

       어둠에 웅크리고 있는 것들이 가장 힘을 얻는 시간.

         

       찌지직. 지직.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다.

       죽어가던 그들이 내뿜는 부정한 영적 파장.

       그것은 이 지역의 영적 방호를 크게 취약하게 만들었다.

         

       찌지직. 지직.

         

       영적인 눈을 타고난 사람이라면 볼 수 있을 것이다.

       허공에 금이 가는 것을.

         

       찌지직. 지직.

         

       영적인 귀를 타고난 사람이라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허공에 금이 가는 소리를.

         

       찌지직. 지직.

         

       시체가 쌓인 거리.

       피가 질퍽이는 골목 사이.

       가장 짙은 어둠 속.

         

       찌지직. 지직.

         

       어비스와 이 세계를 가로막는 장벽이 찢어졌다.

       그 사이로 거대한 그림자들이 허리를 일으켰다.

       살육을 탐하는 붉은 눈동자들이 빛을 번뜩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누오 님, 105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완결까지 계속 재밌는 글을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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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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